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53화 (453/499)

(453)

< 탐혈을 제압하다 >

"그건 어찌 꺼내느냐?"

유희가 건우의 손에 들린 혈주를 보며 물었다.

"원래는 이것을 아주 위험한 곳에 던져두고 술법을 발동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지금은 탐혈 그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으니 이것을 쓰려 합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그 혈주를 발동시켜 탐혈의 기운이 끌려오는 것을 살피겠다는 게로구나?"

"그렇습니다. 이 혈주로 만드는 함정이 탐혈의 기운을 끌어오는 것이라 했으니, 분명히 놈이 숨어 있는 곳을 역추적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호호. 그래, 그거 괜찮은 방법이구나. 재미있겠다."

건우의 말에 유희는 큰 흥미를 보였다.

적의 함정을 일부러 발동시켜 역추적을 하겠다는 발상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이것을 쓸 준비를 조금 해야겠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탐혈의 기운을 빌려와서 누군가를 제압하는 금제가 발동할 듯 한데, 굳이 그 안에 우리가 들어가 있을 이유는 없겠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탐혈의 기운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보려면 보조 진법 몇 개를 펼쳐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분신을 보냈다가 크게 낭패를 보았는데, 혈주의 술법에 힘을 보태겠느냐?"

유희는 탐혈이 혈주의 술법에 반응하지 않을 상황을 염려했다.

하지 만 건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째서?"

"제가 잠시 살펴보니 이 혈주에 걸린 술법은 강제성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뿌리칠 수는 있겠지만 제가 그 부분만 강화할 방법이 있으니 탐혈이란 놈도 쉽게 벗어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리고 놈의 기운을 추적하는 것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크게 염려하실 일은 아닌 듯 합니다."

"호호호. 좋다. 그럼 어디 시작을 해 보자꾸나."

건우의 말에 걱정이 없어진 유희는 곧바로 나서서 건우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건우와 유희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혈주를 던져 술법을 발동시켰다.

파직, 파직, 파직!

후우우우웅! 후우우웅!

건우가 만든 진법 위에서 세 개의 혈주가 부서졌다.

그리고 그 즉시 혈주에서 뿜어져 나온 혈기가 이리저리 뒤엉키며 금제 진법을 만들었다.

만약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면 금제에 걸려 오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밖에서 보기에도 그 금제 진법은 매우 강력해 보였다.

하지만 혈주의 기운만으로 기 진법은 오래 유지될 수가 없었다.

강한 만큼 쓰이는 기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제 진법의 발동과 함께 혈주의 새로운 술법이 작동하여 탐혈의 기운을 끌어와야 했다.

그 탐혈의 기운이 금제 진법을 유지하고 더욱 강화시켜야 대상을 완벽하게 제압하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보십시오. 저기 탐혈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저것이 어디서 오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건우는 금제 진법으로 탐혈의 기운이 스며드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미리 깔아둔 진법에 의념을 집중하여 탐혈의 기운이 흘러오는 위치를 특정했다.

"놈! 멀지 않은 곳에 있었구나."

"찾았느냐?"

건우의 외침에 유희도 기뻐하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탐혈 놈은 운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곳 수미산의 북쪽 자락에 숨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래? 그렇게 가까이 있다고?"

"네, 그러니 이제 곧바로 놈의 소굴을 들이치면 될 듯 합니다."

"그래,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옥선이나 되는 놈이니 방비가 간단치는 않을 것이야."

"하하하. 유희 선인께서 계신데 큰 일이야 있겠습니까."

"믿어봐야 크게 돕지 못한다고 일렀을 텐데? 잊었느냐?"

"하하. 그간 함께 한 정이 있는데 어찌 그리 섭섭하게……"

"쓸데없는 소리. 어서가자."

건우의 너스레에 유희는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앞서 둔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에 건우도 유희를 따라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건우와 유희가 떠난 연화궁의 빈 터에는 탐혈의 혈주 금제가 서서히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검붉은 피의 공간.

바닥과 벽은 물론이고 천정까지 모두가 피로 이루어진 공간에 탐혈 옥선이 있었다.

