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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암천 진법 임무를 마치고 오행지(五行地)로 들어가다 >
“끄아아아아악! 가, 강 수사! 살려 주시오!”
축융족의 나부려가 비명을 지르며 건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부려의 몸은 이미 거의 재가 되어 바스러지고 있었고, 남은 것은 화기(火氣)의 흐름에 애처롭게 부대끼는 영체뿐.
하지만 지금 그 영체마저도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는 중이었다.
나부려는 어떻게 해서든 그 사나운 화기(火氣)를 벗어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매번 되잡혀 불길 속으로 끌려들어갈 뿐이었다.
“허어, 그러기에 어찌 그리 욕심을 부리셨답니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어야지요……. 쯧쯔.”
건우가 용암천 진법 통로 안쪽에서 버둥거리는 나부려를 보며 혀를 찼다.
“끄아아아아악!’ 화르르르륵!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건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부려의 영체가 염화도의 화기를 견디지 못하고 불살라졌다.
또한 그 직후 진법 통로가 빠르게 닫혀 버렸다.
“허어, 진정 두려운 일입니다. 영체가 소멸된 것은 물론이고 영혼마저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건우가 그 모습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수사들도 저마다 고개를 저으며 나부려의 죽음을 평가했다.
“욕심이과했지.”
“태령기에 오르기 위해서 무리를 한 것이지.”
“그래도 나름 준비는 잘 한 것 같았는데.”
“으음. 그런 짓을 할 것이었다면 강 수사에게 도움을 청했어야지. 어찌 홀로……
“거의 성공한 듯 했는데 말이지. 운이 없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에 그, 갑작스러운 화기(火氣) 폭풍이 없었다면……"
“그래도 태령기 승경에 성공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 거지. 게다가 진법 통로 안으로 끌려 들어간 것이 문제지.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것을 모르진 않았을 텐데. 으음.”
“어째 화기의 폭풍과 그 기이한 인력(引力)은 평소와 달랐단 말이지. 그건 좀 이상한 일이야.”
“그런 의심이 든다면 다음에 통로가 열리면 그 앞에 자네가 한 번 서 보는 것이 어떤가? 어쩌면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겠지.”
“하긴, 진법 통로 앞에 누군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변화일 수도 있겠군.”
“그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나부려의 준비가 모자랐던 것은 분명하지.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니.”
“쯧, 옳은 말. 대도(大道)를 걸음에 이런 실패야 먼지처럼 흔한 일이기도 하지.”
“자자, 다들 이미 죽은 나부려는 잊고 우리 일이나 하십시다. 그의 시도에서 크게 배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진법 통로의 위험성은 다시 한 번 알았으니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으면 그만일 일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오래 마음을 쓸 일이 없지요.”
“돌아들가십시다.”
“그러지요.”
잠시 죽은 나부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수사들이 한 순간 마음을 정리하고 제각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 모습을 무심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수사들은 매정하기 짝이 없어요.
그런 건우의 얼굴 옆에 몽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들은 범인에 비해서 오래 사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얽히고설키는 인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수사가 매정한 것이 그 때문이? 말씀이에요?
‘돌이켜 보면 내가 수도의 길에 들어섰을 때의 인연 중에 지금 내 곁에 남은 이가 누가 있느냐.’
에? 저, 저요?
‘그래, 고작해야 너 하나가 남았을 뿐, 수많은 인연들이 대부분 윤회로 돌아가거나 소멸하고 말았지.’
- 그러네요.
‘그나마 연이 깊었던 수미 세계의 인연들조차도 지금은 곁에 없다. 그리고 내가 다시 수미세계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남아 있을 인연이 몇이나 되겠느냐.’
-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너무도 잦은데, 그 중에 영원한 이별이 대부분이란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런데 그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어두면 어찌 되겠느냐? 아무리 수사의 정신이 강건하다 하더라도 견딜 수가 없겠지.’
그건 그러네요.
‘그러니 무정할수밖에.’
하지만 또 완전히 무정할 수도 없잖아요. 건우 님도 정정 수사를 잊지 못하고 은혜하는 마음을 굳게 지키고 계시고요.
‘정정이야 내 반려이니 당연한 일이지.’
