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69화 (46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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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왕이 이러는 것은 크게 놀랍지 않다 >

"하아, 드디어 끝입니다. 모든 신기(神氣)가 빠져 나왔습니다."

"금제도 자연스럽게 풀리는구나."

"음. 이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군요."

세해갈과 유희에 이어 건우도 눈을 치켜뜨고 귀왕의 금제가 흩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세 사람의 금제가 풀리며 정신체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올 때와는 다르게 정신체가 깊고 깊은 허량원의 지하에서 허량원 상공에 있는 거룡 비행 선기의 정수리 탑까지 이동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으음. 이제 어찌하면 됩니까?"

거용의 4층탑 1 층에서 눈을 뜬 건우가 유희를 보며 물었다.

"느껴 보아라. 허량원에 들어올 때와 달라진 것이 있을 터."

그러자 유희가 건우에게 스스로 답을 찾아보라는 듯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건우는 조용히 눈을 감고 의념을 넓게 펼쳐 허량원의 기운을 살폈다.

‘이게 뭐지? 의념과 연결된 통로 수십 개가 느껴지는군.’

건우는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공간 이동 통로가 의념에 잡히는 것을 느끼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게다가 그 통로들이 어디로 통하고 있는지 최소한의 정보까지 의념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저 통로가 숙류계로 나가는 통로로군. 그리 멀지 않으니 곧바로 나가면 되겠어.’

건우는 의념에 느껴지는 수십 개의 통로 중에서 목적지인 숙류계와 통하는 통로를 찾고 눈을 떴다.

"우리가귀왕의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건우가 유희를 보며 물었다.

"그러하다. 진선까지 떨어진 귀왕이 허량원 전체를 좌지우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 그래서 큰 규칙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서 자신의 의지를 투사했다. 그 때문에 귀왕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세운 규칙을 어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

"그러니까 귀왕이 우리에게 허량원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도, 이미 정해진 규칙 때문에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귀왕의 재주가 대단하다 할 것이다. 이 넓은 허량원에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을 짜 넣었으니 말이다."

"그렇군요."

"저기, 말씀중에 죄송하지만, 서둘러 이곳을 떠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귀왕이 이미 원하는 것을 얻어 저와 맺은 계약이 끝났으니, 이제 어찌 나올지 알수 없습니다."

건우와 유희가 느긋하게 허량원의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세해갈이 두 사람을 재촉했다.

이에 건우도 굳이 귀왕이 있는 허량원에 오래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거룡 비행 선기를 움직여 숙류계 통로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조금 늦었던 것일까?

거룡 비행 선기의 앞에 갑자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 니 지상에서 뼛가루들이 회오리쳐 올라왔다.

"음? 귀왕이?"

"맞다. 귀왕이 분명하구나."

"역시,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군요."

건우와 유희, 세해갈이 동시에 뼛가루를 끌어 올리는 검은 연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인사 한마디 없이 이리 떠나는 법이 어디 있나. 무척 섭섭하군."

지상에서 끌어 올린 뼛가루를 뭉쳐 20장 크기의 몸을 만들어 낸, 귀왕이 허공에서 뒷짐을 지고 건우 일행을 보며 말했다.

"인사가 꼭 필요하겠습니까? 귀왕 선인께선 이미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 이제 허량원 지하에 있는 신수의 뼈를 연화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중요한 일이 있는데, 굳이 우리와 작별 인사를 할 겨를이 있을까 했습니다."

"크하하하. 주둥이가 맵구나. 옳다. 지금 나는 당장이라도 신수의 뼈를 연화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하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너희가 가진 보물을 좀 얻었으면 하는구나."

"우리가 가진 보물이라.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귀왕의 말에 건우가 그렇게 물었다.

사실 그것은 물을 것도 없이 신기를 담은 신수의 사리(舍利)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이제부터 허량원 신수의 뼈를 연화하여 내 몸체로 삼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기운의 중심이 될 핵이 빠지지 않았느냐."

"핵이란 것이 사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하지만 신수의 사리는 응축된 신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귀왕 선인께 무슨 소용에 닿는단 말입니까?"

건우는 귀왕이 불필요한 것을 욕심내는 것이 아니 냔 뜻을 담아 그렇게 물었다.

