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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17화 (41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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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인(仙人) 갈협(葛依)의 방문 >

거룡 비행 령보는 성륜역을 뒤로 하고 암해를 건너 반지천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갔다.

과거 경지가 낮았을 때와는 달리 고작 백여 년이 조금 넘는 비행 끝에 건우는 반지천에 다시 도착했다.

“장우였을 때에, 고작 영체기로 이곳에서 떠났는데, 이제는 태령기 완경이 되어 다시 이곳에 섰구나.”

건우는 거용을 세우고 그 머리 위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땅거죽을 들어 올려 비스듬하게 세워 놓은 것 같은 땅의 모습.

이전 혼천괴가 머물던 거대한 호수와 그 호수의 지하에 있던 세계가 서로 뒤엉켜 천번지복(天勸地覆)을 일으켜 만든 반지천(半地天)의 모습이었다.

저 곳에 다시 가실 일이 있어요?

반지천을 바라보는 건우 앞에 몽이가 나타나 물었다.

“아니, 그저 옛 인연이 떠올라서 잠시 보러 왔을 뿐이다.”

미우 수사요?

“그래. 그녀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직 나와의 인연이 끊어지진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그 당시, 지하 세계가 수몰될 때에 미우 수사를 데리고 간 존재가 아무래도 진선경의 신선일 확률이 높죠. 그리고 어쩌면 미우 수사에게 그것이 기연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 그저 막연히 연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느껴질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껏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제법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건우 님은 미우 수사가 아니라 정정 수사를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정은 미우와 다르지.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잖아. 정정은 나와 그녀 중에 누군가가 영원히 소멸이 되지 않은 이상, 윤회를 거쳤다 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 만나야 할 사람이다. 혹여 둘 중에 누군가에게 비극이 생겼다면 다른 한쪽이 반드시 그 복수를 하고 말 것이고.”

네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어쩐지 이번엔 미우 수사가 불쌍하네요.

“전에도 몇 번 이야기를 했다만, 미우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정이 너무 무거울 뿐이지.”

네, 알았어요. 어쨌건 과거의 추억은 그만 더듬고 이만 떠나죠. 녹각성으로 다시 갈 거라고 했잖아요.

건우는 반지천으로 오는 중에 녹각성을 지나치며 다시 돌아올 것이란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몽이가 건우에게 녹각성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건우가 반지천을 보며 괜한 상념으로 평정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음, 일단 녹각성을 중심으로 과거 내가 경매로 팔아버린 영찬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자꾸나. 운이 닿는다면 영찬후를 다시 거두어들일 수도 있겠지.”

- 네에. 그러다가 괜히 신선들에게 밉보이진 마시고요.

“그래, 서둘 생각은 없다. 어차피 등선 준비도 해야 하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거룡 비행 령보를 움직여 녹각성으로 향했다.

이후 건우는 녹각성에서 멀지 않은 산봉우리 하나를 차지하고 수련 동부를 만들었다.

높은 봉우리와 거기에 딸린 수십 개의 계곡과 숲이 일시에 건우의 영역이 되었다.

당연히 그곳에 머물고 있던 몇몇 수사들은 화들짝 놀라서 거처를 옮겼는데, 태령기 완경의 건우가 작심한 일을 간 크게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건우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녹각성에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갈협(葛依)이라 한다.”

“실로 직접 선인을 뵙기는 태어나 처음입니다.”

“그래 봐야 분신일 뿐이다."

“그렇습니까? 제가 부족하여 그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건우는 쑥스럽다는 듯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갈협이라는 이종족 수사는 별다른 기별도 없이 건우의 수련동으로 찾아왔다.

건우가 작정하고 온갖 금제와 결계를 둘러 둔 영역을 모두 뚫고 수련동의 입구에 갈협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건우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만한 능력을 봤기에 갈협이 진선경에 오른 선인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선인도 아닌 수사에게 자신이 준비한 방벽이 모두 뚫렸다면 그 얼마나 창피한 일이겠는가.

