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47화 (44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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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서 지켜보다가 기회가 되면 >

연화궁 폐허는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나 돌무더기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연화궁이 번성할 때에야 온갖 술법으로 영기를 둘렀을 건물들이었지만 무너져 퇴락한 이후에는 그저 세월의 흐름에 풍화되는 돌덩이에 불과했다. 그러니 몇만 년을 비바람 속에 버려진 연화궁의 터가 어찌 흔적이라도 제대로 남아 있을까.

“여기서부터 유적이 시작됩니다."

구이형이 일행을 이끌고 지하로 내려가기를 반나절.

그는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돌기둥과 서까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흙 속에 묻혔지만 아직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두 개의 기둥과 그 기둥 위에 올라앉은 기와지붕.

한눈에 보기에도 높은 담장에 딸린 대문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지붕의 일부만 드러난 상태라 현판이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정말 연화궁의 흔적이 맞습니까?"

이에 포반자가 확인하듯 구이형에게 물었다.

그러자 구이형이 소매를 휘저어 드러나지 않은 지붕을 향해 영기를 뿜어냈다.

일행은 구이형의 영기에 숨겨져 있던 대문의 지붕이 모두 드러나리라 예상했다.

후우우우웅!

“허어! 이것은?!"

“정화의 기운입니다."

“정화 법칙이 어찌 영기를 밀어낸단 말입니까?"

하지만 구이형이 뿌린 영기는 대문을 묻고 있는 흙을 털어내지 못했다.

기척도 없이 일어난 정화 법칙의 힘이 구이형의 영기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보시는 것처럼 이와 같습니다. 저곳에 결계가 있는데 정화 법칙의 힘이 결계와 하나가 되어 기묘한 작용을 합니다."

“그렇다면 정화의 기운이 닿지 않을 순수한 기운을 사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구이형이 상황을 설명하자 포반자가 그게 뭐가 그리 문제냔 듯이 물었다.

그러자 구이형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이미 해 보았지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앞서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정화 법칙의 힘이 결계와 합쳐져서 기묘한 작용을 한다고 말입니다."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니 어디 들어 보십시다. 그래 정확히 뭐가문제인 것입니까?"

이 때, 건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구이형이 건우를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결계는 외부의 침입을 거부하는 단순한 성질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화 법칙의 힘이 섞였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정화 법칙이 결계를 지나려는 모든 것에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계를 지나려는 모든 것에 작용한다지만 정화가 아닙니까? 정화 될 소지가 없다면 문제가 아닐 텐데요?"

건우도 일반적인 시각을 가지고 판단하며 그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결계에 깃든 정화 법칙의 힘은 정화 시키지 못하는 대상은 결계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것이 정화 법칙과 어울리지 않음에도 일이 그렇게 되고 있지요."

“아, 그것이 결계와 더해진 정화 법칙의 기묘함이란 말이군요?"

건우도 이제는 구이형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른 선인들도 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표정이 굳었다.

“이제 보니 확실히 이곳이 연화궁과 연관된 곳일 가능성이 높군요. 과거 연화궁주 유정정 선인이 정화 법칙을 익히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저 결계가 곧 그 증거가 될 수 있겠어요."

그 때 조오망이 땅속에 묻힌 이곳 유적이 연화궁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건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어디 그럼 제가 한 번 살펴보지요. 이곳에 펼쳐진 정화 법칙이 그녀의 것이라면 제가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걸음을 옮겨 홁 밖으로 드러난 두 개의 기둥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기둥으로 손을 뻗었는데 동시에 금제 결계가 발동하여 건우를 밀어내려 하였다.

건우는 결계에 섞여 모습을 드러낸 정화 법칙의 힘에 의념을 불어 넣었다.

“으음. 정화 법칙의 힘에 개인의 특성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정화 법칙을 이곳에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정화 법칙이 깃든 기물을 이용하여 결계를 펼친 것입니다."

건우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결계에 사용된 기물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면 기물에 담긴 정화 법칙의 힘이 유정정의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어찌합니까? 이전에도 말했지만 내 힘으로는 이 결계를 뚫을 수가 없습니다. 고작 출입구 하나를 뚫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구이형이 난처한 표정으로 조오망과 포반자, 건우와 유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어떻게든 수를 내어 달라는 뜻이 가득 담겨 있었다.

건우는 그런 구이형의 모습에서 탐혈의 지시를 받고 진선을 함정에 빠트린다는 일면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일단은 이곳 유적에 집중하기로 한 건가?’

건우는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봤지만 그렇다고 이들 세 선인에 대한 경계심을 흩트리지는 않았다.

“아니 무슨 방법을 찾고 그런단 말입니까? 그냥 힘으로 깨트리면 될 일이 아닙니까?"

그 때, 조오망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 며 반쯤 드러 나 있는 대문을 가리 켰다.

“힘으로 깨트리자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구이형이 그런 조오망을 향해 물었다.

“이 조늙은이가 보기에 이곳의 결계는 별로 고명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정화 법칙의 힘과 결합하여 특이해졌을 뿐이지요. 구 선인은 홀로 결계에 깃든 정화 법칙의 힘을 깨트릴 자신이 없어서 생각이 단순 해 졌습니다."

“뭐요?"

