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61화 (46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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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입 제안을 받다 >

의외로 구당문이 건우에게 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들이 아니었다.

구당문은 건우에게 진선도의 도반 무리 몇 곳에 더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입한 도반 무리에서 구당문이 말하는 선인을 살펴보게 하는 일을 시켰다.

따져 말하자면 일종의 감시자나 평가자 역할을 맡긴 셈이다.

"하하. 아직 멀었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너에게 참가하라고 시켰던 그 도반 무리에서 어떤 법칙을 연구하고 있는지, 그것을 건성으로 봤더냐?"

거기에 구당문은 자신이 소개한 도반 무리에서 다루는 법칙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명하기도 했다.

건우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일단 구당문이 시키는 대로 각 도반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법칙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했다.

그러다 보니 구당문이 그와 같은 법칙들을 익히게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이것들이 시간 법칙을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구나.’

- 그러게요. 단지 시간 법칙만 두고 고민할 때에 비해서 훨씬 빠르고 쉽게 시간 법칙을 이해할 수 있어요. 구당문 그 자가 허튼짓을 한 것은 아니네요.

‘그래, 그러면서 내게 관찰하라고 시킨 선인들 중에 한 둘을 교묘하게 얽어서 갈협이 있는 비밀 모임에 끌어넣었더군.’

- 이러다가 구당문이 건우 님도 그 모임에 가입하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권한다면 고민을 좀 해 보기는 해야겠지. 나를 버리는 패로 쓰겠다는 소리일 테니까.’

일부러 구당문에게 접근한 이유가 조금이라도 제리배천단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인데, 고작 갈협과 같은 대우를 받을 거라면 다른 수를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건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구당문은 건우를 좋게 봤던 모양이다.

어느 날, 건우가 그간 여러 도반 모임에 드나들며 선인들을 살펴 정리한 내용을 구당문에게 전하고, 시간 법칙에 대한 간단한 구결을 받은 후였다.

"너는 금선이 된다면 시간 법칙에서 금선이 되고 싶으냐?"

구당문이 문득 건우를 보며 물었다.

이에 건우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금선이나 옥선의 지위에 관심이 없습니다."

"음? 금선 옥선에 관심이 없어? 그럼 진선도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냐? 대부분 법칙에 대한 깨달음을 깊게 만들어 금선이 되고자 해서 오는 것이 아니냐."

"저는 아닙니다. 제가 진선도에 들어온 것은 이곳에서 여러 법칙을 깊이 있게 깨우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금선이나 옥선엔 관심이 없고, 그저 법칙 자체를 깨우치는 것에만?"

"그렇습니다. 실로 법칙이란 것이 오묘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수많은 천지 법칙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몇 가지가 있으니 저는 그것들을 탐구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시간 법칙이더란 말이냐?"

"딱히 순서를 두지는 않았습니다. 공간 법칙에도 관심이 있고, 윤회 법칙과 정화 법칙, 생기 법칙, 조율 법칙 등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종류를 가리지는 않지만 그대로 대부분 상위에 속하는 법칙들이구나. 최상위의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의 법칙에 묻혀서 금선이나 옥선이 되는 것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더 많은 법칙을 더 깊이 알고자 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그것 참, 기이한 녀석이로고."

건우의 대답에 구당문은 묘한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잠시 건우를 바라보다가 문득 말했다.

"그래, 그런 생각이라면 금선, 옥선이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 그리고 또한 목표가 크고 창대하니 쉽게 정신이 무너질 일도 없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다 듣고 무얼 묻는 것이냐? 네가 여러 법칙을 깊이 깨우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면, 그로서 네 정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기둥이 섰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제가 쉬이 바람을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너도 알겠지만 목표를 달성한 이후의 등선자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더냐. 그런 면에서 본다면 너는 걱정이 덜하다 할 수 있겠지."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거기에 대의를 이루고 지킨다는 큰 자부심까지 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네? 대의에 대한 자부심이라니요?"