그는 공간의 중앙에 허리까지 잠긴 상태로 서 있었는데, 머리를 제외한 신체의 여러 부위에서 핏줄이 뻗어 나와 공간 곳곳에 이어져 있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그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랫것들을 부려서 진선 사냥을 했을 뿐이다.

그 일이 지금과 같은 심각한 상황을 만들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고작해야 진선 둘에 지나지 않는 년놈인데.

파스스스슷! 파스스슷!

우르르르릉! 우르르르릉!

탐혈의 혈세동(血世洞)이 진동하며 크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외부의 공격에 혈세동을 이루는 피가 증발하고 동굴 자체가 뒤흔들리는 것이다.

"감히!"

탐혈은 분노를 참지 못해 고함을 지르며 혈기 법칙의 힘을 크게 끌어 올렸다.

이곳은 그의 세상.

온통 피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 피들이 어떤 피들인가, 혈기 법칙을 깨닫기 전부터 피와 관련된 수련 공법을 익히며 모았던 것이다. 이후 혈기 법칙을 크게 깨달은 후에도 쉬지 않고 피를 모아왔다.

그 과정에 죽어나간 수사나 선인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지만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수도계란 곳이 강하면 먹고 약하면 먹히는 것이 당연한 곳이거늘.

푸화확! 파지지지지지!

탐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혈세동의 한쪽 벽이 크게 무너지며 강력한 열기에 피가 타들어 붉은 안개를 피워 올렸다.

그 안개 너머로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드디어 년놈들이 이곳까지 이른 것이다.

"감히! 용서하지 않겠다!"

탐혈은 미리 모아 두었던 혈기 법칙의 힘을 최대한 혈세동의 벽을 뚫고 들어온 침입자들에게 쏘아 냈다.

푸화화확!

탐혈의 몸과 혈세동을 연결하던 몇 가닥의 혈관이 그대로 혈세동에서 뽑혀나와 건우와 유희를 향해 날아갔다. 선인들의 싸움이란 법칙과 법칙의 겨룸.

하지만 나의 법칙을 상대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법칙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결국 선인들의 싸움이란 것도 누가 더 강력한 힘을 내느냐 하는 것이 우선이다.

탐혈은 그것을 믿고 옥선의 경지에 오르도록 연마한 혈기 법칙의 힘을 모두 건우에게 쏟아냈다.

"크흡!"

건우는 낮은 신음을 터트리며 그런 탐혈의 공격을 막아냈다.

예상보다 강력한 공격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건우도 탐혈이 시작부터 뒤도 없이 모든 힘을 떨쳐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의념 공간의 영찬황후선보도 제대로 발동을 시키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탐혈의 얼굴을 보게 되면 몇 마디 대화를 나눌 기회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탐혈은 침입자가 누군지도 알아볼 마음이 없어 보였다.

파스스스스스슷!

화르르르르르!

건우는 생기 법칙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어 자신에게 집중된 탐혈의 공격을 막아냈다.

탐혈의 공격이 단순히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되며 밀고 들어오는 방식이라 막아낸 것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단번에 무너지지 않은 것에 의의가 있었다.

그 여유면 충분히 북현무룡갑팔혈개영찬황후선보(北玄武龍甲八穴蓋靈豫皇后仙寶), 그 거창한 이름의 본명 법보를 한껏 활성화 시킬 수 있었다.

화르륵, 꾸드드득, 휘이잉, 쿠에에엑, 카아아웅, 습습습습!

붉은 화염을 머금은 소망이, 감자를 닮은 뿌리 구근이, 대나무 기둥에 백양나무 가지와 잎을 달고 있는 백죽이, 해태와 사자를 섞어 놓은 것은 같은 음통천수와 양통천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녹색의 과일 모습을 하고 있는 정체 모를 영과.

건우의 의지를 받아 여섯 영물이 영찬황후선보에 제각각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건우의 법칙력은 순식간에 십여 배나 증폭되었다.

콰자자자자자자작!

"커어어억! 이게 어찌?"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밀리는 탐혈의 혈기.

혈기 법칙의 힘이 강하게 담겨 있음에도 건우의 생기 법칙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생기 법칙에 닿는 순간 혈기 법칙은 피안개를 피웠다가 그대로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

"말도 안 된다. 고작 진선 따위가!"

