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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자, 탐혈(貪血)이라 하지요 >
"어찌 생각하느냐?"
세 선인이 떠난 후에, 유희 선인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건우가 자세를 고쳐 바르게 하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음?''
"얼마 전에 나타났던 석수 괴뢰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어쨌다는 것이지?"
"그 석수 괴뢰의 주인은 과거 저와 인연이 있던 자가 분명합니다. 따지자면 인계에서부터 얽혀 있던 자로 인연이 매우 질긴 이입니다."
"이미 아는 자(者)? 그럼 그 자는 믿을 수 있다는 이야기냐?"
유희가 조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하하. 어찌 단정할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크게 악연을 쌓은 일은 없으니 이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와 구이형 일행 사이가 나쁜 듯하지만 일단 이야기는 들어 봐야겠지요. "
"그렇구나. 그래도 이곳이 네 고향이기는 한 모양이구나. 너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직접 연이 있었던 자도 있는 것을 보면."
유희는 그렇게 말을 하며 어딘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라선에 이른 본체를 생각하면 오래전의 인연은 모두가 사라지고 없을 것이란 생각에 건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얼마 후, 거룡 비행 선기가 다시 지축해를 가르며 수미산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후, 건우의 거룡 비행 선기가 수미해에 닿았을 무렵이었다.
"기다리던 손님이 온 모양입니다."
거룡의 머리, 탁자와 의자가 사라진 4층탑 1 층 중앙에 가부좌를 하고 있던 건우가 눈을 뜨며 말했다.
그러자 3층을 차지하고 명상에 잠겨 있던 유희가 흐릿한 둔광과 함께 건우 옆에 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건우와 유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아서 거용의 이마 위에 모습을 드러낸 괴뢰를 바라맘年?.
"안녕하십니까?"
그 괴뢰는 평범한 중년 도인(道人)의 모습이었는데 건우도 익히 알고 있던 괴뢰선의 기운을 뿜고 있었다.
"괴뢰선이십니까?"
건우가 그 괴뢰를 향해 물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전에 잠시 보고 확신이 없었는데 이리 다시 보니 역시 길 수사였습니다 그려. 아니, 건우 수사라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길우몽이나 건우나 모두가 제 이름이지요. 어떻게 부르셔도 상관은 없겠지만 등선 이후로는 강건우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강건우 선인이라 불러야겠지요. 다시 한 번 오랜만의 만남에 기쁨을 전합니다. 이리 본신이 아닌 괴뢰로 인사를 하는 것은 사정이 있으니 이해를 해 주십시오."
"사정이 있다는데 제가 어찌 그것을문제 삼을수 있겠습니까. 마음쓰지 마십시오. 아, 여기 이 분은 유희 선인이십니다. 지금은 제 길잡이 역할을 해 주고 계시지요."
"유희라 한다."
건우의 소개에 유희는 이번에도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건우와 괴뢰선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네, 유희 선인.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수미의 괴뢰선입니다."
괴뢰선은 그런 유희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을 소개했다.
"수미의 괴뢰선이라니 어찌 그리 말씀을 하십니까?"
하지만 건우는 괴뢰선이 스스로를 수미의 괴뢰선이라 칭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하하. 강 선인,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드넓은 선계에 괴뢰선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요. 그렇다고 지금껏 쓰던 이름을 버릴 수는 없으니 수미 태생의 괴뢰선이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
"괴뢰선이 여럿이란 말입니까?"
"지금껏 제가 들은 것만 셋이 더 있는데, 그것도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선계 뿐만이 아니라 영계와 인계를 따지자면 또 얼마나 많은 괴뢰선이 있겠습니까? 하하하핫."
"음. 그렇군요."
"그래서 검선이나 마선도 결국은 수미의 검선, 수미의 마선이라 정체성을 세울 수밖에 없었지요."
"아, 검선과 마선. 그들도 역시 등선에 성공을 한 모양이군요."
건우는 괴뢰의 입에서 검선과 마선의 이름을 듣게 되자 불현듯 반가운 마음이 들어 그렇게 물었다.
"그 뿐이겠습니까? 당시에 적잖은 이들이 등선에 성공을 했지요. 아, 물론 안타깝게도 등선에 실패하고 윤회에 들었던 예예와 종관의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쌍수수련을 했던 예예와 종관 수사가 그리 되었단 말입니까? 안타까운 일이군요. 허면, 혹시 종 선생에 대해서는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하하하핫, 역시! 저는 강 선인이 종선생에 대해서 물어볼 줄을 알았습니다."
건우의 물음에 괴뢰가 예상이 맞은 것이 즐겁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곧이어 종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종선생 역시 등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곳 수미에 머물고 있지요. 다른 곳으로 떠나서 소식을 모르는 검선, 마선과는 달리 말입니다."
"그렇습니?? 종선생이 여전히 수미에 있단 말이군요?"
괴뢰선의 말에 건우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실은 저나 종선생이나 지금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실은 우리가 모두 어딘가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네? 괴뢰선과 종선생이 모두 갇혀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원흉은 다름 아니라 이전에 강 선인이 만나고 있던 그 세 년놈들과 그 수괴 때문입니다."
"세 년놈이라면 조오망과 포반자, 구이형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그 배후에 또 다른 수괴가 있습니까?"
건우는 예상치 못한 괴뢰선의 말에 놀라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사실 저나 종선생이 지금의 상황이 된 것도 바로 그 수괴인 옥선 때문입니다."
"옥선!?"
건우는 괴뢰선의 입에서 옥선이란 말이 나오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진선 셋의 배후에 금선도 아니고 옥선이 있다니.
"아,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제가 이리 바깥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아니, 괴뢰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그 동안 이 괴뢰를 좀 보관해 주십시오."
