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
< 등대애정 (等待愛情:사랑을 기다리다) >
포반자와 구이형, 조오망은 각자 수련한 법칙의 힘을 끌어내어 정화 법칙의 결계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정화 법칙의 결계는 그들 셋이 합친 법칙의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하하하. 이리 쉬운 것을!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다. 보십시오. 저리 결계가 허물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정화 법칙의 힘이 결계와 더해진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로 인해서 실제 정화의 힘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일은 구 선인이 부패의 법칙을 익힌 탓에 번거로워 졌던 것이 분명하군요."
“조 노파의 말이 옳은 거 같습니다. 실상 셋이 아니라 둘 정도의 선인만 모였어도 결계를 깰 수 있었을 듯합니다."
구이형과 조오망, 포반자는 결계의 중심까지 자신들이 뿌린 법칙의 힘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고 환호작약했다.
그러는 중에 구이형의 모자람을 타박하는 말이 끼어 있기는 했지만, 구이형도 그에 대해선 까탈을 부리지 않았다.
그렇게 세 선인의 분위기는 사뭇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드디어!
“으하하핫! 지금입니다. 결계가 깨어집……. 컥!"
“정화 법칙의 힘이 깃든 기물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아악!"
“되었습니다. 되었……. 이런!"
파치치치치 칭!
“크악!"
“이, 이게 무슨?!"
“강가 놈! 네가……"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그야말로 순간일 뿐이었다.
정화 법칙의 결계가 파괴되는 순간, 건우의 공간 법칙이 날카롭게 공간을 갈랐다.
포반자의 몸을 사선으로 갈라내며 격리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포반자는 건우의 공격에 반응도 해 보지 못하고 영체가 반으로 잘리고 말았다.
물론 선인이 고작 그 정도로 죽을 일은 없다.
하지 만 포반자는 그 한 수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문제는 반으로 잘린 포반자의 영체가 격리 공간 때문에 반쪽은 이쪽에 다른 반쪽은 격리 공간 안쪽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기만 했어도 어떻게든 회복을 할 수 있었겠지만 잘려 나간 반쪽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으니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거기에 건우가 마무리로 격리 공간 밖에 있는 포반자의 반쪽에 조율 법칙을 사용했는데, 영체가 절반이 된 상황이라 균형이 맞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강 가! 네 놈이 우리를? 저 요망한 년과 함께?!"
격리 공간으로 끌려 들어온 조오망과 구이형 .
조오망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구이형은 분노에 찬 모습으로 건우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부패 법칙을 떨쳐 냈다.
하지만 구이형의 부패 법칙은 건우가 펼친 생기 법칙을 만나 힘을 잃었다.
“생기 법칙? 너는 조율 법칙을 익히지……. 아니 공간 법칙도 사용을 했구나. 그럼 세 가지의 법칙을?"
구이형이 깜짝 놀라 건우의 힘에 저항하려 급하게 자신의 부패 법칙을 몸에 둘렀다.
“어찌 이러시오. 나를 좀 놓아 주시오."
그 때, 조오망은 유희의 꿈에 사로잡혀 조금씩 정신을 놓아가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애처롭게 애원하는 것은, 유희의 꿈에 물들면 결국 죽을 때까지 깨어나지 못할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희는 무심하게 할 일을 할 뿐이었고, 조오망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몽롱한 표정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건우는 그 사이에 격리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던 포반자의 영체 절반을 찾아 깔끔하게 소멸시켰다.
이제는 구이형을 정리할 때였다.
우우우우우우웅!
건우가 작심하고 법칙의 힘을 쓸 뜻을 정하자 의념 공간에서 영찬황후선보가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의념 공간에 흩어져 있던 여러 영물들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그들의 도움까지는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다시 제 자리를 찾아 사라졌다.
파지지지직! 푸시시시식!
“허어억!" 영물들이 영찬후에 깃들지 않았음에도 구이형은 건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영찬황후선보를 의념 공간에 현현시킨 것만으로 생기 법칙의 힘이 몇 배는 증가해, 삽시간에 구이형의 부패 법칙을 짓눌러 버렸던 것이다.
구이형은 제 몸에 두르고 있던 부패 법칙의 힘이 일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자 헛바람 집어삼키는 소리를 냈다.