“등선도 못한 재주로 나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

건우의 말에 갈협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경지 차이가 있으니 건우가 갈협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건우는 그저 고개만 주억 거릴 뿐이 었다.

내심으론 그만한 이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었지만 서둘러 묻지 않고 갈협의 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네가 영찬후를 찾고 있다지?”

그런 건우에게 갈협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그렇습니다.”

건우는 숨길 일이 아니란 생각에 순순히 대답했다.

자신이 영찬후를 찾고 있다는 것이야 아는 이가 적지 않은데 거짓을 고할 이유가 없었다.

“묻노니 혹여 네가 나머지 영찬황과 영찬후를 가지고 있느냐?”

이에 갈협이 대놓고 건우에게 영찬황과 영찬후에 대해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과거 손에 쥐고 있는 보물의 가치도 알지 못하고 이곳 녹각성 경매장에 세 개의 영찬후를 처분한 것이 바로 저였습니다. 이후 그 가치를 어느 정도 알게 되어 이제는 그것을 다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어, 영찬황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나머지 영찬후도?”

“네, 선인 어른.”

건우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건우의 등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갈협이 욕심을 드러내면 자신이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진선경과 맞서 싸워 본 적이 없기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걱정과 근심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것들을 내어 달라고 하면 너는 어찌 할 것이냐?”

그런 건우를 향해 갈협이 물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내어 드려야 하지 歌黴윱歐??”

“응? 달란다고 그냥 주겠단 말이냐?” 건우의 말에 갈협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대답을 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설마 어르신께서 제 보물을 거저 달라고 하시진 않으시겠지요. 마땅히 응분의 대가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손해가 될 일도 아닌데 어르신의 편의를 보아드리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러니까 네 보물을 내어주긴 하겠지만 당연히 그만한 대가를 받겠다는 뜻이로구나?”

갈협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지만 가벼운 어조로 물었고, 건우는 대답 없이 고개만 숙여 보였다.

말로 하지는 못해도 그 뜻이 틀리지 않다는 의미다.

“재미있는 놈이로구나. 등선도 하지 못한 놈이 감히 나를 상대로 거래를 하려고 해?”

이에 갈협이 끝내 격노한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갈협의 강력한 의념이 건우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라?!’

- 버틸 만한데요?

‘분신이라 그런가?’

갈협이 화를 내며 의념을 펼쳐 건우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건우는 도리어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갈협의 압박이 강하지 않았던 것이다.

“으음? 제법이로구나?”

그런데 그런 건우의 상황을 갈협도 알아차렸는지 의념을 줄이고 혼잣말을 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건우를 노려보며 복잡한 눈빛을 보였다.

당장 건우를 어찌 해 볼까 하는 위험한 눈빛을 보였다가, 괜한 짓은 하지 말자는 보류의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건우는 그런 갈협의 분신을 조용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제 그는 이전처럼 허리와 고개를 깊이 숙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재미있구나. 확실히 등선도 하기 전에 법칙의 힘을 깨달은 놈이라 다른 놈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라.”

그런데 어느 순간 갈협이 의념을 깔끔하게 갈무리하며 뒷짐을 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갈협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법칙의 힘을 깨달은 것을 갈협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사실 나는 고작해야 영찬후 하나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 네게 그것을 넘겨준다 하여도 손해 볼 것은 별로 없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네 말대로 보물을 그냥 내어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음. 그야 그렇지요.”

갈협의 말에 건우는 쓸개를 핥은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선인 쯤 되었으면 그런 건 원래 주인에게 선물로 툭 던져 줄 수도 있는 거지.’

제 입으로 보물의 가치에 상응하는 교환이 어쩌고 했던 것이 직전의 일인데, 상황이 바뀌니 생각도 다르게 흘러가는 건우였다.

물론 건우가 공짜를 바란다고 해도 갈협은 그럴 생각이 없을 테니 합당한 거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니 내가 가진 영찬후를 받는 대신에 네가 내 일을 조금 도와주는 것이 어떠냐?”

