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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썽장이 소망(小?)이와 함께 세월이 흐른다 >
용암천 공동(空洞)에서 건우가 맡은 일은 겉으로 보자면 무척 간단한 반복 작업이었다.
때에 맞춰서 화기를 주입하여 용암천 진법을 발동시키는 일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만 해 주면 되니 얼마나 쉽고 간단한 일인가.
게다가 진법에 주입하는 화기의 양도 성령기인 건우가 감당하기에 크게 벅찬 정도는 아니었다.
한 번 화기를 주입하면 다시 운공을 하여 그것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진법 발동 주기가 길어서 그것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러니 남 보기에는 한량처럼 시간만 보내는 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건우는 진법을 발동시키고 화기를 회복하는 이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용암천의 진법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망(小蟒:작은 이무기)이라 이름붙인 화천독망질의 알도 부화시켜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다섯 가지가 모두 모인 오행의 공법을 수련해야 했다.
그러니 어찌 한가할 틈이 있을까.
하지만 용암천 공동은 오행 속성의 공법을 수련하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었다.
화기(火氣)가 너무 강해서 다른 속성 공법을 수련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건우는 자신의 의념 공간에 오행의 속성별 공간을 따로 만드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속성 의념 공간의 기운을 키우는 것이 곧 오행 속성의 수련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망이는 당연히 화기가 가득한 의념 공간에 두고 부화에 공을 들이게 되었다.
우와 먹기는 엄청 먹네요. 얘는 좀 이상하지 않아요? 먹어도 너무 먹어요.
화기가 가득한 의념 공간에서 오늘도 건우를 대신해 소망이에게 화기를 주입하던 몽이가 손을 털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이제 곧 깨어날 테니까 고생도 이젠 끝났다고 봐야지.’
건우가 그런 몽이를 달랬다.
아니, 여기에 화기가 넘치지 않았다면 정말 이 녀석을 어찌 깨웠겠어요? 이런 먹보를 만족시킬 화기를 어디서 얻었겠냐고요. 염화도의 화기가 아니었으면 정말…….
건우의 다독임에도 몽이는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소망이를 노려봤다.
금색과 은색, 반투명한 두 겹의 껍질을 가지고 있는 소망이는 이전에 비해서 내부의 붉은 기운이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거기에 금색과 은색의 껍질 표면을 떠도는 문양도 이전보다는 조금 선명해진 듯 보였다.
‘내가 보기에 소망이 녀석에게 필요한 화기는 이미 충분한 거 같다.’
더 먹일 필요가 없다고요?
‘그래. 그래서 고생도 이젠 끝이라 하지 않았냐.’
그런데 왜 안 깨어나는 거예요? 먹을 만큼 먹었으면 이제 깨어나야죠!
몽이는 버럭 화를 내며 소망이에게 날아가 살짝 발길질을 했다.
물론 그래 봐야 물리력이 없는 몽이가 소망이에게 충격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생기 법칙도 이미 충분한 듯 보이는데 알을 깨고 나오질 못하는구나.’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못 나오는 거예요?
‘요즘 소망이 녀석의 의식이 느껴지는데 저도 갑갑해 하는 것 같더구나. 그걸 보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나오는 것이겠지?’
- 음, 그럼 껍질을 깨 주면 어떨까요? 왜, 간혹 난생의 경우에 부모가 알껍질을 깨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잖아요.
대부분 알로 태어나는 경우에 알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부화를 돕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 만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렇게 해 주고 싶지만 소망이의 알껍질 문양을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많은 신비가 담겨 있는데, 그것을 잘못 깨트렸다가는 소망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겠지.’
- 아! 그렇군요.
건우의 말에 몽이가 한가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 소망이의 의식이 점점 명료해 지고 있으니 조만간 좀 더 구체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게다.’
- 그럼 소망이 스스로 필요한 것을 건우 님께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바로 그거다. 그러니 너도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 봐라.’
- 네에, 어쩔수 없죠 뭐. 그런데요.
‘또 뭐가 궁금하냐?’
- 생기 법칙이요.
‘응,생기 법칙?’
- 소망이에게 생기 법칙을 불어 넣었잖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멈췄고요. 왜 그러신 거예요?
