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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39화 (43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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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아직은 남은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 >

"흥!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유희 선인께선 무슨 일로 그리 심기가 사나워지셨습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그 못난 등껍질 때문에 200년이 넘도록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고."

"그래도 그건 끝나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선인께서도 북현무룡의 등껍질 하나를 얻으셨고 말입니다."

건우의 말대로 200년 동안 애를 쓴 결과, 북현무룡의 등껍질 조각 일곱 개에 생기를 불어 넣는 일이 끝났다.

"대신에 그 동안 내가 무척 심심했지."

"고작 200년이 아닙니까. 그 정도야 잠시 수련을 하다 보면 흘러가는 시간인데 무얼 그러십니까?"

"흥! 하지만 너는 오래지 않아서 이곳을 떠날 것이 아니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단 말이지."

"그건 그렇군요."

"그런데 너는 그 못난이 등껍질을 얻은 후로도 또다시 두문불출하고 있단 말이지."

"……. 그건 뭐 변명할 말이 없긴 합니다만."

건우는 슬쩍 유희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200년의 수고로 북현무룡의 등껍질 조각을 얻었다.

하지만 건우의 목적은 등껍질 자체가 아니라 영찬황과 영찬후를 이용한 선보를 만드는 것이었다.

북현무용의 등껍질 조각은 단지 영찬황과 영찬후를 끼워 넣을 판을 만드는 용도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판의 재료가 생겼으니 선보 제작을 이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

다만 그러자니 건우가 밖으로 나다니지 않아서 유희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흐응!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하지만 유희도 건우에게 뭐라 할 수 없는 것이, 그녀는 길잡이의 역할로 건우와 함께하고 있다는 제약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길잡이란 고용인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역할이었다.

지금 건우가 선보를 만들기 원한다면 그것을 돕는 것이 길잡이로 고용된 그녀의 일이라, 억지로 다른 일을 하게 할 수도 없었다.

"뭐 하는겁니까?"

하지만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것을 참지 못하는 유희는 또 다른 놀이를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흐으응, 보면 모르겠느냐? 우리도 제법 오래 함께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쯤에서 남녀의 정이 싹트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립니까?"

건우는 잠깐 사이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붉은색 얇은 비단옷으로 복장을 바꾼 유희 때문에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냐? 남녀가 오래 교류를 하다 보면 정분도 나고, 그것이 아니어도 응? 이렇고 저렇고 한 일도 할수 있고 그런 거지. 너도 남녀 사이의 지극한 기쁨을 알 것이 아니냐."

'하아, 유희 님. 제가 유희 님을 모릅니까? 남녀 사이의 정분도 순수한 관계에서나 생기는 것이지요. 저는 유희님과 거짓 감정을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응? 아, 그것도 그러네. 네가 나를 안단 말이지?"

"그렇지요."

"하지만 감정이 없이 기쁨을 나누는 것은 가능하잖아. 잠깐의 쾌락도 나쁘지 않지."

"싫습니다."

"왜에!"

"제가 쌍수 수련을 했다 하지 않았습니까? 제 반려를 슬프게 할 수는 없지요."

"홍! 감히 나를 거부해?!"

건우의 말에 유희가 화가 난 듯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길잡이 일 때에는 십 대 후반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삼십 대 후반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유희였다.

눈썹을 세우는 유희의 얼굴만으로도 강력한 유혹을 느낄 정도로 치명적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건우의 정신을 홀려서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의지까지 담겨 있는 듯이 보였다.

건우는 그런 유희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선인께선 기쁨과 재미, 즐거움을 추구하시지요?"

그러다 무슨 묘책을 떠올렸는지 그렇게 유희에게 물었다.

"너도 알 것이 아니냐. 이번에 환상대시에 서른여섯의 홍의선자가 나선 것도 그런 이유지. 모두가 나름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더냐."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일을 마치거나 포기한 선자들이 하나씩 모습을 감추기도 했지요."

"그래,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유희는 말이 길어지는 것이 듣기 싫다는 듯이 곧바로 본론을 물었다.

"유희 선인께서는 재미있는 일, 기쁜 일을 추구하시지만 그 일을 이룩함에 다른 이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으십니다."

"물론, 내가 그리 정했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희(喜)가 아니니까. 아, 그래서 너는 내가 너를 해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쁨을 생각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다른 기쁨이라고?"

유희는 건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호기심이 생긴 듯이 상체를 건우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성숙한 유희가 아찔한 모습으로 다가선 까닭에 건우가 진땀을 흘리는 허둥거리는 모습을 재밌어하며.

"제가 유희 선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반려에 대한 마음을 지켰을 때, 그 반려가 그것을 안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으응?"

"이것이 유희 선인의 기쁨은 아니겠으나, 그것을 헤아려 보자면 유희 선인께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네 반려의 기쁨을 헤아려 보라고?"

"혼자만의 기쁨과 즐거움이 전부가 아님을 유희 선인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항시 일을 함에 일정한 선을 지키려 하시는 것이고 말입니다."

"으음. 그렇긴 하지. 옳다. 확실히 네 말이 옳은 면이 있다. 내가 한동안 그것을 잎고 있었음이다."

건우의 말에 유희는 무엇을 떠올렸는지 망연한 시선으로 먼 허공을 더듬었다.

그러다 잠시 후, 눈에 호점이 돌아오며 활짝 웃더니 길잡이 때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참으로 미련한 일이다. 나는 이미 네가 말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잊고 방황하였더니라."

"드높은 경지를 지니고 계신데 어찌……"

건우는 본체가 대라선인 몽유희 선인이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그렇게 물었다.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등선자들 중에서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 등의 선인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아니 평범해서는 그와 같은 지위를 얻기 어렵지."

"그렇습니까?'