탐혈이 도저히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이미 그의 터전인 혈세동 곳곳이 허물어지고 피가 씻겨나가 흙과 바위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것은 탐혈이 지금껏 축적했던 혈기 법칙의 힘이 그만큼 흩어졌다는 말과 같았다.

"빨리 싸움을 끝내자. 쓸데없이 공헌도가 날아가지 않느냐."

그 때, 건우가 탐혈을 자신의 생기 법칙으로 둘러 포박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탐혈은 건우와 법칙 싸움을 길게 끌어 서로의 공헌도로 싸움을 벌이면 자신에게 승산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 만 그런 수작을 건우가 예상하지 못할 턱이 없었다.

콰과과과! 꾸드드드드득!

"이, 이게 뭐냐? 왜 갑자기 공간 법칙의 힘이?"

건우는 탐혈을 생기 법칙의 힘으로 포박한 상태에서 그 바깥으로 공간 법칙을 일으켜 격리 공간을 만들었다.

이미 포박된 상태의 탐혈을 격리 공간으로 끌고 가는 것은 시도해 볼 만 하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의외로 탐혈은 그에 대한 방비를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곳에선 아무리 법칙의 힘을 사용해도 대천 세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 놓고 법칙 대결을 벌일 수 있지. 공헌도 걱정 없이."

"공간 법칙까지 이토록 수준이 높다고? 너 같은 놈이 어찌 진선으로 있는 것이지?"

탐혈은 자신을 옥죄고 있는 생기 법칙의 힘을 떨쳐내려는 시도를 포기한 듯 저항을 멈췄다.

대신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건우를 바라 보며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네가 운이 없었던 거지. 내가 아는 선인은 진선으로 살다가 도조가 된 분도 있었다. 그런데 진선 중에 너보다 강한 이가 어찌 없겠느냐. 너는 어쩌다 그런 이들 중에 둘을 만난 것이다."

"둘이라고?"

"여기 유희 선인이라고 네가 쉽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어리석은 놈."

건우는 그렇게 말하며 탐혈을 비웃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것이냐? 소멸이라도 시키려느냐?"

건우가 자신을 비웃고 있음에도 탐혈은 개의치 않겠다는 듯이 태연하게 질문을 늘어놓았다.

"소멸을 당하고 싶다면 그리 해 줄 것이고, 윤회를 하고 싶다면 그것까지는 들어줄 수 있겠지."

"결국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구나. 옥선의 경지까지 이르렀던 나의 모든 것을."

"윤회하는 선인이 어찌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할 수 있을까. 윤회를 해도 이번 생에 쌓은 공덕이 그대로 따라갈 텐데."

"지금의 공덕이 새로 태어난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냐?"

탐혈은 우습다는 듯이 킬킬거렸다.

"그조차도 없어서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이 허다하다. 네가 싫다면 그냥 소멸을 시켜주마."

건우는 냉정한 표정으로 탐혈을 바라보았다.

"그래? 크크큿. 그렇다면 해 보아라. 어서 나를 소멸시켜 보란 말이지."

그런데 탐혈은 건우의 말이 겁나지도 않는지 도리어 그렇게 도발을 했다.

건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숨겨 놓은 수가 있는 모양이구나. 그리 느긋한 것을 보니."

건우는 경계를 바짝 끌어 올리며 탐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울러서 탐혈을 구속하고 있던 생기 법칙의 힘을 최대한 강하게 끌어 올렸다.

파지지지지지, 파지지지지!

"크아아아악! 크아악! 네가 진정 천지 법칙의 재앙을 받아 보려느냐! 멈추지 못할까!"

건우가 끌어올린 생기 법칙이 탐혈을 보호하던 혈기 법칙을 깨부수며 탐혈의 몸으로 스미기 시작하자 탐혈이 비명을 지르고 버둥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천지 법칙의 재앙이라니?

건우가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유희를 바라보았다.

탐혈에게 내막을 듣기보다 유희에게 듣는 것이 더 정확하고 빠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희는 탐혈의 말뜻을 이미 짐작했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 탐혈을 제압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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