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21화 (421/499)

(421)

< 갈협의 강력한 노림수 >

파스스스스스슷!

"으음."

법칙의 힝을 이용하여 신수의 알에 생기를 부여하고, 그것을 이미 알 속에 있던 기운과 조율하는 마지막 과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자신을 에워싸고 피어오르는 낯선 기운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벌써 여섯 번째.

신수의 알이 온전한 상태가 될 때마다 일어났던 변화라 건우도 이제 그 기운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낯설지만 위험하게 느껴지는 기운.

아마도 알을 의념 공간에 넣어 버린다면 그 기운 역시 사라질 것이다.

‘이게 무슨 알인지는 몰라도 천지 법칙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알이 온전해지는 것은 천지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확실하고.’

건우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알이기에 천지 법칙까지 이토록 직접적으로 관여를 한단 말인가.

문득 건우는 알을 폐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갈협과의 거래가 있으니 그것도 어려웠다.

영찬후를 받는 것도 받는 것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갈협이 건우를 공격할 확실한 명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조언을 건넨 정강이란 선인도 그런 면을 조심하라 했었다.

갈협이 건우를 강제로 어쩌지 못하는 것은 등선을 하지 못한 건우와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 그때에 사용된 법칙의 힘에 대한 책임을 갈협이 모두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명분이 확실한 경우엔 그런 제약을 벗어날 방법도 있으니 갈협에게 확실한 명분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어차피 줄 것은 줘야 하겠지. 이런 불길한 것은 차라리 빨리 갈협에게 넘기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

건우는 비단으로 된 두툼한 방석 위에 한 쌍의 알을 올려 탁자에 놓았다.

계란 크기의 알은 처음에는 그저 새하얀 옥을 깎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건우의 손을 거쳐서 생기를 부여받고, 내면의 기운이 안정되자 금빛과 은빛의 신비로운 문양이 알의 표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알의 기운이 모두 조율되어 안정되자 각각 음과 양의 기운을 따로 품게 되었는데 그 기운이 사뭇 강렬했다.

‘음, 부화를 위해서는 아직도 필요한 것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아마도 그것은 갈협이 알고 있겠지.'

건우가 그렇게 다시 한 번 알을 살피고 있을 때, 문득 기척이 일어나며 갈협이 건우의 맞은편 의자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건우는 앉은 자세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갈협은 그런 건우의 태도에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탁자 위에 놓인 알들을 바라봤다.

건우는 갈협이 알을 살피는 것을 알고 속으로 바짝 긴장했다.

갈협이 알의 상태를 가지고 반발을 한다면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다!”

하지만 갈협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갈협은 곧바로 소매에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 알이 있는 방석 옆에 내려놓았다.

건우는 슬그머니 상체를 기울여 그 주머니를 들고, 주둥이를 열어 내용물을 손바닥에 털어냈다.

그러자 영찬 세 개가 건우의 왼손바닥에 떨어졌다.

“맞습니다. 제게 주기로 하신 그 영찬후가 확실하군요.”

건우는 곧바로 그 영찬후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임을 확인했다.

“그럼 이제 서로 교환하면 되는 것이겠지?”

갈협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건우는 그것이 소유권 이전을 확인하는 과정임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필요한 이유가 주변에 자욱하게 깔리고 있는 천지 법칙의 서늘한 기운 때문일 것임도 짐작했다.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건우는 이대로 교환을 끝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확인?"

“천지 법칙의 사나운 기운이 지금 이곳에 가득한데, 이것이 무슨 이유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알들과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가 그것까지 알려줄 까닭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수도계의 신비를 알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임을 모르느냐?”

건우의 물음에 갈협은 입꼬리를 말아 올려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도계의 신비라……. 분명 그렇기는 하지요. 그런데 막상 지금의 상황을 되새겨보면 제가 갈협 선인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또한 네 선택이었으니 결과에 대한 책임도 마땅히 네 몫이겠지.”

건우의 말에 갈협은 어서 알을 내어놓으란 듯이 방석과 비단 주머니를 번갈아 보며 눈짓을 했다.

그런 갈협의 모습에 건우는 여기서 판을 엎으면 어떻게 될지를 잠시 고민해 봤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자신은 진선경의 선인을 상대로 너무 많은 도발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거래를 엎게 되면 그 즉시 갈협이 건우를 제압할 명문을 얻게 될 것 같았다.

“무얼 망설이느냐? 너는 설마 나와의 약속을 어길 생각이더냐?”

“그건…….아닙니다.”

“그럼 이제 거래가 끝난 것으로 보아도 되겠지? 나는 네가요구했던 영찬후 셋을 넘겨주었고, 너는 신수의 알을 부화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약속이었으니.”

“으음. 맞습니다. 이미 제 손에 이렇게 영찬후 세 개가 들어왔으니 여기 이 알들은 마땅히 갈협 선인의 것입니다.”

건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시원하게 갈협과의 거래를 끝마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아!”

갈협은 건우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허벅지를 치고는 방석 위에 놓여 있던 알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즉시 알들은 갈협의 소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하하하핫, 좋구나! 좋아. 아주 제대로 되었어.”

갈협은 신수의 알을 손에 넣고는 더없이 기쁜 얼굴로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의 웃음이 이어지는 중에 건우에게 뭔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이건?”

그것은 지금까지 고요히 주변을 장악하고 있던 천지 법칙의 서늘한 기운이 일으킨 변화였다.

