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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28화 (42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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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원서도 안 냈는데 입사를 한 건가? >

“처서중(處樓仲)이라 합니다. 건우 선인을 뵙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청색 경장의 선인 처서중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했다.

건우는 그런 처서중의 모습에 자신도 마주 허리를 숙였다.

“저 또한 처 선인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 저리로 가십시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지요."

건우의 인사에 처서중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더니 청색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이어서 건우 역시 처서중이 간 곳을 놓치지 않고 둔술을 펼쳐 붉은색의 광채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이동한 두 선인의 모습은 산허리 절벽 위에 있는 아담한 정자 안이었다.

정자 안에는 석탁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건우와 처서중이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이 마주 앉은 정자 아래로는 기암괴석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계곡이, 저 아래 평지까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었다. 진선이 된 건우의 이목에 이 공간의 산과 숲과 들에 있는 갗가지 영물과 영호, 수련 자원들이 선명하게 잡혔다.

“이곳은 실로 보물창고입니다."

건우는 자연스럽게 처서중의 공간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냈다.

자신도 의념 공간과 거룡 비행 령보에 딸린 공간이 있지만 이곳처럼 값진 것들을 채워 넣지는 못했다.

“별것 아닙니다.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부러움 섞인 건우의 말에 처서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겉으로는 겸양하는 듯 말하는 처서중의 기세에서 의기양양함과 뿌듯함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지나가면 그만일 사람을 애써 초대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야기나 하지요."

건우는 은연중에 으스대는 처서중의 모습이 마뜩찮아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처서중도 정색한 표정으로 건우를 보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 놀란 마음에 서둘러 선인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례를 한 면이 없잖아 있지요."

“그건 이미 잊기로 한문제입니다. 말을 돌릴 것 없이 나를 보려 했던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놀라다니 무슨 연입니까?"

“으음. 거 참, 팍팍하기도 하십니다. 좋습니다. 그리 하지요. 사실 같은 법칙을 익힌 선인이 근처에 있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건우의 까칠한 태도에 처서중도 기분이 상한 듯이 딱딱한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치랄 것까지야 뭐가 있겠습니까.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그저 본척만척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건우도 처서중이 공간 법칙을 깨달은 것에 관심이 있지만 무조건 같은 법칙을 익혔다고 해서 교류를 해야 할 이유는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개인의 호기심일 뿐, 다른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인가?

“하긴 건우 선인이 나를 알아차리고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보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으음. 어찌 자꾸 말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알아들을 말씀을 하셔야지요."

“그런데 이리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역시 제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건우 선인께서는 등선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정말로 지금 느껴지는 연치(年齒)가 거짓이 아니란 것입니까?"

건우의 말에도 처서중은 제 홀로 중얼거리듯이 말을 하다가 한 순간, 어떤 결론을 내리고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 스스로를 감출 이유가 있겠습니까? 굳이 그런 일로 심력을 허비할 일이 무어랍니까?"

건우는 자신이 감추고 있는 것이 없음을 에둘러 말했다.

그러면서 도리어 처서중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으음. 확실히 건우 선인은 등선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선인과 내가 서로 생각과 대처가 엇나가는 것이겠지요."

"으음."

여전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라 신음을 삼키는 건우의 눈빛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처서중도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급히 말을 이었다.

“금선, 옥선, 대라선이 익히고 있는 법칙마다 그 수가 정해져 있음은 잘 알겠지요? 그래서 같은 법칙을 익힌 이들은 서로를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위로 올라갈 의지를 잃지 않은 선인이라면 말입니다."

위로 올라갈 의지를 잃지 않은 이들이란 말에 건우는 살짝 처서중의 기색을 살폈다.

지금 처서중의 말은 그가 곧 금선에 오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니까 처서중 선인께서는 내가 금선 자리를 두고 다툴 경쟁자가 될 것인지를 알아보려 했다는 것입니까?"

물어보는 건우의 눈빛이 서늘하다.

처서중의 대답에 따라서 서로가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경계할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선인들은 같은 법칙을 익힌 이를 만나면 서로 교류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때론 힘을 모아서 대사(大事)를 도모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선인의 경쟁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하긴 이전 정강도 선인들의 싸움이 생사결이 되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하긴했다.

건우는 그것을 떠올렸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대화를 멈출 수는 없으니 궁금한 것을 물어 대화를 이어나갔다.

“일을 도모한다니 그건 또 무슨 말입 니까?"

“어허, 대천 세계에 공헌을 쌓으려면 천지 법칙의 흐름에 도움이 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당연히 우리가 익히고 있는 법칙, 즉 공간 법칙의 흐름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요?"

“그런데 그런 일들 중에 혼자의 힘으로 어려운 것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럴 경우일수록 쌓이는 공헌도 클 수밖에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법칙을 익힌 이들이 힘을 모아서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공헌을 나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아닙니까?"

“같은 일을 할 때에는 협력을 하고 그 후에는 또 각자의 길을 걸으며 경쟁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금선 어르신들의 눈에 들어야 차후 승급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대천 세계에 공헌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익히고 있는 법칙의 흐름에 기여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그저 대천 세계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공헌을 쌓기보다 익히고 있는 법칙의 흐름에 기여하는 것이 좋다니. 하지만 그리 교류를 하고 합심을 하는 것도 승급에 대한 열망이 가득할 때에나 필요한 것이 아닌가?

