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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22화 (422/499)

(422)

< 내가 못 먹으면 너도 못 먹는다 >

“이제 어찌 할 테냐? 네가 이제 와서 내 계획을 알았다고 한들 어쩔 도리가 있느냐? 죽음을 택하거나 혹은 내게 대속을 부탁하는 것밖에는 남은 수가 없음이다.”

건우의 말에 갈협은 회심의 미소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그는 이제 건우를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은 상태라 마음의 여유가 가득했다.

법칙을 사용하여 흐름을 거스른 것에 대한 천지 법칙의 징벌은 어떤 수로도 피할 수가 없다.

있다면 오직 그 동안 쌓은 공헌을 이용하여 무마하는 것 뿐.

이는 진선경을 넘어 금선, 옥선, 대라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가장 완벽하게 법칙을 장악하여 그 법칙의 주인이 된 이들, 즉 도조(道祖)에 이르러서야 법칙 사용에 제약을 받지 않을 뿐, 그 이하는 법칙의 사용과 제약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그러니 눈앞의 강건우란 놈이 어찌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스스로 소멸을 택하는 독심을 품었을 경우이지만 갈협이 아는 수사들은 그리 쉽게 소멸을 택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있기만 하면, 그것이 노예 신세라 할지라도 솟아날 구멍을 노려볼 수 있으니 눈앞의 저 놈도 마땅히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믿었다.

“제가 갈협 선인에게 대속을 받으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까?”

건우가 물었다.

그리고 갈협은 회심의 미소를 얼굴 가득 떠올렸다.

건우의 반응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것 있겠느냐. 너도 권속에 대해서 알 것이다. 너는 내 권속이 되어 주면 될 일이다.”

“권속이라면 자유 의지는 있는 것입니까?”

“하하하. 그야 이를 말이겠느냐. 의지가 자유롭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등선을 할 수 있겠느냐. 다만 등선을 하더라도 내 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영혼의 금제를 받아야 할 뿐이다.”

“명령으로 의지를 제약할 수도 있겠군요. 그것이 아니면 권속으로 만든 후에도 언제든 의지를 빼앗을 수도 있겠고 말입니다.”

“흐음. 그것을 걱정한단 말이냐? 어차피 등선 이후에는 불로불사하며 영생을 누린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이상 자연적인 죽음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 영구한 시간을 가진다면 권속이 되더라도 어찌 벗어날 기회를 찾지 못하겠느냐.”

“길고 긴 시간속에서 갈협 선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때를 노리란 말씀입니까? 하하하.”

건우는 갈협 스스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것은 곧 갈협도 권속에게 그런 틈을 절대 내주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영혼의 금제? 그것도 인계나 영계의 수준이 아니고 선인들의 금제인데 얼마나 무서울까. 그런 것을 벗어날 방법? 차라리 윤회에 들었다가 다시 지금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겠다.’

건우는 크게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이제 더 무엇을 물어봐야 상황에 맞추어 등선자들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원래부터 건우는 갈협의 노예 따위는 될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역법반서복원 대법을 완전히 믿기는 어려워도 갈협의 노예가 되느니 그 쪽으로 도박을 하기로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다만 갈협과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등선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을 뿐이었다.

‘일단 법칙의 힘을 쓰는 것과 세계에 대한 공헌도에 대해서 들었으니 그것을 조금 더 물어 볼까? 하지만 분명 이상하게 여길 것 같은데?’

건우는 웃음소리를 줄이면서 다음 수순을 떠올리지 못해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계속 갈협의 권속이 될 것처럼 하며 이야기를 끌어 보기로 했다.

“제가 선인의 권속이 되고도 정말 이후에 선인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만.”

“그러냐? 그래서 그냥 소멸을 택하겠단 말이냐?”

“그것이 아니라, 조금 조건을 완화하여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이를테면 권속으로 보낼 기간을 한정하거나 혹은 제가 갈협 선인께 대속할 공헌도의 양을 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것 참, 제 좋을 대로 입을 놀리는구나. 너는 내가 그리 해 줘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느냐?”

“네?”

