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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오죽목령의 성령기 승경 >
‘목기(木氣)와 생기(生氣)의 양이 더욱 늘어났다. 이 영단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운이 담겨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게다가 표면의 문양에서 나무(木)를 다스리는 권능을 깨우쳤다. 이로써 성령기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졌다.’
세월이 흘러 입령기 중기와 완경을 거쳐 드디어 분혼은 성령기 승경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난 순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승경에 도전했다.
물론 그와 동시에 백양오죽을 등지고 있던 장우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분혼을 돕기 위해 나섰다.
태삼림의 일부를 뒤덮는 보라색 구름과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천겁뢰.
이런 변화는 태삼림에 있는 많은 목령족 수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 고작 천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성령기라고?
= 도대체 수련 자질이 얼마나 뛰어나다는 것이지?
= 백양과 오죽의 장점을 한꺼번에 지 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수련 자질과는 그다지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닌가.
= 그 돌연변이를 돕고 있는 장우라는 수사의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 볼 수밖에 없겠지.
=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목령족의 성장은 태생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지 않나. 게다가 그 돌연변이는 우리가 만든 봉인에 갇혀 있는 상태고!
= 봉인이라 해 봐야 외부와의 소통을 막고 영성을 흩어 놓는 것일 뿐, 수련 자체를 제약하는 것은 아니지.
=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외부와 소통을 할 수 없는데 어찌 수련 공법을 배워 익혀! 아무리 목령족이 스스로 수련법을 깨우치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그런 깨우침으로는 고작해야 영체기에 이 르는 것도 쉽지 않아. 어찌 생이지지(生而知之: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아 앎)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 그러니 장우란 그 수사의 능력이라 봐야겠지. 아마도 목령족에게 적합한 지고의 수련 공법이 있었거나.
= 그도 아니면, 엄청난 수련 영단을 가지고 있었거나.
= 어쨌거나 벌써 성령기라니!
= 그것 참, 지난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지금의 경지에 오르는데 몇십 만년이 흘렀는데, 저 돌연변이는 고작 1 만 년도 되지 않아서…….
백양오죽목령, 즉 분혼의 승경을 두고 태삼림의 목령족 수사들은 너나없이 놀람과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 중에는 시샘과 질시를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백양과 오죽의 수뇌부가 백양오죽에 대한 미래 계획을 일러둔 상태라 멋대로 나서는 이는 없었다.
군체로 묶여 영혼이 연결된 이들이라 개인의 일탈은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개인이면서 하나인 군집체의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 * *
콰르르르르릉! 쿠구구구궁!
쩌저저저정! 파지지지지직!
“끄응, 이번에는 조금 세네.”
장우는 자신이 펼친 방어 진법을 뚫고 내려오는 천겁뢰의 기운에 앓는 소리를 냈다.
원래 누군가의 승경을 타인이 돕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그런 경우 천지 법칙의 시험이 더욱 강해지기도 하고, 돕는 이에게 따로 응분의 보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우와 백양오죽목령의 경우엔 같은 혼을 지닌 동일체라는 점 때문인지 장우가 승경을 도와도 크게 상관치 않았다.
그런데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서 조금씩 장우에게도 피해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성령기인 이번에는 꽤나 강력한 뇌전이 떨어졌다.
- 그래봐야 장우님에겐 별 충격도 없잖아요. 그냥 백양오죽에게 떨어지던 번개 중에 하나가 흘러 나온 정도죠.
‘맞아 보고 그런 소리를 해라. 몽이 네가 천겁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지.’
- 저, 저도 장우님이 느끼는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럴 수 있는 거 하고, 그런 거 하고는 다르지. 넌 매번 위험할 때마다 몸을 숨겼다가 위기가 지나면 나오곤 하잖아.’
- 솔직히 제가 장우님과 함께 고통을 느낀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요. 저라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너 혼자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뭐? 내가 의념을 보태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녀석이.’
- 에헤헤헤. 화 푸세요. 이렇게 좋은 날에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드디어 백양오죽목령이 성령기가 된다고요. 그러면 분혼 흡수를 할 수 있고요
‘하하, 그래, 그렇지. 좋은 날이지.’
몽이의 말에 장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그리고 몽이의 말처럼 지금 상황은 더없이 좋았다.
