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12화 (412/499)

(412)

< 다섯 늙은이를 제압하고 후련하게 수련 삼매에 들다 >

벌써 그 놈을 천지오행진에 가둔 것이 벌써 천 년 전의 일이다.

어차피 그곳에 갇혀 있는 놈이 할 일은 진법의 균형을 맞추거나 혹은 진법의 기운에 녹아 없어지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 놈을 진법에 던진 후로 얼마쯤 지난 후에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저 아주 가끔씩 천지오행진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고 안정된 것을 생각하며 그 놈이 제 역할을 다했으리라 짐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도 수백 년이 흐른 후에는 놈의 흔적이 진법에서 완전히 사라진 고로, 결국 진법 안에서 명을 다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목회령 뿐만이 아니라 다른 네 명의 수사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놈인데, 문득 이 순간 그 놈이 떠오른 것이다.

“그 놈이 지금껏 살아서 천지오행진을 장악하고, 그 진을 거꾸로 타고 올라 내 수련장까지 차지했다고?!”

믿기지 않는 일이라 목회령은 눈을 크게 부릅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에 가장 알맞은 해답은 그것인 듯했다.

카라라라라라랑!

“뭐? 뭐냐?”

그 때, 문득 목회령을 억압하고 있던 쇠가시들 사이로 한 마리의 용이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등에는 금빛의 비늘을 두르고, 배에는 은색의 비늘을 덮은 용은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용암과 같았다.

목회령은 그 용에게서 충만한 화기(火氣)와 금기(金氣)를 느꼈다.

캬르흐르르르 캬하아아아아!

용이 목회령의 얼굴 앞으로 머리를 밀더니 크게 입을 벌리고 불꽃을 뿜어냈다. 순간 목회령의 몸에서 목기가 피어올라 그 화기를 막아섰다.

하지만 목생화(木生火)라 나무의 기운을 받은 화기가 더욱 성하게 일어났다.

동시에 목회령의 목기가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다.

화기의 침습을 막고자 목기를 끌어 올렸는데, 그 목기를 흡수하여 화기를 더욱 키우는 용.

고작해야 성령기 정도에 불과한 용(龍)이지만 금기로 이루어진 쇠가시에 제압당한 목회령으로선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아서! 그러지 마!

그 때,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용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목회령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 만 어 디를 쳐 다봐도 보이는 것은 오직 쇠가시들 뿐.

이제 오래지 않아서 저 쇠가시들이 목회령의 몸을 찔러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리고 계속 네가 익힌 수련 공법을 운공해라!

목회령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리더니 쇠가시들이 멋대로 움직여 목회령을 수련장의 중앙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평소 목회령이 앉아서 수련하던 장소까지 그를 밀어붙여 물푸레나무로 그루터기 위에 목회령을 세웠다.

물푸레나무 그루터기가 바로 목회령이 방석 대신 깔고 앉았던 목포단(木浦團) 이었다 - 앉아라! 너는 이제부터 천지오행진에 목기를 충당하는 역할을 해야 할 터. 그것이 미진하면 너를 통째로 갈아서 목기를 보충할 것이다.

물푸레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라선 목회령을 향해 도끼날이 떨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목회령은 두려움에 떨며 자리에 앉아 목령족으로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목속성 수련 공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로써 목성봉으로 모이는 목기는 목회령을 통해서 천지오행진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이전에는 천지오행진에서 목기를 끌어왔는데 이제는 거꾸로 된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목회령은 자신이 천지오행진의 기운을 보충하는 부속의 신세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어! 편히 죽기도 어렵겠구나.”

게다가 자신이 자리에 앉아서 운공을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천지오행진에 종속되었다. 그것을 안 순간 목회령은 깊이 탄식하며 절망하고 말았다.

“크으으윽! 화극금(火류金)이라, 어찌 화기(和氣)를 이기겠는가! 졌다! 졌어.”

폐철은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통탄을 금치 못했다.

금성봉 깊은 곳에 있는 그의 수련장은 온통 화기가 가득하여 모든 쇠를 녹여 내는 중이었다.

원래 도깨비 일족이었던 그는 금(金) 속성의 강체술을 익혔다가 이후에 금기(金氣) 수련의 비공을 얻어 일로정진, 금기를 수련해 온 자였다.

그런 까닭에 어느 순간부터 이름까지 폐철(睦鐵)이라 바꾸고 계단을 밟듯 금(金)속성 수련을 이어왔다.

그 결과, 드디어 태령기 완경의 경지에 올라 진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때마침 금성봉의 자리가 비었기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오랜 세월 수련 하며 진선경의 문을 여러 번 두드렸으나 매번 문이 열릴 기미를 보지 못했다.

그런 중에 뜻하지 않게 천지오행진에 문제가 생겼기에 이미 성륜역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 수사를 불러 천지오행진의 일을 맡겼다.