“네게 남은 선택이란 고작해야 소멸을 당하거나 혹은 나에게 대속을 청하는 것뿐이라 했다. 그리고 그 대속의 대가는 나의 권속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조건을……"

“그러니 말하는 것이 아니냐. 소멸을 하거나 조건 없이 내 권속이 되거나.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 뿐이니라.”

건우가 뭔가 항변을 하려 했지만 갈협은 단호하게 야박한 조건을 내밀고 선택을 강요했다.

소멸하거나무조건 자신의 권속이 되거나.

“하지만 갈협 선인께서 이번에 대속을 한다고 해도 그게 얼마다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조건이 가혹합니다.”

“뭐라?”

“솔직히 선인의 대속이 제가 권속이 되어 영생을 노예로 부림받을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닐 듯 합니다.”

“하하. 그래서?”

“그러니 이는 부당하다는 말입니다.”

“부당? 그래, 그렇다고 하자. 그래서 네가 어쩔 것이냐? 몇 번을 말하는 것이지만 원치 않으면 소멸을 택하면 그만이다. 나는 강요를 하지 않을 것이니.”

갈협은 얄미운 눈빛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슬쩍 몸을 비틀어 앉았다.

건우는 그 모습에 슬며시 이를 악물었다.

갈협이 더는 대화를 나눌 뜻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고, 천지 법칙의 기운은 이제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처럼 언제 자신의 몸을 찌르고 들어올지 모를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수천, 수만의 날카로운 예기(銳氣)가 찢어발길 듯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건우는 그 느낌을 통해 천지 법칙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천겁뢰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몸과 정신이 모두 굳어가는 두려움이 거기에 있었다.

“어쩔 것이냐? 대속도 기회를놓치면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 때, 천지 법칙의 기운을 새삼 느끼고 있는 건우에게 갈협이 경고를 담아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제 정말로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인 것이다.

“저는……"

“잠시 기다려라. 이런 일에 어찌 경쟁이 없을 수가 있을까.”

건우가 자신의 뜻을 밝히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쥘부채를 쥔 학사풍의 선인, 정강이 갈협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누, 누구십니까?”

건우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자신의 수련동을 이처럼 거침없이 드나드는 선인들이라니.

새삼 그들과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이냐? 내가 바로 정강이다.”

건우의 물음에 정강이 좌롹 부채를 펼쳤다가 접으며 말했다.

그런데 정강이 그렇게 부채를 펼쳤다가 접는 순간, 건우를 압박하고 있던 천지 법칙의 기운이 두어 걸음 물러났다.

마치 형벌 집행의 유예를 주겠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건우는 그 기운의 압박이 조금 느슨해지자 살짝 한숨을 쉬고는 공수를 하며 정강에게 인사를 올렸다.

“몰라뵈어 송구합니다. 말학(末學) 강건우가 정강 선인을 뵙습니다.”

“그래, 그래. 이전에는 그저 심언만 전했으니 보는 것은 처음이지. 이해한다.”

“감사합니다. 정강선인.”

“그런데 갈협 선인께선 내 등장이 마땅치 않으신 모양입니다?”

건우의 인사를 받던 정강이 문득 갈협을 내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갈협이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 렸다.

“하하하. 이해합니다. 갈협 선인이 짜놓은 판인데 이 불청객이 뛰어들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요. 하지만 원래 수도계가 다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끄응.”

정강은 갈협을 놀렸고, 갈협은 속이 상해서 앓는 소리만 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이야기를 해 볼까? 건우 수사.”

“네,정강선인.”

“너는 어쩔 것이냐 이대로 갈협의 권속이 될 것이냐? 아니면 내가 하는 다른 제안을 들어 볼 것이냐?”

“당연히 갈협 선인보다 후한 조건이라면 정강 선인의 말씀을 들어봐야겠지요.”

“하하하. 그렇지? 그게 당연하지. 그럼 내 갈협 선인과는 다른 조건을 내어보마.”

“말씀하시지요.”

“내가 지금 네게 닥친 천지 법칙의 형(刑)을 대속해 줄 것인즉. 너는 이후 그것을 열 배로 갚을 수 있겠느냐?”

“실로 관대하십니다. 당연히 이 강모는 정강 선인의 뜻을 따를 생각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다 갚기 전까지 너는 내 권속이 되어야 한다.”