"또,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라는 것은 경지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책임이 부여된 직책이기도 하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책임이 무거워지지."

"하지만 한 법칙의 도조는 그 법칙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리 들었습니다만."

"호호호호. 도조가그 법칙의 주인이니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지. 하지만 천지 법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법칙 하나가 무슨 힘을 쓰겠느냐? 천지 법칙의 흐름에 맞지 않는 법칙이 어찌 되는지 너는모르느 냐?"

"법칙의 격을 잃고 구(久) 법칙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계의 금역들이 그런 곳이라 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구나. 결국 도조라 하더라도 법칙을 천지 법칙의 흐름에 맞게 조율하는 역할을 할 따름이다. 가장 큰 비율로 법칙을 장악하고 그 흐름을 이끌어 가는 것이 도조인 것이지."

"개인적인 의지를 가지고 함부로 법칙을 다룰 수는 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 그리고 그 때문에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는 대부분 개인적인 감정을 버린 이들이다."

"네?!"

"오욕칠정이나 번뇌를 모두 버리고 오로지 법칙을 흐름에 맞게 쓰는 것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 물론 나처럼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없진 않다만."

"그, 그런 일이…… "

유희의 말에 건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완전히 감정을 거세당하고 법칙의 흐름을 조율하는 부속품 같은 꼴이잖아.'

그러게요. 하지만 원래 깨달음에 대해서 말할 때에 오욕칠정을 벗어나 큰 도를 깨우친다는 이야기들을 하곤 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 말이 맞을 수도…….

'아니, 그래서야 어디 온전한 나라고 할 수가 없잖아.'

아니죠, 도리어 대우주의 큰 깨달음에 녹아들어 그 일부가 되는 것이 진정한 영생불사의 모습일지도 모르죠.

'그런 거면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그게 아니면 저 유희처럼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며 살아야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방법밖에 없는 거 같은데요?

'결국 육체적인 영생불사는 가능해도 정신은 한계가 있다는 건가?'

그래도 개인차는 좀 많이 있지 않겠어요? 건우 님은 워낙 강한 정신력을 지니셨으니 어쩌면…….

'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다른 선인들보다 나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

"호호호, 어떠냐? 재미있지 않으냐? 법칙을 수련하여 그 깨달음이 높아지면 금선, 옥선, 대라선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가면 정신은 마모되고 괴뢰처럼 정해진 일만 하는 허수아비만 남게 되지. 이것이 등선자들의 진정한 모습이니라."

건우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유희는 조금은 처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일은 지금의 저로서는 멀고 먼 훗날에나 걱정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응? 뭐라?"

건우의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유희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듯, 어두운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또 평소처럼 가볍고 밝은 모습이 되었다.

"고작해야 이제 진선의 경지에 있을 뿐이고, 또 수련 경지가 올라가 금선이나 옥선이 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정신을 놓기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흐응, 그야 그렇겠지. 등선까지 했을 정도면 그 정신력이 일정 수준을 넘었다 보아야 하니까. 다만 영원히 변치 않을 정신적인 깨달음은 항시 감정의 거세를 요구하였음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런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그것을 불행하게 여기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애호에! 행과 불행을 느낄 감정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 것이지!"

건우의 말에 유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런 깨달음 자체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모습이었다.

"저도 당장은 유희 선인과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면모를 버린다면 그것은 온전한 제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당연히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저도 그런 깨달음은 피해 보려 합니다만, 수련 중에 어느 순간 대도(大道)를 마주하여 망아(忘我)에 이를 수도 있겠지요. 그것을 어쩌겠습니까? 그 때는 또 그것대로 받아들일 수밖에요."

"그러니 너는 항상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몇 번이나 그와 같은 깨달음의 유혹을 받았고, 그것을 뿌리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느니라. 따지고 보면 환상대시를 운영하는 것이나 서른여섯 홍의선자 를 만든 것도 모두 그 유혹을 떨치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그렇군요."

"어쨌거나 너는 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내가 희(喜)에 대한 법칙을 깨우쳤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승(小乘)만 생각하고 대승(大乘)을 잊었는데, 그것을 이번에 깨닫게 되었구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호호호. 그래, 그래. 네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니 나도 네게 도움을 주도록 하마."

"네? 갑자기요?"

"나는 원래 공평한 것을 좋아하느니라."

유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그 날부터 건우가 만드는 영찬황과 영찬후의 선보 제작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건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급의 재료들로 영찬황후선보(靈豫皇侯仙寶)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드디어!"

북현무룡의 등껍질 중앙에 영찬황을 박아 넣고, 그 주변에 일곱 개의 영찬후를 배열 영찬황후선보가 건우의 의념 공간에 두둥실 떠 있었다.

"끝났느냐?"

건우가 눈을 뜨고 탄성을 터트리자 유희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보여줄 수 있겠느냐? 그 동안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겠다 하지 않았더 냐."

"물론입니다. 이제는 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으니 유희 선인께 제일 먼저 자랑을 하겠습니다."

"호호호. 기대가 되는구나."

건우의 말에 유희가 즐겁다는 듯이 맑게 웃었다.

지금껏 건우는 영찬황후선보를 의념 공간 안에서 만들고 있었다.

그런 탓에 유희는 지금까지도 영찬황과 영찬후를 직접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연화시켜 의념과 일체화를 해야 본래의 위력이 나올 것입니다."

"그야 당연히 기다려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나저나 법칙을 사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이라니 보기 드문 보물을 만들어 냈구나. 호호호."

유희는 건우가 만든 선보에 대해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몇 년 후, 드디어 건우의 본명법보가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북현무룡갑팔혈개영찬황후선보(北玄武龍甲八穴改靈豫皇侯仙寶)라는 길고 거창한 이름을 달고서.

< 그래도 아직은 남은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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