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60화 (46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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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를 밟아가다 >

법칙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태령기 수사가 등선자가 되기 위한 기준이 법칙의 힘을 깨달았는가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건우는 진선도에 온 이후로 법칙에 대한 배움이 이리도 쉬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진선도에선 선인들 사이에 법칙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는 것이 무척 후했다.

진선도에는 수많은 도반 모임이 있었고, 그 모임에서는 각각 저마다의 법칙에 대한 깨달음을 서로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하고자 하기만 하면 어떤 법칙이라도 그 기본이 되는 정도는 얼마든 배워 익힐 수 있는 곳이 이곳 진선도였던 것이다.

"천지 법칙에 속한 법칙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때론 법칙이 허물어져 격을 잃게 되기도 하며, 새로운 법칙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건우도 이전에 원기소 도조로부터 원기소 법칙을 접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치자면 원기소에 대한 깨달음이 어쩌면 도조인 원기소보다 뛰어날 수도 있는 이가 건우였다.

물론 건우는 천지 법칙의 흐름, 즉 많은 도조들의 의식이 원기소 법칙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 법칙이나 원기소 도조와 거리를 두었다. 어쨌건 법칙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때때로 변하고 새로 나타나는 것임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 진선도에는 다양한 법칙에 대해서 서로 깨달음을 나누는 일이 일상적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것이 전부는 또 아니니라."

"무슨 말씀인지요?"

"수도자들이란 본디 이기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제 밑천을 모두 드러내는 이가 있을 것 같으냐?"

"하하. 그런 말씀이라면 저도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나눈다고 하지만 어느 누가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고작해야 기초적인 것들만 선인들 사이에 떠돌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런 기본적인 깨달음을 주워 삼키다 보면 그것이 큰 깨달음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법칙을 조금씩이라도 알게 되면 그와 같은 법칙을 상대하게 될 때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어떠하냐?"

문득 유희가 건우에게 맥락을 알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네가 들어간 그 도반 무리를 말하는 것이다. 시간 법칙을 두고 교류를 하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이전에 제가 등대애정(等待愛情)의 전각에서 시간 법칙을 깊이 궁구한 바가 있기도 하고, 정정이 시간 법칙에 의거하여 봉인이 되어 있으니 만약 그것을 풀어야 할 상황이 되어도필 요할 것같아서……"

"그래? 그럼 깨우침은 있더냐?"

"미약하나마 시간 법칙을 다루게 되기는 했습니다."

"오호? 놀랍구나. 시간 법칙은 천지 법칙 중에서도 특별한 것이라 쉽게 실마리를 잡지 못하는 것인데? 그걸 벌써 다루게 되었다고?"

"고작해야 약간의 시간을 늦추거나 혹은 빠르게 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멈추거나 되돌리는 것은 아직이란 말이구나?"

"실로 그것까지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시간 법칙은 너무도 심오합니다."

"호호호. 엄살을 피우는구나."

"게다가 도반이라는 것들의 대화 수준이 제가 깨달은 것과 비교하여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처음 무리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게 된다는데, 저는 별 도움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네가 말했던 그 갈협이란 녀석은 어떠하냐?"

유희는 법칙과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지루해졌던지 갑자기 갈협을 화제로 올렸다.

"그 놈은 원래 부식 법칙을 익히고 있었는데, 그 부식이란 것 또한 시간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라 거기에서 깨우침을 얻으려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되지 않았느냐? 네 말투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작은 진전은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게 제가 가진 깨우침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하였습니다."

"숨기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는 저도 파헤칠 수 없었습니다."

"흥, 그렇다면 배천단에 대한 것은 어떠하냐?"

유희가 이번에는 제리배천단에 대해 물었다.

"아직 그 꼬리를 잡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갈협이란 그 놈이 어쩌면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응? 갈협 놈이?"

"그렇습니다. 그 놈이 시간 법칙의 도반 모임 이외에 다른 모임을 가지는 모양인데 그것에 대해 아는 이가 없습니다."

"모임을 하기는 하는데 그것에 대해 아는 이가 없다? 그래서 의심스럽다는 말이구나?"

