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58화 (45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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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미 선자의 뒤에 또 다른 배후가 있었다 >

"그것은……. 내가 왜 선인에게 그것을 알려줘야 한단 말입니까? 나는 건우 선인과의 거래에 넘칠 정도의 정보를 이미 주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종 선생은 만만치 않았다.

유희가 보통 선인이 아님을 알아차렸음에도 자신의 고집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호호호홋,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놈이구나."

"선인께서 하늘이란 말입니까?"

"재미있구나. 재미가 있어. 그러니 내 너를 용서하마. 하지만 다시 같은 언행을 보인다면 네 스스로 명을 재촉한 것이 될 것이다."

유희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눈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눈빛 속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함께 담겨 있었다.

종 선생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유희와 대치했다.

유희는 시간이 흐를수록 표정이 냉담하게 바뀌며 종 선생을 노려보았다.

"끄응. 제가 잠시 수도계의 이치를 잊었던 모양입니다. 힘도 없는 것이 이리 도를 넘으면 화를 당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결국 물러선 것은 종 선생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책하는 말을 하더니 유희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홍! 되었다. 너는 이제 재미 있지도 재미가 없지도 않은 놈이 되었구나. 그러니 이제 내겐 별 가치가 없느니라. 어서 배천단에 대한 이야기를 어찌 듣게 되었는지나 말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제리배천단을 알게 된 것은……."

종 선생은 냉랭한 유희의 태도에도 이전처럼 마음 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종 선생의 말에 의하면 연화궁이 멸궁하고 유정정이 사라진 후, 연화주에 대한 이야기가 선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종 선생은 유정정이 스스로의 병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연화주의 등장에서 그 내막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했다.

"그러니 어찌 연화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연화주가 수미를 벗어나기 전에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연화주를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건우 선인. 당시 어떤 선인이 연화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그를 궁지에 몰아서 연화를 취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요?"

건우가 급하게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지금껏 연화주를 직접 보거나 만졌다는 이는 하나도 없었기에 더욱 종선생의 이야기에 몰입한 것이다.

"그 선인에게 연화주를 막 빼앗으려는 순간에 제리배천단이 나타난 것입니다."

"네? 제리배천단이 나타나다니요?"

"그게 정말이냐? 정말 제리배천단이라 스스로를 소개했단 말이냐?"

건우와 유희가 동시에 놀랐지만 서로 놀란 맥점이 달랐다.

건우는 제리배천단이 나타나 종선생의 일을 방해했다는 점을 중시했고, 유희는 스스로 제리배천단이라 소개한 이가 있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제리배천단에 속해 있으며 이번 연화주의 일은 다미를 포함한 몇 명의 휘하를 부려서 이룬 일이라고. 저는 그 말에서 유정정 선인의 일에 제리배천단의 선인들이 개입 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리배천단에 대해서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흐음. 스스로 휘하를 부려서 일을 꾸몄다 했단 말이지? 그러고 네게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고?"

유희가 고심어린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절대 거짓은 없습니다."

종 선생은 당당한 모습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유희는 그 후로 한동안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너는 그 때에 나타난 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더냐?"

유희가 종 선생을 보며 별 기대는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 선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외모는 중년의 평범한 인간수사의 모습이었고, 진선이었습니다."

"그건 그랬겠지. 제리배천단은 모두 진선의 경지에 머문다. 네가 그 자가 금선이나 옥선, 대라선이라 했으면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진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경지는 평범한 진선과는 또 다른 듯 했습니다. 견문이 미천하여 그 이상을 알 수가 없었지만 말입니다."

"되었다. 진선에 머무는 선인들 사이에도 다양한 격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제리배천단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자라고 하면, 어지간한 옥선이나 대라선과도 비길 만한 이들이 많이 있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네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니 아쉽기는 하구나. 하지만 그 때의 일이 평범한 경우가 아님은 확실하겠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 번에는 건우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리배천단의 행사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라는 말이 아닌가.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만 하여도 이전에는 다미가 주요 인물이었는데, 이제는 다미라는 선인을 부린 또 다른 배후가 드러나지 않았나.

점점 반려를 찾아서 함께 정을 나누며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줄어드는 느낌이니 걱정이 커질 수밖에.

"아까도 이야기를 했지만 배천단은 일을 억지로 꾸미는 것을 매우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배천단임을 밝히며 연화주의 일에서 물러나라 했다니, 그것은 배천단의 주요한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냐."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일을 진행해야 할 정도로 연화주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로군요?"

건우가 어느 정도 유희의 말뜻을 파악하며 그렇게 물었다.

"바로 그것이다. 이제 이전의 영민한 모습을 되찾은 듯하구나."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전까지는 평소와 달리 멍청하게 굴었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임을 알아차린 건우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되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니. 자, 그럼 이제 어찌하면 좋을꼬?"

유희가 건우를 보며 앞으로의 일을 물었다.

"그야 당연히 다미 선자와 제리배천단에 대해서 알아보아야지요."

건우는 막연하지만 일단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전에 지하에 있는 괴뢰선과 다른 선인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긴 해야겠지요."

"도움이라고요?"

건우의 말에 놀란 이는 유희보다는 종 선생이었다.

"도움을 받은 바가 있으니 갚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일단 지하 세계의 극멸기를 멸계로 밀어내는 것과, 선인들의 몸을 오염시킨 극멸기를 정화할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역시, 건우 선인은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경우가 바른 수도자를 보기가 어려운데 말입니다."

