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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누가? >
신수의 알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첫 시도에서 성공을 거둔 상태였으니 과정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건우는 온전한 신수의 알을 만드는 것에 매번 실패한 모습을 연기하며 네 쌍의 알을 모두 마지막 단계에서 의념 공간으로 넣어 버렸다. 갈협이 완성된 신수의 알을 감지하고 건우를 찾아왔던 딱 그 정도에서 알을 의념 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이제 마지막이네요? 이것도 실패했다고 의념 공간으로 숨기면 갈협 선인이 난동을 부릴 테죠?
‘그렇겠지. 그래서 이건 그냥 갈협에게 넘기려고.’
부화가 가능한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서요?
‘솔직히 장난질을 좀 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 들키지 않을 정도의 장난은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들키지 않을 정도요?
‘부화는 되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모자란 정도? 그 정도 수준으로 하면 되겠지. 갈협이 바란 것은 부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거였으니까.’
흐음. 그 정도에서 만족을 할까요?
‘일곱 쌍 중에서 제일 마지막 한 쌍이 겨우 성공한 것이 그런 수준이라는데 어쩔 거야? 속상해도 하는 수 없는 거지.’
하긴, 그것도 그렇죠.
‘거기다가 정말 제대로 완전한 알을 만드는 건 굉장히 위험할 거 같지 않냐?’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가 있는 곳은 수련 동부였지만 지금 의념을 펼쳐 살피는 범위는 수백 리에 달했다.
건우는 그 범위에서 이전과는 다른 서늘한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내가 신수의 알인지 뭔지 하는 이것들을 온전한 모양으로 만들 때마다 뭔가 위험한 기운이 들끓었다.’
건우 님이 그렇다고 하셔서 저도 신경을 곧추세워서 살폈죠.
‘뭔지는 몰라도 굉장히 위험한 기운이야. 마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천겁뢰가 정수리에 떨어지기 직전의 느낌과 같아.’
신수의 알을 완성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란 거죠. 갈협 선인도 신수의 알이 완성되면 천지 법칙이 반응을 한다고 했었고요.
‘그래, 그런데 그 반응이란 것이 꽤나 사납다는 것이 문제지. 이건 정강이란 선인도 말을 해 주지 않았던 거지.’
건우 님이 이미 말씀하셨잖아요. 정강도 믿기 어렵다고요.
‘그래. 아무튼 그래서 나도 이 알에 약간의 장난을 치겠다는 거다.’
- 건우 님이 하시고 싶은 대로 하셔야죠. 다만 갈협 선인이 그걸 알아차리면 세 개의 영찬후 중에 한둘을 빼려 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하나라도 뺀다면 굳이 신수의 알을 갈협에게 넘길 이유가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신수의 알이 지닌 가치가 평범치 않은 거 같거든.’
건우는 자신이 알에 수작을 부리더라도 갈협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약속이 알들 중에 한 쌍을 부화 가능한 상태로 만든 것이 아니 던가.
그렇다면 자신은 그 약속을 확실히 지킬 수 있었다.
알에서 부화한 후의 상태까지야 자신의 책임이 아니지 않겠나.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쌍의 알에 생기를 불어넣고, 알 내부에서 날뛰는 기운들을 진정시켜 조율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실패는 없다. 그저 얼마나 완전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가 하는 것이 문제일 뿐.’
완전한 듯 보이지만 부화까지만 장담할 수 있는 상태.
차라리 그런 조절이 더 힘겨운 건우였다.
* * *
“내가 생각을 해 봤습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정강과 마주 앉은 갈협이 말했다.
“둘이 되었다고 또 말투가 바뀐 것입니까?”
그런 갈협을 향해 정강이 살짝 웃으며 농담처럼 물었다.
“정강 선인을 위락이나 지욕계와 동급으로 둘 수가 있겠습니까. 전에야 넷이 함께 있는 자리였고, 그들이 평대를 하니 저 또한 그리했을 뿐이지요.”
갈협은 정강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런 갈협의 표정은 말과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긴 말투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아무리 서로 존대를 한다고 해도 말속에 칼날을 심었다면 그게 더 문제겠지요.”
정강도 갈협의 태도가 평소보다 경직되어 있음을 깨닫고 슬쩍 견제를 해 보았다.
“제가 정강 선인에게 악심을 품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니란 말입니까?”
“그저 어떤 일을 생각하던 중에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을 뿐이지요.”
“일에 대한 궁금증이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어차피 드릴 말씀이었습니다.”
갈협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정강을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정강 선인, 혹시 강건우란 놈과 일을 꾸미셨습니까?”
“강건우, 등선 전에 법칙을 두 개나 깨달았다는 놈을 말하는 것이지요?”
“말을 돌리지 마시고, 시원하게 답을 주시지요.”
“그것 참, 이리 단도직입으로 물어 오시니 난처합니다.”
“난처할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려?”
“그것 참. 그렇습니다. 내가 그 강건우란 수사 놈에게 조언을 좀 했지요.”
“역시!”
갈협은 정강의 말에 무릎을 쳤다.
누군가 강건우에게 등선자들의 일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강건우란 놈이 대가리를 쳐들고 대거리를 했던 것이다.
특히 법칙의 힘을 이용하여 어떤 일을 벌일 때에, 천지 법칙의 강력한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강건우 그 놈이 아는 듯하지 않았던가. 그것만 아니었다면 갈협은 충분히 강건우 그 놈을 찍어 눌러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역시 영찬후 때문이었습니까?”
“영찬후, 내가 그것을 욕심 낸다 생각하시는 겁니까?”
“웃기는 소리! 그 반대겠지요. 정강 선인이 가진 두 개의 영찬후를 비싸게 팔아먹기 위해서 중간에 끼어든 것이 아닙니까.”
