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67화 (46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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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 신수의 뼈에서 신기를 뽑아내다 >

"좋습니다. 건우 선인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니 이 세해갈 역시 마음을 터놓겠습니다."

건우의 말에 세해갈이 깊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 서슬에 녹옥(綠玉) 같은 세해갈의 긴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렸다.

그 후 세해갈은 고개를 들어 건우와 유희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이 금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봄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지만 실체는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그리고 그 때문에 금제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상태에서는 공간 법칙을 쓰지 못합니다."

건우가 가장 먼저 곤란하게 여기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가 즐겨 쓰는 공간 법칙이 이곳에서는 무용지물임을 알게 된 것이다.

"공간 법칙뿐만이 아니지. 본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기물들 역시 쓸 수 없다. 쓸 수 있는 것은 의념과 깊이 연결된 것들만 가능하다."

이어서 유희도 금제에 얽힌 제약을 파악하고 아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정신만 귀왕의 놀이터로 옮겨온 마당이라 강력한 선기나 선보가 있더라도 이곳에 불러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긴, 이곳의 금제가 우리를 가두어 두기 위한 것이니 공간 법칙을 제약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나마 의념 공간은 무사하니 다행이라고 할까?"

정신체의 모습으로 옮겨져 왔지만 의념 공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말하는 유희.

"우리의 정신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술법에 의념을 제약하는 효과까지 넣으려 했다면 그 반발이 만만찮았을 것입니다. 그런 술법은 만들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술법이었다면 저희가 어찌 귀왕의 초대에 순순히 응했겠습니까?"

건우도 의념이 무사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애호에 등선자를 상대로 술법을 펼치는데, 의념을 제약하는 따위의 조건을 넣는다면 그 반발이 얼마나 크겠느냐. 아무리 귀왕이라 하더라도 그런 조건의 술법은 펼치기 어려웠겠지."

"유희 선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일이 어찌 되었건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전각의 금제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선 이 세해갈이 미리 준비한 바가 있습니다. 이 점은 다시 한번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세해갈이 자신이 모종의 계획을 가지고 이곳까지 왔고, 거기에 건우와 유희가 함께 하게 된 것을 사과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되었습니다. 이미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는 따지지 않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이 난관을 뚫고 나갈 길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런 때에 세해갈 선인이 무슨 좋은 수를 가지고 있다 면 오히려 고마워 할 일이지요."

건우는 세해갈이 금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말에 반가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우선 눈앞의 일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세해갈은 고개를 들고 그렇게 말하며 소매를 떨쳐 대전의 허공에 술법진을 만들어냈다.

세해갈의 소매에서 선처럼 뽑아져 나온 하얀 가루가 허공에서 뒤엉키며 술법진을 만들었는데, 건우가 자세히 살펴보니 허량원의 거대 태고 신수의 뼈로부터 신기를 뽑아내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기이합니다. 술법진을 이루는 가루가 아무리 보아도 태고 신수의 뼛가루로 보입니다만."

건우는 술법진의 재료를 알아차리고는 그렇게 물었다.

"옳습니다."

세해갈은 건우의 말을 곧바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건우는 더욱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앞서 꺼내 주신 이 세 개의 사리는 그나마 세해갈 선인의 의념 공간에서 왔다고 어렵게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술법을 만드는 뼛가루까지 나오다니,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그 뼛가루가 어디서 나왔다는 말입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잠시 기다리며 세해갈을 노려보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추궁의 고삐를 계속 조이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공간 법칙을 쓸 수가 없고, 그나마쓸 수 있는 것이 의념 공간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이 뼛가루와 세 개의 사리 전부가 세해갈 선인의 의념 공간에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우는 지금의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세해갈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수사나 선인이 의념 공간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것은, 그것을 영혼의 일부로 만든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영혼의 부담 때문에라도 의념 공간에 본명 법보 이외에 다른 것들을 넣는 일은 거의 없다.

건우만이 특이하게 의념 공간을 일반적인 확장 공간이나 창고처럼 쓰는 것일 뿐.

그런데 태고 신수의 뼈에서 나온 사리에 이어서, 그 뼛가루까지 의념 공간에 넣을 수 있도록 영혼과 하나로 만들었다니.

