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99화 (39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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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삼림을 떠나다 >

“내 본체를 군집의 매개체로 쓰겠다고 들었습니다만.”

건우도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 모른 척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포승이 건우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머문다고 해도 이웃들이 사나우니 편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 중에 나쁘지 않은 보상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혹하긴 했습니다.”

무얼 주느냐에 따라서 거래를 할 용의가 있다는 말이다.

“이전 장우 수사에게 말했던 것처럼 건우 수사가 다른 곳으로 가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백양오죽의 열매를 맺어 드리겠습니다.”

건우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는지 격허가 표정이 밝아지며 적극적인 모습으로 말했다.

“열매라……. 어디 나 말고도 백양오죽이 있어서 짝을 맺어줄 것은 아니겠고. 결국은 내 본체의 기운을 응결시켜 열매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겠지요?”

건우가 대충 짐작이 된다는 듯이 확인하듯 물었다.

“형식이야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단순히 기운을 응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백양과 저 오죽의 비기를 더할 것이다.”

건우의 말에 포승이 단순히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끝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 이야긴 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기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군요. 설명을 좀 해 주시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니 알려줘야지.”

건우의 말에 포승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보상으로 맺게 해 줄 열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거래라는 생각을 했다.

“비기를 사용하여 응결된 열매는 시간만 주어지면 태령기 완경까지 무사히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군요? 당연히 그 성장을 바탕으로 저 역시 태령기 완경까지는 오를 수 있을 테고 말입니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 지금 말한 것은 외부 간섭 없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 때의 이야기니까.”

포승은 무작정 그렇게 될 거라는 장담은 하지 않았다.

외부 변수에 의한 문제까지는 책임질 수 없다는 말.

다만 열매에 태령기 완경까지는 무사히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담는 것만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건우 수사가 빠른 시간에 성령기에 올라, 태령기 완경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니 심사숙고해야 할 겁니다.”

그 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격허가 문득 건우에게 충고하듯이 말했다.

건우는 격허의 말이 단순하지 않음을 알았다.

격허와 포승의 제안에는 태삼림의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 전체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안을 거부했을 때의 후환이 어찌 없을까.

격허는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나의 태생이 백양과오죽인데 두 일족이 모두 이 건우를 이리도 밀어내려 하다니 말입니다.”

건우는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격허와 포승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체념 어린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제가 머물 곳이 아닌 것 같군요. 두 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사실 열매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부족하다고?”

“뭐가부족하다는 건가요?”

“사실 제가 어찌어찌 백양오죽에서 태어나 수사가 된 이후로 줄곧 봉인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음, 그건……"

“건우 수사를 그대로 자유롭게 두어서는 돌연변이의 번식을 막을 길이 없다고 여겼기에…… 건우의 말에 두 수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제가 지금껏 다른 수사들과 제대로 교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아시겠지요?”

“알고 있다.”

“네, 알아요.”

“그러다 보니 이제 자그마치 성령기 수사가 되었는데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작 이 몸뚱이 하나가 전부이지요.”

건우가 몸을 비틀어 등 뒤쪽의 백양오죽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교류와 소통이 막혔기에 오로지 수련만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 덕분에 어떤 수련자원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법기나 법보, 영약, 영단 따위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 보상까지 해 달라는 거냐?”

포승이 건우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제 먼 길을 떠나게 될 터인데, 노잣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잣돈이라? 허 ! 그것 참!”

“어지간한 노잣돈으론 성에 차지 않겠군요?”

포승과 격허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런 중에 군체로 연결된 일족들의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일족들은 통 크게 재물을 내어놓겠다고 나섰다.

이제 건우가 떠나고 빈 백양오죽을 통해서 두 목령족이 영혼 통합을 이루면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무궁할 것이다.

백양과 오죽이 서로 싸우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여유가 생기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까짓 보물들 얼마쯤 내어주는 것은 큰일도 아니란 여론이었다.

“좋다! 섭섭하지 않게 내어주지!”

“우리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아, 거기에 한 가지만 더 얹어 주십시오.”

“뭐라?”

“또 뭘 더 달라는 겁니까?”

