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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응? 내가 난데? 응? >
진선 경지의 선인들이 지축해에서 잠시 머물 섬을 찾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건우는 의념을 펼쳐 수사가 없고 입령기 수준의 마수가 우두머리로 있는 섬을 찾아냈다.
"마침 괜찮은 곳이 있군요. 저리로 가십시다."
건우는 곧바로 그 섬으로 향하는 자신의 의념을 다른 선인들에게 연결하여 목적지를 특정했다.
그리고 유희와 함께 한 발 앞서 섬으로 이동했고, 그곳에 있던 입령기 마수를 단숨에 제압하고 그 마수가 머물던 폭포 위에 자리를 잡았다.
마수는 오랜 세월 수련을 한 이무기 종류였으나 입령기에 이르렀음에도 금수의 본성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였다.
하여 건우는 거리낌 없이 마수의 명을 끊어 의념 공간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그런 일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건우가 일을 마무리한 다음에야 세 명의 선인이 섬에 도착했다.
건우는 폭포 위의 바위를 평평하게 깎은 후에, 거용의 4층탑만 그 위에 올려놓고, 1 층으로 세 선인을 초대했다.
탑의 1 층은 여덟 개의 기둥만 있을 뿐, 사방이 훤히 트여 오감이 자유로웠고, 중앙에 원형의 넓은 옥돌 탁자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벌써 다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리 오시지요."
건우는 유희와 나란히 앉은 상태로 세 선인을 불렀다.
세 선인은 잠시 4층 탑을 의념으로 훑어 함정이 없는지 살피고는 1 층의 탁자로 날아와 앉았다.
"조금 전에도 봤지만 이 탑은 비행 선기의 일부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까?"
흑포의 선인이 이리저리 고개돌려 탑을 살피는 척하며 물었다.
"이리 쓸 수도 있고, 거룡을 함께 불러 쓸 수도 있지요. 때때로 잠시 머물 거처를 새로 만들기 귀찮을 때에 쓰곤합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아주 요긴하겠습니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괴뢰놈 때문에 억울한 의심을 받는 상황이 아닙니까?"
건우와 흑포 선인이 그렇게 핵심을 벗어난 대화를 하는데, 노파 선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자 일순 탁자를 둘러싼 다섯 수사의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 말을 꺼내주니 다행입니다. 사실 이 강 모는 이야기를 어찌 꺼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아, 저는 강건우라 합니다."
이에 건우가 살짝 고개를 숙여 노파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런 소개가 늦었습니다. 원래는 은류도로 이동하는 중에 통성명을 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구이형(答異形)이라 합니다."
그러자 흑포 선인이 먼저 자기를 소개했다.
"훌훌훌, 조오망(趙漢網)이라 합니다."
"포반자(府反者)라 합니다."
이어서 노파 선인과 백색 도포의 선인이 연달아 스스로를 소개했다.
노파 선인이 조오망, 백색 도포가 포반자였다.
"나는 유희라 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유희가 스스로를 소개했는데, 오직 그녀만 높임말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문제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 할 만 하니 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이다.
하대에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니, 적당히 인정하고 넘어가면 그 뿐이다.
만약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서로 따져서 바로잡으면 될 일이지만 조오망(趙漢網) 등은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쨌거나 통성명은 했으니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해 보아야지요."
그렇게 통성명이 끝난 순간, 노파 선인 조오망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렇지요.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세 분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이에 건우는 당장 시시비비를 가릴 방법이 없음을 먼저 지적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이 은류도의 끝에 함정을 파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중간에 난입했던 석수 괴뢰의 말도 무조건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리 생각할 수는 있겠지요. 만약 우리가 함정을 파고 있었고, 그것을 그 괴뢰놈이 지적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자리에 그 놈이 나타나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요."
"옳습니다. 우리 일을 방해하고 우리를 몰염치한 자들로 만들었다면 응당 이곳에 나타나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놈은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건우의 말에 포반자와 구이형이 번갈아 가며 괴뢰를 보낸 선인을 헐뜯었다.
들어보면 그럴듯한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괴뢰를 보낸 선인이 홀로 여기 세 분을 상대할 수 없다면 당연히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어느 정도 그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건우는 쉽게 그들의 언변에 말려들지 않았다.
사실 건우는 이미 석수 괴뢰의 주인이 괴뢰선인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그 쪽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허어, 그리 말씀을 하시면 우리도 달리 설득할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그대로 우리의 결백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겠습니다."
"혹시 무슨 묘책이라도 있으시면 저희가 거기에 따르겠습니다."
조오망 등은 곧바로 건우의 뜻에 따르겠다는 듯이 태도를 바꾸었다.
이에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굳이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그대로 우리를 의심하겠다는 말입니까?"