방어 진법을 뚫고 약해진 천겁뢰를 몇 번 맞아도 ‘허허’ 웃어줄 수 있을 만큼 기분도 좋았다.
우우우우우우웅!
‘드디어!’
- 법열(法脫)이 시작되고 있어요! 성공이에요!
때마침 기다리던 변화가 일어났다.
세상을 멸망시킬 듯이 흉흉하게 내리치던 천겁뢰가 일순간 잠잠해지더니 보라색 구름을 가르고 휘황한 서광이 백양오죽에게 쏟아져 내렸다.
승경 직후, 천지 법칙과 통하는 통로가 열리고, 그로부터 엄청난 열락(脫樂)의 쾌감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즉, 성령기 승경에 성공했다는 증좌인 셈이다.
“드디어!”
-축하드려요!
장우와 몽이가 서로 마주 보며 기쁨을 나누고 있을 때, 백양오죽목령인 건우의 분혼은 서광을 거슬러 오르며 천지 법칙의 흐름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게 벌써 몇 번이던가.’
그리고 분혼은 유혼결이 얼마나 대단한 공법인지 세삼 깨닫고 있었다.
건우로 살면서 태령기 완경까지 올랐고, 그 때마다 승경의 법열을 이기고 천지 법칙의 진체에 닿으려 노력했었다.
그런 경험이 몇 번이었던가.
따지고 보자면 다른 수사들에 비해서 승경 경험이 배는 더 많지 않겠는가.
지금 분혼의 경우만 하더라도 건우로 한 번, 멸계의 분혼으로 한 번, 이곳 태삼림의 목령족으로 한 번.
성령기 승경만 세 번째였다.
그러다 보니 천지 법칙의 흐름을 거슬러 본체에 닿는 것도 훨씬 능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기연이라면 기연. 아니 이만한 기연을 다시 만나기도 어렵겠지.’
승경의 법열을 이기고 천지 법칙의 흐름을 따라 그 진체에 닿는 경험을 다른 이들보다 많이 할 수 있다는 것.
백양오죽목령, 건우의 분혼은 그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을 내었다.
그리고 결국 이전보다 천지 법칙의 본체에 훨씬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인지의 한계를 벗어났다.’
하지만 가까이 갔다고 해서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분혼은 격을 초월한 법칙의 흐름 앞에서 아득함만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법열의 서광이 끝나고 현실로 빨려나갈 것임을 깨달았다.
‘아아, 이렇게 이렇게……'
아쉬움과 허망함이 교차하며 분혼은 울컥 솟구치는 울화를 느꼈다. 바로 그 때!
‘저것은!’
분혼의 앞에 익숙한 문양 하나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잡아야!’
그것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법칙의 흐름을 탄 것은 분혼의 의식이었다.
그러니 손과 발, 눈과 귀 같은 신체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분혼은 눈앞에 떠오른 익숙한 문양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천지법칙의 흐름에서 쫓겨날 때, 그것을 손에 쥐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니, 손에 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새겨 넣고 온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아아아, 이것은!’
분혼은 봉인된 의념공간으로 돌아와 그 문양을 확인하고 감격했다.
비록 하나의 문양일 뿐이지만 그것은 분명 녹색영과의 표면에서 보았던 문양이었다.
‘이 하나의 문양에 녹색영과에서 봤던 엄청난 변화가 송두리째 들어 있다. 이것은 법칙이다!’
분혼은 건우의 태령기 완경의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알아차렸다.
과거에 이미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던 법칙이라 확신도 쉬웠다.
‘생기법칙 (生氣法則)이다.’
분혼은 그렇게 확신하며 쾌재를 올렸다.
이전 낙생역으로 향하던 사막의 녹주에서 녹주 괴물을 처치하고 법장의 머리를 얻었다.
그 법장두(法杖頭)에 깃들어 있던 힘이 바로 이 생기 법칙의 힘이었고, 이후 건우는 그것을 몇 번 요긴하게 써먹었었다.
그런데 지금 승경 과정에서 그 생기법칙의 깨달음을 천지법칙의 흐름 속에서 훔쳐 나온 것이다.
‘다른 무엇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온전히 나의 것, 내 깨달음에 새겨진 것. 나는 천지 법칙 중에서 생기법칙을 얻은 것이다.’