"으음. 그건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하하하. 좋구나. 좋아. 선재라 선재."

건우의 물음에 구당문은 명확한 대답을 피하면서도 무척 기뻐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건우는 그런 구당문의 속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대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제리배천단이 천지 법칙을 수호한다는 그런 것을 말하겠지. 그것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 했으니.’

- 건우 님을 제리배천단에 추전하거나 속하게 하겠다는 말이 되는 거네요.

‘짐작이지만 크게 틀리진 않겠지.’

사실 구당문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건우도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긴 시간을 투자해야 제리배천단의 말단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벌써 입단에 대한 언질을 받다니.

* * *

구당문으로부터 제리배천단의 입단에 대한 것으로 보이는 언질을 받고도 다시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에도 건우는 여전히 구당문의 지시를 받으며 여러 도반 모임에 가입과 탈퇴를 거듭했다.

진선도에서는 도반 모임을 떠도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너무 잦으면 좋지 못한 말이 나돌기 마련이다.

이즈음 건우는 그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도반 모임을 옮겨 다니는 일이 잦았다.

"어서 오너라."

여섯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구당문을 만나 선인들에 대한 관찰 보고를 하는 날.

구당문은 평소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건우를 맞이했다.

"좋은일이 있으십니까?"

건우가 그런 구당문을 보며 물었다.

"하하하. 좋은 일이야 내가 아니라 네게 있다 하겠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은, 너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지."

"저에게 좋은 일이라니요? 설마 구 선인께서 저에게 시간 법칙의 큰 깨달음을 주시기로 결심을 하신 것입니까?"

건우는 구당문에게 바라는 것이 오직 그 뿐이라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구당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는 어찌하면 내 깨달음을 훔쳐갈까 그것만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그의 음성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건우를 놀리려는 것이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구 선인께서 시간 법칙에 조예가 깊으시니 제가 이렇게 몸이 달아서 구 선인의 종자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구당문을 보며 건우는 일부러 살짝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놈!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구나?"

"솔직히 구 선인께서 가끔씩이라도 시간 법칙의 구결을 던져주지 않으셨으면 저도 이미 다른 분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이에 건우는 대놓고 그런 말로 구당문을 속였다.

여전히 자신은 구당문의 시간 법칙만 노리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려는 것이다.

"쯧, 고얀 놈."

그런 건우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찬 구당문이 얼굴 표정을 진중하게 바꾸고 기세를 떨쳐 건우를 압박했다.

이는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건우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장난기가 떠돌던 표정을 고치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사실 나는 너를 두고 몇 가지 시험을 했더니라."

"시험이라니요?"

"네가 딴 뜻이 있어서 나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의심한 것이다."

"다른 뜻이 없지 않다고 처음부터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건 구 선인께서도 이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놈! 그것 말고 다른 뜻이 있는가 살폈다는 말이다."

"네? 시간 법칙을 배우려는 것 이외의 다른 뜻 말씀입니까?"

"그래, 이 놈아!"

"음, 그 말씀은 구 선인께 무슨 비밀이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건우는 새삼 뭔가 깨우치는 것이 있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빠른 놈. 그래 내게 숨기고자 하는 비밀이 있고, 나는 네가 그것과 관련하여 나를 찾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 의심이 걷히신 모양이군요?"

"그래 이 놈아. 너는 내가 시키는 의미 없는 짓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그에 대해서 따로 의심하지도 않았고, 뒷조사를 하지도 않았지."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단지 선인들을 살펴서 그들을 평가하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말입니다."

"이 놈아, 네가 이런저런 도반 모임을 여러 차례 옮겨 다닌 것은 왜 빼는 것이냐? 그것이 이곳 진선도의 선인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 네게 큰 손해가 될 수 있음을 모르느냐?"