“달리 물질적인 것을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두 일족의 어른들, 그러니까 진선경을 넘으신 분들을 통해 수미세계에 대해서 좀 알아봐 주십시오.”

“수미세계? 그곳이 어디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일족들에게 물어보아도 아는 이가 없군요.”

“영계였다가 멸계전을 통해서 선계로 올라온 계입니다. 그게 언제 이야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봐 달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게 그리 어려울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것까지만 해 주신다면 곧바로 태삼림을 떠나겠습니다.”

건우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냔 듯이 격허와 포승을 멀뚱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 정도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까짓 백양오죽의 본체 따위는 내어준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알았다. 그럼 조만간 준비를 해서 다시 오지.”

“오래걸리지 않을것입니다.”

잠시 일족들과 뭔가 의논하던 포승과 격허는 그렇게 건우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듯이 말을 하고는 건우의 결계를 빠져 나갔다.

홀로 남은 건우는 다시 깨달음과 옛 기억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    *    *

“가장큰 이득은 역시 생명 법칙이다.”

건우는 한동안 의념공간과 기억을 정리하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이제 끝나셨어요?

건우의 혼잣말에 몽이가 쪼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젠 정리가 되었지. 분혼의 기억이 더욱 방대하여 장우로서의 기억을 더하는 방향으로 했으니까.”

- 그렇군요. 이젠 장우 님보다는 건우 님이 주가 되신 거네요?

“굳이 나누자면 그렇겠지만 의미가 없는 구별이겠지.”

- 어쨌거나 축하드려요.

“그래, 과거에 비해서 많은 것이 부족해졌지만 그래도 무사히 윤회를 마치고, 기억도 되찾았으니 나쁘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는 것이 도리어 과한 욕심이라 해야겠지.”

- 네에. 저는 뭣보다 건우 님이 의념공간에 들어오시지 못하는 건 아쉬워요. 하지만 장우님으로 있을 때보다는 의념 공간의 활용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점에선 축하할 일이죠. 과거 건우님일 때만 은 못해도 장우 님일 때보다는 나은 상황! 이게 바로 지금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몽이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겠느냔 듯이 그렇게 말하곤 건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과거처럼 의념공간을 직접 드나들지는 못하지만 장우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지. 약초밭을 일굴 수도 있고, 영수를 놓아 키울 수도 있고.”

- 네에, 맞아요. 그러니 이번에 백양오죽의 열매를 받으면 그걸 의념공간에서 키워보는 것이 어떨까요?

“나도 그럴 생각이다. 거기에 생기법칙을 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지.”

- 와, 역시 ! 그럼 저는 거기에 더해서 화천독망질의 알도 부화시켰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되면 그것도 연구를 해 볼 생각이다. 마침 녹색 영과의 문양을 살피며 얻은 깨달음이 있어서, 그 알의 껍질에 새겨진 문양도 어느 정도는 파악할수 있을듯하니까.”

- 그랬죠! 맞아요. 드디어 화천독망질의 알에 새겨진 문양의 뜻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죠.

“그 동안은 너무 여유가 없었지. 분혼 흡수를 위해서 승경에만 매달렸으니까. 게다가 그 알은 단순히 화기만으로 부화시킬 수도 없었고.”

- 맞아요.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잔결독공이나 염화궁 극화공(極火功)의 화기도 받아먹기만 하고 부화할 낌새는 보이지도 않았잖아요.

“그러니 이번에 얻은 생기법칙을 사용해서 시도를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냐.”

- 헤헤헤, 맞아요. 이제 의념 공간을 분리해서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 백양오죽과 화천독망질을 서로 다른 곳에 두고 키우면 되겠네요.

“의념 공간을 나누는 것은 과거에 적잖게 활용했던 수법이었지. 백양오죽과 화천독망질의 알은 속성이 너무도 달라서 한 곳에 키우긴 어려울 테니 공간을 나누어 따로 키우긴 해야겠지. 아,그러고 보니……

- 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그래. 너도 알겠지만 분혼을 흡수하면서 내가 조금 곤란한 상황이 되기는 했지.”

