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00화 (400/499)

(400)

< 수련 기반을 새로 다져야 할 것 같다 >

건우는 태삼림을 떠 났지만 성륜역을 완전히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태삼림은 광대한 숲이었지만 성륜역 전체로 보면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백양목령족이나 오죽목령족도 실상은 성륜역의 거대 목령족 세력 중에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니 태삼림의 목령족을 두려워하여 수련복지라 할 수 있는 성륜역(星輪域)을 떠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건우 님은 굳이 일정한 곳에 수련동부를 세우실 이유도 없다는 게 다행이에요. 이 거용의 내부에 있는 공간만으로도 충분하시니까요.

한창 비행을 하고 있는 거룡 비행 령보의 머리 위.

4층탑의 1층에 건우와 몽이가 있었다.

“으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랜 세월 머물며 수련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지. 이전에 내가 극화공을 익히기 위해서 화기가 충만한 소세야(燒世野)에 머물렀던 것을 생각해 봐라. 수련에는 그 에 알맞은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아, 그건 그렇죠. 그런데 그 말씀을 들으니까 생각이 난 건데요, 건우 님은 앞으로 수련 방향을 어떻게 잡으실 거예요? 지금은 목기와 화기가 서로 상충하니 그 중에 하나를 익히기 위해선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잖아요.

태삼림을 떠날 때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한 문제였다.

하지만 근래에 건우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기에 몽이가 슬그머니 물어보는 것이었다.

“음,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지.”

효과적인 방법이요?

“그래. 오행이다!”

오행이라면. 아! 화수목금토의 다섯 속성을 모두 익혀서 상생상극의 이치로 균형을 잡겠다는 말씀이네요?

몽이가 건우의 생각을 읽어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목기나 화기 중에 하나를 버리느니 차라리 수기와 금기, 토기를 더하여 오행을 완성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섯 속성을 모두 익히신 후에는 그걸 다시 오행기로 묶으시게요? 전에 장문일 수사에게 배웠던 것 처럼요?

“지금 장문일 그 자에 대한 이야기야 다시 거론할 가치가 있겠느냐만. 그래도 크게 보자면 그 자에게 배웠던 오행영기공(五行靈氣功)과 같은 이치를 따르게 되겠지.”

그런데 건우 님께 그런 공법이 없잖아요. 진짜로 연신기 때에 배웠던 그 오행영기공 따위를 지금 익히실 건 아니죠?

“당연히 그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미 내가 목기와 화기를 극성으로 익힌 마당이라 수금토 세 속성의 공법도 따로 하나씩 익힌 후라야 오행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그러니 당장 급한 것은수금토의 세 속성을 각각 하나씩 익히는 것이다.”

물과 쇠와 흙을 따로따로. 그렇군요. 그래서 어찌하실 생각이세요? 건우 님의 과거 기억에 괜찮은 공법들이 있던가요?

몽이가 혹시 하는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묻는 몽이도 이미 건우의 대답을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수련 공법이야 꽤나 많은 편이지. 하지만 그것들은 고작해야 영계의 보물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수미 세계가 선계에 올라설 때에 나는 대천세계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니.”

건우는 살짝 실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긴, 선계 생활로 치자면 건우 님보다는 장우 님이 더 경험이 많다고 해야겠네요. 그런데 장우 님이 얻은 보물 중에 당장 필요한 속성 수련 공법은 없는 거구요.

“그렇긴 하지만 괜찮다. 어쩔 수 없이 수련 공법을 찾아봐야 할 처지지만 그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네? 어렵지 않다고요? 왜요? 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필요한 것은 수금토의 단속성 수련 공법이 아니냐. 원래 그런 수련 공법은 널리 알려진 편이지.”

그래요?

“그래. 따지자면 그런 단속성 수련 공법이 수도계의 가장 오래된 공법들 중에 하나가 아니겠느냐. 수도계의 시작이 단속성의 수련 공법이었음은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 게다가 특정한속성 을 지닌 종족의 경우엔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고.”

그것도 그러네요.

“그런데 이곳 성륜역에는 유독 이종족 수사들이 많지 않으냐. 인간 수사에 비해서 그런 이종족 수사들이 한 가지에 특화된 속성 수련을 하는 경우가 많지. 목령족이 목기를 주로 수련하는 것처럼.”

