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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딱! 고여도 너무 고여 있을 거 같다 >
“나는 위락이라 한다."
“나는 지욕계다."
“다시 보는군. 이제는 가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동도가 아닌가."
위락과 지욕계, 정강 셋 모두 건우의 수련동 거실에 마주 앉았다.
원형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네 선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을 하고서도 연신 서로를 살피기에 바빴다.
당연히 건우는 앞에 있는 세 선인을 가늠하고 있었고, 세 선인은 건우를 저울질 하는 중이었다.
그런 중에 정강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위락과 지욕계도 건우 선인에게 따로 무슨 대가를 받을 생각은 없다고 하였으니 이제 편히 이야기를 하면 되겠군."
정강이 위락과 지욕계까지 수련동부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거론하며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위락과 지욕계가 그와 같은 약속을 하고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된 것이다.
“한 번 입 밖에 낸 말이니 당연히 구차한 욕심 따위는 부리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선물이란 것도 사실은 요식(要式)에 불과할 뿐, 받아봐야 크게 가치가 있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지."
“막상 이런 일을 두고 건우 선인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후배의 선물 운운한 것은 정말로 통과 의례와 같은 것일 뿐, 위락 선인이나 내가 무슨 특별한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위락의 말처럼 받아봐야 대수롭지 않은 것들일 뿐이니까."
그런 정강의 말에 위락과 지욕계는 이처럼 자신들을 변호했다.
사실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등선 직후의 후배에게 무슨 대단한 보물을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후배의 안내를 맡게 된 선인들은 그저 소소한 수련 자원 정도를 얻어갈 뿐이라, 크게 욕심을 낼 일도 없었다.
그저 줄곧 해 오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거나, 혹은 이런 일이 소문이 나서 자신들의 위신이 깎일 것을 걱정한 것일 뿐.
“정강 선인의 말도 있었으니 나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잊기로 하지. 이런 것을 굳이 입에 올려서 소문을 낼 일은 없을 것이다."
“하하. 그러면 되는 거지. 우리 사이의 일을 굳이 퍼트릴 이유가 없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위락이나 지욕계의 작은 근심도 사라질 것이고."
건우의 말에 정강이 의도적으로 크게 웃으며 분위기를 밝게 하려 애썼다.
“그래서, 승경에 성공하여 진선경에 오르면 찾아와서 알려준다는 내용이 뭐지? 느낌으로 봐서는 무슨 규칙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대충 상황 정리가 되는 듯 하자 건우는 곧바로 세 선인을 보며 본론을 물었다.
승경 이후에 정신을 추스르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들이 등선의 통과 의례 같은 것이라며 찾아왔다.
그렇다면 승경과 동시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뭐길래 선배 선인이 등선 직후에 이렇게 찾아와 알려주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는 것일까?
건우의 시선이 정강을 비롯한 세 선인을 번갈아 쳐다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어디……. 아무래도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아 보이는군. 그래도 되겠지?"
이 때, 정강이 위락과 지욕계를 보며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두 선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이야기를 시작하지."
정강은 그렇게 건우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것은 건우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진선의 경지에 올랐으니 알겠지만 등선자가 되는 조건은 법칙을 깨달아 쓸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건 알겠지?"
“음,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법칙의 힘을 멋대로 쓰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겠지? 이전 갈협과의 일도 있었으니."
“물론이지. 법칙의 힘을 잘못 썼다가 천지 법칙의 형벌까지 받았던 몸인데."
“뭐라? 역천의 형벌을 이미 경험했다고?"
“갈협과 그런 일이 있었다고? !”
건우의 대답에 위락과 지욕계가 깜짝 놀라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이에 정강이 손을 저어 둘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내가 등선자의 앞길을 트는 중이다. 할 말이 있어도 내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끄응."
위락과 지욕계는 정강의 만류에 인상을 쓰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뭔가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건우 선인이 이미 경험했으니 알겠지만 법칙의 힘을 쓰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법칙의 힘을 순리에 맞게 쓰는 것은 순천이요, 순리를 거슬러 쓰는 것은 역천이다. 우리는 선인이 되었어도 이미 불로영 생의 역천을 저지르고 있는 상태인데, 이런 중에 법칙의 힘을 역천의 방향으로 쓰게 되면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이 내가 경험했던 그것이란 말이군. 존재의 부정과 소멸, 천지 법칙의 악의."
