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02화 (402/499)

(402)

< 흡기토성유근(吸氣土性留根) >

조심하세요. 성토문의 제자들이 없는 곳이 없어요.

몽이가 긴장한 표정으로 건우에게 주의를 주었다.

마침 건우가 개토공으로 땅굴을 뚫으려다 성토문의 결계를 건드릴 뻔한 직후였다.

‘후우, 이렇게까지 경계가 삼엄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보아하니 태령기 수사가 지휘를 하는 것 같네.’

이 정도가 되니 지금껏 이런 것을 숨길 수 있었겠죠. 대단하긴 해요.

‘이와 관련된 일에는 고령토 대지의 4대 수도문파가 모두 손을 잡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거대 규모의 행사를 숨길 수 없지.’

아, 그래서 이곳 외곽에는 다른 세 문파가 영역을 선포하고 둘러싼 거였군요?

‘일단 그들을 뚫고 들어와야 이곳에 닿을 수 있게 한 거지. 아마 다른 문파가 안쪽에 자리를 잡고, 바깥쪽을 남은 세 문파가 지키는 곳이 어딘가 또 있을 거다.’

그렇게 복지가 될 땅을 4대 수도 문파가 선점하여 지키는 거군요? 그래서 고령토 대지의 거의 모든 복지를 4대 문파가 소유할 수 있었던 거고요.

‘그렇지.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바로 흡기토성유근(吸氣土性留根)의 존재 때문이겠지.’

솔직히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워요. 온갖 기운을 먹어 치우고 오직 한 가지 기운인 토기로 바꾸어 뱉어 내는 뿌리라니.

‘나도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신비한 식물이다.’

건우가 이 흡기토성유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추혼술을 펼쳤던 활토문의 장로 덕분이었다.

그 활토문 장로는 건우가 우호적으로 방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에 대해서 파헤치고 다닌다며 죽이려 들었다.

상대가 그리 나오니 건우는 옳다구나 하고 역으로 제압하여 정보를 캐냈는데, 거기서 고령토 4대 수도 문파의 비밀 한 자락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흡기토성유근이란 이름도 그를 통해서 알아낸 것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 흡기토성유근은 어떤 수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솔직히 토기(士氣)만 만들어 내는 뿌리라니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활토문 장로도 따지자면 외문 장로였던 까닭에 문의 내밀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건우가 이곳까지 찾아와 흡기토성유근을 직접 살피려 하는 것이었다.

뿌리의 중심은 고작해야 십여 장크기의 구근(球根:알뿌리)인데 거기서 뻗어나간 잔뿌리가 백여 리에 안개처럼 퍼지다니, 말도 안 된다고요.

몽이가 건우의 의념에 잡힌 흡기토성유근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뿌리를 뻗은 후에 온갖 기운을 모두 흡수하고 그 기운들을 토기로 바꿔 배출하는 거지. 그리고 모든 기운을 흡수한 후에는 구근에서 잔뿌리를 전부 끊어 내는데, 그 잔뿌리에 담긴 토기(土 氣)가 워낙 강력해서 그 일대가 수련 복지로 바뀌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흡기토성유근은 토기(土氣) 수련자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 놈이 분명해 보여.’

뭐 좋아요. 다행히 그 멍청한 활토문 외문 장로 덕분에 이렇게 고령토 대지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어쩌실 거에요? 흡기토성유근이 잔뿌리를 끊고 구근이 될 때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아무래도 구근을 훔치기 위해서는 그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요.

‘야! 그게 말이 되냐? 구근이 잔뿌리를 잘라낼 때가 바로 복지가 탄생하는 순간이고, 또 흡기토성유근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땐데? 그 때는 아마 지금보다 경계가 몇 배는 더 강화되지 않겠냐?’

그렇다고 지금 흡기토성유근을 빼돌려요? 그게 가능할까요?

‘너는 어째 통째로 훔칠 생각만 하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안 해?’

네? 다른 방법이 있어요?

‘일단 흡기토성유근의 잔뿌리를 조금 뜯어서 그걸로 실험을 해 보는 거지.’

무슨 실험이요?

‘생기법칙으로 잔뿌리에서 구근을 배양해 낼 수 있는지 말이다.’

어라? 그런 쉬운 방법이 있었네요? 게다가 잔뿌리 정도는 조금씩 뜯어 간다고 문제가 생길 일도 없을 테니, 실패해도 지속적으로 시도해 볼 수도 있겠네요. 좋은 방법인데요?

몽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 후, 건우는 성토문의 제자들이 지키는 흡기토성유근의 영역에서 멀지 않은 지하에 자리를 잡고 수시로 흡기토성유근의 잔뿌리를 뜯었다.

