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59화 (45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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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

진선도는 수미에서 무척 먼 곳에 있었다.

때문에 건우와 유희는 거룡 비행 선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중간에 몇 번이나 장거리 전송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당연히 그 때마다 적잖은 재물이 소비되었지만 다행히 조오망과 포반자 등에게 얻은 전리품이 있어 전송진 이용에 곤궁함은 없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왔는데도 진선도까지 200년이 걸렸습니다."

건우는 마지막 전송진을 앞에 두고 유희를 보며 말했다.

지금 건우와 유희가 있는 곳은 녹림대산이라고 하는 거대 산맥인데 숲이 울창하기로는 선계 최고라 하는 곳이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평범한 것들도 다른 곳에 비해서 열 배 가까이 컸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쪽 산맥에서 목령족의 탄생 비율이 높다고 했다.

건우도 백양오죽의 일로 목령족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장은 제리배천단 때문에 진선도로 가는 것이 더 급했다.

그리고 녹림대산과 진선도는 장거리 이동진 한 번으로 오갈 수 있는 곳이니 이후에 다시 찾아도 될 일이었다.

"200년의 시간이야 어디 문제가 될 것이 있겠느냐. 조금만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깨어나면 그만한 시간이 흐르기도 하는 것을."

건우의 말에 유희는 별것도 아니란 듯이 그렇게 대꾸했다.

‘잠깐의 상념으로 200년의 시간이 흐른다? 하긴 이미 세월을 잊었을 대라선이 아닌가. 그럴만도 하겠지.’

건우는 잠시 유희와 자신의 시간관념의 차이를 가늠해 보다가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유희와 같은 시간관념을 가지긴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진법을 타고 가면 진선도의 어느 곳에 닿게 되는 것입니까?"

아는 것이 없으니 궁금한 것을 물어 볼 밖에 방법이 없다.

"진선도는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진 구역이 존재하는데, 녹림대산에서 이동하면 그 중에 남쪽 지역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동서남북의 각 구역마다 특징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지배자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진선들만 모인 곳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이가 있다는 말입니까?"

"호호호. 진선이라고 모두 같은 진선은 아니지 않으냐. 너만 하여도 얼마 전에 옥선을 죽이지 않았더냐."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습니까. 등선자들의 싸움은 자칫 법칙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벌어지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만."

건우가 배우기로 등선자들의 싸움은 공덕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니 이전에도 건우가 등선하기 전에 건우가 쌓은 공덕의 크기를 알아보고 꼬리를 말았던 갈협이란 놈도 있지 않았던가.

"호호호, 세상에 어찌 틈이 없겠느냐. 네 말이 옳기는 하지만 또 그르기도 하다. 너만보아도 알 수 있지 않으냐."

"제가 말씀입니까?"

"너는 종종 공간 법칙을 이용하여 천지 법칙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격리 공간을 만들지 않느냐. 그곳에선 법칙이 서로 부딪히며 파탄을 일으켜도 천지 법칙의 전체적인 흐름에는 일절 영향을 주지 않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것이 결국 네가 만든 틈이 아니냐. 또 너는 그것을 잘도 이용하고 있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선인을 해치고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을 천지 법칙이 허락하지도 않을 테고 말입니다."

"호호호호호. 너는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딘지 잊었느냐?"

"진선도라서 뭐가 다르단 말씀입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천지 법칙이 관심을 가질 정도가 되려면 못해도 금선은 되어야 한다. 그조차 되지 못한 진선들 따위야 어찌 되건 천지 법칙이 꿈쩍이나 할 것 같으냐?"

"하지만……"

"네 말대로 대놓고 법칙을 겨루어 세상에 문제를 일으키면 당연히 벌을 받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진선 중에 누가 죽어나가거나 소멸을 하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단 말이다."

"그게 그렇게 되는것입니까?"

"물론 그 중에서 특별한 법칙을 익힌 수사들의 경우엔 좀 다르기도 하다만."

"특별한 법칙이라니요?"

건우가 그렇게 물었을 때, 전송진을 관리하는 선인이 나서며 전송 시작을 대비하라 전했다.

이에 건우와 유희도 대화를 멈추고 장거리 전송에 대비했다.

영기를 끌어 올려 이동의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우우우웅! 스화홧!

그리고 어느 순간 건우와 유희를 포함하여 전송진 위에 있던 열댓 명의 선인들이 녹림대산의 전송진 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진선도의 남쪽 구역 전송 대응진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했구나, 나가자꾸나."

전송진의 발동이 완료되자 유희가 건우를 재촉하여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이미 서른 명 가까운 선인들이 전송 대응진이 있는 전각 앞을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진선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명조봉이라 합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환영합니다. 저는 고파영이라 하는데……"

"혹여 절대 법칙의 수련에 관심이 있으신 선인께서는……"

"우리는 이미 3만 년 동안 시간 법칙, 공간 법칙, 윤회 법칙, 죽음 법칙 등을 연구하여 크게 성과를 내고 있는……"

그리고 그들은 전송진을 통해 이동해 온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자신들의 모임을 자랑했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건우가 시장바닥 같은 그런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유희에게 물었다.

"보면 모르느냐? 함께 수련하며 깨달음을 나눌 동도를 구하는 것이다."

"진선도에는 저러한 모임이 많은 모양입니다."

"진선도가 유명한 이유는 이곳에 금선 이상이 오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는 아직 향상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향상심이라면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아닙니까. 그건 모두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냐? 제 자리에서 안주하여 결국 말라 죽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더냐?"