그럼 수기는요? 수기 (水氣)를 주로 수련하는 수사들도 알고 계세요?

“전에 성륜역의 여섯 용인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지. 그 중에 린룡(鱗龍)이 있었는데?”

몽이의 물음에 건우가 슬쩍 말을 돌리며 물었다.

네, 기억나요. 비늘 린(鱗)을 쓰는 린룡이요.

“그래, 다른 용들도 모두 비늘이 있는데 유독 수룡에게만 린용이란 이름을 붙였지. 그래서 용인족 중에 린룡은 수룡의 피를 이은 용인족을 말하는 거지. 그리고 그 린룡은 당연히 수속성 공법을 주로 익히고.”

- 그렇군요. 그럼 수속성 공법을 린룡에게서 얻는다고 치면 금(金)속성(屬性)과 토(土)속성(屬性)은요?

“용인족 중에 강룡족이 금(金)속성의 수련을 주로 한다지? 물론 그 외에도 몇몇 이종족이 더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토 속성도 그것만 익히는 이종족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특정 지역에 토속성 수련을 주로 하는 수도 문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곳에만 토속성 공법을 주로 하는 수도 문파가 넷이나 된다던가?”

- 그럼 지금 서쪽으로 가시는 것을 보면 거길 가시는 건가요?

“목 속성과 화 속성을 의념 공간으로 분리하여 충돌을 막고 있지만 어차피 오행을 모두 익힌 후에는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행 중에서 밑바탕이 될 속성을 정하는 것이 좋겠지.”

- 그게 토속성이란 거군요? 그래서 그 토속성 수련 문파들이 있다는 곳으로 가는 거고요.

“옳다. 그곳에 고령토(高靈土)가 있다지.”

- 고령토요? 그거 범인들이 도자기를 만들 때……. 아, 그건 고령토(高演土)구나. 에헤헤. 그럼 고령토(高靈土)는…….

“신비로운 흙이다. 토 속성의 기운이 그 어떤 흙보다 넘친다고 하지. 그 고령토 때문에 그 곳에 토 속성 수도 문파가 넷이나 몰려 있는 것이고.”

- 아, 그렇구나. 그럼 그 고령토를 깔고 백양오죽의 열매를 심으면…….

“고령토를 그리 내 멋대로 챙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가능하다면 그것도 좋겠지.”

- 역시, 장우님이나 건우님이나.

“뭐라?”

- 에헤헤헤. 뭘 저한테까지 이러세요. 빤히 다 아는 처지에.

“그것 참, 하하하하.”

자신의 사고(思考) 영역 한 부분을 차지하는 몽이의 말에 건우는 아니란 말도 못하고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거룡 비행 령보는 꾸준히 서쪽으로의 비행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 * *

“이것이 진정 태을선공환(太己仙供九)이란 말입니까!”

제법 큼직한 사인교에 거대한 몸을 구겨 넣은 수사가 목함 하나를 들고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는 당장이라도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것을 참으며 상자 안으로 의념을 불어넣어 영단을 살피는 중이었다.

“허어, 주 수사. 그럼 이 강 모가 가짜 영단으로 주 수사를 속이기라도 한다는 이야깁니까?”

건우가 짐짓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아닙니다. 기운을 보아하니 범상치 않은 영단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 주 모가 태을선공환은 기록에서나 봤을 뿐, 실제론 본 적이 없어서……

“그럼 이것은 어떠합니까? 선공환인입니다.”

살이 찐데다가 팔다리가 짧고 배가 나온 탓에 두꺼비를 연상시키는 주 수사의 말에 건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새로운 영단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금박을 씌운 영단이었는데 그 표면에 흐릿한 법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러자 주 수사가 건우가 내미는 선공환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확실히! 비슷한 영단입니다. 다만 이것은 기운이 미약하여 입령기 수준의 수련에 적합하겠습니다. 이것이 선공환입니까?”

“아시겠지만 그 선공환 여러 개를 재료로 하여 태을선공환을 만듭니다. 그래도 보시면 태을선공환과 그 선공환의 연관 관계는 아시겠지요?”

“크음. 내 비록 견문이 짧다곤 하지만 그 정도를 못 알아볼 까막눈은 아니올시다.”

“하하. 주 수사를 내가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어렵게 태을선공환(太己仙供九)을 연단해 왔는데 그리 의심을 하고 그러시니……. 이러시면 어쩔 수 없이 이 강 모도 생각을 달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커어엄.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겝니까? 이 주 모와 언약을 했으면 당연히 약속을 지키셔야지요.”

