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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35화 (43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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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유희(夢遊獻)? >

건우는 환상대시가 무척 거대한 공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울러서 숨겨진 공간 따위가 다수 얽혀서 무척 비밀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그가 환상대시에 들어와 보니 그런 예상은 거의가 어긋나 있었다.

상점이나 객잔, 여곽 등의 건물이 크지 않고 그 안에 확장된 공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마어 마한 규모의 공간들이 중첩되어 있거나 한 경우는 없었다.

'생각보다 좁은데?"

그러게요. 마치 범인들의 대성(大成) 같은분위기네요. 뭐 건물에 공간 확장이 있는 것은 좀 다르지만요.

'몽유희 대라선은 아무래도 선인들이 범인들처럼 부대끼는 것을 원했던 모양이지.'

음,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몽유희 대라선이 환상대시를 통해서 보고 싶은 것은 다양한 삶의 모습일 수도 있겠어요.

'나 같으면 그냥 범인들 틈에 끼어서 살아보는 쪽이 나을 거 같은데. 굳이 선인들을 범인들처럼 부대끼게 만든 것은 아무래도 긴 시간을 가진 탓이겠지. 범인들은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세대가 바뀌고, 관찰 대상이 죽고 없을 수도 있으니까.'

하긴 그렇겠네요. 자, 그럼 이제 뭘 하실 거예요?

'뭘 하긴, 항상그렇듯이 이곳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것이 우선이지.'

무슨 일이든 정보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건우는 시간을 두고 환상대시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수미세계로 가는 것이 급하긴 하지만 무턱대고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건우는 환상대시의 첫 날과 다음 날을 모두 투자해서 거리를 걸었다.

머릿속에 환상대시의 지도를 입력하며 아울러서 거리에 넘쳐나는 선인들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건우는 환상대시에 들어와 있는 선인들 중에는 금선이나 옥선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를 숨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금선이나 옥선은 보는 것만으로 격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천지 법칙의 인정.

건우는 원기소 도조를 봤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것을 환상대시의 금선과 옥선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오늘부터는 선인들과 직접 교류를 해 볼까?"

그렇게 거리를 배회하며 이틀을 보낸 건우는 사흘째 아침에는 드디어 선인들과의 교류를 결심했다.

거래를 위한 노점 좌판도 깔아보고, 여러 전문 상점을 들러 수련 자원도 구해보고, 주점이나 찻집에서 벌어지는 토론에도 참가를 해 볼 생각이었다.

의외로 환상대시에는 그런 식으로 깨달음에 대한 토론이나 강론을 벌이는 판들이 제법 벌어지곤했다.

그런 곳을 기웃거리다보며 어떻게든 선인들과 안면을 트게 될 것이고 이후에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이들도 생길 것이다.

실로 그런 것이 환상대시에서 흔히 벌어지는 선인들의 교류라 할 수 있었다.

"흐으응? 너는 누구니?"

그 때였다.

건우는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물어오는 여자의 등장에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라니!

"허, 허억 누, 누구?"

"으아앗!"

"누구냐!"

"뭐냐? !"

하지 만 그것은 건우만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 순간 환상대시 곳곳에서 몸에 붙는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여자 선인이 길을 걷던 선인들에게 붙어 있었다.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을 잡거나 허리를 두르거나 아예 등에 업히거나…….

건우는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귀에 속삭인 여자를 바라보았다.

긴 머리카락을 몇 개의 보석 장식으로 고정시키고 입술을 붉게 물들인 묘령의 아가씨.

외모는 무척 아름다웠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하지 만 건우는 쉽게 혹하지 않았다.

기척도 없이 다가와 목에 팔을 둘렀다.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위협적인 암수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게다가 그런 여자가 지금이 거리에만 서른이 넘게 보였다.

그 중에 한 선인이 난처한 표정으로 소녀를 보았다.

"저, 저기 어르……"

"뭐라고요? 나를 알아요? 알면 안 되는데?"