비록 아직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어쨌건 분혼이 생기법칙이라는 지고한 힘을 얻은 것은 분명했다.
이것은 성령기로선 감히 넘보지도 못할 깨달음이었지만 녹색영과의 문양을 보며 수련한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행운이었다.
‘게다가 내가 목령족이란 사실도 중요하지.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생기법칙을 가지고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연한 행운까지 겹친 결과임을 분혼은 알아차렸다.
‘어쨌거나 혼의 합일을 앞두고 좋은 선물을 얻었군. 좋아, 아주 좋아!’
백양오죽목령, 건우의 분혼은 진심으로 기꺼워하며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성령기 초기 경지를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 * *
- 저기 보세요. 울타리가 물러나기 시작했어요.
그 즈음, 밖에서는 몽이가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삼백 장(丈) 거리를 두고 백양오죽을 포위하고 있던 백양나무와 오죽나무들이 땅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자라났던 것을 거꾸로 돌려 다시 싹으로 돌아가듯 사라지는 백양나무와 오죽나무들.
그에 따라서 백양오죽의 영성체를 봉인하고 있던 결계가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땅 속에 있던 뿌리들까지 모두 사라져야 봉인이 완전히 풀리겠군.’
장우가 의념을 펼쳐 땅속의 움직임을 살피며 그렇게 말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울타리보다는 그 밑에 뻗어 있던 뿌리들이 봉인 결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봉인을 풀고 있는 지금도 백양오죽의 뿌리와 엉켜 있던 부분을 풀어내느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자칫 격하게 움직이다가는 뿌리가 엉켜있는 모두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일단 봉인이 다 풀리는 것과 동시에 결계를 펼쳐야 하니 점검을 다시 해야겠군.’
분혼 흡수 할 때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될 테니까 말이죠?
‘그 전에 봉인이 다풀리면 격허와 포승, 그들이 찾아오겠지. 아직 이야기를 마무리짓지 못했으니까.’
그래서요? 그들을 만나고 분혼 흡수를 하실 거예요?
‘그게 아니니까 결계를 친다고 하지. 그들이 오기 전에 결계를 치고 들어앉아서 분혼 흡수를 하고, 이후에 온전한 상태로 그들과 협상을 해야지.’
혹시 분혼이 사라진 것을 알면 그들이 달리 나오지 않을까요?
‘그 때는 내가 백양오죽목령이라 우기면 되는 거지. 그걸 저들이 알게 뭐겠냐?’
아, 분혼을 흡수한 후에, 장우님이 백양오죽목령이라 주장한다는 거군요?
‘안될건 없잖아?’
그것도 그러네요. 장우님은 물러나고 백양오죽목령이 전면에 나서서 협상을 한다……. 확실히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어요.
‘자, 그러니 부지런히 결계를 완성해 보자꾸나.’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백양오죽을 감싸는 결계 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우의 예상대로 백양과 오죽의 봉인 결계가 완전히 흩어질 즈음 격허와 포승이 장우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장우가 완성한 결계가 백양오죽을 감싸고 견고하게 버티는 중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요?”
격허가 그것을 확인하고 포승을 보며 물었을 때, 포승은 결계의 표면에 손을 대고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손을 뗀 포승이 말했다.
“한동안 돌연변이와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군. 영혼이 얽힌 인연을 찾아 이곳까지 온 이유가 있으니 우리에겐 기다리라는 거지. 자신과 돌연변이 사이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포승이 그렇게 결계에 담긴 장우의 뜻을 읽어냈다.
“억지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라는 거군요?”
“그래서 얻을 것이 뭐가 있겠나. 저들이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기다려 주는 것이 좋겠지 아직은 싸울 때가 아니니까.”
“포승 수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경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야 나쁘지 않겠지. 우리 백양일족에게도 일러두지.”
“네, 저도 저희 일족에게 경계령을 내려 두겠습니다. 저희와 백양이 함께 나섰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태삼림을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야 당연하지. 이곳은 태삼림이야.”
격허의 말에 포승은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는 한쪽에 손짓하여 정자를 불러냈다.
이후 포승과 격허는 정자에 올라 가부좌를 하고 장우와 백양오죽목령이 결계를 풀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 백양오죽목령의 성령기 승경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