“어허! 어찌 그리 생각을 하셨답니까?”
갈협의 말에 정강이 감탄인지 놀람인지 모를 탄성을 지르며 물었다.
“어차피 영찬황을 얻기는 어려워진 상태, 그렇다면 정강 선인의 손에 있는 영찬후 두 개는 그리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 그것으로 이익을 얻어보자고 한 것이 아닙니까.”
“하하하. 옳습니다. 역시 갈협 선인은 내 배의 회충까지 아시는 듯합니다.”
“이익 지금 내 앞에서 그것을 시인하며 웃는단 말입니까!”
갈협이 정강을 향해 크게 고함치며 화를 냈다.
“무에 그리 과하게 반응을 하십니까? 솔직히 갈협 선인이 그 강건우에게 취한 이득을 생각하면 이번에 내가 끼어든 일 정도야 큰 문제도 아니지요. 나는 고작해야 영찬후 두 개를 좋은 값에 팔고 싶을 뿐이니까요.”
“끄응. 내가 얻을 이득이라고 했습니까?”
“설마 내가 갈협 선인이 부화시키려는 알의 정체를 모를 거라 생각하십니까?”
“으음. 그걸 어찌?!”
정강의 말에 갈협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엄청난 보물을 고작 영찬후 하나로 얻어 내려 하셨다니, 갈협 선인도 참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그걸 방해하려고 그 놈에게 조언을 했다는 말입니까?”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방해를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까드득. 방해를 해서 얻을 것을 만들겠다는 저의가 아닙니까. 결국 내가 정강 선인이 가지고 있는 영찬후 두 개를 얻어야 할 상황이 되었지요. 정강 선인께선 강건우 놈을 움직여 그렇게 만든 것이 고말입니다.”
갈협은 화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거칠게 이를 갈았다.
“어허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너무 과하면 동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이번 일이 액땜이라 생각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닌 말로 내가 정말 갈협 선인의 일을 방해하고자 했다면, 여기에 위락과 지욕계가 없겠습니까?”
“끄응.”
정가의 말에 갈협이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말았다.
여차하면 위락이나 지욕계까지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협박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정강의 태도로 보자면 자신이 얻어야 할 영찬후 두 개의 값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좋습니다. 구구절절 떠들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하는 것을 말해 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주면 정강 선인이 가지고 있는 영찬후 두 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아주 시원시원 하십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항복 선언과 같은 갈협의 말에 정강이 크게 웃으며 연신 무릎을 쳤다.
그리고 웃음이 끝나자 정색을 한 정강이 갈협을 보며 말했다.
“음양통천수(陰陽通天獸)의 음수(陰獸)를 주시지요.”
“뭐? 뭐라? 이 미친 놈이!”
그러자 곧바로 갈협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갈협의 뿔에서 뇌전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회색의 강력한 기운이 안개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회색의 기운이 의자와 탁자에 닿는 순간 그 부분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썩어가기 시작했다.
선계의 희귀한 돌이 중심 재료인 탁자와 의자가 순식간에 썩어가는 것은 갈협이 익히고 있는 부식 법칙의 힘 때문이었다.
이에 정강 역시 슬그머니 자신이 익힌 연환(聯環) 법칙의 힘을 언제든 펼칠 수 있게 끌어 올려 갈협의 위협에 대비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갈협은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긴 한숨과 함께 힘을 갈무리하며 정강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그 말이 농이 아니라면 앞으로 정강 수사와 내가 한 배를 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말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 나에게 원하는 것이 음양통천수의 음수가 맞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갈협의 모습은 정말로 생사결을 앞에 둔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만큼 정강의 요구는 갈협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음양통천수는 이번에 강건우를 통해서 부화시키려는 신수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음양이란 말이 붙은 것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이 신수는 암수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암컷을 내어놓으라니!
애초에 음양 즉, 암컷과 수컷이 함께 있어야만 신수가 될 수 있는 것을 나눠 가지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갈협이 분노를 누르며 정강에게 다시 한 번 뜻을 확인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음양통천수를 나누면 그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을 정강도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 갈협이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는 요구를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강이 그런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숨겨진 다른 뜻이 있다는 소리. 갈협은 그 점에서 아직은 정강과의 협상에 여지가 남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서 그렇다고 했다간 나와 갈협 선인 중에 하나가 여기서 죽어 나갈 수도 있겠습니다그려. 이런 상황에서 내 말이 농이 아니라 할 수는 없겠지요. 하하. 맞습니다. 그저 가벼운 농이었습니다. 어찌 내가 갈협 선인의 신수를 노리겠습니까? 그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지요.”
“그래요?”
“하하. 그렇습니다. 그러니 진정하고 앉으시지요. 부식 법칙의 힘도 잘 갈무리를 하시고요. 작은 힘이라도 그리 흘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정강이 갈협을 달래며 쥘부채를 살짝 휘둘러 원래 있던 탁자와 의자를 어디론가 날려 보냈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탁자와 의자를 바닥에서 뽑아 올렸다.
“어디 이야기나 다시 들어 봅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찬후 두 개입니다. 당연히 그 영찬후가 어떤 것인지는 아실 테니 딴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괜히 영찬후로 장난을 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소리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영찬후 두 개가 결국 음양통천수가 된다는 것을 아는데 싸게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이해하시겠지요?”
정강의 말에 갈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저도 이제 진짜로 바라는 것을 말씀드리지요. 갈협 선인께서 가지고 계신 보물 중에……"
정강은 아쉽지만 일단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어차피 진짜 음양통천수의 음수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느끼게 하기 위한 수작이었을 뿐.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누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