조금 강압적인 면이 없지 않았으나 다섯 봉우리의 모두가 의논하여 그리 하기로 한 것이라 폐철 또한 깊이 생각지 않고 벌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이렇게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실로 무섭구나. 우리들조차 오행봉과 오행지를 아우르는 진법의 진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거늘! 너는 홀로 그것을 깨우치고 도리어 그것을 이용하여 나를 이리 잡아내다니.”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너희가 건우 님을 그리 대했으니 너는 네가 받는 응보를 억울하게 여기지 마라.

“건우, 그래 그 이름이 강건우라 했지. 성령기 초기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찌 벌써 나를 이리 옭아맬 수가 있지?”

폐철은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고작 그 시간 동안에 경지를 크게 끌어 올렸단 말인가?

궁금한 것도 많구나. 너희가 어찌 천지오행진의 모습을 알 수 있을까. 고작해야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베껴 썼을 뿐이지. 그러니 진 안에서 일어나는 승경조차 밖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아니냐.

“그럼 진정, 그 짧은 시간에 태령기까지 올랐단 말이냐?”

흥! 이제 너희가 모두 제압되었으니 건우 님께서도 오래지 않아서 태령기에 오르실 것이다.

“그럼 아직 성령기에 불과하다고기 그런데 어찌?"

폐철은 목소리의 말에서 자신들이 가둔 수사가 아직 태령기도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작 성령기 수사에게 자신이 이토록 완벽하게 제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아닌가.

흥! 너희가 부족해서 천지오행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거꾸로 진법에 종속되어 기운을 보충하는 신세가 된 것이 아니냐.

“크흐흐흐. 패자는 유구무언이라! 이제 내 원수를 알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 원수라고?

“수도계의 은원이야 돌고 도는 것이 아니냐. 이전에는 내가 그를 함정에 빠트렸으니 그가 내게 원한을 가졌을 것이지만, 이제 도리어 내가 그 보복을 받았으니 내가 그에게 원한을 가질 만하지 않으냐?”

그리 마음을 먹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네가 그리 독심을 드러내면 건우 님께서 너를 가만히 두실 것 같으냐?

“죽이려면 진즉 죽였겠지. 살려둔 것은 쓸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쓸모가 다하기 전까지는 살려둘 터이니, 나는그 사이에 살 길을 찾아봐야겠지. 그것이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고.”

폐철은 그가 익힌 금기(金氣) 속성의 수련 공법 때문인지 성격이 강직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숨기고 감추는 법이 없이 직설적인 면이 있었다.

하긴, 너 아니라 다른 네 늙은이들 역시 속에선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걸 모르는 바도 아닌데, 네가 그리 떠든다고 그들보다 네가 더 위험할 것도 아니지.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너도 알겠지만 네가 네 몫의 기운을 진법에 불어넣지 못하면 진법이 너에게서 직접 기운을 뽑아갈 것이다.

“알고 있다. 그리 되면 내 경지가 조금씩 낮아지다가 어느 순간 진법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혼백마저 녹아버리겠지. 그리되면 윤회조차 하지 못하고 소멸을 당할 것이고.”

알면 되었다. 그러니 알아서 선택을 하겠구나. 무슨 선택을 하든 별 상관은 없다만.

“이리 무시를 당하다니! 하지만 역시나 패자는 유구무언일 수밖에."

폐철은 그리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고, 신비로운 목소리 역시 그 이후로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절반 정도는 진법에 종속되어 장악된 상태로구나. 진실로 나는 천지오행진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야.’

폐철은 수련장의 중앙에 앉아 금(金) 속성의 수련 공법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운공하며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어떻게든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야 할 텐데, 그것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폐철은 천지오행진의 장악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 들리는가! 목회령이다.

= 목회 령? 나는 난수류다. 또 누가 있는가?

= 양출이 여기 있다.

= 나, 폐철도 있다.

= …….끙!

목회령, 난수류, 양출, 폐철, 거기에 앓는 소리만 내었지만 곤지(博地)까지. 오행봉 다섯 수사들의 의념이 은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처음 다섯 수사의 의념이 연결된 것은 천지오행진에 다섯 수사들 중에 끝으로 폐철이 종속되는 순간 짧게 일어난 변화였다. 찰나와 같은 순간에 다섯 수사의 의념이 연결되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우회로를 만들어 의념을 연결했다.

태령기 완경에 이른 노회한 경험이 헛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천지오행진으로 이어졌던 의식 연결은 끊겼다.

그야말로 우연하게 일어난 일을 순간적인 기지로 붙잡은 것이다.

작은 변수지만 이것으로 미래에 자신들을 함정에 빠트린 강건우란 수사 놈에게 복수할 가능성이 생겼다. 다섯 수사들은 그 덕분에 어떻게든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당장은 천지오행진에 불어넣어야 할 기운을 감당하기도 벅차지만 시간이 흐르면 여유가 생길 것이다.

