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36화 (43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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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유희(夢遊戱)의 유희(遊戱) >

"어서 오십시오. 선보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건우와 유희가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성령기 후기의 수사인 점원이 인사를했다.

"물건은 알아서 볼 테니까, 신경 쓸 것 없다."

그런 점원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인 유희가 벽에 붙어 창문 틈으로 바깥의 상황을 살피다가 자신을 닮은 여인이 상점을 지나가자 한숨을 쉬며 등을 벽에 기대고 맥 빠진 모습으로 섰다.

"무슨일입니까?"

건우가 그런 유희를 보며 물었다.

"재수 없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거야. 아까 봤잖아. 여우 같은 것."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따지고 보자면 유희가 제일 먼저 건우에게 했던 시도가 방금 밖으로 지나간 여인의 모습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런데 그것을 두고 재수 없다고 하다니?

"우린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것이 좋아. 그러기로 했거든."

의외로 유희가 건우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요?"

"음, 거기 좀 묘한 규칙이 있다고 할까? 좀 전에 봤지? 그 년 모습."

"보기는 했습니다만? 무엇을 봤어야 했을까요? 그건 모르겠군요."

"나보다 나이가 많잖아. 응? 늙어 보이지 않았어?"

"하하하. 늙었다고 하기는…… 그래도 유희 선인보다는 확실히 나이가 많은 외모긴 했지요."

"그래, 바로 그거라고. 우리 둘이 마주치면 그 년이 언니가 되는 거지. 그게 규칙이야."

"아! 외모로 서열을 정한다는 겁니까?"

"뭐, 그렇지. 그리고 그것도 그거지만 일단 그 년은 딱 봐도 재수 없게 생겼잖아. 색욕으로 기쁨을 찾는 년이니까."

"음. 유희 선인께서도 저에게……"

"아! 그건 일단 안 쓰기로 했으니까 의미가 없어진 거야. 너는 나의 이런 모습과 역할을 선택한 거잖아."

"뭔지 모르지 만 굉장히 복잡하군요?"

"호호호, 재미있잖아. 서른여섯의 분신들이 제각각 역할을 정해서 그에 맞춰서 노는 거지. 한 번에 서른 가지가 넘는 놀이를 할 수 있는 거라고. 나름 괜찮은 놀이 아냐?"

"놀이라……"

"뭐, 따지자면 이것도 3만 년 정도 전에 한동안 했던 놀이이긴 하지만, 오랜만이라 기대가 된다고 할까?"

"역시 선인께서는……"

"아, 이 놀이의 규칙이 하나 있는데 내가 누군지는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거야. 나는 유희, 환상대시의 손님을 안내하는 길잡이야. 그걸 벗어나면 곤란하다고!"

건우가 유희의 정체에 대해서 언급하려는 순간 유희가 정색을 하며 건우의 말을 막았다.

딱히 신체를 구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건우는 갑자기 느껴지는 압박에 중간에서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유희 선인의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호호호. 좋아! 좋아! 난 이렇게 눈치가 빠른 아이가 좋더라니까."

건우의 대답에 유희는 활짝 펴진 얼굴로 짤랑짤랑 웃으며 눈을 흘겼다.

그러곤 건우의 코 밑에 얼굴을 들이밀고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손님, 환상대시에서 뭘 찾고 있지?"

건우는 그 물음에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환상 대시에서 선계로 여는 통로들 중에서 수미 세계와 가까운 곳에 열리는 통로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에? 그러니까 환상대시를 떠날 생각부터 하는 거라고?"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던지 유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당장 떠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수미 세계와 가까운 곳에 열릴 통로에 대해서는 먼저 파악을 해 두고 싶다는 거지."

"그러다가 당장 내일이라도 통로가 열린다면 훌쩍 떠나 버릴 거고?"

"음, 환상대시에 들어온 이유가 그것이니 당연히……"

"우와, 재미없네? 음, 재미가 없어."

