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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66화 (46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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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왕의 신기(神氣) 금제와 드러나는 세해갈의 복심(腹心) >

건우가 검은 갑옷으로 온 몸을 가린 이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 다들 나를 귀왕이라 부르지."

"너는 귀왕이 아니다. 귀왕이라면 옥선의 지위에 있다 들었는데, 너는 그런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귀왕의 대답에 세해갈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귀왕이 세해갈을 보며 말했다.

"옥선의 자리는 이미 오래 전에 내려놓았느니. 아니 지위에서 밀려났다고 해야 할까?"

"옥선의 자리에서 밀려나도 금선이다. 그리고 그렇게 옥선에서 떨어진 금선은 금선들 중에서도 수위(首位)에 있는데 어찌 진선까지 될 수가 있단 말이냐?"

세해갈은 다시 귀왕을 보며 다그치듯 일갈했다.

"푸하하하. 웃긴 소리! 천지 법칙의 행사에 그런 인정이 있을 것 같으냐. 내가 그 눈에 거슬렸는데 옥선에서 진선이 되었다고 한들 무엇이 그리 이상할 일이란 말이냐?!"

"그럼 정말로 옥선에서 진선이 되었단 말입니까?"

건우가 귀왕을 보며 물었다.

"그렇다. 내 그 치욕을 어찌 잊을까. 언젠가 반드시 그보다 더한 자리에 오르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그 치욕을 씻어 내고 말 것이야."

건우의 말에 귀왕은 다시 옥선이나 그 이상의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말하기를 우리의 몸과 영혼을 빼앗을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건우가 노화(怒火)를 터트리고 있는 귀왕을 보며 그의 기분은 관심이 없다는 듯이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흥분했던 귀왕이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며 건우를 보았다.

"특이한 놈이로구나. 하지만 상관없겠지. 너희는 이미 내 시련에 들어온 상황이니까."

"시련이라. 그 말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도 내겠다는 말입니까?"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이 되었으니라."

"그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해야 할 일이 있어 서둘러 허량원을 지나야 할 입장이라."

"놈, 자신만만한 것인지 오만방자한 것인지 모르겠다만, 이것만은 알아두어라. 지금까지 허량원에 들어와 내 시련을 받은 이들 중에 무사히 벗어난 자가 없었음을."

"음. 매번 같은 시험이었던 모양이군요?"

"사사건건 물어보는 것도 귀찮구나. 그러니 이제 내 시련을 넘어 보아라."

귀왕은 건우와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허공에 손을 저었다.

그러자 지금껏 산해진미가 가득했던 대전이 황량해지며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버렸다.

단지 보이는 것은 원래 긴 식탁이 있었던 자리에 생겨난 기둥 같은 것뿐이었다.

그것은 흑색 기운이 살짝 섞인 우윳빛으로 식탁을 대신해서 대전에 길게 누워 있었다.

"이것은 태고 신수의 뼈다."

귀왕이 그 기둥으로 다가가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태고 신수의 뼈라면 허량원을 만든 그 거대 신수를 말하는 것입니까?"

건우가 다시 귀왕을 보며 물었다.

"그렇다. 바로 그 태고 신수의 뼈다."

"그것이 아직 그리 온전하게 남아 있었단 말입니까? 허량원의 그 엄청난 모래와 흙과 바위가 모두 뼛가루라 들었었는데 말입니다."

"그것들은 모두가 태고 신수가 죽어 허량원이 생긴 이후로 허량원에 들었다가 죽은 것들의 뼈일 뿐이다. 태고 신수의 뼈는 1 할도 삭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나, 그것을 아는 이가 드물 뿐이지."

"그래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란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시간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귀왕이 뭔가 감격에 겨운 기색으로 태고 신수의 뼈에 대해 말하는데 건우가 그 말허리를 잘랐다.

"오냐, 어차피 다른 이야기를 들어봐야 어디에 쓰겠느냐. 너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이 태고 신수의 뼈에서 신기(神氣)를 뽑아내는 것이다."

"신기(神氣)라 함은 신령스러운 기운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이 태고 신수의 뼈에 깃든 신기는 보통의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태고의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신기이니 여타의 신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음이지."