‘그야 당연히 그게 소망이의 한계였으니 그렇지. 너도 알겠지만 생기 법칙이 과하면 변이가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변이는 천지 법칙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지.’
- 그런데 건우 님은 소망이에게 맞는 수준을 딱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거네요?
‘그렇지. 하지만 항상 모두에게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대상에 따라서 다르다고요?
‘그래. 내가 아직 생기 법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소망이는 작고 여려 파악이 쉬웠다. 더구나 내 의념 공간 안에 있었으니 훨씬 가늠하기가 편했던 점도 있고. 아, 결정적으로 소망이 가 내게 속해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겠구나.’
- 권속 비슷하게 장악한 상태라서 판별이 쉬웠다는 이야기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 뭐, 제가 궁금했던 건 소망이가 아니라 생기 법칙이었는데, 소망이 이야기만 잔뜩이네요.
‘하하. 이미 내가 아는 것은 너도 아는데 굳이 따져 물어볼 것이 뭐가 있다고.’
- 항상 되짚어 보며 놓친 것이 없는지 살피는 거죠. 아, 그리고요.
‘또 뭐?’
- 용암천 진법에서 발견한 공간 연결에 대한 거요. 이번엔 그걸 좀 이야기해 봐요. 소망이는 한동안 이 상태를 유지할 거 같으니까요.
‘그래, 진법 발동도 아직 한참 남았으니 그것도 좋겠구나. 그러니까 그 진법이 염화도와 공간 통로를 여는데, 거기에 쓰인 진법을 이전에 알고 있던 것과 견주어 보면……
- 그거 말고 다른 것도 있잖아요. 이전에 부양도라고 했던 그거요. 거기에 있던 이동 진법에…….
‘그렇구나. 그걸 끼워 넣으면 또……'
건우와 몽이는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심도 있는 토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물론 사실을 따지자면 그런 행위는 건우 스스로 깊은 명상에서 깨달음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과정이라 할 것이었다.
어차피 건우나 몽이나 같은 사고에 속해 있으니 깊이 들어가면 자문자답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다만 그런 식의 토론이 어떤 이치를 탐구하는 데에는 꽤나 유용한 방식임에는 분명했다.
적어도 건우에겐.
-그러니까…….
‘여기서 이렇게……
용암천 공동에서의 시간이 또 그렇게 흘러갔다.
* * *
- 소망이 너 ! 네 멋대로 벽을 뚫고 다니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응기 몽이가 한 마리 용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몽이는 고작해야 어른 팔뚝 크기에 지나지 않고, 용은 작다고는 하지만 1 장(丈)은 넘는 크기였다.
그래서 겉보기에 몽이는 용의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상은 용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풀죽은 모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용을 살펴보자면 옆구리와 배에 금과 은으로 된 비늘을 달고 있었는데 비늘이 없는 부분은 전부 고열의 쇳물 같은 빛깔을 하고 있었다.
금은의 비늘이 없는, 머리에 난 뿔이나 등을 따라 나 있는 갈기. 네 발의 발톱은 물론 길게 뻗은 수염까지 모두 이글거리는 쇳물 색을 하고 있는 용.
건우가 용암천 공동에 머문지 백 년 만에 부화시켰고, 그로부터 다시 백 년을 키운 소망이였다.
- 매번, 이렇게 의념 공간 벽에 구멍을 뚫어 놓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너는 화기(火氣)를 품은 녀석이라 특히 수기(水氣)가 있는 곳에는 가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아니 애초에 소망이 너는 화기하고 금기 영역에만 가라고 했잖아!
몽이가 잠시 진정하는 듯 했다가 또다시 폭발하여 소망이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열을 올렸다.
어쭈? 뭘 잘했다고 반항질이야? 아직 아니라고 했지? 응? 아직 네가 적응 따위를 하기엔 이르다고! 너도 문제지만 오행 속성 자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단 말이야!
화르르륵 화르르륵!
고령토 지역도 안 된다고! 아직 수기와 금기가 태부족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균형을 잡을 때까지 기다리라 했잖아!
나름 제 속의 이야기를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망이었지만 이어지는 몽이의 호통에 찔끔하고 다시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미약한 소망이의 저항은 그렇게 순식간에 제압되고 말았다.