“금선의 승급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굳이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실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또 그것도 아니지요. 어쩌다 어르신을 만났는데 그 동안 쌓은 공헌이 없다면 그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처서중의 말에 건우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던 것이다.

“난처하다니요? 금선이나 옥선이 고작 진선 하나의 일에 관심이나 두겠습니까?"

“허어. 건우 선인은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천지 법칙의 흐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수많은 도조들의 의지가 뭉쳐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흐름에도 주류가 있고 지류가 있기 마련이지요. 거대한 천지 법칙의 흐름에서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 흐름에 힘을 더해야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으음. 그러니까 저처럼 한미한 진선도 공간 법칙의 흐름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입니까? 공간 법칙이 천지 법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공간 법칙을 익히고 있으면 그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공간 법칙의 금선을 만났는데 공간 법칙으로 쌓은 공헌이 없다면 실적 없는 사원이 직장 상사를 만난 꼴이 되는 걸까? ’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따지고 보면 금선들에게 잘 보여서 승급을 하는 것도 직장에서 윗사람의 평가를 받아서 승진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호? ! 참으로 영민하십니다. 그것을 그리 빠르게 깨우치셨습니까? 그럼 이제 그런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도 아시겠습니까?"

처서중이 흥미로운 눈빛을 빛내며 시험하듯 물었다.

“흐름을 거역하는 것도 문제고, 공헌을 쌓지 못하는 것도 문제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간혹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선들이 어찌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금선이나 옥선 같은 어른들의 눈 밖에 나서 그리 되었다는 말이군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지요."

“그럼 두 가지 이상의 법칙을 익힌 선인들은 더욱 곤란하겠습니다? 걱정해야 할 윗사람이 더 많아질 테니 말입니다."

건우는 자신의 상황을 숨기 며 그렇게 물었다.

“그렇지요. 아, 이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혹여 여러 법칙을 익혔는데 어느 한 법칙으로 유독 역천을 자주 하다 보면 그 법칙의 어르신께서 직접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지요."

처서중이 여전히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나가듯 말했다. 하지만 건우로선 간담이 서늘할 이야기였다.

“여러 법칙을 익히고 있는데 유독 한 가지 법칙으로만 역천을 자주 한다면? 그것은 작정하고 그 법칙에 해악을 끼치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군요."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 법칙의 관리자가 찾아와 응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느 한 법칙으로 역천을 했다면 반드시 그 법칙으로 다시 그만한 공헌을 쌓아서 만회해야 할 것입니다."

“으음. 그것은 지금껏 생각지 못한 것인데, 듣고 보니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서중의 말에 건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지만 그와 대화를 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정강의 부챗살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없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 빼 놓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을 모르고 크게 실수를 했다면 단 한 번에 금선이나 옥선의 관심을 끌어서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처서중과의 대화는 크게 유익한 것이고 감사 인사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나저나 그럼 나는 입사 원서도 안 썼는데 조율, 생기, 공간 법칙 회사에 입사한 신입이 된 건가? 강제로? ’

- 와, 그 비유 딱 맞는거 같아요.

‘소속이 세 곳인 걸 숨기기도 어려울 텐데, 이러면 오해를 받기도 쉽겠네? ’

- 어쩌겠어요? 건우 님이 욕심을 과하게 부린 탓이죠.

‘그렇긴 하다만……'

“하하하. 그리 정색을 하고 인사를 할 것은 또 무어랍니까? 나는 건우 선인이 정말로 이제 막등선한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리 대화를 해 보니 확실히 알겠군요."

건우가 잠시 몽이와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처서중이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이미 들킨 것이니 아니라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등선하고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경계심도 강하여 다른 선인들과 교류가 쉽지 않지요."

“이해합니다. 앞서 건우 선인의 모습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요."

“하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건우는 갑자기 은근해지는 처서중의 목소리에 다시 긴장감을 높이며 되물었다.

“앞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같은 법칙을 익힌 이들은 간혹 서로 힘을 모아서 어떤 일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그 말씀은 저에게 무슨 일을 함께 할 생각이 없는지 묻는 것입니까?"

“하하. 바로 그렇습니다. 이번에 꽤나 괜찮은 일을 찾았는데 혼자 하기에는 벅찬 것이어서 말입니다."

“으으음. 공헌이 꽤 되는 모양이지요?"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 다른 이에게 함께 하자고 권하겠습니까?"

처서중은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대 답했다.

건우는 그런 처서중의 제안에 고민하는 척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붙잡혀서 공헌도 따위를 쌓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이미 적잖은 공헌도가 있으니 수미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당장 할 일이 있는 나에겐 시간의 흐름은 절대 내 편이 아니지.'

건우는 정정을 만날 때까지는 한눈을 팔지 않을 결심이었기에 애초에 처서중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위금선대폭에 무슨 이유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통해서 교류를 하는 것이 건우 선인 홀로 고군분투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 때, 처서중이 건우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지나가는 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 이거 원서도 안 냈는데 입사를 한 건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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