유희도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 모양인지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 진선도에서 도반 무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선인들이 그런 무리와 교류를 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그런 중에 굳이 숨겨야 할 모임은 없다고 봐야 한다.

진선도는 누가 어떤 법칙을 연구한다 하여도 그것을 두고 탓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주로 악, 마, 혈, 독 따위의 계열에 속한 법칙이 사람들 사이에서 경원시되기는 하지만, 등선자 정도가 되면 그것들 역시 하나의 법칙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대천 세계에서 당장 그러한 법칙들이 없어지면 얼마나 큰 소란이 일어날 것이며, 질서가 무너질 것인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어떤 법칙이라도 도반 무리를 만들고 교류하는 것을 문제 삼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숨겨야 할 모임이라면?

당연히 도반의 무리는 아닐 것이고, 공식적으로는 진선도에 그런 무리나 모임이 없다.

"드러내지 못하는 모임이라니 당연히 배천단이거나 혹은 동서남북 각 지역의 지배자가 부리는 권속 모임이 아니겠습니까?"

건우는 갈협이 몰래 어떤 모임에 다니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갈협에게 관심을 가지다 보니 그런 정황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네 말이 일리가 있다. 그러면 그 놈을 좀 살펴보아야 하겠구나."

"그렇긴 합니다만, 감시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갈협이 제법 나이가 많은 자라 그런지 주변을 꼼꼼히 단속합니다."

"그런데도 너는 그 놈이 숨기는 모임을 알아차린 것이 아니냐?"

"그것은 다릅니다. 갈협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야 살피는 것이 어렵진 않습니다. 다만 매번 어느 곳에 이르러 몸을 감추는데, 그 곳을 따라 들어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힘을 써 보마."

"네? 유희 선인께서요?"

"호호호. 내가 너의 길잡이가 아니냐. 무릇 길잡이란 행자(行者)의 앞을 터 줄 책임이 있음이니라."

유희는 그렇게 말했고, 이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갈협의 비밀스러운 모임에 대한 정보를 알아 왔다.

"갈협 놈의 일을 알아봤느니라."

"네? 벌써요?"

"그게 무에 어려울 것이 있겠느냐."

"역시, 유희 선인은 대단하십니다."

"추켜세울 것 없느니라. 대단찮은 일이었으니."

"하지만……"

"어쨌건 결과는 조금 실망스러운 바가 있지만 또 아주 헛다리를 짚은 것은 아니니라."

"갈협 그 놈이 제리배천단과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일종의 예비 모임이라고 할까? 그런 조직에 속해 있더니라."

"제리배천단의 예비 모임이란 말입니까?"

"쉽게 말하자면 제리배천단이 쓰고 버릴 패로 준비한 무리라고 할까?"

"음, 그런 경우도 있습니까?"

건우는 제리배천단이 그런 식의 행사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이 유희를 보며 물었다.

"이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제리배천단은 일을 자연스럽게 꾸미기를 좋아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배천단의 정식 단원이 나서서 일을 하기 보다는 평범한 선인을 움직이기를 좋아하지. 꾸미는 일에 어울리는 적당한 성향의 선인을 골라서, 일의 목표에 따라서 이런저런 정보를 각색하여 들려주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

"갈협이 그런 무리에 속해 있다는 말씀이군요?"

"호호호 제 딴에는 진선도(眞仙島) 밖에 있는 시간 법칙과 공간 법칙의 대라선 둘이 은밀하게 후계를 키우기 위해 만든 모임에 들어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실상은 제리배천단에서 쓰고 버릴 패로 모아 놓은 자들인 것이지."

"시간 법칙과 공간 법칙의 대라선이 만든 모임으로 알고 있단 말입니까?"

"실제로도 그 두 대라선의 이름을 빌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두 대라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각각의 법칙을 유지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지."

"어찌 그런 것을……. 아, 그 시간 법칙의 대라선과, 공간 법칙의 대라선을 유희 선인께서 이미 아시는 것이군요?"

