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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현무룡의 등껍질을 두고 흥정을 하다 >
건우가 다음 목표를 영찬황 재련의 주요 재료인 팔혈개 제작으로 정한 후, 유희가 앞장서서 건우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내, 둘의 걸음은 환상대시의 북쪽 성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북문 근처의 상점들에선 건우의 구매력이 닿지 못할 정도로 비싼 상품이 거래되었다.
그래서 건우도 평소엔 이쪽으론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죽은 신수의 유해가 근래에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유해 중에서 등껍질의 일부가 상품으로 나왔지."
"신수가 죽었다니 놀랄 일이군요."
반걸음 정도 앞서서 건우를 이끌며 하는 유희의 말에 건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놀랄 일이더냐?"
이에 유희가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신수는 영생불사의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죽은 신수라 하시니 놀란 것이지요. 선인께서 말씀하신 신수? 평범한 신수는 아닐 것이 아닙니까?"
건우도 신수의 사체가 수련 자원으로 거래되는 것은 숱하게 보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말로만 신수지 진정한 신수라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대부분 시조라 할 수 있는 신수의 진혈을 이은 후손 격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희가 말한 신수라면 그런 수준의 것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하긴, 쉽게 보기 어려운 신수의 유해이긴 하지. 그 때문에 몇몇 옥선과 대라선이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니까."
"그렇습니까?"
"뭐, 나는 관심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일부가 환상대시에 들어왔다기에 살펴봤을 뿐이지."
"그런데 그런 귀물을 제가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이리저리 품팔이를 하며 필요한 재료를 모으고 있었지만 쌓아둔 재물은 거의 없었다. 여유가 될 때마다 선보의 재련 재료를 구하는데 써버린 탓이다.
"내가 길이 없는 곳으로 너를 안내하겠느냐? 걱정하지 마라."
유희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장담을했다.
그러 면서 그를 이끌고 간 곳은 북문의 상점들 중에서 그리 크지 않은 일고상(一庫商)이란 곳이었다.
건우의 눈대중으로 보아도 북문 대로의 상점들 중에서 중간이나 갈 수 있을까 싶은 규모와 위세였다.
"있느냐? !"
유희가 좌우로 밀리는 문을 열고 상점으로 들어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매대 뒤쪽에서 가부좌를 한 채 수련을 하고 있던 선인이 눈을 번쩍 떴다.
뚱뚱한 오뚜기 같은 체격을 지닌 그 선인은 머리를 뒤로 땋아 기른 모습이었는데, 건우는 그가 진선경의 선인임을 알아보았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홍의선자(紅衣仙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뚱뚱한 선인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매대 앞으로 나오더니 허리를 숙이며 유희에게 인사를했다.
홍의선자는 유희를 포함한 몽유희의 분신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처음 서른여섯 명의 홍의선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서른이 되지 않는 숫자만 남았다.
그녀들이 나타난 이후로 같은 얼굴의 분신들에 대한 소문은 환상대시에 넓게 퍼져 있어서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누군가 그 분신들을 묶어서 홍의선자들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름이 이제는 그것이 그녀들의 명호가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홍의선자를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이들은 유희를 선자들 중에서 막내인 삼십육 홍의선자로 불렀다.
"여기 북현무룡(北玄武龍)의 등껍질이 있다지?"
"네? 그건……. 하긴 선자께서 그것을 아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상점에 북현무룡의 등껍질이 있습니다."
"그래, 여기 내 고용인이 그걸 원하는데 말이지."
"그렇습니까? 어차피 상점에 입고한 것이니 원하시면 판매를 할 수는 있습니다. 원래는 경매를 하려 했지만 홍의선자 님의 얼굴을 봐서 개별 판매를 하겠습니다."
"흐응, 그래 고마운 일이네. 그런데 내 고용인은 북현무룡 등껍질의 대금을 치를 여유가 없어."
"하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상품을 사려 하면서 대가를 치를 여유가 없다니요. 그렇다면 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일고상(一庫商)의 점원이자 주인인 왕웅방(王態房)은 유희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상인으로서의 고집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왕웅방의 말에 건우는 면이 서지 않아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물건이 있는데 그것을 구할 재물이 없다니.
지금껏 건우가 이런 구차한 처지가 되었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항상 주머니가 두둑했던 기억이 대부분인 건우였다.
"물론 상인에게 물건을 거저 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
"그럼요. 당연하지요."
유희의 말에 왕웅방이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나는 건우 선인의 길잡이거든? 어떻게든 건우 선인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줄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지."
"……. 아무리 그렇더라도 공짜로……"
"아니야. 나도 공짜를 원하지는 않아. 나는 항상 일이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 손해를 봐서는 곤란하지. 그것은 내 뜻이 아니야."
왕웅방의 말에 유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환상대시의 질서를 흔들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몽유희의 분신이라지만 제 멋대로 굴 수야 있을까.
"그러시면……"
왕웅방이 슬그머니 유희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기색으로 눈치를 살폈다.
"그거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잖아. 안 그래?"
그런 왕웅방에게 유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라니요?"
"물론 지금 그대로도 귀한 재료이긴 하지. 하지만 너무 오래 된 것이라 기운이 많이 소실되었잖아."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보물입니다."