“그리 화를 내지 말고 생각해 보십시오. 결계는 단순하고, 그 결계에 깃든 정화 법칙의 힘은 고작 기물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정화 법칙의 힘이 기물에서 나온 다는 것입니다."

“아, 결국 나올 수 있는 힘이 정해져 있다는 소리군."

그 때, 포반자가 조오망의 말에서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건우 역시 비슷한 순간에 조오망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물론 구이형 역시 그리 아둔한 자는 아니었는지 얼굴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 간단한 것을 몰랐다는 자괴감과 결계를 해결할 방법이 생겼다는 기쁨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건우가 슬쩍 유희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녀는 여전히 주변 상황에 큰 관심이 없다는 듯이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러면서도 누구보다 세심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겠지. 언제든 내가 도움을 청하면 답을 내어줄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에 충실한 유희가 그런 면모를 유지하려 애쓰는 것을 잘 아는 건우였다.

“자, 그럼 이제 저 결계를 향해서 우리가 법칙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그렇다면 우리 다섯이 모두 함께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느 정도 방법이 나오자 구이형이 들뜬 표정으로 다른 선인들을 보며 물었다.

이에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 유희 선인은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 결계와 기물의 정화 법칙을 깨트리는데 우리 다섯이 나설 일이 뭐가 있단 말입니까? 그저 세 분이 힘을 모으면 충분하겠지요."

굳이 나서지 않겠다는 말.

이에 조오망과 포반자, 구이형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아니, 내가 강 선인을 이곳으로 안내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마땅히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여야지, 이런 일에 뒤로 빠진다는 말입니까?"

구이형이 건우를 보며 화를 냈다.

그러자 건우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곳을 알려준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결계를 깨트리는 방법은 결국 기물을 파괴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그 기물을 유지하여 그것이 정말 내 반려의 것인지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

“응?"

“아, 그렇군."

건우의 말에 조오망과 포반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중에 건우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결계를 깨며 기물을 파괴한다면 나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집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반대하지 않는 것은 세 분의 처지, 특히 구이형 선인의 입장을 생각한 까닭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내가 나서서 기물을 파괴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하겠습니까?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길게 이어진 건우의 말은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격앙된 면이 있었다.

말을 할수록 결계에 포함된 기물의 파괴를 막고 싶은 마음이 커진 탓이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마음을 조오망 등도 충분히 짐작했다.

“그것 참. 구선인이 성급했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강 선인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니, 나만그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이리 두 분이 나를 몰아 세운단 말입니까?"

포반자와 조오망의 타박에 구이형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고는 건우를 향해 공수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 선인께는 이 구 모가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생각이 얕은 탓이라 여기고 이해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아니, 이럴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저 제 심정이 이러하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그만이지요."

건우는 그런 구이형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몸을 슬쩍 돌려세웠다.

구이형의 사과가 과하니 그만하자는 몸짓이었다.

이에 구이형도 고개를 들고, 조오망과 포반자를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앞에 있는 정화 법칙의 결계를 셋이서 처리하자는 의미였다.

이에 조오망과 포반자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셋이 나란히 흙에 반쯤 묻힌 대문 앞에 섰다.

- 어찌할 것이냐?

그 때, 유희가 건우를 향해 심언을 보내왔다.

그냥 이번 기회에 저들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간 법칙으로 격리 공간을 만들면서 포반자를 처리하고 이어서 조오망과 구이형의 순으로 할까 합니다.

포반자는 격리 공간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그렇습니다. 공간을 어긋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강력한 공격 수단이 되지요.

놈이 막아내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느냐?

포반자가 금선 수준의 법칙 활용에 능하지 않다면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긴, 네 재주라면 어렵지 않겠구나. 이후에 조오망과 구이형을 격리 공간에 넣고, 그곳에서 법칙을 겨룬단 말이지?

그리하면 천지 법칙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공간 법칙을 이용한 격리 공간은 무척 쓸모가 많습니다.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나. 어쨌거나 일을 벌이면 나도 도움을 주마. 조오망 저 노파를 내가 잡아주지.

그럼 구이형 먼저 처리를 하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그게 좋을 것 같구나. 나는 부패 법칙 따위를 오래 겪고 싶지 않으니.

결국 유희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먼저 처리할 대상이 정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건우로선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제안이다.

유희가 조오망을 맡아 준다고 하는데 순서를 조금 바꾸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들이 결계를 깨는 순간에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유희와 포반자 등을 처리할 계획을 논의했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조오망과 포반자, 구이형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정화 법칙의 결계를 파괴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의논이 마무리 되었는지 구이형이 건우 쪽을 돌아보았다.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 셋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강 선인께서도 도움을 좀 주십시오."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결계를 깨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인지 구이형은 그렇게 부탁을 해 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건우가 결계의 기물을 파괴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고 사과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결국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이란 소리지.’

건우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우리 모두의 일에 지장을 줄 수야 없겠지요. 알겠습니다. 지켜보다 제 손이 필요한 것 같으면 반드시 돕겠습니다."

“하하.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역시, 대의를 아십니다 그려."

“미안합니다. 강선인."

구이형과 포반자, 조오망이 순서대로 그렇게 건우에게 인사를 해 왔다.

이후 그들은 각자가 익힌 법칙의 힘을 끌어 올려 정화 법칙 결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건우와 유희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뒤에서 지켜보다가 기회가 되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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