“옳다. 물론 역천의 정도에 따라서 받게 되는 형벌의 크기는 다르지만 피하거나 막을 수는 없지."
“당해 봐서 안다."
“그래, 그러니 법칙의 힘을 쓸 때에는 항상 천지 법칙의 뜻을 가늠하고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이다."
“으음. 그렇지 않고 역천의 방향으로 법칙의 힘을 쓰려면 그에 따른 형벌을 감당할 공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옳다. 세상에 대한 공헌, 달리 말하자면 천지 법칙의 흐름에 도움이 될 행위들이 쌓이면 어느 정도의 역천은 상쇄할 수 있지."
“그럼 그 공헌이라는 것은 어찌 알 수 있지?"
건우는 자신이 갈협의 함정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이 그 공헌 덕분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공헌을 쌓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등선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스스로 역천의 의지를 가지고 법칙을 쓰려 한다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그것을 몰랐던 것은 등선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뒤로 미뤄 둬라. 아직은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으니."
“좋다.'’건우도 당장 법칙의 힘을 쓸 마음은 없었기에 정강에게 집중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등선자의 경지는 진선,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의 단계로 나뉜다. 지금 건우 선인의 경지는 진선이라는소리지."
“금선(金仙)과 옥선(玉仙), 대라선(大羅仙), 도조(道祖)?"
“그 모든 단계는 사실상 법칙의 힘을 얼마나 강력하게 다룰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일 뿐이다. 이미 우리 등선자들은 불로영생을 얻고, 법칙의 힘을 깨달았는데 여기서 더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하지만 법칙은 무량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어찌 궁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그 깨우침의 차이가 곧 금선과 옥선이 되는 길이 아니냐?"
건우는 정강이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을 두고 법칙의 힘을 쓰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이상하여 그렇게 물었다.
“하하하. 물론 더 깊고 큰 깨달음이 곧 법칙의 힘을 강하게 쓸 수 있는 바탕이 되기는 하지. 하지만 아무리 그리 큰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경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무슨 소린지 알수가 없군."
“간단한 이치다. 등선자가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경지가 올라가는 것, 그것이 아니면 자리를 빼앗는 것."
“음? 자리를 빼앗다니? 그게 무슨?"
“상대에게 승복을 얻어 그의 경지를 빼앗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선, 옥선, 대라, 도조의 숫자는 각 법칙마다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음? 경지에 따른 선인의 수가 정해져 있다고?"
건우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깜짝 놀라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 대천 세계에는 수많은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들마다 도조 한 명, 대라 열 명, 옥선 백 명, 금선 천 명이 있을 뿐이다. 물론 진선이야 숫자에 제약이 없으니 따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내가 금선의 경지에 오르려면 금선과 싸워서 그 자리를 빼앗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지. 그것이 방법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무척 낮겠지만."
"으음."
“이리 설명을 해 주면 되겠군. 진선에 비해서 금선은 역천을 하는데 공덕을 절반 정도만 써도 된다고 할까? 천지 법칙이 그렇게 허락한 이들이 바로 금선이다."
“같은 공덕을 쌓아도 금선을 이길 수 없다는 소리군."
“그렇지. 물론 그 법칙에 대한 깨달음의 차이가 크게 나서 같은 힘을 써도 두 배 이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면 그런 금선을 상대로 승리할 수도 있겠지."
“쉽지 않겠군."
“하하하하. 물론 건우 선인의 경우에는 쌓은 공덕이 워낙 많아서 법칙에 대한 깨달음이 어지간하다면 금선을 상대로 싸워볼 만은 하겠지."
“뭐? 뭐라? 정강 선인 그게 무슨 소리냐? 건우 선인이 금선이 될 수도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제 겨우 등선을 했을 뿐인데 무슨 그런 공덕을 쌓았단……. 설마 윤회를?"
듣고 있던 위락과 지욕계가 깜짝 놀라며 정강을 다그쳤다.
그런 중에 지욕계가 윤회를 언급하며 사실에 가까운 답을 내어놓았다.