그 상황에서 몽이는 여전히 분을 이기지 못해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호기심 가득한 소망이가 천방지축 돌아다니다가 수기를 쌓아 놓은 의념 공간으로 뚫고 들어간 것이었다.
그게 마침 건우가 법칙 수련에 깊이 빠져 있던 때라 의념 공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때와 겹쳐 소망이를 말리지 못했다.
그래서 일이 벌어진 후에야 상황을 알게 된 건우가 몽이를 보내어 소망이를 훈육하는 중인 것이다.
이리 와! 너는 앞으로 여기만 있어. 다른 곳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도 마. 금기(金氣) 영역도 출입 금지야.
푸륵! 화라라락!
시끄러 ! 금기도 많이 부족해! 그 동안은 그래도 너를 생각해서 개방을 해 줬었는데, 이번에 잘못한 것도 있으니까 내가 허락할 때까지는 여기만 있어 !
금(金) 속성 영역에도 들어가지 말라는 몽이의 말에 소망이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코로 불길을 뿜으며 반항을 해 봤지만 벌칙은 바뀌지 않았다.
소망이는 슬쩍 눈치를 살피 며 화속성 공간의 하늘을 바라봤다.
몽이가 아닌 건우를 찾는 것이다.
몽이 나 건우나 다를 바가 없는데도 소망이는 몽이 보다는 건우를 더 좋아했다.
아무래도 매번 야단을 칠 때는 몽이가 나오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건우의 의식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소망이는 아직 몽이와 건우를 다른 객체로 생각하곤 했다.
요 녀석아, 그래봐야 소용없어 ! 에구구. 너 때문에 안 그래도 모자라던 수기가 말라간다. 이걸 어쩔 거냐고. 소망이 너 ! 하필 수(水) 속성을 건드려서는!
몽이가 소망이를 보며 다시 부들거렸다.
지금 건우의 의념 공간에서 가장 성한 기운은 당연히 화기(火氣)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토(土), 그 다음은 목(木)인데 문제는 오행 상생을 이용해서 다른 기운을 북돋운다고 해도 그 끝에나 수기(水氣)를 북돋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에서 불이 나고, 불에서 흙이 나며, 흙에서 쇠가 나고 쇠에서 물이 난다.
마지막으로 그 물에서 나무가 나는 이치가 오행의 상생이다.
그런데 건우의 의념 공간에는 하필 쇠와 물의 기운이 태부족이다.
그러니 쇠의 기운에서 물의 기운을 만드는 금생수(金生水)의 이치를 살릴 수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하필 소망이가 수(水) 속성 영역에 뛰어들었으니 사달이 날 수밖에.
물론 원래는 수극화(水鬼火)라 해시 물의 기운이 불의 기운을 이긴다.
그러니 소망이가 물의 기운이 성한 곳에 들어갔으면 당연히 낭패를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워낙 소망이의 화기가 강하고 수기는 반대로 약한 상태라 도리어 수기에 탈이 난 것이다.
아무튼 말썽꾼 같으니라고!
몽이가 다시 한 번 소망이를 째려봤다.
꼼짝도 말고 여기 있어 ! 또 말을 안 듣고 까불면 혼나!
몽이는 그렇게 화 속성 의념 공간에 소망이를 가둬두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소망이는 눈빛 가득 억울함을 담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똬리를 틀고 머리를 제 몸 사이에 묻었다.
그리고 그 시간 몽이는 의념 공간 한 곳에서 상급의 수 속성 영석을 꺼내고 있었다.
이걸로 일단 급한 불은 꺼야지. 에구구.
원래는 물의 속성이 흩어져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수 속성과 금 속성의 의념 공간 영역은 미약한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건우가 용암천 공동에 머무는 동안에 수린공과 단금공을 조금이나마 익혔고, 그렇게 오행 모두를 수련한 후에 의념공간에 오행기 공간을 만든 것이 문제였다.
그 오행기 공간은 다섯 기운의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 이번 일로 수 속성 공간이 완전히 무너지면 오행기 공간도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오행기 공간을 살리기 위해선 아까운 상급 영석이라도 사용해서 수 속성 의념 공간을 회복시킬 수밖에.
- 요 녀석, 두고 보자!
수 속성 상급 영석이 사라지는 모습에 몽이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 말썽장이 소망(小휴)이와 함께 세월이 흐른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