"사리에 담긴 신기 따위가 무슨 문제란 말이냐? 이미 뼈에서 빠져나온 상태이니 내가 능히 사령의 기운으로 물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령의 기운으로 가득한 사리 셋을 다시 취할 수 있다면 허량원 신수의 뼈도 지금보다 몇 배는 강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으음."

건우는 귀왕이 이미 계획을 가지고 움직인 것을 알아차렸다.

이리되면 귀왕이 설대 쉽게 물러나진 않을 것이다.

건우가 유희와 세해갈의 표정을 살폈다.

유희는 일이 어찌 되거나 별 상관이 없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이고, 세해갈은 죽어도 사리를 내어줄 수 없다는 결사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러면 어쩐다? 그냥 사리를 내어주고 물러나야 하나?’

- 그건 곤란하지 않을까요? 유희 선인의 말대로라면 신기뿐만이 아니라 사리도 앞으로 건우님께 꼭 필요한 것일 거 같은데요?

‘그런가?’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희를 보았다.

"유희 선인, 저에게 신기가 가득한 사리가 꼭 필요하겠습니까? 귀왕에게 넘겨주어도 될까 모르겠습니다."

"그건 네 뜻대로 할 일이다. 하지만 나중에 신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사리가 꼭 필요하긴 할 것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세해갈 선인은 어떠합니까? 귀왕에게 사리를 내어 줄 뜻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이제 와서 사리를 내어 준다는 것은 스스로 자멸을 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가진 사리는 저의 미래 그 자체입니다."

건우의 물음에 세해갈은 예상했던 답을 하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건우가 훌쩍 몸을 날려 거룡 비행 법보의 머리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그 뜻을 짐작했는지 유희와 세해갈도 건우의 좌우로 따라붙었다.

"귀왕 선인.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귀왕 선인이 원하는 사리 보물을 내어 줄 뜻이 없습니다. 이제 어찌하겠습니까?"

건우는 귀왕에게 그렇게 물으며 슬그머니 거룡 비행 선보를 소매 안으로 갈무리했다.

어차피 싸움이 벌어진다며 거룡 비행 선보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파손을 피하고자 갈무리를 한 것이다.

"크하핫, 미련하구나. 내가 너희의 목숨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고작 하찮은 물건을 원했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스스로 죽을 자리는 찾는단 말이냐?"

건우 일행의 모습을 본 귀왕은 크게 웃으며 그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사령 법칙의 힘을 끌어냈는데, 그 위력이 이전에 보았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건우는 앞서 잠시 겨뤘던 귀왕의 힘만 생각하다가 터무니없이 강력한 사령 법칙의 힘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크윽, 이게 어찌 된 일……?"

하지만 건우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스스로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귀왕의 사령 법칙은 허량원 전체에 퍼져 있는 뼈와 원혼들의 기운을 뒷배로 삼아 커진 것이었다.

실로 지금 귀왕은 허량원의 모든 죽은 것들을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건우는 다급하게 의념 공간에 영찬황후선보를 불러내고, 여러 영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곧바로 소망과 구근, 백죽을 비롯한 모든 영물들이 영찬황후선보가 있는 곳에 나타나 자신의 영찬후로 스며들었다.

샤하아아아아아아!

"크읏, 이게 뭐냐? 어찌 너의 생기 법칙이 이리 강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여섯 영물의 의념이 더해진 영찬황후선보의 위력은 강력했다.

귀왕이 허량원의 뼈와 원혼으로부터 끌어 올린 사령 법칙의 힘이 일순간 건우의 생기 법칙에 밀려 버렸다.

특히 지금 건우가 펼치는 생기 법칙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을 더해서 죽음 법칙에 저항할 수 있는 태어남(生)의 기운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푸스스스스스스!

"이, 이런!"

귀왕은 미처 그 정도로 강력한 생기 법칙이 쏟아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일순 건우의 생기 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뼛가루를 모아서 20장 크기가 되었던 귀왕이 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이었다.

"해치운 것입니까?"

그 모습에 세해갈이 기뻐하며 건우에게 물었다.

하지만 건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세해갈을 노려봤다.

"무, 무슨? 어찌 그러십니까?"

세해갈이 건우의 사나운 눈빛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귀왕이 고작 이 정도에 죽겠습니까? 이곳은 허량원이고 허량원 전체의 뼈와 원혼이 귀왕의 의념 아래에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수십 장 크기의 뼛가루 몸체를 허문 것이 귀왕에게 무슨 타격이 되겠습니까?"

