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55화 (455/499)

(455)

< 다미(廢婚)에 대해서 알고 싶은가? >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것입니까?

평범한 인상의 중년 수사 모습을 한 괴뢰가 건우의 기척을 느끼고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탐혈과 그 종자들은 모두 처리를 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타, 탐혈을 처리해요?

"말 그대로입니다. 그것들이 감히 나와 내 동행의 목숨을 노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걸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는 그저 건우 선인께서 무사히 수미 세계를 벗어나기라도 했으면 했는데……. 그 탐혈, 그러니까 옥선을 죽이셨단 말입니까?

"운이 좋았지요. 또 제가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어찌 되었건 옥선이 아닙니까. 옥선. 그 옥선이 이곳 수미에서 얼마나 큰 패악을 부렸는지 아시기나 하고 그렇게 태연한 것입니까?

"좋은 것이 좋은 것이지요. 이제 그곳 지하에 계신 분들이 자유를 얻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자유라…….

건우가 좋은 소식을 전했지만 괴뢰선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건우가 그런 괴뢰선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전에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들이 이곳에 숨어 있음에도 탐혈이 우리를 어찌하지 못한 이유 말입니다.

"그곳에 멸계의 극멸기가 가득하여 봉인을 풀면 그 극멸기가 선계에 퍼지게 된다 했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려면 봉인을 깨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고 말입니다."

실상이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가 힘을 모으면 봉인을 깨지 않고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탐혈이 이곳으로 들어와우리를 잡지 못한 것은 그 놈이 이곳에 들어오면 우리가봉인을 터트려 함께 죽을 것을 걱정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아니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일이 그렇다면 탈출이 더 쉬워진 것이 아닙니까."

내가 그런 사실을 숨긴 것은 건우 선인이 이곳으로 들어오려면 그만한 각오를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여기에 한 번 들어오면 다시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으니.

"어쨌거나 이제는 탐혈도 없고, 그의 종자들도 없으니 다들 나와서 자유를 얻으면 될 터인데 어찌 그렇게 기색이 좋지 않단 말입니까?"

종 선생에게 들으니 이전에 건우 선인께서 윤회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지요? 그걸 떠올리시면 우리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건우는 괴뢰선의 말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모두들 극멸기가 몸에 스미었습니까?"

건우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괴뢰선의 의식이 깃들어 있는 중년 괴뢰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목숨이 위태하여 이곳으로 숨기는 했지만 모두들 몸 속에 극멸기가 쌓이게 되었지요. 사실 이곳엔 영기가 거의 없어서 극멸기라도 활용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지요.

"그것 참, 곤란한 문제로군요."

건우도 지하세계의 상황을 듣고는 문제가 심각함을 알아차렸다.

인계와 영계에선 몰라도 선계에선 극멸기를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건우도 그런 이유로 선계와 수미 세계가 통합될 때에 죽음을 피하지 못할 상황에 놓이지 않았던가.

그 일만 없었으면 유정정과 헤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탐혈과 포반자 등이 없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그곳을 나올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건우는 그렇게 희 망을 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사실, 우리들 역시 건우 선인의 예를 쫓아서 스스로 윤회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지하에 있다는 선인들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자신도 과거 극멸기 때문에 윤회를 선택한 경험이 있었기에.

"하아, 안타까운 일입니다. 등선자가 되었는데 다시 윤회를 선택해야 하다니요. 그렇다면 차라리......."

건우는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천지 법칙의 심기를 거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멸계에서 등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어찌한단 말인가.

-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하지만 천지 법칙의 그물이 성기다 한들 어찌 우리가 그것을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천라지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 테니 말입니다."

- 어쨌거나 탐혈과 그 일당을 처리해 주셨다니 우리들의 복수를 해 주심 셈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굳이 인사를 받을 일은 아니지요. 그곳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 한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저 사적인 복수의 결과가 여러분들의 바람과 일치했을 뿐입니다."

견우는 그렇게 괴뢰선의 말에 겸양을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은근한 어조로 괴뢰선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제 반려인 정정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없습니까?"

- 이런, 전에도 말했지만 그 일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저 또한 그 때에 다른 일로 칩거를 하던 중이라. 아참, 종 선생이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는 했습니다만.

"종선생이요?"

- 그렇습니다. 그러니 종선생과 이야기를 해 보시지요.

"하지만 종선생과는 의념이나 심언을 전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 그야 제가 조금 도와드릴 수가 있겠지요. 종선생도 실은, 스스로 강력한 결계 금제를 두르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어찌 되었건 짧게나마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괴뢰선은 그렇게 말을 하고 물러난 후에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건우는 수미산 자락에서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와 그곳에 걸려 있는 봉인을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과거 영족 수사가 스스로 희생해서 지하 세계와 수미 세계를 격리했던 흔적입니다. 지금 보니 그 때의 금제 흔적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래? 고작 영계에서의 금제가?"

"수법이 고명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원래 있었던 것을 이용하여 봉인을 만드는 수고를 덜었던 모양입니다."

"어디 보자. 그러니까 이쪽이 그것이겠구나? 그래 봉인의 기초에 섞어 넣기에 나쁘진 않구나. 괜찮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어찌어찌 지하 세계로 드나들 방법은 있겠습니다."

"그래?"

"네, 과거의 흔적이 원래는 소위라고 하는 영족의 것인데, 당시에 그와 친분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약하게 남아 있는 그의 기운을 이용한다면 한 번은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설마 들어 가려는 것이냐?"

건우의 말에 유희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하. 그럴 일은 절대 없지요. 제가 정정과 헤어진 것이 바로 극멸기 때문인데, 어찌 위험을 자초하겠습니까."