그 기운은 점차 날카롭게 변하여 건우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 불규칙적으로 배열된 듯 보이는 그 날카로운 끝단은 그럼에도 어디 한 곳 빠져 나갈 틈이 없어 보였다. 건우는 그 기운들이 결국은 자신을 찌를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건우의 판단은 빨랐다.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지 법칙의 형벌이었다.

“이게 어찌 된 것입니까?”

건우가 갈협을 보며 물었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허허로운 모습이었다.

“네가 천지 법칙의 기운을 느낀다고 하더니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갈협이 그런 건우를 보며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알 하나를 온전하게 하는 이것이 이리도 천지 법칙의 질서를 어기는 일이었습니까?”

건우가 다시 갈협을 보며 물었다.

“짐작은 한 모양이구나. 그렇다. 음양통천수는 실로 간단치 않은 신수지.”

“그 알들이 음양통천수라는 신수의 알이었습니까?”

“네가 알기는 어려운 신수지. 그만큼 큰 비밀을 가지고 있는 신수이기도 하고.”

“천지 법칙이 이리 거칠어진 이유는무엇입니까?”

“음양통천수는 그 자체로 음양의 법칙을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수다. 음양통천수가 사용하는 음양의 법칙은 근본에 가까운 것이라 쉽게 써서는 안 되는 것이지.”

“그렇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적당한 숫자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때문에 음양통천수가 알을 낳아도 천지 법칙이 허락하지 않으면 부화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알을 저에게 맡겨 역천을 하게 했단 말이군요.”

“옳다. 너는 몰랐겠지만 네가 한 행동은 확실히 천지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지.”

“감히 태령기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을 시키신 것이군요?”

“나야 원하는 것만 얻으면 그만이 아니더냐.”

“그래서 끝까지 거래의 완료를 재촉했던 것입니까? 거래가 완료되지 않으면 갈협 선인께서도 역천의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했던 것이군요.”

“역시 영민하구나. 네 말이 옳다. 물론 지금의 나도 온전히 책임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 하지만 거래가 완료됨으로서 내가조금 더 홀가분해진 것은 분명하지.”

“그럼 이제 저는 천지 법칙의 벌을 피하지 못할 테니 이대로 죽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건우는 그다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천지 법칙의 형벌을 벗어날 길이 없음을 깨달은 후로 건우는 줄곧 허허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하하. 너는 참으로 묘하구나. 상황이 이리 되었으면 분노하며 날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차분해.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구나.”

“그렇습니까?”

“그래서 물어보마. 너는 여기서 소멸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냐?”

“소멸……

“진선경 이상도 버티기 어려운 천지 법칙의 형벌을 받고 태령기 따위가 어찌 소멸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렇군요.”

“그래서 묻는 것이다. 이대로 소멸하고 말 것이냐?”

“다른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건우는 갈협의 물음에서 소멸을 피할 길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야 당연하지. 너는 대속(代贖)이라는 말을 아느냐?”

“제게 올 천지 법칙의 형(刑)을 대신 받아주시겠다는 말입니까?”

건우의 눈빛 깊은 곳에서 작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이를 말이겠느냐. 너는 모르겠지만 등선경의 선인들이란 모두가 법칙의 힘을 다루는 이들이다. 그럼 그들 선인들이 항상 천지 법칙의 흐름에 맞게만 법칙의 힘을 쓰겠느냐?”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선인이라 하지만 그들 모두가 역천자에서 비롯했는데 어찌 천지 법칙에 순응만 하겠습니까.”

“그렇지, 그 말이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선인들이 모두 천지 법칙의 벌을 받아 소멸하지는 않지.”

“그것은 갈협 선인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군요. 저야 천지 법칙의 벌을 앞두고 소멸을 각오하고 있지만 갈협 선인은 태평하니 반드시 그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다. 천지 법칙의 흐름에 맞지 않게 법칙의 힘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그것을 상쇄할 공헌을 세워 두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

“공헌이라 하셨습니까?”

“그러하다. 이 대천 세계에서 천지 법칙의 흐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할수록 그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쌓이게 되지. 그러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천지 법칙의 흐름을 어느 정도 거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으음. 공(功)으로 과(過)를 덮는다는 말이군요?”

“하하하하. 그렇지. 그러니 어떠하냐?”

“무슨 말씀입니까? 어떠하냐니요?”

“네가 받을 천지 법칙의 형벌을 내가 대속해 줄 것인 즉, 너는 내 밑에서 한동안 수족 노릇을 좀 하겠느냐?”

“……!! 이제 알았습니다. 그런 것이군요. 이 강모는 갈협 선인에게 감탄, 또 감탄합니다. 하하하하.”

갈협의 말에 건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어서 두 손을 모아 공수를 하며 크게 웃었다.

그런 건우의 모습을 갈협이 의아한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봤다.

이어질 건우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저를 이용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노리셨습니다. 음양통천수라는 신수를 얻은 것으로 모자라, 결국 천지 법칙의 재앙을 받게 될 이 몸까지 노예로 부릴 계획이 아니셨습니까. 실로 고명한 한 수라 하겠습니다.”

건우는 이전과 달리 서늘한 눈빛으로 갈협을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갈협의 수작이 참으로 교묘하지 않은가.

이대로 건우가 천지 법칙의 형벌을 받아 소멸을 한다고 해도 갈협으로선 손해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찌 건우라고 이대로 죽기를 바랄까.

살길이 있다면 갈협의 노예가 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수사라면 당연히!

하지만 건우는 그런 일반적인 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믿는 바가 있었으니까.

- 천지 법칙의 힘에 죽어도 역법반서복원대법(逆法反臟復元大法)이 발동을 할까요?

물론 몽이의 말처럼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 갈협의 강력한 노림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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