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30화 (43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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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소에게 수미 세계를 물어보다 >

“무에 그리 인상을 쓰고 그러는 것이냐?"

“제가 인상 안 쓰게 생겼습니까? 그냥 처서중 선인과 함께 있으면 될 것을! 왜 하필 저를 따라나선다고 하시는 겁니까?"

건우가 거룡 비행 령보의 머리 위의 탑 안에서 원기소 도조와 마주 앉아 성질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우의 건방진 태도에도 불구하고 원기소 도조는 별달리 화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건우를 달래려는 듯이 표정을 부드럽게 고치기까지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놈아, 처서중 그 놈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고, 네 놈은 먼 길을 떠나겠다 하지 않았느냐."

“그게 이유란 말입니까?"

“네 놈 같으면 재미없는 처서중과 함께 있겠느냐 아니면 너처럼 재미있을 것 같은 놈을 택하겠느냐?"

“끄응. 돌아버리겠네. 아니 도조라면서요? 그런 분이 왜 이러시는 거냐고요!”

싫다고 하는데도 진드기처럼 달라붙은 원기소 도조를 향해 결국 고함까지 지르고 마는 건우였다.

사실 원기소 도조 때문에 쌓인 울화가 적잖았던 것이다.

“도조면 뭐? 나는 도조지만 내가 장악한 법칙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반편이일 뿐이다. 그러니 너 같은 진선 나부랭이가 이렇게 대거리를 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냐?"

그런 건우를 향해 이번은 원기소 도조가 도리어 불쌍한 표정까지 지으며 하소연을했다.

원숭이 얼굴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지으니 도조란 신분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건우는 치솟았던 화가 구멍 난 풍선처럼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아, 미치겠네! 원기소 어르신. 솔직히 저는 금선조차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옥선이니 대라선이니 도조니 하는 분들은 가늠도 안 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어르신은 도조 아닙니까. 솔직히 저는 원기소 어르신이 무섭습니다. 언제 기분이 상해서 저를 어찌 해 버리실지 모르니까요."

엄살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이것은 건우의 진심이었다.

마치 호랑이나 사자와 한 우리에 있는 토끼 같은 심정이라고 할까.

“그럴 일이야 있겠느냐? 네가 도를 넘지만 않으면 말이다."

원기소는 별 일 아니란 듯이 그렇게 말을 받았다.

하지만 당하는 건우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반응일 뿐이었다.

“아니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부담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르신이 요구하신 격리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따지자면 저보다 처서중 선인이 훨씬 뛰어나지 않겠습니까?"

원기소 도조가 건우와 동행하며 요구한 것, 그것은 바로 대천 세계와 최대한 격리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쪽이라면 처서중 선인이 건우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건우는 잘 알고 있었다.

“네 놈의 공간 법칙 깨달음이 그 놈보다 깊은데 무슨……"

“저야 이동에 특화된 것이고, 공간을 만드는 쪽으로는 처서중 선인이 월등하지요. 뻔히 아시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 그건 인정하마. 하지만 네 깨달음이라면 공간을 만드는 것도 금방 처서중의 수준에 오를 수 있을 게다. 암, 그렇고말고."

하지만 원기소는 여전히 별문제가 아니란 듯이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어휴, 미치겠네!. 도대체 그게 언제란 말입니까? 저도 할 일이 있습니다. 당장 법칙을 수련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건우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어차피 원기소가 생각을 바꿔서 떠날 거라는 기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갈 사람이었으면 지금까지 끌지도 않았을 것이다.

벌써 위금선대폭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아득할 정도였다.

첫 만남 이후, 원기소는 건우가 처서중의 구층 철탑을 떠날 때, 특별한 말도 없이 건우를 따라왔다.

“한동안 동행을 해 보자꾸나. 시킬 일도 있으니."

이것이 건우를 따라 나설 때, 원기소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원기소 도조는 건우에게 대천 세계와 최대한 격리된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했다.