- 곤란한 상황이요? 아! 그러고 보니 목속성 수련으로 성령기에 오른 백양오죽목령과 화속성을 극성으로 익힌 건우 님은 수련공법상으로는 거의 상극이네요?

몽이도 문득 그런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당장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이후 경지를 높이기에는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목기와 화기라니. 자칫하면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할지도.”

- 그러네요.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기엔 그 수련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니 다른 수를 찾아야겠네요?

“음, 고민을 해 봐야 할 문제긴 하지 .”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후로 격허와 포승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건우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서로 상극에 가까운 수련 속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자, 이것은 약속했던 백양오죽의 열매, 그리고 노잣돈이다.”

건우를 다시 만난 포승은 사람 머리 크기의 호두알 같은 것을 내밀었고, 격허는 공간낭 하나를 내밀었다.

건우는 우선 포승이 손에 들고 있는 호두알을 받아들었다.

자세히 보면 그 호두알은 중앙을 가로로 갈라 만든 함이었다.

건우는 그 함을 받자마자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은행열매를 닮은 주먹 크기의 씨앗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씨앗은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이었는데 매끈한 표면에 녹색의 문양이 어지럽게 흐르고 있었다.

“알아서 하겠지만 뿌리내릴 땅을 신중하게 정해야 할 것이다.”

열매를 살피는 건우에게 포승이 조언을 던졌다.

건우는 의념을 집중하여 열매를 살펴보고 그 안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담겨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흘을 꼼짝 않고 서서 열매를 살피다가 함의 뚜껑을 닫은 후에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포승을 향해 공수하며 인사를 했다.

“대단한 술법이 담겨 있군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백양과 오죽 두 목령족의 약속을 믿을 수 있겠습니다.”

“사흘을 살피고서야 믿을 수 있다고 하다니, 건우 수사는 참으로 꼼꼼하군.”

인사를 받는 포승의 얼굴빛은 별로 좋지 않았다.

눈앞에서 그리 시간을 끌며 열매의 진위를 살폈으니 기분이 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격허가 앞으로 나서며 손에 들고 있던 공간낭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서 태삼림의 목령족들 중에서 성령기 초기의 일족들이 가진 것을 평균 내어서 그만한 가치의 수련자원으로 공간낭을 채웠습니다."

“오호라. 성령기 일족의 평균이라구요?”

“특별히 귀한 것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평균을 내어서 그에 맞춰 영석과 수련자원 등을 채워 넣은 것이니까요.”

“좋습니다. 이만하면 저도 불만은 없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수미세계에 대한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건우는 두 수사가 들고 온 보상을 두고 실랑이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보상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수미 세계에 대한 정보만 더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격허와 포승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에 대해서 어르신께 여쭤봤다. 그 결과 영계였던 수미세계가 선계로 편입된 일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하셨다.”

“저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진선경과 그 바로 아래인 태령기도 서로 교류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아무리 같은 일족이라 하더라도 뭔가를 바라기는 어렵지요.”

“쉽게 말해서 그 수미세계인가 하는 곳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스스로 진선경에 오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란 소리다. 우리 백양이나 저 오죽에 속한 일족들 모두가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 라면 그곳이 얼마나 먼 곳에 있다는 소리겠느냐? 그러니 혹시 네가그곳에 대해서 알게 되더라도 할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거다.”

“아마도 그렇게 먼 곳이라면 건우 수사가 죽을 때까지 날아가더라도 닿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진선경의 신선이라면 또 어떨지 모르지. 그 신비를 어찌 알겠나. 그러니 당장은 네 앞가림을 하는 것이 먼저란 말이다. 수미세계는 지금의 네 주제엔 가당치도 않은 곳이니.”

건우는 뼈를 때리는 포승의 말에 살짝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수미세계는 아직 제가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지요. 하하하.”

건우는 허탈한 기색으로 그렇게 웃고는 소매를 저어 백양오죽을 감싸고 있던 결계 진법을 해진시켰다.

그리고 허공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후, 연이 된다면 다시 뵙겠지요. 그도 아니면 지금이 영별일 것이고.”

이후 건우가 남긴 마지막 인사말만 허공을 맴돌았다.

< 태삼림을 떠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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