"실로 건우 선인께서는 이 세해갈의 큰 비밀을 물으십니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송구하게도 그것들까지 모두 대답을 해 드리긴 어렵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건우의 물음이 과했던 것일까?

이번엔 세해갈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그 반응에 건우는 급히 두 손을 모았다.

"이런, 제가 과했습니다. 의념공간에 대한 것을 물은 것은 분명히 이 강 모의 실수입니다. 입 밖에 나온 말이나 듣지 못한 것으로 하고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건우 선인께 의심스러운 사람일 터인데,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오히려 제가 건우 선인께 이해를 구합니다."

세해갈은 그렇게 건우의 말을 받았고, 이후 건우와 세해갈은 잠시 서로 잘못을 사과하며 난처한 상황을 풀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어쨌거나 이 술법진이 있으면 태고 신수의 신기를 쉽게 뽑아낼 수 있습니다. 이는 확실하지요."

세해갈은 허공에 띄운 술법진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히 술법진의 위력이 그 말과 같다면 금제를 깨는 일이 쉽겠습니다. 참으로 세해갈 선인의 준비가 대단합니다. 이 강 모가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건우는 조금 전에 세해갈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일을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두 손을 모아 공수하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그만큼 세해갈이 준비한 술법진은 굉장한 것이기도 했다.

건우는 가까이 다가가 술법진을 살피면서도 그 진의를 완벽하게 파악해 낼 수는 없었다.

처음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였던 술법진이 가까운 곳에서 세세히 살펴보니 선 하나하나에서 문양과 문자들까지, 어느 것도 고정된 것이 없이 꿈틀거리며 계속해서 형상이 변하고 있었다.

술법진 전체가 그러하니 얼마나 많은 변수를 품고 있겠는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술법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제 강 선인과, 유희 선인, 그리고 제가 힘을 모아 술법진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이에 필요한 공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법은 여기에 담아 두었습니다."

세해갈은 그렇게 말하며 건우와 유희에게 영기를 응결하여 술식을 날려 주었는데 거기에는 술법진을 발동시켜 유지하는 방법이 들어 있었다.

건우와 유희는 어렵지 않게 술식의 공법을 간파해 낼 수 있었다.

등선에 이를 정도라면 간단한 술식의 공법 따위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일이 아니었다.

"공법은 간단하나 술법진과 어울리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니 그에 잘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서둘러 시작하지요."

건우와 유희가 술식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을 본 세해갈은 그렇게 주의를 주고는 조금 서두르는 기색으로 술법진 아래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런 세해갈의 가슴 앞에는 새하얀 사리 구슬이 떠 있었다.

이에 건우와 유희도 세해갈과 삼각형을 이루며 사리 구슬을 가슴 앞에 띄우고 술법진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웅!

잠시 후, 건우와 유희, 세해갈이 거의 동시에 술법진을 발동시켰고, 그 직후 대전에 길게 누워있던 태고 신수의 뼈에서 신기가 흘러나와 세 선인의 가슴 앞에 떠 있는 사리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건우는 술법진을 통해 태고 신수의 뼈에서 신기를 뽑아 사리에 넣으면서 혹시 무슨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잔뜩 경계했다.

아직 술법진을 완벽하게 파악한 것은 아니어서 혹여 수작을 부린다면 지금이 그 때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리에 신기가 가득 차서 더는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될 때까지도 세해갈은 물론이고 술법진이나 공법에 특별한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다만.

‘사리가 가득차면 그 후에는 신기를 어찌 해야 하지?’

문제는 사리가 신기로 가득 차고 있는데 술법진의 발동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술법진을 멈추기 위해서는 유희와 건우, 세해갈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이게 함정인가?’

결국 사리가 신기로 가득 차서 더는 여유 공간이 없어질 즈음 건우는 이 상황이 세해갈이 판 함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 그런 거 같은데요? 결국 술법진을 멈추기 위해서는 셋 모두가 동의하고 한꺼번에 물러나야 하는데, 세해갈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잖아요.

건우의 그런 의심에 몽이의 의념이 전해져왔다.