건우의 대답에 유희가 재미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녀가 그 말을 할 때마다 주위에 살얼음이 한 겹씩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유희의 표정이나 기운이 차갑게 가라앉고 있기도했다.

- 뭔가 위험한 거 아니에요?

곧바로 몽이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건우에게 경고를 보냈다.

건우 역시 그 순간 이곳 유희의 정체인 몽유희 대라선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등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몽유희는 꿈(夢)의 법칙과 희(喜)의 법칙으로 대라선이 되었다고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재미없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무척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뭐, 그래도 괜찮아. 내가 재미있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위기감 속에서 유희가 뜻밖의 말을 하면서 활짝 웃었다.

'재미가 없으니 재미있게 만들겠다고? 이거……'

- 느낌이 서늘하죠? 좋은 의미는 아닌 거 같지 않아요?

'동감이다. 소름이 돋고 있어.'

하지만 활짝 웃는 유희의 모습에도 건우는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자아, 그럼 이제 거래를 해야지?"

"거래라니요?"

"뭐야? 그 사이에 잊었어? 나를 고용하려면 고용비용이 필요하잖아. 그러니까 가진 것을 꺼내 봐."

"아! 그렇지요. 유희 선인을 길잡이로 삼으려면……"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소매에서 공간낭 몇 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통째로 유희에게 넘겼다.

"제가 가진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워낙 가진 것이 없는 몸입니다."

귀하게 여기는 것들은 모두 의념공간에 보관하지만 따로 공간낭에 넣어 다니는 것들도 있다.

등선자들이 건우의 의념 공간을 알아보는 일은 없지만 건우가 의념 공간을 이용하여 물건들을 보관하거나 꺼낸다면,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공간을 건우가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건우는 일상적인 물품은 공간낭에 넣어 다니는 것으로 그런 의심을 피하려했다.

"뭐야? 정말 가진 것이 없구나? 비행 령보가 나름 괜찮긴 하지만 그래 봐야 선기도 못 되는 수준이고. 이 조각상들은 금역에서 얻은 것인 모양인데, 금역의 법칙이 사라진 것이라 크게 가치는 없어 보이고. 상급이나 최상급 영석이 있어도 우리 수준에는 그닥 욕심낼 것도 아니고. 야! 너!"

한참 건우가 건넨 공간낭을 살피던 유희가 눈을 희게 번득이며 건우를 불렀다.

"어찌 그러십니까?"

"숨긴 거 내놔."

건우가 물어보자 유희는 대뜸 숨겨 놓은 것을 내어놓으라 윽박질렀다.

"숨긴 것이라니요? 제가 가진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건우는 절대로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정색을 하며 손을 저었다.

"웃기는 소리. 등선자나 된 놈이 고작 이런 것만 가지고 있다고? 그럴 수는 없지. 다른 것은 모두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본명법보도 없을 수가 있어?"

하지만 유희는 그런 건우를 매섭게 노려보며 본명법보를 거론했다.

본명 법보는 수사의 수련 공법은 물론이고 영혼과도 하나로 묶어 만들어 내는 분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수사들이라면 본명법보도 없이 수련을 이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옳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본명 법보는 수사에게 힘을 더해주면 더해주지 손해를 주는 일은 없으니 여건이 되면 반드시 본명 법보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건우가 유희에게 내보인 공간낭에는 그런 본명 법보가 없어 유희가 의심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찌 본명 법보까지 내어놓으라 하시는 것입니까? 원래 본명 법보란 것은 연화를 거쳐 의념과 일체시키는 것이 아닙니까. 당연히 의념공간에 있는 것인데 그것을 굳이 꺼내 보여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오호라? 그러니까 보여주기 싫어서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는 말이냐?"

건우의 말에 유희가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사실 꺼내지 못할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아니었어도 제가 본명 법보를 유희 선인께 꺼내 보일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왜!"