“가, 강 선인. 살려 주시오. 제발."
그리고 상황이 그렇게 되자 구이형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건우는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듣자니 너희의 뒤에 탐혈 옥선이 있다지?"
그런 구이형을 보며 건우가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강 선인."
“그 탐혈이 너희 셋을 부려서 수미의 여러 진선들을 해치고, 나아가 수미를 방문하는 다른 진선도 함정에 빠트려 피를 탐했다던데 그것도 사실이고?"
“맞습니다. 한 점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구이형은 건우 앞에서 꾀를 부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의 피부에 닿아 있는 건우의 생기 법칙이 당장이라도 그의 몸으로 파고들 듯 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생기 법칙을 몸에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이형이 부패 법칙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몸에 담은 상태란 것이 문제였다.
부패 법칙의 힘이 몸 안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지간한 생기 법칙은 보약삼아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선 생기 법칙이 구이형의 몸에 들어가면 그 순간 부패 법칙의 힘과 충돌하여 소멸시킬 것이고, 그것은 구이형의 영체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 니 어찌 잔머 리를 굴릴 수 있을까.
“그래, 괴뢰선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말이구나. 그렇다면 이곳은 어떠하냐? 여기가 연화궁의 유적이 맞느냐?"
건우는 가장 궁금했던 것을 구이형에게 확인했다.
사실 건우에겐 탐혈보다는 정정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입니다. 이곳은 제가 연화주를 얻기 위해 오래도록 찾아 헤맨 끝에 어렵게 발견한 곳입니다."
“그런 곳에 조 노파나 포반자는 몰라도 나와 유희 선인을 데리고 왔다고?"
“그, 그것이……"
“당장 소멸을 당하고 싶어 뜸을 들이는 것으냐!?"
구이형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건우가 곧바로 생기 법칙의 힘을 움직였다.
“크아아아아!"
그 순간 구이형의 왼쪽 팔다리와 어깨 일부가 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그것은 단순히 몸의 일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본체인 영체까지 그리 타격을 입은 것이었다.
건우의 생기 법칙이 구이형의 몸에 깃들어 있던 부패 법칙과 만나서 충돌을 일으켜 만들어낸 현상으로, 바로 구이형이 두려워하여 건우 앞에 엎드린 이유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오망, 포반자와 의논하기를 연화궁의 결계를 모두 해체한 다음에 곧바로 강 선인과 유희 선인을 도모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를 위해서 따로 탐혈 옥선의 기물도 얻어 왔습니다. 이, 이것입니다."
구이형이 비명을 지른 후에 서둘러 소매 안에서 뭔가를 꺼내 건우를 향해 내던졌다.
건우는 날아오는 붉은 색의 구슬을 의념으로 붙잡아 그 속을 살폈다.
지이이이잉!
"크으으!"
건우는 그 붉은 구슬에서 강력한 피 냄새와 광기를 느끼고 서둘러 의념을 거두었다.
“이것으로 나와 유희 선인을 해치려 했다고?"
“조 노파와 포 가 녀석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개의 혈주(血珠)를 특별한 술법으로 발동시키면 탐혈 옥선의 힘이 드러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탐혈의 힘을 빌려 나와 유희 선인을 처리하려 했다는 거구나?"
“그, 그렇습니다."
이미 한쪽의 팔다리가 사라진 구이형은 감히 건우의 물음에 미적거릴 담이 없었다.
그는 건우가 묻는 대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그 탐혈에 대해서 좀 알아보기로 할까? 너는 탐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
“탐혈 옥선은……"
구이형은 어떻게든 소멸만은 피해 보려 건우의 질문에 숨김없이 아는 바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건우가 그렇게 구이형을 심문하는 동안, 유희는 조오망을 제압한 상태로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오망은 유희가 펼친 꿈에 갇혀서 현실을 잊은 상태로 굳어 있었다.
“고, 고맙습니다. 강 선인!"
구이형은 건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그의 영혼만은 윤회의 빛을 따라 천지 법칙의 흐름으로 이끌려 가고 있었다.