몽이는 건우의 특별한 의념 공간을 이용하여 거룡 비행 선기에 있는 본체에 머물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 역시 건우가 귀왕의 놀이터에 들어와 금제를 겪으면서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은 별 문제는 없잖아. 이곳 전각 안에 신기가 쌓일 여유 공간이 남았으니까.’

세해갈이 그걸 기다리는 것일까요? 원래부터 금제 안의 공간까지 모두 신기로 채울 생각이었다고요? 하지만 그 공간도 곧 한계에 닿을 텐데요?

‘그건 그렇지. 곧 대전 전체에 신기가 쌓여서 더는 신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다.’

그럼 어떻게 해요?

‘세해갈이나 유희 선인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아직도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하니.’

유희 선인이나 세해갈에게 신기를 따로 처리할 방법이 있을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한 방법이 있지.’

확실한 방법이라면 역시 의념 공간으로 신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거죠?

‘세해갈이나 유희 선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차하면 술법진으로 뽑혀 나오는 신기를 모두 의념 공간에 넣으면 그만이다. 태고 신수의 뼈에 아무리 많은 신기가 쌓여 있다고해도, 내 의념 공간에 부담이 될 수는 없지.’

- 그야 당연하죠. 건우 님의 의념 공간은 하나의 큰 계(界)나 역(域)을 넣을 정도로 크다고요.

등선자가 되면서 건우의 의념 공간은 크게 넓어졌다.

거기에 공간 법칙을 익힌 후로는 의념 공간에 크기의 제약이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의념 공간의 일부를 확장하면 될 일이었다.

다만 그렇게 공간을 확장하다가 일정 선을 넘으면 의념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하가 걸려 약해진다.

하지만 태고 신수의 신기를 응축시켜 보관할 공간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 드디어 금제 안에도 신기가 쌓일 여유가 없어졌어요. 이젠 어떻게 해요?

그 때, 건우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몽이가 살짝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

"유희 선인, 세해갈 선인, 지금 상황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어찌 태연하게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결국 건우가 눈을 뜨고 유희와 세해갈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유희와 세해갈 역시 눈을 뜨고 건우를 바라보았다.

"이러다가 우리가 신기에 짓눌려 죽게 생겼습니다. 설마 금제 공간에 신기를 채워 넣어 공간 자체를 파괴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건우가 다시 그들 둘을 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젠 정말로 전각 안의 공간에 신기의 밀도가 한계까지 치솟고 있었다.

이렇게 특정 기운의 밀도가 높아지게 되면 결국 그 기운이 몸으로 스며들게 된다.

건우와 유희 등이 지금 정신체로 이곳이 있지만 그것은 신기 역시 마찬가지.

정신체도 밀도 높은 신기의 침습을 피할 수는 없다.

이러니 건우가 어찌 다급하지 않을까.

"호호호. 너는 어찌 그리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그런데 그런 건우를 향해 유희가 재미있다는 듯이 밝게 웃었다.

"유희 선인, 방법이 있다는 말입니까?"

건우가 그런 유희의 모습에 반색하며 물었다.

"호호. 나는 방법이 없느니라. 그리고 세해갈 역시 방법이 없지. 하지만 너는 있지 않으냐?"

"네?"

건우는 갑작스러운 유희의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어찌 너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겠느냐. 나는 네가 특별한 공간 법칙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 법칙을 이용하면 이곳에서도 공간을 여는 것이 가능할 터! 아니더냐?"

"아니 그런……"

건우는 유희가 자신의 의념 공간이 가지는 특성을 일부 알아차렸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것을 특별한 공간 법칙의 활용으로 오해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앞서 너에게 이르지 않았느냐. 이번 일은 너에게 매우 이로운 일이라고. 그러니 이제부터 넘치는 신기를 모두 네가 해결을 해라. 물론 그렇게 얻는 신기는 모두 너의 것이 될 터이고, 그것이 이번 일로 네가 얻는 큰 이로움이다."

"아!"

유희의 말에 건우는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결국 유희가 이곳에 건우를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라니, 일단은 수긍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두 분이 따로 준비한 방법이 없다면 유희 선인의 말씀에 따라서 남은 신기는 제가 해결을 하겠습니다."

결국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허공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금제 안의 신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태고 신수의 뼈에서 신기를 뽑아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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