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08화 (408/499)

(408)

< 허를 찔렸군! 오행지를 알려주겠다니 >

“다행히 내가 익힌 공법이 이곳의 진법을 작동시키는 데 도움이 되긴 하는 것 같소이다만,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니 제대로 확인을 해 보십시다.”

건우는 무턱대고 자신의 가치를 재단하지 않았다.

아직 진법을 어떻게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로 한동안 건우가 진법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실증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적어도 5백 년은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결과가 아닙니까. 이래서는 곤란하지요!"

건우가 성호 준을 앞에 두고 난색을 표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용암천의 진법을 몇 번 작동시키는 것으로 성륜역의 화기 수준을 크게 끌어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법을 작동시켜 화기가 솟아나는 통로를 무한정 열어둘 수가 없었다.

진법을 작동시켜도 진법에 충전된 화기가 소진되면 다시 닫혔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용암천의 진법은 통로를 통해 나오는 화기를 흡수하지 않았다.

통로가 열려 있는 동안에는 진법의 기운 축적이 중지되고 이후 통로가 닫힌 후에 다시 화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연적으로 축적되는 화기의 양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어서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다시 진법이 발동되어 통로가 열렸다.

그리고 원래는 딱 그 정도가 성륜역 오행의 균형을 맞추는데 적당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네 속성의 기운이 크게 증가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고.

이제는 그에 맞춰 오행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그렇게 자연적으로 진법이 작동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상황.

인위적으로 진법을 작동시켜 이전보다 많은 화기를 성륜역으로 끌어 와야 했다.

그나마 5백 년 정도만 그 일을 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온 것도 용한 일이었다.

용암천의 진법이 스스로 화기를 흡수하여 일정 주기마다 진법을 발동하는데, 성륜역의 화기가 강해지면 그 주기가 짧아진다.

그래서 5백 년 정도 인위적으로 진법을 조작하여 성륜역의 화기를 증가시키면 그 이후로는 진법 스스로 화기를 흡수하여 발동하는 것만으로 필요한 수준의 화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5백 년 동안 건우가 용암천 진법을 관리하며 진법을 운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건우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 건우가 성호 준을 앞에 두고 불퉁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강 수사. 수사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신중하게 생각을 해 주십시오.”

“나밖에 할 수 없다고 해서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되면 성륜역의 영기 균형이 깨어지는 것을 모르십니까?”

“하하하. 성호 준 수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네?”

“아닌 말로 성륜역의 기운이 좀 흐트러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선계 전체로 따지면 무에 그리 큰 문제랍니까? 그리고 저야 이곳 성륜역에서 수련이 힘들면 다른 곳으로 가도 될 일입니다.”

“아니 강 수사. 어찌 그런 말씀을……"

“성호 준 수사께서 저와 입장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수사의 처지와 이 강 모의 처지를 같다고 생각하면 아니 될 말이지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산수의 입장인 건우와 성륜역에 일족의 터전이 있는 성호 준이 같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으음. 그리 말씀을 하시면 강 수사는 강룡 일족의 단금공(殺金功)은 포기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결국 성호 준의 입에서 건우의 약점이 흘러나왔다.

건우가 단금공을 욕심내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빌미로 우세를 점해 보려는 것이다.

“단금공이 뛰어난 수련 공법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금기(今氣)를 수련하는 기초 공법이 그것밖에 없답니까? 솔직히 여기서 5백 년이나 붙잡혀 있느니 그 시간에 다른 속성을 수련하며 단금공과 비슷한 공법을 찾는 것이 나을 거란 생각입니다만.”

"으으음."

성호 준은 건우의 말에 결국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자신이라도 이런 곳에 잡혀서 5백 년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준룡족으로 성륜역에 일족의 터전이 있는 입장임에도 그런 마음이 드는데 건우 수사는 어떨까 하는 역지사지의 마음도 약간 들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절대 불가한 일이라면 강 수사가 이리 나와 마주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그야 물어 무엇 하겠습니까? 저를 5백 년이나 이곳에 잡아두시려면 그만한 보상을 주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입 아프게 다른 이야기를 떠들 이유가 있겠습니까?”