"그래, 대라선이 많다고 하여도, 한 번 들으면 잊지 않는 선인의 기억력에 세월이 더해지면 모르는 이가 있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일이지."

"애초에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그 두 대라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비밀 모임이라……. 그것은 결국 제리배천단에서 두 대라선의 이름을 빌렸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군요."

"물론 제리배천단에서 그 두 대라선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겠지. 정신이 불완전해지지 않도록."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 두 대라선은 제리배천단에서 관리하는 선인이라 볼 수 있겠군요. 그런데 갈협이 속한 모임이 고작 버리는 패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찾아냈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지 않 겠습니까?"

건우는 유희가 정보를 알아온 것은 반갑지만, 결국 그것이 큰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님을 알고 실망했다.

"네 말대로 그 모임은 별 의미가 없느니라. 하지만 그 모임을 관리하는 자에 이르면 달라지지 않겠느냐. 그 자는 배천단의 정식 단원일 것이니."

"그것까지 알아 오셨단 말입니까?"

유희의 말에 건우가 흥분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호홋, 그러하다. 그러니 너는 기뻐하여도 된다."

건우의 흥분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유희가 크게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 * *

"참으로 담도 크십니다. 건우 선인이라 했습니까?"

"맞습니다. 제가 강 모입니다. 구당문 선인. 그런데 담이 크다 하심은 무슨 연유이십니까?"

건우는 구당문이란 선인의 거처에서 그와 마주 앉아 있었다.

오늘 그가 구당문의 거처로 찾아온 것은 구당문의 초대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가 대뜸 건우를 보며 담이 크다고 한 것이다.

"내가 모를 줄을 알았습니까? 건우 선인이 교묘하게 저의 관심을 끌고 끝내는 친분을 쌓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그게 문제가 될 것이 있습니까? 누구나 친해지고 싶은 이가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건우 선인은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일을 그리 했다는 말입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관심 있는 것을 먼저 취하여 선물하고?"

"그렇지요. 누군가의 호의를 쌓기에 그만한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허어!"

구당문은 너무도 뻔뻔스러운 건우의 대답에 할 말을 잊은 듯이 탄식을 토했다.

"실로 구 선인께서 저를 못마땅히 여기실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구 선인께 의도적으로 접근하기는 했지만, 그게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선인께 깨달음 한 줄이라도 얻어 가려면 일단 친해지고 볼 일인데 그게 어찌 잘못이고 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법칙의 깨달음을 얻어가고 싶었다는 것입니까?"

"그렇지요. 듣기로 구 선인께서 시간 법칙을 깊이 깨달으셨다지요?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어찌 욕심이 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이런, 담이 큰 것이 아니라 뻔뻔한 것이었습니까? 참으로 낯이 두껍기도 하십니다."

건우의 대답에 구당문은 도리어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토록 뻔히 노림수를 보여주며 들어오는 이가 어쩌 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고 느끼는 그였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떠십니까? 제게 시간 법칙의 깨달음 한 줄을 내려 주시는 것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여긴 것일까?

건우가 웃는 얼굴로 구당문을 보며 은근하게 부탁했다.

"끄응, 기가 찰 일입니다. 건우 선인이 내게서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쯧, 자격을 말하시면 제가 어찌 고개를 들겠습니까? 하지만 오가다 소매가 스치는 인연에도 때때로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구 선인께서 저와의 인연을 어찌 여기느냐에 따라서 가르침 한 줄, 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구당문의 질문은 따끔했지만 건우의 대답은 여전히 뻔뻔했다.

당연히 그런 건우의 대답에 구당문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한참 건우를 바라보던 구당문의 눈빛이 문득 은근하게 바뀌 었다.

"쯧, 아무리 그래도 쉽게 시간 법칙의 깨달음을 전할 수는 없지…. 대신에."

"대신에요?"

"내가 일 하나를 줄 터이니, 그것을 해결하면 구결 하나를 던져 주기는 하지."

구당문은 이제 대놓고 건우에게 하대를 하고 있었지만 건우는 그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좋습니다.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일을 시키실지……"

그리고 곧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 꼬리를 밟아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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