결국 생각했던 대로 갈협이 건우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물론 그 대가란 것이 건우를 고용하는 방향인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제가 선인 어른을 도울 깜냥이 되겠습니까? 등선도 못한……"

“원래는 그렇겠지.”

건우가 겸양의 말을 하려는데 중간에 갈협이 끊고 들어왔다.

건우가 곧바로 입을 닫고 그런 갈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너는 법칙의 힘을 깨닫지 않았더냐. 그러니 나를 도울수도 있는 것이지.”

“법칙의 힘이란 말입니까?”

건우는 자신이 일반적인 태령기 완경의 수사들과 다른 점을 부지불식간에 떠올릴 수 있었다.

법칙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큰 가치가 있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네가 생기 법칙과 조율 법칙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데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냐?”

“제가 법칙의 힘을 얻은 것을 어찌 아시는 것입니까? 혹여 다른 선인들께서도 모두 아시는 것입니까?”

“크하하하. 모든 선인들이 너에 대해서 알 수는 없겠지. 하지만 누구든 네가 법칙의 힘을쓴 것을본다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를 직접 본다면 곧바로 네가 익힌 법칙의 힘을 알아 차리겠지.”

“제가 미흡해서 그것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까?”

"으음."

이어진 건우의 물음에 갈협이 살짝 신음을 흘리며 입을 닫았다.

그리고 물끄러미 건우를 바라보았다.

“ 어찌......"

“우리들 사이에선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너에게는 넘치는 이야기인데, 그걸 염치도 없이 잘도 물어보고 있구나.”

“아! 송구스럽습니다.”

갈협의 말에 건우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모르고 했던 행동이었다.

그저 궁금한 것을 물었는데, 그것이 실제론 자신의 경지에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는 소리다.

“쯧, 되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이에선 별 것 아닌 이야기라 하지 않았느냐. 법칙의 힘을 사용하고 그것을 숨길 수 있는 방법도 있고, 자신이 익힌 법칙의 힘을 숨길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등 선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그런 것을 알 필요는 없느니라;

“알겠습니다. 선인 어른.”

갈협의 말에 건우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 만 바닥을 향한 건우의 눈빛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등선 후에나 알 내용이니 지금은 몰라도 된다고? 그럼 법칙의 힘도 등선 후에나 얻어야 할 힘이 아닌가? 내가 이미 평범을 넘었는데 어찌 나에게 같은 잣대를 대는 것이야?’

- 맞아요. 그렇다면 건우 님에게 법칙의 힘을 운운해선 안 되는 거죠.

‘그래, 아무래도 분명 숨기는 것이 있어. 거짓을 말해서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숨겨서 속이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지.’

- 맞아요. 경계해야 해요.

아무리 호의를 보이는 것 같은 모습이라도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건우는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더욱 갈협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어찌할 테냐? 내가 시키는 작은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영찬후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후일 다른 때와 상황을 기약할 것이냐?”

“그리 선택의 기회를 주신다니 너그러우십니다. 제가 그런 호의를 받고도 어르신에게 도움이 될 기회를 버린다면 어찌 떳떳할 수가 있겠습니까. 갈협 어르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단 말이지? 좋구나 좋아.”

건우가 승낙의 뜻을 보이자 갈협이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그리고 곧이어 소매에서 옥함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을 줄 터이니 한 쌍이라도 부화를 시켜. 그러면 내가 가진 영찬후를 내어주지.”

“이게……

“성공하면 찾아오겠다. 하지만 신중해야 할 것이다. 실패하면 영찬후를 받지 못할 것이고, 도리어 내 보물을 잃게 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니.”

“아니……"

건우가 갈협에게 옥함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지만 그 순간 갈협의 분신은 건우의 눈앞에서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건우는 갈협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 일단 무슨 일인지 알아본 후에 승낙을 했어야…….

“그러게 말이다.”

건우는 잠시 후에야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 선인(仙人) 갈협(葛依)의 방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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