아, 그런데 미우는요? 미우도 잊은 건 아니잖아요.
‘정정과 미우는 다르지. 미우는 내 기억이 온전치 못할 때에 스쳐간 인연이었으니.’
그래도 여전히 찾으려는 마음은 있잖아요. 지금도 진선이 되면 반지천부터 뒤져 보겠다고 생각하고 계신 거 다 알거든요?
‘그럼 너도 알겠구나. 그것이 사모하는 마음과는 다른 것이란 사실을. 그러니 그 이야긴 그만하자꾸나.’
건우는 갑자기 시작된 미우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끊어냈다.
스스로도 미우에 대해서는 어정쩡한 마음으로 결단을 미루고 있음을 느끼면서.
뭐, 좋아요. 그나저나 나부려는 무모했네요.
건우의 마음을 읽은 몽이도 곧바로 화제를 돌려 나부려의 이야기를 꺼냈다.
‘마음이 급했던 거지. 대천겁은 다가오고, 승경은 불확실한 상황이었으니.’
그래도 건우 님이 조금 도와 주셨으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잖아요.
‘공간 통로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잡아줬어야 한다는 거냐?’
그러면 마음의 빚을 지워서 아군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 놈이 억지로 용암천 진법을 비틀려 한 것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진법이 비틀렸으면 지난 500년에 가까운 내 수고가 수포로 돌아갔을 터인데?’ 사실 나부려의 죽음에 건우의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나부려는 용암천 진법을 비틀어서 자신의 태령기 승경에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진법을 비틀게 되면 지금까지 건우가 용암천 공동에 머물며 진법을 다스린 것이 의미가 없어질 판이었다.
나부려는 승경을 할 수 있겠지만 진법은 적잖은 변형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건우는 그 변형을 바로잡는데 또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릴 것임을 직감했고, 그 때문에 나부려의 시도를 막아버렸다.
진법 통로를 조절하여 화기를 적당하게 끌어 오려던 나부려는 건우의 방해로 진법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그대로 염화도의 화기에 노출되고 말았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나부려가 곧바로 용암천 밖으로 나왔으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승경에 도전하려다가 시도를 멈춘 정도에 그쳤을 것이니 별다른 손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진법 통로에서 화기 폭풍과 함께 흡입력이 일어나 나부려를 통로 안으로 끌고 가고 말았다.
이후는 다른 수사들이 본 것과 같았다.
나부려는 다시 통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육신은 물론이고 영체와 영혼까지 불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 따지자면 나부려의 진법 변화를 막는 순간부터 건우가 나부려의 승경을 방해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부려 그 놈이 그런 수작을 부릴 것이었으면 당연히 나에게 의논을 했어야지. 제 놈이 태령기로 승경한 후에는 내가 따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리 방자하게 군 것이 아니겠느냐.’
설마 건우 님이 진법에 대해서 그토록 잘 파악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한 거였겠죠. 게다가 승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면 나부려가 준비한 여러 보호 결계들이 발동되었을 테고 말이죠.
‘공간 통로로 끌려들어가는 순간 그 모든 준비가 허사가 된 것이지. 나부려의 운은 그 순간에 다한 것이다.’
네네. 건우 님이 나부려를슬쩍 밀어 넣은 것은 없던 일이고요?
‘밀기는 무슨. 그저 나부려가 바꾸려던 진법을 바로잡느라 공간 통로에 흡입력이 좀 생겼을 뿐이지. 민 것과 당긴 것은 다르지.’
네에. 그건 그러네요. 나부려는 빨려 들어간 거니까요.
‘그 순간 안쪽에서 화기 폭풍이 일어난 것은 또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그건 그렇죠. 그건 확실히 염화도 쪽에서 생긴 예상치 못한 변화였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나부려가 운이 없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네요.
‘자, 어쨌거나 이번 일로 진법을 바로잡고 진정시키는 데에 5년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제 십여 년 후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소망이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기는 했지.’
풋, 그 말썽꾼 !
‘하하하.’
오행지(五行地)는 성륜역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곳은 아니다.
드넓은 선계에 오행의 기운이 뭉친 특이한 장소가 한 곳만 있을 수는 없다.