혹시라도 거래를 무르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의 주 수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눈빛 깊은 곳에 있는 욕심은 털어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저야 할 도리를 다 한 마당이 아닙니까.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는 것은 주 수사고 말입니다.”

“에이! 알았소이다. 거래를 합시다. 여기 복토공(覆±功)이 있소이다.”

건우가 결국 살짝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 번 불만을 토로하자 주 수사가 눈을 찔끔 감으며 목에 걸고 있던 옥간 목걸이를 뜯어 던졌다.

건우가 그것을 받아들고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진본이 아니군요.”

하지만 곧이어 건우가 냉랭한 표정으로 주 수사를 노려봤다.

“어차피 내용이 중요한 것, 진본이고 아니고는……"

“이러시면 약속과 다르지요. 그럼 저도 주 수사에게 하자가 있는 태을선공환을 내어드리리까? 연단을 하던 중에 살짝 흠이 생긴 것이 몇 개 있을 터인데?”

“어허! 건우 수사!”

건우의 말에 주 수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 주 수사도 약속을 지키시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복토공의 진본을 두고 거래를 한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쯧! 되었습니다. 주 수사가 그리도 손해를 본다 싶으면 거래를 아니하면 그만입니다만 자꾸 이런 식으로……"

“아니오. 아니오. 알았소! 알았으니 그만합시다. 여기 있소이다.”

말을 하는 중에 건우의 눈에서 붉은 화염이 돌기 시작하자 주 수사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소매를 떨쳤다.

그러자 조금 전에 그가 던졌던 것과 똑같이 생긴 옥간이 나타났다.

건우는 그 옥간을 받아들고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살핀 후에 활짝 웃어 보였다.

“옳습니다. 이래야 맞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주 수사."

그리고 두 손을 맞잡고 살짝 흔들어 인사를 했다.

주 수사는 사인교에 퍼져 앉은 상태로 슬쩍 고개를 비틀어 다른 곳을 보며 마땅치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건우는 원하는 것을 얻었기에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태을선공환은 태령기 승경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불만스러워 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 복토공 하나로 주 수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미 건우 수사가 다른 이들과도 거래를 트고 있음을 알고 있소이다. 건우 수사는 결국 넷으로 쪼개진 공법을 모두 모으겠지요.”

뭔가 항변하는 듯한 주 수사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살짝 담겨 있는 듯했다.

“하하하. 그렇다고 한들, 그게 또 무에 그리 대수랍니까? 아닌 말로 넷으로 갈라진 완토공이 하나뿐이면 모르겠습니다. 아직 적어도 대여섯 벌은 남았을 겝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미 갈 라진 넷을 모아서 완성된 완토공을 얻은 수사가 또한 그 이상은 될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주 수사께선 인연이 없었다 생각하고 끝난 일은 이만 잊으십시오.”

건우는 자꾸만 미련을 보이는 주 수사를 향해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소매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 주 수사에게 던졌다.

그리고 주 수사가 그것을 받아들자 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선공환 열 개가 들어 있습니다. 이미 성령기 완경에 이른 주 수사의 수련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부족한 영기를 급히 채워야 할 비상 상황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일종의 덤이다.

자꾸만 치근거리 니 우는 아이 달래듯이 던져 주는 것이었다.

“커어엄. 뭐이런 것까지. 고맙소.”

주 수사도 그것을 알았는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연이 있으면 다시 또 뵙지요.”

건우는 자꾸 지체하다보면 주 수사가 다시 매달릴까 걱정되어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뒤에 남은 주 수사는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번 거래로 얻은 태을선공환과 선공환을 모두 꺼내어 살피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나머지 옥간 세 개를 모두 얻어 복개활성완토공(覆開活盛完土功)을 복원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니 이것으로 태령기에 도전하는 것이 이득이다. 어차피 이번에도 승경에 성공하지 못 하면 다가오는 대천겁을 넘기기 어려울 테니까.’

사실 대천겁만 아니었다면 좀 더 흥정을 해 보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마무리 된 일에 미련을 두진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간 건우는 주 수사에게 얻은 복토공 옥간을 살피며 활짝 웃고 있었다.

< 수련 기반을 새로 다져야 할 것 같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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