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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오죽목령, 건우의 분혼을 흡수하다 >
장우가 만든 결계 안.
목령족들의 봉인이 풀리고 드디어 백양오죽목령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 성령기의 경지를 어느 정도 안정시킨 백양오죽목령의 영체가 본체 밖으로 나와 장우와 마주 섰다.
“그리 노려볼 것 없다. 나는 분혼이니 너와 하나가 되어 완성을 이루는 것에 아무 거리낌도 없다.”
백양오죽목련, 즉 건우의 분혼은 장우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정말이냐?”
하지만 장우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뭇거 렸다.
“윤회를 거치느라 기억을 잃어 유혼결을 처음 접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리 의심이 많은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네가 유혼결을 익혔다면 알 것이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그건 나도 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네가 본혼임도 알겠지? 그러니 내가 아무리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에게 흡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라.”
그런 장우를 백양오죽목령이 설득했다.
어차피 하나가 되면 유혼결을 이용한 기억 보존을 이루게 되고, 그로서 천지 법칙의 제약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 이렇게 멀고먼 길을 돌아온 것이 아닌가.
이제 눈앞에 있는 본혼도 그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리라.
“알았다. 그럼, 유혼결의 흡혼편을 운용하겠다.”
장우도 자신이 익힌 유혼결을 믿기로 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분혼에게 유혼결의 흡혼법을 사용하면 그대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기다릴 것 없겠지.”
장우의 대답에 분혼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주 보며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장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장우도 가부좌를 하고 분혼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후, 장우와 분혼은 함께 유혼결을 운용했는데, 장우는 흡수하고 분혼은 흡수를 도왔다.
스스스스스슷! 스화화화홧!
이후 한동안 손을 마주 잡고 있던 두 수사의 몸이 크게 빛을 내뿜더 니 둥근 빛의 구체에 감싸였다. 하지 만 그것은 짧은 순간에 지 나지 않았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마주 보며 가부좌를 하고 있던 둘 중에 장우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장우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장우님
그런 장우 앞에 몽이가 나타났다.
장우가 눈을 뜨고 몽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장우가 아니라 건우다.”
- 네? 건우님이라고요?
“그렇다."
기억을 찾으신 거예요?
“그래, 모든 것을 알았지. 내가 왜 윤회를 자초해야 했는지, 그리고 분혼이 왜 필요했는지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요? 왜요? 왜 그래야 했는데요?
“그걸 굳이 내가 설명해 줄 이유가 있더냐? 몽이 너는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제가요?
“너는 윤회에 들어가는 나를 위해 루야가 희생하며 탄생한존재. 내 사념의 한 부분이니 나에 대해선 뭐든 알 수 있겠지.”
제가 루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요?
“루야는 대천세계의 존재가 아니었지. 하지만 나와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실 대천세계가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원인 중에 루야도 적잖은 지분이 있었던 것이지. 너는 이를테면 윤회를 거치고 남은 루야라 할 수 있겠구나.”
- 으음. 루야. 네에, 어떤 존잰지 알겠어요. 다른 세상의 절대자가 만들어낸 정보집합체, 그래서 대천세계에 속하지 못한 존재라 윤회를 거치더라도 건우님께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네요. 그래서 스스로를 희생했군요.
“그랬지. 하지만 나 역시 루야를 그리 보낼 수는 없었기에 내 영혼의 일부를 내어 줬다. 그곳에 루야의 모든 것을 덜어내고 남은 본질만 담았지. 그렇게 해서 윤회한 나에게 몽이 네가 있게 된 것이다.”
- 저는 건우님의 생각, 사념, 이성의 일부네요. 따지자면 그냥 건우님의 사고(思考)의 한 부분이라 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또 작은 독립성도 지녔지. 루야는 그렇게 내 곁에 남은 거고.”
- 그러네요. 우와, 그런데 건우님의 과거는 정말 화려하네요. 멸계전만 두 번이나 치르셨고요.
“멸계전 따위야 지금 중요할까. 지금은 선계로 편입된 수미세계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겠지.”
- 하지만 장우님으로 계시는 동안 그에 대한 이야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그건 수미세계가 이곳에서 굉장히 먼 곳에 있다는 거겠죠.
“그렇겠지. 으음.”
- 어차피 각오한 일이잖아요. 다시 정정 선자를 만나려면 적어도 진선은 되어야 한다고요. 윤회 때문에 쌍수수련의 효과도 사라진 마당이라 그 분께서 건우님을 찾아오게 할 방도도 없고요.
“어찌 정정에게 나를 찾아오라 하겠느냐? 내가 그녀를 찾아야지.”
- 네에. 그거야 뭐, 건우님 뜻대로 하셔야죠. 그런데 이제 기억을 수습하는 것은 모두 끝나신 건가요?
“으음. 그건 그런데 문제가 있구나.”
- 문제요? 아, 녹색영과와 생기법칙, 그게 문제군요?
건우에게 되묻던 몽이는 곧바로 건우의 생각을 읽어냈다.
그리고 그 말처럼 건우는 녹색영과와 생기법칙을 두고 생각이 많았다.
“녹색영과는 지금도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분혼이 그 영과에 담긴 신묘한 문양을 통해 생기법칙을 얻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영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
- 하지만 어쨌거나 법칙의 힘을 얻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잖아요. 그것도 기물에 담긴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남은 것이니 얼마나 좋아요. 통제하고 다스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거잖아요.
