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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역(禁域)의 폭발마(爆發魔)들 >
"보아라, 저기가 금역이다."
건우가 원기소와 부대끼며 비행하기를 십여 년이 흘렀을 때.
원기소가 기이한 기운의 흐름 앞에서 거용을 멈춰 세우게 하고 말했다.
"입구입니까?"
건우는 원기소가 가리키는 허공에서 등선자가 아니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기운의 응결을 발견하고 물었다.
고작 백여 장에 불과한 덩어리라 그 자체를 금역이라 부를 수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옳다. 저기로 들어가면 금역으로 갈 수 있지. 하지만 그것도 등선자 정도는 되어야 인식을 하고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통과해 버리지."
원기소는 건우의 말을 긍정하며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굳이 저 입구로 들어갈 이유가 있습니까? 비켜서 지나가도 될 듯합니다만."
그 때 건우가 금역으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진행 방향에 입구가 있다면 그걸 피해서 가면 될 일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 금역을 통하지 않고는 원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가 없음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 니까? 원하는 곳으로 갈 수가 없다니요? 제가 보이엔 금역의 입구 옆으로 펼쳐진 세상이 훤히 보입 니다만?"
"푸하하. 보기엔 그렇지. 하지만 막상 금역을 통하지 않으면 금역 너머로 갈 수가 없지 않겠느냐."
"금역을 건너면 전혀 새로운 곳에 도착한다는 말씀이군요?"
"음, 네가 공간 법칙을 조금 더 깊이 이해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건우는 갑작스럽게 뼈를 때리는 원기소의 말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클클, 어쨌거나 이대로 금역의 입구를 비켜가서는 네가 가려는 수미 세계로 갈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돌아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지도의 중간이 지워졌다고 할까?"
"등선을 언제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선계에 계셨던 어르신이 아니십 니까? 그런데 모르는 곳이 있다는 말씀입 니까?"
"너는 빠른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익히겠느냐?"
"하지만 직접 가지는 않더라도 길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건우는 원기소에게 뼈를 맞은 김에, 원기소의 부족함을 물고 늘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함께 하며 그 정도는 장난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 교분을 쌓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네?"
"선계에는 나도 모르는 곳들이 허다하다."
"아! 어르신께서도 부족한 것이……"
"선계가 넓기 때문이기도 하고, 선계의 모습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내가 생각하기에 선계 전체를 통달하여 알고 있다고 자신할 선인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원기소가 슬쩍 건우의 말을 끊으며 그만 기어오르란 신호를 주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선을 넘는다.
멈출 때를 모르면 화를 당하기 마련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건우는 슬쩍 한 걸음 물러 났다.
"그럼 주저할 것 있겠느냐. 이만 들어가자."
원기소는 이쯤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발을 굴러 금역 입구로 몸을 날렸다.
이에 건우도 급히 거용을 회수하고 둔술을 펼쳐 원기소의 뒤를 따랐다.
금역 입구로 들어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진입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건우를 반겼을 뿐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건우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며 원기소에게 물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흙과 돌, 금속 따위로 이루어진 생태계였다.
흙에서 홁이나 돌로 된 풀과 나무가 자라고, 간혹 금속으로 된 것도 보였다.
게다가 의념에 걸리는 갖가지 생명체들 역시 흙과 돌, 금속 등의 무생물적 재료로 된 것들이었다.
원기소는 건우 보다 한 발 앞서서 금역으로 들어온 후, 뒷짐을 지고 그런 금역의 모습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건우의 질문에 몸을 돌렸다.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이느냐? 알 수 있겠느냐?"
"어찌 흙과 돌이 동식물이 될 수가 있습니까? 아니 생명체가 될 수 있습니까?"
건우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수도계에 괴뢰술(促偶術)이 얼마나 다양한데 고작 그런 점을 이상하다 한단 말이냐?"
하지만 건우의 지적에 원기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그것은 건우가이 금역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그의 시험이었다.
"아니, 그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괴뢰에 어찌 생기가 돌 수 있습니까? 이곳에 있는 것들은 괴뢰가 아닙니다. 진정 흙과 돌, 쇠로 이루어진 생명체란 말입니다. 저것들이 생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럴 수 없는데……"
"하하하. 그래, 제대로 보았다. 원래 대천 세계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경우지. 생기(生氣)는 '살아있’는 것들에만 깃들어야 하는 것이지. 이치에 맞지 않아."