"아니, 괴뢰선! 괴뢰선!"
건우가 다급하게 괴뢰선을 불렀지만 거룡의 이마에 서 있던 중년 도인의 괴뢰는 줄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져 일체의 기운이 끊겨버렸다. 건우는 의 념을 펼쳐 그 괴뢰를 살피고는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잘 만들어진 괴뢰로구나. 다만 괴뢰심이 저급하여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일 능력은 없군. 그 대신에 튼튼하고 강하게 만들어졌어."
유희가 괴뢰를 한눈에 살피고는 그렇게 말했다.
"괴뢰선이 자신을 대신해서 쓰려고 만든 것이라 그런 모양이지요."
"그렇구나. 그런데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으냐?"
유희가 활짝 웃는 얼굴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조오망과 포반자 등의 뒤에 옥선이 있다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래, 괴뢰선이란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옥선이 진선들을 함정에 빠트려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소리겠지. 그리고 그것에 반하는 괴뢰선과 종선생이란 놈을 가두어 둔 것이고."
"아마 가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숨겼을 것입니다. 수시로 진선을 함정에 빠트려 수작을 부리는 자라면 괴뢰선이나 종선생을 그대로 두었을 리가 없지요."
"호호. 확실히 그 말이 옳겠구나. 그리고 그리 보자면 괴뢰선과 종선생의 능력도 제법인 것이겠지. 진선 셋과 옥선 하나를 상대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일 괴뢰선의 말이 기대가 됩니다."
건우는 무릎 앞에 누워 있던 괴뢰를 의념으로 움직여 맞은 편에 가부좌를 한 형태로 세워 앉혔다.
그리고 괴뢰가 다시 눈을 뜨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번쩍!
하루가 지나고 해가 기울 무렵, 드디어 눈을 감고 있던 도인 괴뢰의 몸에 영기가 감돌며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려?"
괴뢰가 앞에 앉아 있는 건우와 유희의 모습에 과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괴뢰선이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 보면 잠깐의 기다림이야 문제가 아니지요."
"그렇지 않아도 강 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종 선생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네? 종 선생과도 연락이 되신다는 말씀입니까?"
"이 괴뢰가 약속보다 반나절 정도 늦게 깨어난 것이 바로 그 때문이지요. 종 선생과 대화를 하기 위해 약간의 무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음,괜찮은 것입니까?"
"하하.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어쨌건 종 선생의 말로 강 선인이 윤회에 들 때에 아주 고명한 수단을 썼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우는 이 말에서 괴뢰선이 정말 종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었음을 알 수 있었다.
건우가 종 선생에게 윤회 법칙의 도움을 받은 것은 유정정 이외에는 아는 이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괴뢰선이 종선생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어찌 그 사실을 알았겠는가.
"하하. 당시의 상황이 꽤나 다급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알고 있습니다. 인계와 영계에서 두 번의 멸계전을 치르는 동안에 극멸기를 받아들인 것이 문제였다지요? 그래서 선계에서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말입니다."
"아신다는 따로 설명을 드릴 일은 없겠군요. 그런데……"
"혹여 유정정 선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실 유 선인이 사라질 즈음에 저와 종 선생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괴뢰선이 건우의 말을 미리 짐작하고 그렇게 말했다.
건우로선 실망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후에 다시 외부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연화궁이 망한 이후였지요."
"으음. 그렇군요."
괴뢰선이나 종선생이 유정정의 실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말에 건우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생각이 깊어졌다.
유희가 눈을 뜨고 말문을 연 것은 그 때였다.
"유정정과 연화궁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에 알아봐도 될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조오망 등의 세 선인과 그 배후에 있다는 옥선에 대한 것이지."
유희는 그렇게 일의 선후를 따졌다.
건우도 유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유희 선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럼 이제 괴뢰선께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이전 은류도의 끝에 있다 했던 함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면 되겠습니까?"
건우가 괴뢰선의 정신이 연결된 도인 괴뢰를 보며 물었다.
"흐음.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탐혈 옥선이 아니겠습니까."
"그 배후에 있다는 옥선의 이름이 탐혈(貪血)이었습니까?"
"탐혈이라, 이름만 들어도 그 성향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겠군."
건우와 유희가 탐혈이라는 이름을 듣고 동시에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수미에 나타난 이후로 끊임없이 피를 탐하였기에 모두가 그리 부르는 것입니다. 그가 원래 무엇이고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이미 모두가 그리 부르니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된 것이지요."
"하긴, 스스로 무엇이다 해 봐야 모두가 무엇이라 하는 것을 당할 수는 없지."
괴뢰선의 말에 유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니까 그 자가 수미에 나타난 후로 계속 피를 탐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강 선인의 말대로입니다. 심지어 조오망, 포반자, 구이형을 부려서 수미를 방문하는 진선들까지 함정에 빠트리고 있지요. 그 때문에 수미로 드는 이는 있어도 나가는 이는 드문 상황입니다. 그러니 수미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지 못하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긴, 저도 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탐혈은 어찌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까? 탐혈의 수련이 애초에 그런 것일 뿐이지요."
"하하. 피를 이용한 수련으로 옥선까지 올랐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그런 자가 하필이면 수미에 터를 잡았고."
"그런 것이지요."
"허어!"
건우는 길게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두고 천지 법칙의 간섭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지 법칙에는 선악이 없다.
수도계에 속한 누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드물다 할 것이다.
그런데 탐혈이 피를 이용한 수련을 한다고 어찌 천지 법칙이 개입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탐혈은 지금 어디에 있답니까?"
하지만 천지 법칙이 하지 않는다 하여서 건우도 할 수 없는 것은 또 아니다.
< 그 자, 탐혈(貪血)이라 하지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