"그건……"

생각해보면 선계의 등선자들도 수없이 다시 윤회에 들거나 소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가 무한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서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유희의 말은 진선도까지 찾아들 정도라면 아직은 멀쩡한 정신으로 스스로 나아지려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이곳의 많은 이들이 금선을 바라보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홀로 특별하고도 큰 깨달음을 얻어 도조가 될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금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아, 알겠습니다. 그런 이들이 모인 곳이니 제리배천단 역시 활동을 하기 좋겠습니다. 잘 살피다가 가능성이 보이는 이들을 점찍어 둘 수도 있고 말입니다."

"호호호. 그런 이유도 있긴 하겠구나. 어쨌거나 우리는 이만 움직이자꾸나."

유희는 어쩐 일인지 일찍 자리를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건우는 뭔가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유희의 뒤를 쫓아 둔술을 펼쳤다.

그 후, 유희는 내내 여러 번 방향을 바꾸어 둔술을 펼치다가 열흘이 지난 후에야 이름 모를 계곡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찌 이러시는 것입니까? 유희 선인께서 누구를 피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건우는 진선도에 도착한 후로 보인 유희의 행동이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대라선(大羅仙)인 몽유희의 분신이 무엇을 두려워 하여 이리 피해 다닌단 말인가.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느니라. 내가 뭐라 했더냐. 이곳 진선도는 누구만 들어올 수 있다고?"

"그야 진선만……"

건우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닫았다.

이미 자신의 말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본신이 아니어서 진선으로 보이긴 한다만, 혹여 어떤 이가 있어서 나를 파악할 수 있다면 내가 이곳에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진선으로서만 행할 것이라 진선도의 규칙을 크게 어긴 것은 아니다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 사실을 미리 깨닫지 못한 제가 미숙했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미 진선도가 진선만의 공간임을 알고 있었으면서 대라선의 분신인 유희에 대해서는 까맣게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니, 분명 자신의 실수였다.

"되었다. 이미 전송 대응진으로부터 멀어졌으니 이제 굳이 누가 나를 살피려 들겠느냐. 제법 뛰어난 이가 의심하여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니라."

유희는 지난 열흘 동안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둔술을 펼치며 혹여 쫓아오는 이가 없는지 살폈다.

그리고 다행히 뒤따르는 자가 없음을 확인했으니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움직이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 것입니까?"

"호호. 너는 조금 느긋할 필요가 있느니라."

"그, 그렇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배천단이나 다미 선자를 수소문하고 다니는 것은 참으로 의심스럽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겠습니다. 배천단은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 용과 같고, 다미 선자는 저와 안면도 없고 인연도 없으니 제가 찾는다 하면 의심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이곳 진선도에서 평범한 진선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이름을 알려야 할 것이다. 사실 그것을 위해서는 대응진 전각 앞에서 함께 수련할 도반을 찾는 이들과 연을 맺는 것이 좋았을 것인데, 나 때문에 그런 기회를 잃게 되었다. 실로 길잡이로선 큰 패착이요 민폐가 아닐 수 없음이지."

유희는 그렇게 말을 하며 건우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유희 선인의 말씀처럼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 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정정이 연화주에 봉인되었다 하여도 시간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라면 크게 서둘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제가 가진 그리움만 애처로울 뿐이지요."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윤회를 거쳐 다시 태어난 후, 우여곡절 끝에 분혼을 찾아 흡수하여 유정정에 대한 기억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후로 남모르게 얼마나 깊은 그리움에 사무쳤던가.

그런데도 유정정에게 가까워진다 싶다가도 다시 보면 어디에 있는지 종적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것이 이어져 이곳까지 이르렀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느니라."

건우가 상념에 잠기자 유희가 단호한 음성으로 경고를 던졌다.

이에 건우가 정신을 차리고 쓸쓸히 웃으며 유희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선인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야 정보를 얻기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유희에게 물은 것인데, 유희는 그런 건우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저 쪽으로 가자꾸나. 남부 지역에서도 제법 규모가 큰 성이 하나 있다 했으니."

그리고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거룡을 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호호. 이를 말이겠느냐? 진선도는 네 고향이라던 수미보다 수십 배는 큰 곳이니라."

"알겠습니다. 그럼."

건우는 유희의 말에 망설이지 않고 거룡 비행 선기를 불러냈다.

그리고 이전처럼 각자 탑의 한 층씩을 차지하고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곳에서 선인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려?"

"그, 그러게 말입니다. 참으로 기묘한 인연입니다."

"무에 그리 놀라고 그러십니까? 등선 전에 있었던 일로 제가 앙심이라도 품을 줄로 아셨습니까?"

"그리 말씀을 해 주시니 이 갈모의 마음이 크게 편해집니다. 하하하."

갈협이었다.

과거 건우와 작은 악연을 맺은 후에 건우가 등선자가 되면 보복할 것을 두려워하여 모습을 감췄던 그가 이곳 진선도에 있었다니.

건우가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함께 시간 법칙을 연구할 도반 모임을 찾아 어렵게 가담했는데, 그 모임에 나가니 갈협이 그곳이 있었던 것이다.

"자자, 이제는 함께 법칙을 수련하고 깨우침을 나눌 도반이 된 것이 아닙니까. 어려워하지 말고 서로 편히 터놓고 지내십시다."

건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갈협을 친근하게 대했다.

그렇게 진선도에서 뜻밖의 인연과 재회하게 된 건우였다.

<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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