"그야 본명 법보를 내어주고 유희 선인을 길잡이로 고용하진 않을 것이니 그런 것이지요. 누가 자신의 본명 법보를 그런 식으로 내어준답니까?"

건우는 그런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유희가 도리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응, 뭐…. 그래, 그건 그러네. 길잡이를 고용하는데 본명법보는 말이 안 되기는 하지. 그럼 어쩌지? 나도 이런 것들을 받고 일을 할 수는 없는데?"

유희는 건우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건우의 공간낭에서 쓸 만한 것이 없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씨, 이렇게 되면 나는 그냥 돌아가야 하는 건가? 아악! 그러긴 너무 억울하다고."

유희는 제 혼자서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괴로운 기색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건우를 노려봤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뭘 말입니까?"

건우는 다시 앞서 느꼈던 불안감을 느끼며 되물었다.

"우리가 서로를 고용하는 거지. 나는 너의 길잡이를 하고, 너는 내 호위를 해."

"그게 말이 됩니까?"

"뭐가 어때서?"

"유희 선인께서 길잡이라면 제 앞길을 안내해야 하는데, 제가 유희 선인의 호위라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호호, 재미없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건우는 감히 몽유희 앞에서 재미없다는 말을 할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네가 내 호위를 하기는 하지만 일단 너의 길잡이인 나를 호위하는 거야. 그러니까 결국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너란 이야기지. 그러면 되는 거 아냐?"

"우선순위가 그렇다면 말이 되기는 하겠지만 고작 진선에 불과한 제가 어찌 유희 선인의 호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원래 호위가 꼭 호위 대상자보다 강하란 법은 없는 거야. 음, 뭐랄까? 그래, 그거네."

"그거라니요?"

"범인들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거. 그걸 위해서 호위를 고용하기도 하지. 너의 처지를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습니까?"

"응! 물론 그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으니까 뭔가 더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 넣기는 해야겠지. 어때? 이제 계약을 할 거야? 응?"

"……?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호호호. 잘 생각했어. 그래야 재미가 있지. 아무렴."

활짝 웃는 유희의 모습에 건우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계약을 거부했다면 '재미없는’ 일이 생겼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자, 그럼 뭐부터 할까? 어떤 걸 원해?"

"그건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수미 세계와 가까운 곳으로 열리는 통로를 알고 싶다고 말입니다."

"음, 그래. 그럼 그거부터 이야기를 해 줘야겠네. 내가 알기로 환상대시의 통로는 백 년 정도 유지가 되다가 다시 다른 곳에 열려. 그런데 그런 통로가 모두 합쳐서 열두 개가 있지."

"그럼 대략 10년 정도에 한 번씩 통로의 출구가 바뀐다는 말씀입니까?"

"따지자면 그렇지. 그리고 그중에서 수미 세계라고 하는 곳으로 통하는 입구는 당연히 열두 개가 있어."

"네?"

"어떤 곳으로 나가도 수미 세계로 갈 길은 있다는 거야."

"아, 그건 그렇겠습니다."

"자, 그럼 네가 말한 수미 세계와 가까운 곳에 열리는 통로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네가 가장 빠르게 수미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를 말하는 것으로 봐야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지."

유희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건우를 보았다.

"무슨 질문입니까?"

"얼마 후에 열리는 통로가 있는데 거기로 나가서 수미 세계까지 가려면 네 재주로 대략 700년 정도 걸릴 거야. 물론 중간에 다른 일이 없다는 전제하에."

"700년이면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건우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물었다.

"맞아. 수미와 그 정도 떨어진 곳에 열리는 입구가 하나 있어."

"그렇군요. 그런데 질문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응, 그 입구 말고 다른 800년 정도 후에 다른 입구가 하나 열리는데 그건 수미 세계에 열릴 거야."

"네?"

"어때? 너는 어느 쪽을 택할 거야? 응? 호호호;

유희가 그렇게 물어보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 몽유희 (夢遊獻)의 유희 (遊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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