건우의 말에 종 선생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는 앞서 괴뢰선과 대화를 하며 지하 세계 있는 선인들을 구할 방법을 찾으면 아주 큰 대가를 받기로 계약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만약 건우가 그의 말대로 무슨 수든 만들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별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달콤한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종 선생은 어떻게든 건우의 곁에 붙어서 그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   *   *

수미산 지하에 갇혀 있는 선인들을 돕겠다는 건우를 유희는 말리지 않았다.

당장 제리배천단을 찾아 나서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 일을 벌인다고 야단을 칠 법도 하지만 그냥 건우가 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그래서 건우도 부담 없이 괴뢰선 등을 돕는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자, 이런 방법을 쓰면 그곳 지하 세계와 멸계를 이어주고 있는 통로를 찾아 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곳에 있는 선인들이 머리를 맞대면 사소한 문제 따위야 어렵지 않게 해결을 하겠지요."

- 하하.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되지만 어떻게든 해 내기는 해야겠지요.

"그렇게 지하 세계의 극멸기를 멸계로 몰아넣다보면 극멸기의 농도가 많이 낮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이쪽에서 지하 세계로 통하는 단방향 통로를 만들어 영기를 유입시키십시오."

- 바깥의 영기를 끌어들여 극멸기와 상쇄시킨다는 말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지금이야 워낙 극멸기의 세가 강력하여 그런 수를 쓰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단방향 통로를 역류하여 극멸기가 선계로 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그곳에 극멸기가 줄어든 후에 쓸 방법이지요."

-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한 쪽에서는 극멸기를 끌어모아 멸계로 보내고, 다른 쪽에서는 영기를 끌어들여 극멸기를 상쇄시킨다는 것이 아닙니까. 실로 절묘한 방법입니다.

괴뢰선은 건우가 제시하는 방법에 크게 감명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때문인지 다른 문제의 해결책에도 기대가 큰 듯 했다.

- 그런데, 건우 선인. 그렇게 이곳의 극멸기를 없애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우리 몸에 있는 극멸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방법이 없겠습니까?

건우는 그렇게 물어오는 괴뢰선, 정확히는 그의 꼭두각시인 중년 도인 괴뢰를 보며 웃었다.

"이미 과거에 제가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 제 반려인 정정이 나서서 제 몸에서 극멸기를 정화해 주겠다고 했었습니다."

- 아아. 정화 법칙을 이용해서 극멸기를 지우란 말이군요?

"찾아보면 다른 법칙 중에서도 극멸기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천지 법칙 안에 얼마나 많은 법칙이 있는데, 그 정도를 못하겠습니까."

- 그거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정화 법칙을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방법을 알아도 쓸 수가 없었지요.

"탐혈과그 일당들 때문에 말입니까?"

- 바로 그렇지요. 하지만 이제 건우 선인께서 탐혈과 그 종놈들을 모두 처리해 주셨고, 밖에는 종 선생도 나가 있으니 충분히 몸에 쌓인 극멸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럼 되었습니다. 저야 그저 방향만 제시할 뿐, 나머지는 괴뢰선과 그곳에 있는 선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그리고 몸에 들어온 극멸기를 해결할 정화 법칙이나 다른 법칙은 종 선생이 알아보면 될 테지요."

- 마음 같아서는 건우 선인을 더 붙잡아 두고 싶지만, 제가 건우 선인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감히 더는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큰 은혜에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괴뢰선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대신하는 괴뢰를 움직여 정중하게 큰절을 올렸다.

건우는 당황하여 몸을 틀었으나 괴뢰선은 절을 끝까지 마무리했다.

- 언제고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이곳에 갇혀 있는 열세 명의 선인들 모두가 같은 뜻일 것입니다. 부디 유정정 선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건우는 이후 지하세계의 일을 종 선생에게 맡기고 유희와 함께 수미를 떠났는데 의외로 유희가 건우에게 명확한 목적지를 정해 주었다.

"진선도(眞仙島)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언제 알려주실 것입니까?"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거룡 비행 선기의 4층탑 1 층에서 건우가 유희를 보며 물었다. 유희가 건우에게 진선도로 갈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곳의 이름이 어째서 진선도일 것 같으냐?"

그런데 유희는 도리어 건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경우 그 질문이 건우의 물음에 대한 답일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건우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궁리를 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유희를 보며 말했다.

"진선도란 이름은 그곳에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 등의 선인들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선만 있다는 것은 앞서 유희 선인께서 말씀하셨던 제리배천단(制理拜天團)의 구성원들의 특징과도 부합합니다."

"호호, 그래서?"

"그러니 진선도 자체가 제리배천단의 다른 모습이거나 혹은 그곳에 제리배천단 소속의 선인들이 많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호호. 역시 이제 과거의 영민함을 모두 찾은 모양이구나. 네 말이 옳다. 옳아. 그럼 어느 쪽이겠느냐? 사실 그곳은 배천단의 본거지나 다름이 없지. 진선도의 모든 진선이 배천단인 것은 아니지만 배천단 의 핵심 인물들이 그곳에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다미 선자도 쉽게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

유희는 그렇게 기대감을 심어주고는 이후로 탑의 3층에 들어 홀로 폐관을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건우도 틈을 내어 의념 공간을 돌보기 시작했다.

< 다미 선자의 뒤에 또 다른 배후가 있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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