그리고 그 잔뿌리에 생기법칙을 심은 후에 의념공간에서 배양하기를 반복했다.

‘그것 참, 생기법칙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네.’

건우 님이 생기법칙에 대한 장악력을 조금 더 키워야 할 거 같네요. 매 번 생기법칙이 제대로 적용이 안 되잖아요.

물론 건우의 시도는 꽤나 오래 성공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아무리 미약한 수준이라도 법칙의 힘을 성령기 수사가 직접 다루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깨달음을 수습하여 얻은 것이라 펼치고 거두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과거 건우가 생기법칙을 잘못 사용하여 재앙을 만들었던 일이 다시 반복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선 다행이라며 건우가 가슴을 쓸어내린 일도 있었다.

“역시 쥐새끼가 있었군.”

“으음, 불청객이 어찌 내 거처를 찾은 것입니까?”

건우는 한창 흡기토성유근의 잔뿌리로 구근 만들기를 하던 중에 은폐 결계가 무너지며 누군가 침입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직후 태령기 완경의 수사 하나가 건우가 머무는 지하 공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토속성 영기가 강하게 풍기는 그 수사는 성토문의 상징인 세 겹으로 쌓인 산(山) 문양을 소매에 매달고 있었다.

그 수사의 경지는 이미 태령기 완경에 이르러 있어, 그가 성토문의 문주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자리에 있음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수사를 맞이하는 건우의 태도는 의연함을 넘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고작 성령기 초기 따위가 감히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대드는 것이냐?”

그런 건우의 태도에 성토문의 수사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울러 성토문의 수사는 강력한 의념을 펼쳐 건우를 제압하려 했다.

원래 경지의 차이가 있으면 의념으로 찍어 누르는 것만으로 끝장을 볼 수 있다.

성토문의 수사는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건우는 그가 생각한 일반 수사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세 번에 걸쳐 유훈결을 완성함으로서 건우의 의념은 동급의 다른 수사들에 비해 여덟 배나 강력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의념의 강력함은 성령기 초기에 불과한 건우가 태령기 완경의 수사에게 맞설 힘을 주었다.

더구나 건우는 이미 태령기 완경의 경지에 올라봤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 어찌 태령기 완경이라고 무조건 양보하고 엎드리겠는가.

“이게 무슨 짓이오? 지금 경지를 앞세워 나를 핍박하려는 것이오?!”

우우우우우웅! 쿠구구구궁!

건우가 강력한 의념을 펼쳐내어 태령기 완경의 성토문 수사에게 맞섰다.

그러자 두 수사의 의념이 맞부딪히며 주변의 땅을 흔들어 지진을 만들어냈다.

“허어! 어찌 성령기 초기가……"

막상 건우의 저항이 시작되자 성토문의 수사는 깜짝 놀라 공세를 거두고 말았다.

당장 의념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지 못했는데, 혹시라도 싸움이 길어져 최선을 다하고도 밀린다면?

그 때는 태령기 완경의 자신이 성령기에게 패배하는 참혹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는 사실 건우의 의념을 접하는 순간,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참이었다.

그래서 일단 상황을 다시 살핀다는 핑계로 공세를 멈춘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상대 역시 의념을 조절하여 한 걸음 물러나 주었다.

“성격이 급하십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리 무례하게 내 거처를 찾아 핍박을 한단 말입니까?”

그런 성토문 수사를 향해 건우가 화난 표정으로 따지고 들었다.

성토궁의 태상장로인 부도치(美倒置)는 그런 건우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곳은 성토문이 금지로 지정한 곳이 아닌가.

게다가 이 성토문의 금지를 에워싸고 개토, 복토, 활토의 세 문파가 영역을 정하여 출입을 금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비 밀스럽게 동부를 만들고 머물고 있던 자가 도리어 이유를 따지고 들다니.

“이유 없이 핍박을 한다고? 너는 이곳이 우리 성토문의 금지임을 모르느냐? 아니 모를 수가 없겠지.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은 분명히 네 죄가 아니냐. 그런데 오히려 내게 따 지고들어?”

부도치는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로 건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건우는 그런 부도치를 보며 태연한 표정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따지자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성토문의 금역과 복토문 금역의 경계에 해당하지요. 그래서 딱히 소유권을 주장할 문파가 없는 곳이란 소립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게다가!”

부도치가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건우가 단호하게 중간을 끊었다.

“성토문에서 금역으로 지정한 곳에서 흡기토성유근을 발견했는데, 어찌 수사로서 그 호기심을 감출 수가 있었겠습니까?”