"아,아닙니다. 제가 어찌 아가씨를 알겠습니까?"

"호호호. 그렇죠. 저도 이 환상대시는 처음인데, 저를 알 턱이 없죠."

"맞습니다. 제가 밖에서 알던 분과 착각을 했습니다."

누가 봐도 남자 선인은 소녀의 정체를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서로 아닌 척 하는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흐응. 그렇구나. 알았어요. 하지만 재미가 없네요."

"아, 그,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에구구. 난 갈래, 너희는 잘 놀다 와!"

결국 소녀도 그 선인을 포기한 모양인지 다른 소녀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그래, 가 봐."

"넌 운이 없구나?"

"어쩌니, 하필 그런 사람을 만나서?"

소녀가 떠난다고 하자, 다른 소녀들이 안됐다는 듯이 위로의 말을 전했고, 곧이어 소녀는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아무리 봐도 모두 같은 사람인데 뭘……'

딱 봐도 같은 선인이 여럿으로 몸을 나눈 분신술이 분명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듯이 노는 모습이라니.

"아유, 너는 환상대시가 처음이구나?"

그 때, 아직까지 건우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던 소녀가 얼굴가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녀는 호기심과 흥분. 기쁨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초면에 이런 모습은 예의가 아닌 듯 합니다만."

건우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어깨에 올라온 소녀의 손을 곁눈질로 가리켰다.

"호호호홋, 초면에 이런 모습은 예의가 아닌 듯 합니다만이래. 호호호호."

그러자 소녀는 뭐가 그리 재미가 있는지 목청이 다 보일 정도로 고개를 젖혀가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소녀 분신들의 등장에 소란스러웠던 거리가 일순 조용해졌다.

"흥! 이리 와! 너 때문에 모두들 나를 보잖아."

그러자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건우의 손목을 잡고 한쪽 골목으로 이끌었다.

건우는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좀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적어도 옥선 이상이네요.

몽이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고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소녀를 보며 말했다.

다행히 소녀는 그런 몽이의 등장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딜 데리고 가는 것입니까? 이거 놓으시지요."

건우가 좁은 골목 사이로 자신을 끌고 가는 붉은 비 단옷 소녀를 향해 호통을 쳤다.

하지만 소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건우를 끌고 가더니 어느새 아까 있던 대로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거리로 나섰다.

"호호, 여기는 없네. 아직 안 왔어."

그리고 주변을 살피며 뭔가를 찾던 소녀는 찾던 것이 없다는 사실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건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한 가지 약속을 해!"

"약속이라니요?"

"귀찮게 도망 가거나 하지 않겠다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망이라니요? 지은 죄도 없이 제가 왜 도망을 간다는 말입 니까?"

"그럼 도망가지 않겠다는 거지?"

"도망갈 것 없이 그냥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이지요."

"어라? 그러네? 네 갈 길을 가는 것을 도망이라 하려면 내가 너를 붙잡아 둬야 하는 거네?"

"어차피 도망가지 말라는 말을 할 때부터 저를 억압하겠다는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건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소녀는 분명 옥선 이상의 선인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건우가 그토록 무력하게 목을 내어줬을까.

하지만 아무리 옥선 이상이라고 해도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환상대시의 주인은 몽유희 대라선이라고 그녀는 환상대시에서의 소란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 그렇기는 하지만, 이 여자가 몽유희 대라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몽이가 가능성 높은 추측을 하며 슬그머니 걱정을했다.

'그런 경우엔 또 다른 의미로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대라선을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할 테니까.'

-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뭘 그렇게 고민하고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널 해치진 않을 거니까. 그냥 나하고 얼마간 놀아주면 되는 일이야."

건우가 몽이와 대화를 하는 중에 소녀가 그의 손목을 놓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건우는 손목의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소녀에게 붙잡혀 있는 것과 같은 신세임을 알았다.

"놀아주다니 그게 무슨 말입 니까? 선인과 내가 무엇을 하고 논다는 말입니까?"