“역시……"

이미 예상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라면 성호 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건우가 정말로 협상의 뜻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일 뿐이었다.

“좋습니다. 곧바로 어르신들께 상황을 설명하고 가르침을 받아 오겠습니다. 십여 년 정도면 될 것입니다.”

성호 준은 그렇게 협상을 마무리 하려 했다.

이제는 서둘러 태령기 완경의 어르신들을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보상을 받아 오는 것만이 남았다는 생각이었다.

“십여 년? 그 정도를 기다리라 하는 것이면 단금공(銀金功)은 내어 주시고 가시지요.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허송세월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건우는 십여 년을 기다리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뻗대고 나왔다.

“고작 십여 년의 보상으로 단금공은 과한 듯 합니다만?”

“그럼 후일 만날 약속을 정하면 되겠군요. 나도 이곳 용암천을 떠났다가 때에 맞춰 다시 수사를 만나면 될 일이니 말입니다.”

“끄응, 그 동안 용암천의 진법에는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리 되지 않겠습니까?”

보상도 없는데 십여 년을 이곳 용암천에 붙어서 진법을 관리할 생각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건우가 그리 나오니 성호 준도 어쩔 수 없이 건우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행의 균형이 조금씩 무너지는 중인데, 십여 년이 이대로 흘러버리면 그 어긋남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시겠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십 년 이상이 흘러가게 되면 그 때부터 다시 상황을 바로잡는데 5백 년이 아니라 8백 년이 걸릴 겁니다. 복구를 위해서는 그나마 균형이 덜 무너지는 것이 좋다는 것은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지요.”

건우가 이렇게 성호 준에게 쐐기를 박아 넣었기 때문이다.

성호 준은 어쩔 수 없이 십 년 후의 만남을 기약하고, 그동안의 용암천 진법 운용을 건우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대가로 강룡족의 단금공을 건우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고.

? 와, 사기꾼.

‘사기라니?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아니, 어차피 이곳에서 진법 연구를 할 생각이었잖아요. 그런데 십 년을 머무는 대가로 수련 공법을 받아내요? 그게 사기가 아니면 뭐예요?

‘항상 하는 말이지만 가치란 상대적인 것이다. 만약 이대로 화기를 증가시키지 못하고 십 년이 흐르면 오행의 균형이 얼마나 무너지겠느냐? 그걸 막아주는 대가로 단금공 정도면 그리 과한 것이라 할 수 없지.’

뭐, 솔직히 건우 님에게 좋은 일이니까 저야 환영할 일이긴 하죠. 그런데 용암천의 진법에 극화공 공법과 유사한 부분이 있죠?

‘그 뿐이겠느냐? 염화도가 얼마나 먼 곳인지 모르지만 그곳과 연결되는 통로를 만드는 진법이다. 그 비밀을 조금만 엿볼 수 있다면 공간 이동의 성취를 크게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시절 내가 태령기 완경까지 오르며 쌓은 배움이 적지 않으니 이곳의 진법을 통해 배운 것과 더하면 그 결과가 어떠하겠느냐?’

하긴 다른 수사들도 진법에서 배울 것이 많으니 쉽게 떠나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것이겠죠. 뭐 축융족의 나부려는 목적이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요.

‘그 자가 조금 음흉하긴 하지. 성륜역에 화기를 더하기보다는 도리어 진법을 통해 나오는 염화궁의 화기를 뽑아 먹으려 하는 놈이니까.’

쯧쯔, 그러다가 크게 경을 칠 텐데 말이죠.

‘고작 성령기 따위가 염화도의 화기를 욕심내다간 한순간 잿더미가 될 수도 있겠지.’

제 딴에는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을 텐데요? 준비도 했을 테고요.