"그런 것을 뽑아내라니, 그리하여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우는 굳이 그런 시련을 거쳐야 할 이유를 물었다.

"해 내지 못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 별 이유가 있겠느냐?"

그런데 돌아온 귀왕의 대답은 너무도 간명했다.

건우와 유희, 세해갈 등을 가두어 두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 귀왕, 당신은 참으로 교만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진정 홀로 우리 셋을 붙잡아 두거나 혹은 강제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이에 건우는 크게 웃으며 귀왕을 도발했다.

자신들이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님을 주장한 것이다.

"크하하하. 역시 너도 보잘것없는 다른 놈들과 같구나. 대부분의 놈들이 이곳에 오게 되면 너와 같은 소리를 했느니라. 하지만 결과는 너도 이미 들었던 것처럼 어느 하나도 이곳을무사히 벗어나지 못하였지."

건우의 말에 귀왕은 크게 웃으며 기세를 부풀렸다.

건우는 귀왕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죽음 법칙의 기운임을 알아보았다.

"죽음 법칙을 익혔습니까?"

그렇게 물으며 건우 역시 법칙의 힘을 끌어 올렸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생기의 법칙이었다.

"생기 법칙!? 하하하. 어리석구나. 생기가 어찌 죽음을 이긴단 말이냐?"

귀왕은 건우의 생기 법칙을 알아보고 더욱 크게 웃으며 고함을 질렀다.

"생기를 죽이는 것이 죽음 법칙이다. 하지만 어떤 생기도 죽은 것을 되살리지 못한다. 죽음 법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생기가 아니라 생 그 자체여야 함이니라!"

귀왕은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듯이 건우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건우는 그런 귀왕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옳은 말입니다. 자고로 죽음의 뒤편에는 생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이 있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생기란 것이 더욱 깊어지면 결국 나는(生) 것이 되기도 합니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수긍했고, 그 순간 건우가 일으킨 생기 법칙이 조금씩 변화를 일으켰다.

"허억! 생기 법칙이 어찌 그리 변한단 말이냐?"

이제 건우가 뿜어내는 기운은 단순한 생기가 아닌 탄생에 관여하는 근원적인 기운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하여 귀왕조차도 자신의 죽음 법칙으로 건우의 생기 법칙을 쉽게 어쩌지 못하게 되고 만 것이다.

짧은 순간 법칙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화하니 귀왕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좋다. 네가 능히 내 죽음 법칙과 겨룰 재주가 있음을 인정하마. 하지만 이곳에서 굳이 내가 너와 겨룰 이유는 없느니라. 이곳은 내가 오래도록 공을 들여 만든 곳이기 때문이지.

귀왕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어느 순간 한 줌의 검은 안개로 변하여 허공에 흩어졌다.

"아니, 어디로 사라진 겁니까? 저는 귀왕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 순간 세해갈이 깜짝 놀라며 사방을 두리번거 렸다.

하지만 세해갈은 물론이고 건우와 유희도 귀왕의 기척을 찾아낼 수 없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유희도 잠시 귀왕의 기척을 찾으려 하다가 포기한 듯 건우를 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금제가 무섭습니다. 이것 역시 법칙을 바탕으로 한 금제입니다. 그런데 그 금제를 유지하는 힘이 귀왕이 말했던 바로 그 신기입니다."

건우 역시 귀왕이 사라진 후, 전각을 벗어나기 위해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이동도 전각을 감싸고 있는 금제에 막혀서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금제 자체를 깨는 것도 불가능했다.

귀왕의 놀이터는 태고 신수의 뼈에 깃들어 있는 신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태고 신수의 뼈라는 것은 허량원 전체의 크기와 같으니, 금제를 깬다는 것은 허량원 전체를 깨트리는 것과 같은 힘이 필요했다.

그것도 단순한 금제가 아니라, 평범치 않은 태고의 순수를 간직한 신기를 머금고 있는 금제였다.

"결국 이곳을 벗어나려면 신기를 뽑아내야 한다는 귀왕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단 말이군요."

건우가 살짝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다른 방법은 어떻게든 금제를 연구하여 빠져나갈 틈을 찾는 것이겠지만, 귀왕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면 금제를 수시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쉽지 않을 터.