“뭐라? 네가 어찌 흡기토성유근을 알지? 그것은 우리 4대 문파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인데?”

“어찌 그 이름을 알게 되었는지가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어떤 멍청한 놈이 주제도 모르고 나를 도모하려다가 도리어 죗값을 받았다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끄응. 주제를 모르는 놈이라. 그 놈이 우리 성토문에 속한 놈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다행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좋다. 네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대충은 알겠다. 하지만 너도 이제 나를 만났으니 그만 물러 나는 것이 어떠하냐?”

“하하하. 수사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니 제 입장이 참으로 곤란하군요.”

“곤란하다?”

“그렇지요. 우연이기는 하여도 흡기토성유근의 존재를 알고 이렇게 확인까지 한 마당에, 제가 이대로 물러나면 어찌 되겠습니까?”

“세상에 우리 4대 문파와 흡기토성유근에 대해서 떠벌리고 다니겠다는 이야기군.”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고령토 대지의 4대 수도 문파가 수련 복지를 어찌 만들어 장악하고 있는지 다른 수사들이 알게 되면……"

“그래 봐야 저들이 어찌 할 방법이 있겠느냐? 고령토 대지에서 우리 4대 수도 문파를 가볍게 볼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음이다.”

“그렇기야 하겠지요. 하지만 흡기토성유근이 드러나고 세월이 흐르게 되면 언젠가는 4대 세력도 뜻밖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끄응, 너는 네 스스로 화를 부르는 재주가 있구나. 네가 지금 나와 싸워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우리 성토문은 물론이고 다른 3대 수도 문파에도 뛰어난 수사들이 많이 있느 니라.”

“아! 그 수사들이 모두 달려든다면 저로서도 곤란하긴 하겠군요.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너는 뭔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구나?”

부도치가 수도계를 떠돈 시간이 그 얼마인데 건우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또한 건우도 부도치가 알아차리기를 바라며 은근히 신호를 보낸 것이고.

“하하하. 들어보시면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것입니다. 자, 일단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해 보시지요.”

건우가 땅에서 의자를 뽑아 올려 부도치에게 권하며 자신도 역시 같은 의자를 맞은편에 만들어 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탁자까지 뽑아 올리니 대충 이야기를 나눌 환경이 만들어졌다.

“나쁘지 않은 거래라? 그보다는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부도치도 서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마주 앉은 점을 고려했는지 하게체로 말을 슬쩍 바꾸고 있었다.

“통성명이라면 나쁠 것이 없겠지요. 강건우라 합니다.”

“강 수사였군. 나는 부도치라 하네.”

“아, 부 수사셨습니까? 듣기로 성토문 태상장로의 이름이 그와 같다고 들었습니다만.”

“맞네. 내가 성토문 태상장로 부도치일세.”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그럼 이제 부 수사께서 흥미를 가지실 이야기를 해 볼까요?”

“그래, 어디 말해 보게. 정말로 내가 흥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당연히 흥미가 있으실 것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제가 이곳에 머물며 했던 연구와 관계된 것이지요.”

“ 연구라?”

“흡기토성유근에 대한 것입니다.”

“역시 우리 성토문의 보물을 탐내고 있었던 것인가?”

부도치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주인이 있는 보물을 노릴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지요. 저는 그저 흡기토성유근의 잔뿌리 약간을 취했을 뿐입니다. 설마 그것을 두고 야단을 치시진 않겠지요?”

“잔뿌리 약간이라. 하긴 강 수사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후로도 흡기토성유근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일이 없기는 했지.”

“그것 보십시오. 제가 이곳에 제법 오래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건 인정하지. 그래서 그 잔뿌리를 가지고 뭘 했다는 건가?”

부도치는 본론을 듣고 싶다는 듯이 핵심을 찔러 물어왔다.

“사실 그 동안 그 잔뿌리를 이용하여 흡기토성유근의 구근을 배양하려 했습니다.”

“뭐? 뭣이라? 그런 말도 안 되는!”

“하하하. 그리 놀라실 것이야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성공을 했으면 이 자리에 있었겠습니까? 제가 여기 있다는 ?? 그 일이 실패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끄응, 하긴 그렇지.”

“하지만 또 그게 끝이라면 제가 부 수사에게 흥미로운 거래를 청하지 못했겠지요.”

“음? 그건 무슨 소린가?”

“부 수사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흡기토성유근의 구근을 다수 배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지요. 어떻습니까? 흥미를 넘어 혹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건우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치 부도치가 절대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리란 확신이라도 하는 듯이.

< 흡기토성유근(吸氣±性留根)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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