= 그 때가 되면 어떻게든 이 종속을 풀고 자유를 찾을 길을 열 수 있을 터!

= 서로 의논하여 천지오행진을 연구한다면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진법에 종속되면서 진법을 훨씬 더 깊이 파악할 수 있게 되었음은 분명히 호재(好材)라 할 수 있다.

= …….동의 (同意)!

다섯 수사들은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복수를 꿈꾸었다.

그 때, 천지오행진 내부의 어느 곳에선 다섯 수사의 의념 연결을 엿들으며 웃는 건우가 있었다.

“그래, 희망이 있어야 포기하지 않는 거지. 그래야 조금 고되더라도 애를 쓸 것이고.”

와! 감탄! 또 감탄!

“하지만 옥의 티라고 할까? 조금 아깝긴 하네. 그 곤지라는 놈은 끝내 스스로 명을 끊어버렸으니.”

그래서 흡기토성유근의 구근을 대신 넣어 두셨잖아요. 의념 연결도 해 두셨고요. 뭐 구근의 혹이라 해야겠지만요.

“그렇긴 한데, 들킬까 조마조마하기도 하네.”

일부러 그 쪽으로 가는 의념 연결을 혼탁하게 해서 소통을 어렵게 했으니 문제없을 테죠. 제대로 의논할 상황이 아니니 구근 쪽은 무조건 다른 네 수사들이 의논한 바를 따라가는 것으로 하면 되니까요.

“하필 곤지란 놈을 장악할 때에 천지오행진에 문제가 생길 것은 또 뭐람. 그것만 아니었으면 완벽하게 오행봉을 장악했을 텐데.”

솔직히 상관없잖아요. 흡기토성유근의 구근 혹이 이성 부족하긴 하지만 천지오행진을 이용해서 통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죠. 건우 님이 원하는 것은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음, 그것도 그렇지만 의념 공간 밖으로 구근을 꺼내 놓은 것이 걸린단 말이지. 그거 조심하라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본체도 아니고 고작 혹인데요? 게다가 고령토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아니고 토성봉을 통해 천지오행진으로 들어오는 토기(土氣)의 흐름을 제어하는 정도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길 바랄 수밖에. 자, 그럼 이제 오행의 수련 경지가 모두 성령기 후기에 이르렀으니 완경을 넘어 태령기에 도전을 해 볼까?”

결국 오행봉에 있는 네 명의 수사는 건우의 손바닥 위에서 맴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아마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이 이 사실을 알 수는 없을 테니, 미래는 건우가 설계한 대로 흘러갈 확률이 높았다.

와, 짝짝짝짝! 오행봉에 굵은 빨대를 꽂아 뒀으니 앞으로 건우 님의 수련에 지장을 줄 요소는 없어요. 그러니 어서 가시는 겁니다. 태령기를 향해서!

“그래, 태령기에 오르면 그 후에는 오행기를 수련하는 것으로 해 볼까? 보아하니 천지오행진의 중심축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지. 태령기가 되면 그 또한 밝혀낼 수 있을 테지.”

네에! 거침없이 나아가시는 겁니다아!

“하하 고맙구나.”

건우는 그렇게 몽이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오행 속성의 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몽이는 그런 건우를 잠시 지켜보다가 의념 공간으로 들어가 삼백 년 정도 자란 백양오죽을 살피기 시작했다.

백양오죽의 열매에 생명 법칙을 부여하여 발아시킨 백양오죽이었다.

이 백양오죽은 목기와 수기를 함께 지니고 있었는데 소망이, 구근과 더불어서 의념 공간에 있는 오행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백양오죽은 목기와 수기, 소망이는 화기와 금기, 구근은 토기를 담당하는 것이다.

으음. 백죽이는 수기를 조금 더 줘야 하겠네? 녀석 어서 커서 내 손을 타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어야지. 언제 클래?

몽이가 백양오죽의 굵은 줄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슬쩍 의념을 움직여 백양오죽을 수 속성 영역으로 옮겼다.

백양오죽에게 부족한 수기를 보충해 주기 위해서였다.

네 스스로 뿌리를 뻗어서 목기와 수기를 충당해야지. 언제까지 내가 도와줄 줄 아느냐?

몽이가 백양오죽을 나무라듯 그렇게 말했지만 백양오죽은 별 반응이 없었다.

에구구, 아무튼, 네가 제대로 커야 오행지 영역에 너와 소망이, 구근이를 함께 둘 게 아니냐. 그리 되어야 의념 공간의 오행지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고.

몽이는 그렇게 말하며 한동안 백양오죽의 줄기를 쓰다듬어 주다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건우의 수련 삼매가 깊어지며 몽이의 활동이 멈춘 것이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 다섯 늙은이를 제압하고 후련하게 수련 삼매에 들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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