"제 생각에는 귀왕의 뜻대로 태고 신수의 뼈에서 신기를 뽑아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다만 그렇게 뽑은 신기를 우리 셋이 나누어 숨긴다면 귀왕도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 때, 세해갈이 건우와 유희를 보며 조심스럽게 제안을 내놓았다.

신기를 귀왕에게 넘기지만 않는다면 뼈에서 신기를 뽑아내어도 문제 될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건우는 유희를 보며 눈빛으로 뜻을 물었지만 유희는 도리어 건우에게 결정을 미루고 눈을 감아 버렸다.

"태고의 순수한 신기라면 어디든 쓸모가 있겠지요. 하지만 신기를 뽑아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인데, 그렇게 뽑아낸 신기는 또 어디에 보관을 한단 말입니까? 마땅히 그럴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량원 크기의 뼈, 그 뼈에 깃들어 있는 신기가 얼마나 많을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뽑아낸들, 또 그것을 어디에 넣어둔단 말인가.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마땅한 그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건우의 그런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세해갈이 하얀색 구슬 세 개를 꺼내어 유희와 건우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이것은?"

건우는 구슬을 받아들고 의 념으로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그는 그 즉시 대전을 가로지르고 누워 있는 거대한 뼈로 다가가 손을 올리고 의념을 집중했다.

그러자 뼈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이 건우의 머 릿속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 중에 세해갈이 꺼낸 세 개의 하얀색 구슬에 대한 것도 있었다.

"이것이 태고 신수의 사리일 줄은 몰랐습니다."

건우가 세해갈을 보며 말했다.

"옳습니다. 이것들은 신수의 뼈에서 나온 사리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보신 것처럼 사리에 남은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릇으로 쓸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참으로 기묘한 일입니다. 유희 선인, 저 세해갈 선인이 어찌 귀왕의 시험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는 것입니까. 설마 모르고 태고 신수의 사리를 준비했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러니 이제는 세해갈 선인에 대해서 말을 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해갈의 대답에 건우는 유희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 세해갈이 스스로 의심스러운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를 데리고 온 유희에게 그 정체를 묻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세해갈을 만나면 귀왕을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세해갈을 만나면 귀왕을 만나다니요? 일부러 귀왕을 만나려 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러하다. 귀왕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것 때문입니까?"

건우는 세해갈이 준 하얀 구슬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태고 신수의 뼈에서 나왔다는 사리.

거기에 뭔가 비밀이 있으리라.

"태고의 순수함을 간직한 신기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보물이며, 쓸 곳이 많으니라. 특히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에게 쓴다면 그 상태를 고치는데 특효이기도 하지."

"그 말씀은 제리배천단이 기를 쓰고 얻고자 할 기운이란 소리로 들립니다만?"

"그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선인을 치료하기에 최고의 보물이니 당연히 탐을 내겠지. 하지만 귀왕 역시 제리배천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리배천단이 이곳을 지난다 하여도 이곳에 불려오는 일이 드물다."

"결국 유희 선인께서 이곳에 오기 위하여 세해갈을 데리고 왔다는 말씀이지요?"

"그러하다."

"그럼 이 역시 제게 필요한 일입니까? 길잡이로서?"

"그러하다."

건우의 물음에 유희는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에 건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역시 유희 선인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유희 선인을 믿으니 또한 세해갈 선인의 방안에 찬성하겠습니다."

‘아직은 내가 가진 패를 꺼낼 때가 아니야. 크게 위험한 것도 아닌데 유희나 세해갈과 척을 질 필요는 없겠지.’ 그런 건우의 속내는 이와 같았다.

그는 아직 그리 다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았고, 유희나 세해갈에게서 위험한 느낌도 받지 못했다.

‘여차하면 영찬황후선보의 힘을 빌리고, 그것으로도 감당치 못한다면 해파리 공법의 부활을 믿어 볼 밖에.’

건우는 오랜만에 역법반서복원대법(逆法反臟復元大法)까지 떠올리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허량원(虛量原)의 거대 태고 신수는 그만큼 간단치 않은 상대로 건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 귀왕의 신기 (神氣) 금제와 드러나는 세해갈의 복심 (腹心)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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