오행의 기운이 뭉쳐서 오행기(五行氣)를 만드는 곳을 흔히 보기는 어려워도 드물게는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곳들 중에서 그 기운이 강성하여 태령기 수사들이 수련 복지로 삼을 정도가 되는 곳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러니 성륜역에 있는 오행지가 비밀스러운 수련처로 일부 수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있는 것인데, 바로 그곳이 건우에게 개방되었다.
지난 오백 년 동안 용암천 공동의 진법을 다스려 성륜역 오행의 균형을 맞춰 준 노고에 대한 보상을 드디어 받게 된 것이다.
- 정말 감쪽같이 숨겨서 아무도 모르게 해 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건 아니네요?
거룡 비행 령보의 머리 위에서 아득한 지상을 내려 보며 몽이가 말했다.
건우가 용암천 공동의 일을 마치고 드디어 오행지를 찾아온 것이다.
“원래부터 저곳은 성륜역에서도 금지로 불리는 곳이라더군. 다섯 봉우리가 각각 오행의 기운을 품고 있는데, 그 봉우리로 감싼 안쪽은 출입이 일절 금지되어 그것을 어기는 수사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했지.”
- 그러니까요. 설마 그 안에 오행지라는 수련 복지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거잖아요. 설마 저런 식으로 오행지를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죠.
“태령기 완경의 수사들이 영역을 선포하여 출입을 금해서 안쪽의 상황은 알 수가 없지.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오행지의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지. 혹, 누군가 호기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쉽게 다가갈 수는 없었을 테 니까.”
하긴, 한 명도 아니고 다수의 태령기 완경 수사들이 연명(聯名)으로 출입을 금했으니 진선경 이상의 수사가 아니고야 누가 감히 그걸 어기겠어요? 생각해보면 저런 식으로 공공연히 금역 선포를 하는 것 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어요.
“어쨌건 나도 저곳에서 수련할 자격을 얻었으니 이제 오행기를 익혀 진선의 경지에 오를 일만 남은 것이지. 수련에 필요한 자원도 부족하지 않게 채워 왔으니 태령기 완경까지는 수련에만 집중할생각이다.”
어차피 태령기 완경까지는 이미 깨달음을 얻었던 건우 님이니까 수련 자원만 충분하면 걸림돌은 없겠죠?
“내가 가진 오행의 수련 공법이 모두 뛰어난 것이어서 태령기 완경까지는 부족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태령기 완경까지 필요한 것은 시간과노력뿐이지.”
그리고 그걸 오행기로 묶어 낼 신공도 필요하고요?
“그 또한 운이 닿는다면 저 오행지에서 선대 수사들의 수련 공법을 얻어 해결할 수 있을 거다.”
그럼 어서 들어가요! 출입 허가도 받았는데 망설일 것이 뭐가 있어요?
몽이는 건우가 거룡 비행 령보를 오행지 금역 위에 멈춘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이쯤 기다렸으면 예는 갖춘 것 같구나.”
건우도 곧바로 오행지로 날아들지 않고 지금껏 기다렸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소매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어 영기를 불어 넣었다.
그것은 성호 준이 오행지에 있는 수사들에게 약속의 증표로 받아 준 것이었다.
그 안에는 건우가 오행지에서 거주하는 것과 선대 수사들의 수련 공법을 찾아 취하는 것을 허락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오행지에 거하는 수사들 모두 그에 수결(手決)을 한 것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지이이잉!
건우가 옥패에 영기를 불어 넣자, 곧바로 옥패에서 한 줄기 오색 광선이 뻗어가더니 허공에 거대한 기둥 두 개를 만들어 냈다.
건우는 곧바로 그 기둥 사이로 거룡 비행 령보를 지나가게 했다.
스르르르르르릉!
그런데 거룡 비행 령보가 기둥 사이를 지나가자 기등은 물론이고 거룡 비행 령보까지 씻은 듯이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행의 다섯 봉우리를 감싸고 있던 결계 진법이 건우와 거룡 비행 령보의 모습을 숨겨 버린 것이다.
< 용암천 진법 임무를 마치고 오행지(五行地)로 들어가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