그리고 이어진 건우의 거친 반발에 원기소는 도리어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이 금역은 생기 법칙과 연관이 있는 곳입니까?"
이에 건우도 뭔가 짐작했다는 듯이 원기소에게 물었다.
"그래, 보아하니 그런 곳인 듯하구나. 이곳엔 과거에 도태된 구(舊) 생기 법칙이 유지되고 있어."
"그럼 과거에는 이런 것들에도 생기를 부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까?"
건우가 몇 걸음 걸어가 키 높이와 비슷한 나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생긴 것은 분명히 소나무인데 그 재질은 옅은 회색의 돌이었다.
대리석처럼 보이는 돌이 소나무 형태를 이루었는데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어? 이게 자라기까지 하는군요? 뿌리를 통해서 땅의 성분을 받아들여서 '생장’이란 걸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건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건우는 그 소나무를 쓰다듬어 구체적인 정보를 얻게 되자 깜짝 놀라 원기소를 보며 말했다.
"그게 폐기된 생기 법칙이니라. 과거 한때는 그 구(舊) 생기 법칙도 천지 법칙에 속해 있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무생물이 생기를 품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건우가이 금역에 적용된 생기 법칙의 역설과 허황됨을 지적했다.
그러자 원기소가 소리 없이 마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인식하는 그것이 곧 법칙의 힘이다. 돌과 흙과 물, 혹은 쇳덩이까지 생기를 품고 '살아’ 있을 수 있다고 믿었던 때에는 이곳의 구(舊) 생기 법칙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 법칙이란 모두가 그렇 다고 아는 보편적인 믿음이 바탕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믿음이 그것이 바뀌면 법칙도 새로 생기거나 의미를 잃거나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으니."
"중요한 것이요?"
건우는 원기소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하여 그에게 집중했다.
"보편적인 인식의 변화에 천지 법칙이 바뀌기도 하지만, 도조들의 의지에 법칙이 바뀌고 이후에 보편적인 인식이 생겨나기도 한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법칙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도 있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여기서 어떻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 금역을 벗어나야 할 게 아닙니까?"
건우는 자신이 익히고 있는 생기 법칙과는 궤가 다른 과거의 생기 법칙에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그 유혹을 떨쳐 내려 애쓰며 물었다.
건우에겐 구(舊) 생기 법칙에 대한 호기심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서둘러 수미 세계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금역을 벗어나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었다.
"뭘 그리 고민하느냐. 금역을 없애면 될 일이 아니냐. 그러면 자연스럽게 금역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데."
그러자 원기소는 원숭이 얼굴 가득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이어서 그는 법칙의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어? 어?! 어르신 지금 무엇을……"
그 모습에 건우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원기소는 법칙의 힘을 쓸 수 없었다.
그가 법칙의 힘을 쓰게 되면 곧바로 천지 법칙이 그에게 제약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 제약은 워낙 강하고 사나운 것이어서 자칫하면 원기소라도 소멸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원기소가 처서중이나 건우에게 특별한 격리 공간을 만들게 하고 그 안에서 법칙의 힘을 사용했던 것이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원기소가 한 그루의 암석 전나무를 가루로 만들더니 계속해서 그것을 원기소로 만들어 냈다.
단절과 나눔의 법칙을 이용하여 원기소 법칙의 바탕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하핫. 무엇을 걱정하는 것이냐? 이곳은 역천의 땅, 역천지역(逆天之域)이다. 이런 역천의 영역에선 나도 천지 법칙의 흐름을 겁낼 이유가 없지. 자, 보아라!"
원기소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암석 전나무를 분해하여 만들어 낸 원기소를 넓게 펼쳤다.
그리고 곧이어!
"으아아악! 지, 지금 그걸 터트리려는 것입니까기 젠장!"
꾸우우우웅! 콰과과과광!
건우가 폭발 직전에 급히 공간 법칙을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공간을 비틀어 그에게 닥쳐오는 모든 외부적인 효과를 비껴가게 만든 것이다.
"녀석! 엄살이 심하구나!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하지만 정작 원기소는 태연한 반응을 보이며 연이어 원기소의 핵을 분열시켜 폭발을 이끌어 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폭발의 방향을 대부분 제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아서 일부가 뒤쪽으로 터지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건우나 원기소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일이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차짓 제어가 되지 않으면 한 방에 소멸까지 걱정해야 할 무서운 폭발이 아닙니까."