원기소 도조는 그 공간에서 자신의 원기소 법칙을 연구하거나 실험할 것이라했다.

원래는 처서중 선인에게 시키던 일인데 이제부터는 건우와 동행하며 건우에게 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건우로선 어이가 없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는데 그렇다고 원기소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자그마치 도조의 명이 아닌가.

진선경 따위가 어찌 도조의 명을 거부한단 말인가.

있을 수도 없는 일 이었다.

수도계는 인계든, 영계든, 선계든 경지의 고하를 막론하고,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런데 도조인 원기소가 건우를 부려 먹는 것을 두고 뭐라 할 것인가.

게다가 이번 일로 건우가 원기소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건우 역시, 만만한 수도자가 눈앞에서 탐나는 보물을 내보인다면 빼앗아 가질 것이다.

기분에 따라서는 약간의 대가를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선택은 건우의 몫일 뿐, 당하는 쪽에서는 그저 자비만 구하게 될 터.

그런데 혹여 그 대상이 지금 자신이 원기소 도조에게 하듯이 바락바락 대들며 성질을 낸다면?

‘끄응!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이 용하네. 아니 나를 부려 먹어야 할 입장이니 죽이지는 않더라도 뜨거운 맛을 보여주긴 했을 거 같은데? 의외로 어르신이 너그러운 것일까? ’

- 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렇지. 솔직히 원기소 저 늙은이, 영기와 의념만으로 싸운다면 내가 크게 밀릴 것도 없을 거 같단 말이지.'

- 그렇지만 도조란 이름값을 무시할 수는 없죠. 자그마치 법칙의 주인이라고요.

‘끄응.'

건우는 오늘도 불쑥 치솟아 오른, 원기소와 한 판 붙어볼까 하는 마음을 꾹꾹 억눌렀다.

“너무 그리 억울한 표정을 짓지는 말거라. 내가 너와 동행을 해서 네가 손해를 볼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그 때, 원기소가 지금까지 지었던 표정 중에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건우는 기가 막혀 죽겠다는 표정으로 원기소를 쳐다봤다.

‘손해 볼 것이 없다니. 존재 자체로 위협이라는 말은 벌써 잊어버린 건가? ’

건우는 헛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무리 그래도 도조에게 헛웃음을 터트려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놈아. 내가 누구냐? 비록 반편이라도 도조다. 그리고 나는 언제 등선을 했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오래도록 선계에서 살아왔느니라. 너처럼 갓 등선한 놈에겐 나만한 길잡이가 또 어디 있겠느냐?"

“그래서 어르신께서 저를 이끌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동행을 하는데 네가 부족하다면 귀찮아지는 것은 내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당연히 너를 가르쳐 귀찮음을 피해야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론 건우에게 가르침을 내려주겠다는 뜻이다.

‘직접 입으로 저렇게 약속을 하는 것은 처음이지? ’

- 그렇죠.

‘음, 도조 정도 되면 수미 세계에 대한 것도 알고 있지 않을까? ’

가능성은 있죠.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엎드려 비는 한이 있어도 잡아야 할 동아줄 아닐까요?

‘음, 그럼이 정도에서 못이기는 척 서로 잘 해 보자고 해야 하나? ’

괜히 더 끌다가 판이 엎어져서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요? 뭐 죽자고 싸워 보는 수도 있긴 하죠. 게다가 해파리 공법의 부활을 생각하면 뭐, 도박도 해 볼 만하죠.

‘도박은 무슨! 이쯤에서 숙이고 실리를 챙겨야지.'

“어떠하냐? 계속해서 고집을 부려 볼 테냐? 너도 이쯤이면 마음의 결정을 내릴 때가 된 듯 하다만?"

그 때, 원기소가 건우의 속을 들여다본 듯이 물었고, 건우는 결심이 선 상태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공간 법칙을 궁구하여 대천 세계와 단절된 공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하하, 좋다. 아주 좋아. 그래도 선은 넘지 않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구나. 아슬아슬하지 않았느냐."