“하하하. 이 자리에 갈협이 없는 이유가 뭐겠느냐? 이미 건우 선인과 악연을 쌓은 마당이라 겁을 먹고 피한 것이 아니겠느냐."
정강이 그런 두 선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위락과 지욕계도 앞서 정강이 태도를 조심했던 것이나, 갈협이 사라진 일의 내막을 짐작하고 슬쩍 건우의 눈치를 보았다.
“내가 쌓은 공헌이 적지 않은 모양이군. 뭐 그거야 차후에 알아보면 될 일인데, 정강 선인……"
“뭐가 더 궁금하냐 물어 봐라."
“아까 상대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 경지가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그 일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다."
“짐작이 되는군. 어찌 그런 일이 생기느냐 하는 것이겠지?"
“아니, 그거야 금선들 중에 누가 탈이 나서 공석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진선들 중에 누군가가 금선이 되는 것이겠지.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오호? 역시 영민한 데가 있군. 그래 그것을 안다면 뭐가 더 궁금한 것이지?"
정강은 건우가 짧은 시간에 그런 상황까지 유추한 것에 놀라면서도 다음에 나올 질문을 궁금하게 여겼다.
“간단한 것이다. 빈자리가 생겨서 승경을 하게 된다면 그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거지. 공헌을 많이 쌓은 것인가? 그게 아니면 법칙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야 하는 것인가?"
건우는 그렇게 물으며 정강을 바라봤다.
“으음. 확실한 것은 나도 모른다. 다만 금선들끼리 모여서 빈자리를 채운다는 이야기를 언뜻 듣기는 했다."
“그렇지. 나도그런 이야기를들었지. 일정 지역의 금선들이 모여서 빈자리에 오를 선인을 정하는 일이 있다고 했지."
“아니, 내가 듣기로는 금선들 중에서도 몇몇 이들이 결정을 한다고 했는데?"
정강의 말에 위락과 지욕계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하지만 들어보면 그 내용이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오롯이 천지 법칙의 뜻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란 소리군. 그렇다면 죽어라 수련하고 깨달음을 얻어도 금선이 되기는 어렵겠군. 인맥이 없으면."
세 수사의 말에 건우는 선계에서의 승경이 마냥 투명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진선까지는 스스로 능력만 있으면 어찌어찌 올라설 수 있지만, 선인들은 상황이 달랐다.
‘이건 뭐, 보나 마나 패거리를 지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놈들이 똘똘 뭉쳐 있겠군.'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인지라 건우는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이어서 나머지 설명을 해 주지."
그 때, 정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건우는 자세를 바로 하고 정강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등선자는 무엇보다 이것 한 가지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신이 깨달아 쓰는 법칙에는 그 주인인 도조(道祖)가 있다는 사실."
“각 법칙에 오직 한 명,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도조?"
“그렇다. 법칙을 장악한 도조의 의지는곧 그 법칙의 순리 그 자체다. 천지 법칙이란 사실상 그 도조들의 뜻이 모여 만들어진 흐름인 것이다."
“가히 상상이 안 되네. 선인 한 명의 의지가 곧 법칙의 순리와 역리를 결정한다니."
건우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그러니 등선자들은 항상 법칙을 사용함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역천의 의지를 가진다는 것은 곧 도조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천지 법칙의 형벌이 내리는 것이니."
“와, 미치겠네. 결국 천지 법칙의 형벌도 도조들의 뜻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거네?"
“그러니 괜히 위로 올라가려는 뜻을 품지 말고 진선의 불로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이것이 선배 선인들이 후배 선인에게 내리는 가르침이다."
정강은 그렇게 등선자에 대한 안내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정강 선인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그렇지. 다른 등선자에겐 의미가 없겠지만 건우 선인에겐 꼭 말을 해 줘야 하는 것이 빠졌네."
“음? 아아! 그래. 그렇군. 그게 있었어."
하지만 정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락과 지욕계가 훈수를 두었고, 정강도 곧바로 뭔가를 깨달은 듯이 무릎을 쳤다.
“뭐지?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이어진 건우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 틀딱! 고여도 너무 고여 있을 거 같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