"그야 그 손해에 비해서 구 선인께서 주시는 구결이 더 가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느끼기도 그랬고 말입니다."

"그래, 그랬다 하자. 아무튼 너를 유심히 살피다 보니 의외로 네 놈이 괜찮은 놈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느니라."

"그걸 이제야 아셨단 말입니까? 이전에도 저에게 제법 잘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때는……"

"놈! 그냥 들어!"

"네, 구 선인."

"그저 법칙의 깨우침 한 자락을 전할 정도는 이전에도 충분했지. 하지만 내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드러내고, 그것을 너에게 전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너를 두루 살펴보니 이제는 내 비밀을 너와 나누고 함께 해도 될 것이란 판단이 섰느니라.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는 구 선인의 시간 법칙 이외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만."

건우는 일부러 한 발을 뒤로 뺐다.

여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미끼를 물어 바늘에 꿰이고 심지는 않았다.

"끄응. 까다로운 놈 같으니. 그래 내가 하려는 말은 네가 추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면이 없지 않다. 너는 여러 법칙을 깊이 궁구하고자 하는 뜻을 강하게 품고 있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법칙의 깨 달음과는 연관이 없으니."

"그렇다면 저는 구 선인의 비밀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시끄럽다. 그래도 들어야 한다. 어차피 내가 너를 선택했으니 너는 빠져나갈 길이 없음이다."

"네?"

"내가 너를 내 밑에 두기로 했단 말이다. 제리배천단의 제단주인 이 구당문의 직속으로."

"제리배천단이라니요?"

건우가 번쩍 고개를 들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구당문을 바라보았다.

"모르느냐?"

"아닙니다. 저도 이름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만 그저 떠도는 소문만 있을 뿐, 실체는 없는 허황된 것이라 들었습니다."

"호오? 그래도 이름이 나마 들어 보았다는 말이렸다?"

"네, 구 선인."

"그럼 네가 들었던 제리배천단은 어떠한 곳이라더냐?"

"이리 말씀을 드려도 될까 모르겠습니다만……"

"좋지 않은 소리였던 모양이구나?"

"그, 그렇습니다."

"들어 보자."

건우가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지만 구당문은 건우의 말을 재촉했다.

"선계에서 이러저러한 음모를 꾸며 많은 선인들을 횡사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 했습니다."

"무슨 이유로?"

"네?"

"네가 들은 이야기에서 제리배천단이 무슨 이유로 선인을 음모에 빠트려 죽인다더냐?"

구당문은 제가 억지로 말을 하라 시키고도 건우가 전하는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건 저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제리배천단의 이름으로 선계에 전해진 사건들이 몇 있는데, 그 모두가 파고들어보면 다수의 선인들이 희생되었다고 했습니다."

"끄응."

건우의 말에 구당문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보자면 건우의 말이 틀린 구석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리배천단의 활동에 희생된 선인들이 다수 있다는 말에는 그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병사를 희생하는 것을 어찌 그르다 할 것인가."

구당문은 마치 건우가 듣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건우는 그런 구당문을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구 선인께서 제리배천단의 단주이신데, 저를 구 선인의 직속 부하로 두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제가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까?"

"거부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리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너를 죽여야 할 것이다."

"조금의 여지도 없다는 말씀이군요?"

"내가 결정했으니 너는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 너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다."

"으으음."

구당문의 말에 건우는 크게 곤란하다는 듯이 얼굴이 굳어졌다.

제리배천단인지 뭔지 절대 알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풀풀 풍기며.

하지만.

‘그래, 이제 한 발 더 제리배천단에 다가가게 되었군. 이리되면 조만간 수미에서 연화궁과 정정을 상대로 일을 꾸몄던 이들에 대해서도 알 때가 오겠지.’

속으로는 치솟아 오르는 흥분을 억지로 눌러 가두는 중이었다.

오늘 건우는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걸음을 한 걸음 내딛게 된 것이다.

< 영입 제안을 받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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