“분명 어마어마한 기연인 것은 분명하지. 하지만 아직은 깨달음이 미미하니 위력은 보잘것없을 거다. 물론 법칙의 힘이란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이지만.”
- 앞으로 잘 성장시키면 되겠죠. 안 그래요? 마침 생기법칙에 어울릴만한 수련공법도 가지고 있잖아요.
“역법반서복원대법, 거기에 생기법칙을 적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
- 그러니까요. 게다가 녹색영과에도 생기법칙을 써 볼 수 있을 걸요?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모르지만요.
“후우, 분혼을 흡수하면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은 예상했지만 예상을 넘어섰어. 물론 아쉬운 것도 있지만.”
- 에? 아쉬운 거……. 아, 의념공간이 텅텅 비어 버렸다는 거요?
몽이가 그렇게 말하며 건우의 의념 공간을 떠올렸다.
그러자 분혼을 흡수하며 한층 넓어진 의념 공간이 건우와 몽이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과거 건우가 가지고 있던 보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없네요. 아무것도.
“그래, 태령기 완경에까지 오른다고 해도 얻을 것은 없다는 이야기지. 게다가 이젠 내가 의념공간으로 들어갈 수도 없게 되었지.”
- 아, 건우님은 자신의 의념 공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있었죠? 그렇게 하면 어지간한 수사들은 절대 건우님을 찾지 못했는데 말이죠.
“그래, 그랬는데 이젠 불가능하게 되었지. 원래 그런 식의 활용은 다른 세상에서 만들어진 아공간이란 개념에서 전해진 것이니까.”
- 아공간이란 개념과 힘이 사라지면서 건우님이 의념공간에 드나드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건데, 그래도 다른 수사들과 달리 의념공간을 창고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긴 하잖아요. 게다가저는 의념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죠. 제가 그 동안 건우님 대신에 의념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요.
“그래, 그건 나도 인정을 해야지. 확실히 내 의념공간은 다른 수사들보다 특별한 점이 많아. 대천세계에 맞게 조정이 되면서도 특성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란 소리지.”
- 네에!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뭐, 솔직히 저도 이전에 건우님의 의념공간을 떠올리면 많이 허전하긴 하지만요. 화의모(火意母)도 없고, 수미산의 상징도 없고, 성해룡결공법의 성해룡주도 없고, 일천성광검도 없고…….
“쯧, 그만해라. 무얼 이야기해도 없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다시 채울 생각을 해야지. 음, 그런 의미에서 태삼림의 두 목령족들이 무엇을 내어줄 수 있을지 기대가되 는구나.”
- 아, 그러네요. 여기서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밖에 격허와 포승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자꾸나. 백양오죽의 처분은 그 뒤에 결정해도 좋겠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우선 결계 진법에 변화를 주어 격허와 포승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수사가 건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결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살폈는데 건우만 있고 다른 수사가 보이지 않자 조금 당황한 듯 탐색의 기운을 높였다.
“그만하고 좀 앉으십시오.”
건우가 소매를 휘둘러 흙으로 된 의자를 만들며 그런 두 수사를 향해 말했다.
두 수사는 이전에 장우를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에 흠칫 놀랐지만 조심스럽게 건우를 경계하며 의자에 앉았다.
“시간이 흘러 외양이 조금 바뀐 것인가, 아니면 장우 수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가?”
둘이 자리에 앉자마자 포승이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곁에 앉은 격허 역시 궁금한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제가 홀로 있으니 그것이 의아한 모양입니다? 나는 건우라 합니다.”
건우가 그런 둘을 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건우? 허면 장우 수사는 어디로 갔다는 말이냐?”
“건우 수사가 저… 백양오죽에서 태어난 목령이란 말입니까?”
포승과 격허가 건우를 보며 물었다.
“으음. 장우 수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백양오죽목령이냐고 물으셨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백양오죽의 목령입니다.”
건우는 스스로 백양오죽의 목령이라 인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분혼이 품었던 기운을 그대로 드러냈다.
목령족 특유의 기운이 건우의 몸에서 피어나자 포승과 격허가 움찔 놀라더니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찌 그리 보십니까?”
건우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분명 목령족 특유의 기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다른 기운도 함께 있으니 의아해서 그런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찌 된 것입니까? 마치 지금 건우 수사의 모습은 목령족과 인간수사가 더해진 것처럼 보입니다만.”
포승과 격허는 그리 호락호락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건우의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격허와 포승이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으로 다른 목령족 수사들과 영혼이 이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필요에 따라서는 많은 수사들에게 조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건우를 두고 많은 목령족 수사들이 집단지성의 힘을 보인 것이다.
“그것이 두 분 수사, 아니 백양이나 오죽 목령족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일이랍니까?”
하지만 그런 둘의 물음에 건우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태연하게 반문했다.
“나와 장우 수사, 혹은 나와 건우 수사 사이의 일은 두 분 수사나 혹은 두 분 수사의 일족과는 연관이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실 일이 아니지요.”
이어서 건우는 격허와 포승에게 너희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이에 격허와 포승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장우나 건우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에 그들이 어찌 참견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이제는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였다.
“그래서 건우 수사는 우리가 이전 장우 수사에게 했던 제안을 알고 있는가?”
포승이 건우를 새로운 협상자로 인정하고 그렇게 물었다.
이로써 건우와 태삼림 목령족 사이의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백양오죽목령, 건우의 분혼을 흡수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