건우는 그것도 예상치 못하느냔 표정으로 세해갈을 야단쳤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다시 허공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지상에서 뼛가루가 회오리쳐 올라왔다.

이전 귀왕이 모습을 드러낼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이 번에는 연기의 양이나 뼛가루 회오리의 규모가 몇 배는 더 컸다.

"아, 이런! 막아야 합니다."

이에 깜짝 놀란 세해갈이 급히 물(水) 법칙의 힘을 떨쳐 검은 연기와 뼛가루가 뭉치는 것을 막으려 했다.

파지지지지직! 푸스스스슥! 휘리리리릭!

세해갈의 공격에 검은 연기와 뼛가루의 결합이 잠시 늦추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곧이어 허량원의 대지 전체에서 막대한 사령 법칙의 힘이 피어올랐다.

"으윽! 어찌 이럴 수가!"

순간 세해갈의 물의 법칙은 흔적도 없이 쓸려가고 뼛가루의 회오리는 모래 폭풍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해졌다.

"어차피 허량원 전체를 없앨 요량이 아니라면 지금 귀왕을 어찌할 수는 없다. 그 자는 쉽게 잡아 죽일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 때, 유희가 건우에게 귀왕과의 싸움은 승산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건우가 물었다.

"단숨에 다른 곳과 연결된 공간 통로를 이용하여 허량원을 빠져나가는 것만이 답일 것이다."

이에 유희는 더 말을 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단순한 대답을 내어 놓았다.

하지만 건우가 생각하기에도 유희가 말한 이상의 방법은 없어 보였다.

지금 귀왕을 상대하는 것은 허량원 전체를 상대하는 것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귀왕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콕 찍어서 찾아낼 수 있다면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귀왕은 끝없이 부활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곧바로 이곳을 벗어 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우도 유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건우가 허량원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공간 법칙을 준비하는 짧은 시간에 검은 연기와 뼛가루가 결합하여 결국 귀왕이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가긴 어디를 간다는 말이냐? 이젠 사리뿐만이 아니라, 너희는 이제 이곳에서 죽어 영혼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크하하하하핫!"

귀왕은 그렇게 광소를 터트리며 사령 법칙의 힘으로 건우와 유희, 세해갈을 감싸버렸다.

워낙 크고 강대한 법칙의 힘이라 셋은 순식간에 사령 법칙에 사로잡힌 꼴이 되고 말았다.

"아, 공간 법칙이 중간에서 끊겼습니다."

한 순간 건우가 탄식처럼 소리를 질렀다.

공간 법칙을 이용하여 숙류계로 향하는 공간 통로를 불러오던 참인데, 그것이 귀왕의 사령 법칙의 힘에 끊겨 버린 것이다.

"어허! 곤란하게 되었구나."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역천의 술법이라도 써서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보면 되겠습니까?"

유희는 탄식했고, 세해갈은 역천의 술법을 운운했다.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의념 공간에서 빛나고 있는 영찬황후선보를 현실에 현현시키기로 결심했다.

"귀왕을 죽이지는 못해도, 이 정도 법칙의 힘을 뚫고 공간 법칙을 쓰는 것은 가능하니, 모두 준비하십시오."

건우는 다급한 상황이라 길게 설명하지 않고, 그렇게만 알리고 여섯 영물이 깃들어 있는 북현무룡갑팔혈개영찬황후선보(北玄武龍甲八穴蓋豫皇局仙寶)를 머리 위로 불러냈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쿠우우웅!

"!!!!"

*   *  *

= 오오, 드디어 목룡단(木龍丹)이 나타났다!

= 결국 이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순리지요. 목룡단 같은 보물이 어찌 그대로 세상에서 사라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 어딥니까? 목룡단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 허량원! 허량원입니다.

= 어서 갑시다. 가서 목룡단의 주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하하. 어서! 어서 서두릅시다. 이전까지는 얼마든 기다릴 수 있었는데, 지금 목룡단의 기운을 접하니 촌각도 기다릴 수 없을 것처럼 마음이 급해집니다.

건우가 영찬황후선보를 현실로 불러냈을 때, 선계의 어느 곳에선 구룡승룡단의 마지막 하나인 목룡단이 등장한 것을 알아차린 이들이 흥분하여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 귀왕이 이러는 것은 크게 놀랍지 않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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