유희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상품의 가치가 하락되는 것도 인정할 수는 없다는 듯이 왕웅방의 목소리가 격렬했다.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나도 그게 귀하다는 건 인정한다고 했잖아. 다만 하자가 있다는 거지."
"끄응."
왕웅방은 연이은 유희의 말을 아주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말이야. 그 북현무룡의 등껍질에 생기를 부여해서 과거의 위상을 찾아보는 것은 어때?"
"네? 그러니까 생기 법칙을 이용해서 상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자는 말씀입니까?"
유희의 말에 왕웅방도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유희도 뭔가 눈치를 챈 듯이 그렇게 물었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겠지만 생기 법칙으로 등껍질에 생기를 부여할 수 있으면 확실히 상품 가치가 높아지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알아보니까 쉽지는 않지?"
"그렇습니다. 북현무룡의 등껍질에는 원래 생기 법칙을 비롯한 몇 종류의 법칙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약해진 상태이지요. 특히 생기가 많이 유실되었습니다."
"죽은 후,세월이 워낙 많이 흘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원래 거북의 등껍질도 안쪽은 살아 있지만 바깥쪽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로 바뀌잖아. 그와 같은 거지."
"네네,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네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등껍질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어렵다는 거고, 그 이유는 등껍질에 여러 기운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뭐 그런 말이잖아."
"네, 막내 선자님. 그 말씀이 옳습니다."
"흥! 내가 그것도 모르고 내 고용인을 데리고 왔을 거 같으냐?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럼 저 선인이 능히 북현무룡의 등껍질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응, 생기 법칙과 조율 법칙을 익히고 있거든. 거기에 공간 법칙도 익히고 있어서 그 셋을 적절히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아, 공간 법칙이라면 작업을 더욱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기운들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자기가 만든 공간이니 그 안에서 생기 법칙을 사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 조율 법칙도 물론이고."
"역시! 이미 다 수를 생각해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려. 하하하."
왕웅방은 유희가 가지고 온 대책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크게 웃었다.
그리고 북현무룡의 등껍질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했다.
하지만 자신의 것도 아닌 등껍질에 그런 일을 해 줄 이유가 있나?
설마 그 일을 해 주는 대가로 등껍질의 일부를 잘라서 나누려는 것일까?
건우의 머 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런 근심은 다음에 이어진 유희의 말로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 그럼 이제 흥정을 시작해야지? 너희 상점에 지금 북현무룡의 등껍질 조각이 모두 일곱 개가 있을 거야. 그렇지?"
"네 선자님."
"그 일곱 개의 등껍질에 생기를 부여하는 대가로 두 개의 등껍질을 주면 좋겠어. 하나는 여기 내 고용인의 몫이고 하나는 내 것이야."
"으음."
유희의 말에 왕웅방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중에 건우는 북현무룡이 도대체 몇 마리나 죽었기에 등껍질이 일곱 개나 이곳에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알겠습니다. 막내 선자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건우가 의미 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일고상의 왕웅방 점주가 결국 유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후, 그는 곧바로 상점 문을 닫아걸고 유희와 건우를 내실로 안내했다.
* * *
"원래는 하나였던 등껍질이 쉰 개가 넘는 조각으로 나눠진 것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아귀를 맞추면 서로 이어지는데, 쉰 개를 모두 이으면 십여 리 크기의 거북 등껍질이 완성됩니다."
왕웅방은 탁자 위에 일곱 개의 판을 꺼내 놓고 그렇게 설명했다.
탁자 위에 놓인 판들의 크기는 고작해야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인데, 이런 것이 쉰 개가 모이면 십여 리 크기가 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수도계에서 그런 정도의 크기 변화는 그리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기에 건우와 유희 모두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왕웅방과 유희의 거래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건우가 앞으로 나서며 등껍질 조각 중에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의념을 집중하여 그것에 생기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할수있겠지?"
그런 건우를 보며 유희가 물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가능합니다. 다만 생기를 어느 정도로 부여할 것인지는 의논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걸린다면 얼마나 걸린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생기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건우의 말에 왕웅방이 흥분한 듯이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그는 먹이를 앞에 두고 '기다려’ 소리를 들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생기를 얼마나 채워 넣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달라질 것인데, 그리 물으시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건우는 한 올의 흥분도 보이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말이야."
이에 대한 대답은 유희에게서 나왔다.
거래를 주선한 대가로 하나의 등껍질을 받기로 했으니 그녀 역시 최상의 상태를 원했는데, 사실상 건우로선 달갑지 않은 처신이었다.
하지만 유희의 일 처리가 항상 건우를 위한 것이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없었으니 이번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할 일이었다. 건우도 이미 이런 유희에게 익숙했기에 새삼 그런 문제를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기준에 맞춰서 얼마나 걸릴 지 가늠해 보겠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유희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번 일로이 북현무룡의 등껍질을 얻게 되면, 영찬황과 영찬후를 하나로 묶을 틀을 얻게 될 것이다.
여덟 개의 구멍이 있는 덮개.
아마도 이름은 북현무룡팔혈개(北玄武龍八穴蓋)가 되지 않을까?
< 북현무룡의 등껍질을 두고 흥정을 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