건우는 은연중에 거부감을 담아 그렇게 물었다.

"흐응, 놀 거야 많지. 일단 이런 건 어때?"

건우의 말에 소녀가 두 팔을 벌리고 선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이에 건우가 깜짝 놀라 다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커엄.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쌍수수련으로 정을 쌓은 반려가 있는 몸이기도 하고."

몸을 한 바퀴 돌리는 사이에 소녀는 농염한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복장도 가린 곳보다 드러난 곳이 더 많아졌다.

게다가 가린 곳조차도 은은하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이라 마주 보기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 정말 민망한 거 맞아요? 은근슬쩍 눈길을 주는 건 아니고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내가 응, 진선에 오른 등선잔데 정심(貞心)이 그리 쉽게 흔들리겠느냐?"

- 아이구, 그러시구나? 그래서 안 보셨다고요?

'억지로 보려고 해서 본 것은 아니라는 거지. 그냥 보인 것일 뿐.'

- 그래도 굉장하긴 하네요. 건우 님의 마음을 흔들 정도의 유혹이라니. 어허! 눈 돌리지 마시고요.

'거참, 아니라니까 그러는구나.'

- 제가 건우 님을 몰라요? 스스로를 속이지 마세요.

'끄응!’

"어머나, 지금 날 피하는 거니? 어쩜 이리 순둥순등할까? 그런데 쌍수수련을 했다고?"

"그렇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런 민망한 모습은 거두어 주시지요."

"호호호. 재밌는 아이네. 그래, 굳이 이런 걸로 놀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 다른 걸로 하자."

건우의 말에 여인은 다시 몸을 회전시키더니 십대 후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깨 위로 올려 자른 머리카락과 입고 있는 복장을 보니 짓궂은 개구쟁이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때? 이럼 괜찮지?"

"부담이 없는 모습이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저에게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으음, 이런 모습이라면 당연히 그거지. 날 고용해!"

"네? 고용이라고요?"

"그래, 나를 환상대시 길잡이로 고용해 달라고. 그래서 환상대시를 떠날 때까지 나하고 함께 하는 거야."

"으음."

"뭐야? 싫어? 싫으면 네가 곤란해 질 수도 있는데?"

"하아, 일단 그 전에 통성명이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강건우라 합니다."

"음, 강건우? 좋아, 나는 유희야."

"아, 유희 선인이셨습니까?"

몽유희 대라선의 환상대시에서 유희라는 이름을 쓰는 선인이라.

스스로를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어때? 나를 고용할 거야? 안하면……"

"하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고용 비용에 대해서 협상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응, 그렇지. 그게 맞지. 그냥 고용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길잡이를 하신다면 저에게 어떤 도움이 됩니까? 저는 굳이 환상대시에서 길잡이가 필요하지 않은데 말입니다."

"무슨 소리를! 길잡이가 있으면 환상대시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무진장 쉽게 알 수 있다고. 한 번만 나를 고용해도 백 번 경험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알 수 있지."

"흐음. 그렇다면 고용 비용이 크지 않겠습니까? 저는 고작 진선에 불과하고, 등선을 한 것도 오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으응? 그건 좀 곤란한데? 나는 싸구려로 고용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고."

"그럼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저야 당연히 고용을 하고 싶지만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자, 그러지 말고 어디 가진 것을 꺼내 봐. 꼭 값진 것이 아니어도 된다고. 나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건 크게 값을 쳐 줄 거니까."

건우가 엄살을 피우며 자연스럽게 고용 관계를 포기하려 하자 유희가 눈을 부라리며 건우를 노려봤다.

그 때, 대로 저 쪽에서 또 다른 유희가 어떤 선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이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흥! 이리 와! 잠시 들어가자."

그러자 유희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건우의 손목을 잡고 곁에 있던 상점으로 들어갔다.

한 눈에 봐도 다가오는 또 다른 유희를 피하려는 행동이 분명했다.

< 몽유희(夢遊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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