“그랬습니까?"

되묻는 건우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자신이 시간을 더 끌거나 원기소에게 좀 더 패악을 부렸다면 어찌 되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도조라는 신분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움을 느낄 만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서로 돕기로 했으니 그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말이다."

“네? 하문이 있으십니까?"

“내가 너를 돕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겠다 했지만, 그래도 목표가 아주 없지는 않을 텐데?"

원기소는 건우가 선계를 돌아다니려 하는 이유를 그렇게 돌려 물었다.

이에 건우는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원기소에게 물어볼 일이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윤회를 하였습니다."

“윤회? 이 대천 세계의 영혼 중에 윤회를 하지 않은 것도 있다더냐? 모두가 전생이 있으며 윤회를 거쳤다. 윤회의 종착지에서 탄생을 하며, 탄생은 죽음으로 하염없이 나아가 언제고 목적지에 이른다. 또한 죽음에서 윤회 법칙이 다시 드러나지. 하지만 크게 보자면 생사윤회는 모두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기소는 가르침을 주겠다는 말을 지키겠다는 듯이 윤회에 대해서 길게 설명을했다. 건우는 그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가 윤회를 했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전생에 대한 기억이 조금 있습니다."

“뭐라? 윤회를 했는데 전생의 기억이 있어? 그것은 윤회의 법칙을 크게 거스르는 것인데?"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전생의 기억에 하필 제가 쌍수 수련을 했던 정인이 있습니다."

“오호라. 쌍수수련을 했으면 영혼이 연결되어 있을 터! 그렇다면 윤회를 거쳤다 하더라도 그 인연이 끝나지 않았겠구나?"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아직도 살아 있음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생에 네가 정인과 있었던 곳을 찾아가야겠구나?”

원기소의 추측이 건우의 말을 앞질러 갔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계를 떠돌며 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하하, 좋구나. 좋아. 너는 참으로 운이 좋다. 선계에서 나만큼 오래 머문 이가 얼마나 되겠느냐. 비록 반편이라 하지만 도조가 된 나다. 얼마나 오랜 시간 수련을 했을 것 같으냐? 어디 물어 보아라. 네가 가려는 곳이 어디냐?"

원기소는 자신있다는 표정으로 건우에게 질문을 재촉했다. 그럴수록 건우의 기대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수미 세계라고 합니다. 원래는 영계였는데 멸계전을 승리하고 선계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오호? 그럼 너도 멸계전을 경험했더냐?"

“그렇습니다. 당시 수미 세계가 멸계전에서 승리하는데 적잖은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좋다. 좋아. 수미 세계라......"

원기소는 깊이 묻어 두었던 기억들을 더듬어 수미 세계와 관련된 내용을 찾기 시작했다.

“오호라, 수미(煩彈)! 있구나. 오래된 기억에 수미가 멸계전을 이기고 선계로 올라왔던 일이 있었어."

“그렇습니까? 어르신께서 그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까? 하하핫. 이리 기쁠 수가!”

원기소가 한동안 기억을 더듬다가 드디어 수미 세계에 대한 것을 찾았다며 환호성을 올리자 건우는 덩달아 흥분하며 기뻐 날뛰었다.

“어르신 어느 방향입니까? 어디로 가면 수미 세계를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건우가 한동안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원기소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원기소가 한쪽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방향이다. 수미로 가장 빠르게 가려면 저 방향이 옳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주 먼 곳이라 하셨으니 공간 법칙의 한계까지 뻗어 보겠습니다."

건우는 마음이 급하여 서둘러 공간 법칙을 끌어 올렸다.

‘공간 법칙을 익히고 있으니 이동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제 오래지 않아서 수미 세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리 되면 정정 수사의 소식도 알 수 있으리라.'

공간 법칙을 끌어 올려 이동 거리의 한계를 더듬는 건우의 심장은 마치 범인의 그것처럼 거칠게 뛰는 듯했다.

< 원기소에게 수미 세계를 물어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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