‘그렇겠지. 이참에 태령기로 오르려는 것인데, 준비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가당찮은 수작을 부렸다가는 우리 건우 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겠지요?

‘일단 성호 준이 가지고 오는 보상을 보고 결정을 하자꾸나. 그 때까지는 나부려 그 자도 움직이진 않을 테니까.’

네네, 그럼 이제부터 어쩌실 거예요? 이곳엔 화기가 성해서 다른 속성을 수련하기에 마땅치 않은데 말이죠.

‘십 년이야 금방이 아니겠느냐. 그 사이에 이곳의 화기를 이용해서 화천독망질의 알을 부화시켜 보자꾸나.’

그 금은의 껍질 두 겹을 지닌 알이요?

‘그래. 생명 법칙을 쓰면 부화시키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 그리고 그 놈에게 필요한 화기는 이곳 용암천 진법 통로에서 얻으면 될 것이고.’

- 그게 좋겠네요. 이곳에서 백양오죽의 씨앗을 발아시키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음.'

건우는 몽이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렇게 할 일을 정했다.

이후, 극화공의 화기를 이용해서 용암천의 진법을 작동시키는 시간 이외에는 오로지 화천독망질의 특별한 알을 부화시키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행지(五行地)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주시겠다 했습니다.”

“그것이 5백 년 수고에 대한 보상이란 말입니까?”

“거기에 더해서 오행지에 전해지는 수련 공법 하나도 취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오행지에서 수련할 수 있는 자격과 오행기의 수련 공법이라……"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호 준이 건우를 보며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가지고 온 보상은 완전히 건우에게 맞춤한 것이라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행지는 건우도 이번에 알게 된 곳으로 성륜역 전체에서 오행의 기운이 한 곳에 뭉쳐 스스로 조화를 이룬 땅을 말했다.

당연히 그곳에는 오행의 기운이 다른 곳에 비해서 월등히 강력할 뿐만 아니라, 오행이 하나로 뭉쳐진 오행기 역시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곳이니 태령기 후기 이상이 되지 않으면 감히 들어갈 자격도 얻지 못하는 수련 복지이며 아는 이들도 많지 않은 비밀스러운 곳이라 했다.

거기에 그 오행지에서 태령기를 뛰어넘어 진선에 오른 이들이 여럿 있는데, 그들이 남긴 수련 공법도 곳곳에 숨겨져 있다고 했다.

성호 준이 말한 오행기의 수련 공법이란 바로 그런 것을 말하는데, 그것을 찾아 익힐 수 있도록 허락한다니. 건우가 어찌 그런 기회를 마다할 수 있을까.

“아주 제대로 이 강 모의 약점을 잡으셨습니다 그려.”

“하하하. 어찌 약점이라 하십니까. 솔직히 그만한 보상이 나온 것이 이례적인 일이지요.”

“그렇습니까?”

“이번 일이 성륜역의 오행과 연관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행지의 어르신들께서 건우 수사에게 그와 같은 특혜를 주셨겠습니까.”

“으음. 그도 그렇군요. 자신들의 수련에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니었다면 그런 대가를 내 놓을 일이 없었겠지요.”

건우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오행지에 있다는 수사들이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수련 장소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고, 알아서 수련 공법을 찾아 익히란 것이 아닌가.

수련에 방해될 상황을 다른 이에게 처리하게 하여 귀찮음을 덜면서 자신들은 손해를 보지 않으니 탁월한 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상할 일이지만, 또 건우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보상임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그런 대가라면 5백 년의 세월을 이곳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허송세월은 아니겠지요.”

“하하하. 역시! 하하, 잘 되었습니다.”

건우의 말에 성호 준이 이전보다 더욱 밝은 표정으로 기쁘게 웃었다.

그러면서 건우에게 오행지의 수사들이 의념을 담아 약속을 인증한 옥패를 건네주었다.

건우는 그 옥패를 받아드는 것으로 5백 년 동안의 임무를 수락했다.

< 허를 찔렸군! 오행지를 알려주겠다니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