하지만 원기소가 대부분의 폭발을 제어하고 있어도 건우는 방심하지 않고 여전히 공간 법칙의 보호를 풀지 않았다.
"쯧쯔. 적당히 하고 너도 뭔가를 해 보거라. 내가 전에 이르지 않았느냐. 이곳 금역에 오게 되면 공헌도를 쌓을 방법이 있다고. 그런데 너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겠느냐?"
원기소는 건우를 보며 그렇게 나무랐고, 영민한 건우도 곧바로 그의 말을 이해했다.
"설마이 금역을 파괴하는 것으로 천지 법칙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까? 그렇게 공헌도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어떠냐? 무척 간단하지 않으냐?"
"으음. 그렇기는 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이곳에도 주인이 있을 거 아닙니까?"
건우는 금역을 파괴해서 대천 세계에 대한 공헌도를 얻는다는 원기소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금역이 괜히 금역이 아닐 텐데 괜찮을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우우우웅!
건우의 공간 법칙이 수천 장 범위의 금역을 장악하여 가둔다.
그리고 그 안으로 건우의 생기 법칙이 스며든다.
금역의 구(舊) 생기 법칙과는 다른 현(現) 생기 법칙이 부여되자 그 공간에 있던 역천의 존재들이 일시에 생기를 잃고 흙이나 돌로 만들어진 조형물로 변해 버린다.
"흐음!"
이어서 건우는 그 공간을 금역 밖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콰과과과광!
그와 동시에 금역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일점집중과 폭발.
공간이 사라지자 근처에 있던 공간이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몰려들었다가 잠시 압축되는가 싶더니 역으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크하하하. 다시 봐도 재미있구나. 그런 식으로 하다보면 언젠가는 금역을 모두 없앨 수 있겠어. 하하핫."
그 모습에 둔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원기소가 허리를 뒤로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반쯤은 감탄이고 반쯤은 비웃음이었다.
고작 수천 장의 넓이는 금역 전체로 따지자면 호수에서 퍼낸 물 한 잔 정도에 불과했다.
금역의 일부를 공간 법칙으로 장악하여 구(舊) 생기 법칙의 영향력을 줄이고, 대신에 현(現) 생기 법칙을 밀어 넣어 완전히 금역의 성격을 지운다.
그리고 그 영역을 금역 밖의 어딘가로 밀어내는 것.
이런 방법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원기소도 처음 보는 것이라 감탄스럽지만, 그 범위가 좁으니 웃음도 나는 것이다.
"생기 법칙과 공간 법칙을 함께 익히고 있으니 가능한 방법이겠지만 금역에서 쓰기는 나쁘지 않구나."
그래도 너무 비웃었나 싶어 슬쩍 칭찬을 해 주는 원기소였다.
"그렇습니까?"
"다만 밖으로 공간을 밀어낼 때에 대천 세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혹여 큰 실수를 했다가는 이곳 금역에서 받은 공헌이 헛것이 될 수도 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 무작위로 날려 보내는 것은 아닌 모양이구나?"
"하하하."
건우는 원기소의 날카로운 시선을 슬며시 피하며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 혹시 알아차린 걸까요? 의심이 담긴 눈빛인데요?
'뭐, 의심을 한다고 해도 내 의념 공간의 특별함을 알지는 못할 거야. 지금껏 의념 공간을 나처럼 쓰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럴까요?
'그저 내가 공간 법칙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 보내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거겠지.'
- 그래도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요.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하마. 하지만 금역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거야. 점점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 정말, 도대체이 괴상한 생기 법칙을 유지하는 것이 뭔지 정말궁금하네요. 어서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건우는 몽이에게 그렇게 대꾸하며 둔술을 펼쳐, 그 사이에 아득하게 앞서나간 원기소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다시 이전처럼 수천 장의 영역을 공간 법칙으로 장악하여 구(舊) 생기 법칙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꾸아아아앙! 콰과과과과광!
"으윽! 저 원숭이 늙은이가!"
- 건우 님! 쫌! 듣겠어요
"아......!"
< 금역 (禁域)의 폭발마(爆發魔)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