그가 건우에게 감사를 표한 것은 영혼을 소멸시키지 않고 윤회의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쌓아 놓은 공덕을 그대로 가지고 윤회를 하는 것이니, 어지간하면 다시 수도계와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지는 구이형의 영혼을 보며 유희가 말했다.
그리고 이내 구이형의 영혼이 사라지자 홀로 남은 조오망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떠합니까?"
이에 건우가 유희를 보며 물었다.
“별 다른 것은 없다. 구이형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렇습니까?"
건우와 유희는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나누었는데, 실상은 간단했다.
유희는 조오망을 꿈에 밀어 넣은 후에, 조오망으로부터 정보를 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수미에서 벌이고 있었던 일이나, 탐혈의 일에 대해서 낱낱이 알아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죽은 구이형이 털어 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그나저나 혈주는 될 수 있으면 버리는 것이 좋겠다."
건우가 구이형과 포반자의 공간낭을 뒤적여 전리품을 정리하는 모습에 유희가 그렇게 조언을 던졌다.
그러면서 슬쩍 손을 저어 조오망의 품에서 여러 기물들과 공간낭 등을 끌어왔고, 그 안에서 혈주도 찾아냈다.
유희는 그 혈주를 손으로 잡지 않고 의념으로 허공에 띄운 상태로 건우를 보았다.
건우 역시 혈주를 한 번도 직접 만지지 않았는데 혈주와 접하는 순간 탐혈 옥선에게 탐지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독한 기운을 품고 있구나. 탐혈이 익힌 혈기 법칙은 애초에 저급한 것일 뿐이니 어쩔 수 없겠지. 기분이 좋지 않구나."
유희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건우를 향해 혈주를 밀어 보냈다.
건우는 유희가 보낸 것까지 세 개의 혈주를 한꺼번에 허공에 띄웠다가 소매 안으로 끌어넣었다.
소매 안의 공간낭에 넣어 버린 것이다.
“버리지 않을 생각이냐?"
그 모습에 유희가 아미를 찌푸리며 물었다.
“혈주를 발동시킬 술법까지 얻었는데 굳이 혈주를 버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어디 험한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 혈주를 던져 술법을 써 볼까 합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혈주를 던지고 술법을 사용하면 탐혈의 기운이 나온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헛된 곳에 던져 발동시키면 탐혈이 작으나마 손해를 입지 않겠습니까?"
“뭐라? 호호호홋. 그게 그렇구나. 그래, 재미있겠다."
건우의 말에 유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에 기분이 나쁘다 했던 위기를 이렇게 벗어난 셈이다.
기쁨(喜) 법칙의 대라선인의 입에서 기분이 나쁘다는 소리가 나왔을 때에 건우가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는 그만이 알 일이지만 큰 위기였던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저 조오망은 어찌 하시렵니까?"
그 때, 유희의 기분이 좋은 때를 노려 건우가 물었다.
“응? 어쩌긴, 나에게 죄를 지었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건우의 물음에 유희가 조오망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는데, 그 순간 붉은 안개가 조오망을 휘감더니 곧 흩어져 사라졌다.
그런데 안개와 함께 조오망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꿈입니까?"
건우가 물었다.
“그래, 꿈속에 넣어 뒀느니라. 호호호."
유희가 그렇게 대답하며 웃었지만 건우는 그녀가 펼친 법칙의 힘과 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해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괜한 생각은 하지 말고 이만 밖으로 나가자꾸나."
그런 건우에게 유희가 격리 공간을 풀고 나가자고 했다.
건우는 격리 공간 안에 퍼져 있는 법칙의 힘들을 살피고 격리 공간을 풀었을 때에 그 법칙의 힘이 대천 세계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그다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기에 유희의 말대로 격리 공간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당연히 건우와 유희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연화궁의 유적 입구로 짐작되는 대문 앞이었다.
“정화 법칙의 결계가 깨어졌으니 이제 저 흙더미를 털어낼 수 있겠구나. 네가 하려느냐?"
유희가 웃는 얼굴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건우가 긴장된 표정으로 대문에 달려 있는 현판을 확인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건우가 애써 표정을 감추고 소매를 떨쳐 대문의 절반을 덮고 있는 흙무더기를 떼어 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결국 현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 냈다.
[등대애정 (等待愛情)]
< 등대애정(等待愛情:사랑을 기다리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