“네? 권속… 이라는 말씀입니까?”

“그저 법칙을 거스른 것에 대한 공헌만 대속해서야 어찌 내가 만족할 수가 있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그. 그야……"

건우는 정강의 말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어차피 권속이 되는 금제를 받으면 그 이후 정강이 약속을 어긴다고 해도 그것을 막을 방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영혼에 건다는 금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영혼 금제로 권속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맹세하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까?”

건우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정강에게 물었다.

“하하하. 저 놈의 눈치가 여간 아니란 말이지. 보십시오 정강 선인, 그리 호락호락 속여 넘길 놈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데 어찌 그리 얄팍한 수작을 부린단 말입니까? 내가 그것을두고 볼 것 같았습니까?”

건우가 망설이자 이번에는 갈협이 크게 웃으며 정강을 놀렸다.

그러자 정강도 멋쩍은 듯 옅은 웃음을 지으며 부채로 얼굴의 열을 식혔다.

“실로 정강 선인의 개입으로 우리 모두 크게 손해를 보게 생겼습니다.”

그런 정강을 향해 갈협이 원망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정강이 또다시 밝은 얼굴로 갈협을 보며 말했다.

“따지자면 누구든 손해랄 것이 있습니까? 그저 갈협 선인은 큰 이득을 보지 못하게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손해는 아니지요. 그리고 저로 말하자면 일이 잘 되면 작은 이득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고, 일이 안 되더라도 별 손해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와 이렇게 척을 지는 것이 별 손해가 아니라 하시니 어디 두고 보아야 되겠습니다.”

“하하하. 우리들끼리 이렇게 다투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무에 그러십니까.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갈협은 화를 내고 정강은 다시 그런 갈협을 놀리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건우는 그런 둘을 보며 지금 상황이 자신에게 매우 유리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팔 물건은 하나인데 살 사람이 하나 더 늘었으니 당연히 파는 쪽이 유리해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자, 그럼 이제 갈협 선인께선 어쩌시겠습니까? 듣자니 권속이 되는 영혼 금제는 제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듯 하고 말입니다.”

건우는 둘이 경쟁을 하면 영혼 금제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란 판단을 세웠다. 그러자 느긋해진 마음에 갈협을 보며 ‘제시’를 시전했다.

“이, 이이이익!"

갈협은 그런 건우의 태도에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의 뿔에서 회색 안개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 자신의 뜻과는 다르니 그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이 된 것이다.

“허어! 갈협 선인 조심하십시오. 여기서 저 어린 강가 놈과 법칙 대결을 했다가는 그 뒷감당을 모두 갈협 선인이 해야 할 것임을 모르십니까?”

이에 정강 선인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말로는 갈협 선인에게 그럴 듯한 충고를 던졌다.

“크하하하. 참으로 일이 우습게 되었다. 마침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 미꾸라지 같은 정강, 네가 일을 망치는구나. 좋다! 까짓 작게 먹을 것 같으면 아예 먹지 않고 말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든좋 은 일을 시킬 것이 무엇이냐! 이참에 깔끔하게 끝을 내고 말리라!”

정강의 충고가 결국 갈협의 마지막 이성을 무너뜨렸음인가.

갈협이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회색 안개를 빠르게 사방으로 흩뿌렸다.

파지지지직!

“어엇! 이게 무슨! 갈협 선인 이게 무슨 짓이오!”

“무슨 짓은! 보면 모르나! 그냥 저 어린 놈이 천지 법칙의 형벌을 받아 소멸하면 그 뿐이지 않나!”

정강이 놀라 고함을 지르고 갈협이 그에 대꾸를 할 때, 건우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정강이 나타나며 슬쩍 밀어 뒀던 천지 법칙의 형벌이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밀어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갈협이 부식 법칙의 힘을 이용하여 정강이 천지 법칙의 형벌을 멈추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결계를 녹여 버린 것이었다.

“끄응! 늦었군!”

“하하하. 내가 갖지 못하는데 정강 선인이라고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소?”

정강이 탄식하고 갈협이 광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건우는 그 순간 천지 법칙의 형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 내가 못 먹으면 너도 못 먹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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