"어찌 그런 말을……"
건우의 말에 세 선인이 깜짝 놀라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에 건우는 태연하게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내려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류도의 끝에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안전한 곳에서 교류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그냥 이곳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취하고 헤어지면 그만이 아닙니까?"
"네?"
"그게 그러니까……"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만."
교류라는 핵심만 취하자는 건우의 말에 세 선인은 마지못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분은 우리에게 선계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고, 우리는 이곳 수미의 일을 알고자 했습니다. 거기서 더 더하자면 혹시 서로 교환할 자원들이 있으면 그것도 펼쳐 볼 수 있겠지요. 그러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이상은 필요치도 않고 당장 가능한 것도 아니지요."
"건우의 말이 옳다. 이제 처음 만난 사이에 그 이상의 무엇을 더 한단 말이냐?"
건우의 말에 가만히 있던 유희가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조오망을 포함한 세 선인도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음을 인정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명쾌합니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약간의 의심이야 당장 확인할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요. 우리도 감수를 하겠습니다."
"훌훌, 이 늙은이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하, 세 분이 이리 호탕하게 인정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야기를 해 볼까요?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건우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묻고 싶은것이라니요?"
"갑자기 분위기가 그리 무거워지니 간단한 질문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러게요."
구이형, 포반자, 조오망이 모두 적잖게 긴장한 모습으로 건우를 보았다.
그만큼 지금 건우가 심상찮은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몸의 이름이 강건우라 했습니다만. 기억하시지요?"
건우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조금 전에 들은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어찌 되었다는 말입니까?"
구이형이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건우의 말을 듣고 잠깐 궁리하는 기색이던 포반자가 갑자기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짝!
"그렇습니다. 강건우,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동명이인이야 흔한 것이어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마침 강건우 선인께서 그리 따지시니 마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건우 선인은 혹시 수미 세계의 멸계전에 이름을 올렸던 그 분이십니까?"
그리고 포반자는 약간은 들뜬 기색으로 건우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이어서 조오망 역시 고개를 번쩍 들고 이전보다 더 강렬한 눈빛으로 건우를 쏘아보며 말했다.
"진정, 그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입니다. 설마 진정 그 분이란 말입니까?"
그녀 역시 건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어서야 건우는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세월을 흘렀다고 하지만 수미 세계를 선계로 끌어 올린 멸계전 승리의 주역을 수미 세계에 있는 이들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찌 섭섭하지 않겠는가.
"네가 그런 일을 했었다고? 재미있구나."
이에 유희도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건우를 보며 활짝 웃었다.
"으음. 나는 알지 못하는 일인데, 조 선인과 포 선인은 아는 바가 있는 모양입니다? 멸계전이라면 이 수미가 영계에 있었을 때의 일일 것이고, 그 때에 이름을 올려 지금까지 기억이 된다면 크게 공을 세웠다는 말이겠군요?"
그는 포반자와 조오망의 반응에서 나름 그럴듯한 추측을 세우며 건우를 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이전과 달리 더욱 짙은 경계심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구이형에겐 관심을 두지 않고 포반자를 보고 있었다.
"포반자 선인께서는 저를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아시는지 조금 알려주시겠습니까? 아, 이것은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며 왜곡된 것이 없는지 알고자 하는것 일뿐입니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니.
그 모두가 수미 세계를 선계로 끌어 올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영웅 서사시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해 달라고 하니 어찌 낯이 뜨겁지 않을까.
"허허허. 그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곳 수미 세계의 모두가 건우 선인께 큰 빚을 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자고로 이 수미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것들 중에 선인의 공덕을 입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당시 멸계전을 이기지 못했다면 수미가 멸계로 끌려가 암울한 상황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 만 포반자는 건우의 말은 당치도 않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옳은 말입니다. 포 선인이나 나 역시 후대에 태어나 수사가 되었고, 또 이렇게 등선에 오르기까지 했지만, 우리가 선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지금의 우리를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실로 강건우 선인 의 은혜가 하해와 같음입니다."
조오망은 그렇게 말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굽었던 허리를 펴고 곧은 자세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포권하며 다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염에 있던 포반자도 몸을 일으켜 같은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허어. 이 무슨. 이미 오래전의 일입니다. 저는 단지 그 때의 일이 어찌 전해지고 있는지를 알고자 했을 뿐, 다른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의 일은 세월에 묻히기도 했거니와 이미 천지 법칙으로부터 공헌 도를 인정받아 마무리가 된 일입니다."
이에 건우는 당황한 모습으로 그들을 말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사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선인에 대한 일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지만 어찌 우리 같은 등선자들이 그것을 잊겠습니다."
"그리 염치없는 짓을 할 수는 없지요. 아무렴요."
포반자와 조오망이 다시 한 번 건우를 행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유희와 구이형이 각각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응? 내가 난데? 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