물론 극멸기와 함께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은 윤회를 거친 지금은 누구에게도 말할 거리가 아니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혹시라도 잠깐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마. 선계에 익숙해진 이들은 극멸기에 취약해진다. 그래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지."

"그런 사정이 있습니까?"

"정말 제대로 준비해서 초기에 극멸기를 몰아내지 못한다면 절대 극멸기의 침습을 막지 못한다. 아마도 지하 세계에 있는 녀석들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야."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니 길잡이로 말하는 바. 너는 절대 극멸기가 가득하다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절대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맹세하지요."

건우는 유희의 연이은 만류에 맹세까지 했다.

그렇게 지하 세계를 막고 있는 봉인 결계를 연구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드디어 괴뢰선의 중년 도인 괴뢰가 건우를 찾아왔다.

"어찌 되었습니까?"

- 여기 이것을 쓰시면 종선생과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건우의 물음에 중년 도인 괴뢰가 주먹 크기의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것은 괴뢰심이 아닙니까?"

건우가 그것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렇게 물었다.

- 아시는 것처럼 제가 괴뢰에 약간의 재주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제가 만든 괴뢰의 심장 일부입니다. 나머지는 종선생이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를 통해서 종선생과 대화를 하면 된다는 말이군요."

-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리되면 저와 종선생의 대화를 괴뢰선께서도 모두 알게 되시겠군요?"

- 하하.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만든 괴뢰이기도 하지만 또 두 분의 대화를 중계하는 역할을 제가 해야 하니 말입니다.

"끄응. 저야 상관이 없습니다만 종선생이 그것을 허락했습니까?"

- 이를 말이겠습니까? 도리어 종선생이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이 괴뢰선은 제가 받아 두지요. 언제든 준비가 되면……"

-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 괴뢰심에 영기를 불어넣고 심언을 전하시면 됩니다.

"그저 말을 중간에서 전하는 저급한 방식은 아닌 모양입니다?"

- 그렇게 해서야 어디 두 분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를 거치기는 하지만 대화는 두 분이 직접 하는 것입니다.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이군요?"

건우는 괴뢰선의 말대로 괴뢰심을 손에 쥐고 천천히 영기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괴뢰심에서 전해지던 갑갑함이 줄어들고 괴뢰심의 내부가 크게 확장된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 실로 오랜만이군. 건우 수사.

건우는 심언을 듣자마자 그가 종선생인을 알 수 있었다.

종선생은 과거 여러 번 어투를 바꾸었지만 건우와 마지막으로 볼 때에는 하게체를 썼었다.

종선생도 그 기억 때문인지 건우에게 하게체를 쓰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이 강모가 종선생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건우를 윤회시켜 준 것에 대한 인사였다.

= 그럴 것 없네. 당시에 내가 건우 수사의 주머니를 탈탈 털지 않았나. 그것은 서로 간의 거래였을 뿐이네.

하지만 종선생은 건우의 인사를 고사하며 거래였을 뿐이라고 한 걸음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그리 생각하는 것이 편하시면 그리 하시지요. 그래도 이 강 모가 종 선생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음은 기억해 주십시오."

= 고마움이라. 그럼 그것을 오래 간직할 필요 없이 나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시는 것은 어떤가?

"네? 도움을요?"

= 그렇다고 받기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네. 이번에도 거래를 하자는 것이지.

"어떤 거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건우는 사실 어지간한 것이면 종선생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으로 그렇게 물었다.

= 나를 이곳에서 꺼내 주게. 그리 해 주면 연화궁과 정정 선인, 연화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겠네.

"뭐라고요? 연화궁의 멸문이나 연화주의 대해서 아신다는 말입니까?"

종선생의 말에 건우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 내가 그 일에 대해서는조금 아는 바가 있지. 건우 수사, 아니 선인이 얼마나 아는지 모르지만 거기엔 숨겨진 내막이 있네.

"혹여, 다미라는 선인에 대해서 아십니까?"

= 허어. 다미를 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내어 놓을 패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는데?

건우가 다미란 이름을 꺼내자 종선생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건우가 다미를 알고 있다면 자신이 거래할 정보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질 것임을 짐작했기 때문이리라.

"그건 종선생께서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정정에 대한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큰 가치로 거래할 용의가 있습니다. 거기에 다미라는 이름이라면 매우 큰 대가를 치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도 마음이 놓이는군. 원래 정보의 가치란 상대적인 것이니 말이지.

"좋습니다. 저는 종 선생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으니, 이제 나에게 바라는 바를 말해 보십시오."

건우는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곧바로 종선생의 요구를 물었다.

= 내가 바라는 것이 뭐가 있것[나. 나를 이곳에서 꺼내 달라는 것이지.

"음? 그 말씀은 종선생은 극멸기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밖으로 나오면 소멸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종선생이 밖으로 꺼내 달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 내가 이미 건우 수사, 아니 건우 선인의 예를 본 적이 있는데, 극멸기를 접하고 어찌 태만할 수 있었겠나. 나는 이곳에 들어온 이래로 줄곧 나만의 봉인 금제를 치고 극멸기를 막았다네.

"역시! 그러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방법을 찾아 보겠습니다."

건우는 우선 그렇게 종선생과의 대화를 끝마쳤다.

이미 종선생 하나 정도는 빼 올 방책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한 것은 괴뢰선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괴뢰선은 이미 극멸기에 오염된 상태라 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데, 종선생은 쉽게 지하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면 어찌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단은 괴뢰선의 속마음을 알아볼 생각을 한 것이다.

"종 선생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지금껏 극멸기를 막아 왔다니 말입니다."

건우가 중년 도인 모습의 괴뢰를 향해 그렇게 말을 걸었다.

< 다미(廢媚)에 대해서 알고 싶은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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