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96화 (39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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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분혼과 하나가 되는 것이 급하다 >

“잠시 진정하십시오.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장우의 분노에 격허가 손사래를 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명이라니 무슨 설명이란 말입니까? 백양오죽을 두고 가란 말이 거짓은 아닐 터!”

“말은 그렇지만 담긴 뜻은 다릅니다. 성령기 이후에 돌연변이와 함께 태삼림을 떠나겠다 했던 것은 장우 수사가 아닙니까.”

“그런데 백양오죽을 두고 가란 말을 격허 수사가 하지 않았습니까?!”

“돌연변이, 즉 저 백양오죽이 이곳 태삼림을 떠난다는 것은 수련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닙니까. 목령족이 제 뿌리를 거둔다는 말은 그런 뜻이니까 말입니다.

“그야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요. 하지만 완전히 수련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장우는 격허와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목령족인 백양오죽이 성령기를 이룬 후, 태삼림을 떠날 때, 영체만 뽑아 떠나란 소리다.

그렇게 되면 본체인 백양오죽 나무는 태삼림에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백양오죽이 굳이 그렇게 본체를 태삼림에 남길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본체를 들어 옮겨 적당한 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면 수련을 계속 이어갈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경지가 높은 목령족일수록 뿌리를 옮기는 것은 후환이 크기에 다시 승경의 자격을 갖출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가능성을 포기하고 백양오죽의 본체를 이곳에 남길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물론 그 때가 되면 어차피 분혼을 흡수할 것이라 백양오죽의 본체만 남게 품憫嗤?, 그렇게 남은 본체는 또 유용한 수련 자원으로 쓸 수 있는데, 그걸 왜 내어준단 말인가.’ 장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격허를 노려봤다.

어떻게 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우 수사, 우리가 아무리 염치가 없기로 마냥 장우 수사와 저 돌연변… 아니 백양오죽에게 손해만 될 이야기를 들고 왔겠습니까?”

장우의 눈빛에서 노여움이 가시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격허가 계면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백양오죽의 본체를 남기고 떠나란 것은 그로서 백양오죽의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끊어 버리는 것인데,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까?”

장우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여전히 분노를 감추지 않고 말했다.

“백양오죽, 백양오죽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뿌리를 옮겨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백양과 오죽의 비전 공법을 더하여 그 열매의 성장 잠재력을 크게 증가시켜 줄 것이다.”

겸허의 말에 포승이 패를 더했다.

백양오죽이 열매를 맺게 해 주고, 그 열매의 잠재력을 더해 주겠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그 열매를 어딘가 심어서 뿌리를 내려 적당히 성장시킨 후, 성령기의 백양오죽 영체가 깃들게 되면 희망이 생긴다.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로 성장 가능성을 잃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때론 수도계에서 시간만큼 가치가 없는 것도 드물다.

상황에 따라서는 수천 년의 시간 따위야 대수롭지 않은 경우도 많지 않은가.

게다가 성령기의 존재가 다시 성장의 기회를 얻는 일에 몇천 년 정도야.

“열매를 맺게 해 주겠다? 게다가 그 열매에 두 목령족의 비전을 더하여 성장 잠재력을 키워 주겠다?”

“그렇습니다. 장우 수사.”

“어차피 태삼림을 떠나야 하는 백양오죽의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모든 패를 다 꺼내 놓은 마당이라 거칠 것이 없다고 여겼는지 포승도 적극적으로 장우를 설득하려 들었다.

“기이한 일입니다. 굳이 이런 거래를 청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와 백양오죽이 크게 손해를 볼 일이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이득이 될 것도 없지요.”

장우가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듯이 두 수사를 보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으음. 원하는 것이 있나? 말을 하면 어느 정도는 들어줄 수 있다.”

그런 장우에게 포승이 크게 양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내건 조건에 더해서 다른 요구도 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다.

‘도대체 백양오죽의 껍데기를 가지고 뭘 하려는 거지?’

장우의 의심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분명 백양오죽에 자신이 모르는 가치가 있음이 분명했다.

“휴우, 그리 의심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알아봐야 장우 수사나 저 백양오죽목령족에게 유익할 것은 없는 이야깁니다.”

“정말 그런지는 일단 들어 보십시다.”

“끄응.”

격허의 말에 장우가 물러나지 않고 맞서자 격허가 앓는 소리를 내며 포승의 눈치를 살폈다.

“쯧, 오래 전부터 우리 백양족과 저 오죽족은 태삼림에서의 싸움을 멈추고자 했었다. 그런데 저 백양오죽은 이름 그대로 우리 백양목령족과 저 오죽목령족이 합쳐진 돌연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오죽이나 저 백양이나 서로 뿌리로 연결된 하나인 동시에 또 여럿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뿌리로 연결된 것이 끝이 아니라 영혼이 이어진 것이 중요하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저 백양오죽이 입령기에 이른 후,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저 백양오죽을 통하면 우리 백양족과 저 오죽족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거다.”

“백양과오죽이 부작용 없이 자연스럽게 영혼을 연결하여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태령기 완경에 이르러 벽을 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진선경에 오를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태삼림의 백양과 오죽이 하나가 되면 진선경 몇이 생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더군.”

“거기에 더해서 이후 태삼림의 확장이 크게 빨라질 것이고, 그렇게 태삼림이 커질수록 일족에서 진선이 탄생할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지요.”

“어떤가? 이 정도면 설명이 되었나?”

격허와 포승이 번갈아가며 그들이 무슨 이유로 백양오죽을 원하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장우는 그 설명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백양오죽의 뿌리를 통해서 두 종족이 영혼을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굳이 백양오죽의 영성체를 쫓아낼 이유가 있습니까?”

“하! 그야 당연하지요. 백양오죽을 매개로 두 종족의 영혼이 연결되는 것인데, 그 중심에 있는 백양오죽에 영성체가 있다면 그 영성체에 의해서 두 종족의 영혼이 영향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아무런 작용이 없는 순수한 상태의 백양오죽이라야 두 종족의 영혼이 부작용 없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겠느냐?”

“으음.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가 떠날 때에 백양오죽의 본체는 남겨두길 원하는 것이군요? 그럼 이후로 백양족과 오죽족은 백양오죽을 통해 영혼이 연결되어 결국 백양오죽이란 새로운 종족으로 태어나게 되겠습니다 그려?”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 백양오죽이 지금 저기에 있는 저 백양오죽은 아닐 겁니다.”

“아무렴, 저 백양오죽은 절대로 우리와 합쳐질 수 없는 존재지.”

“우리 오죽과도 절대 합쳐질 수 없습니다.”

격허와 포승은 그렇게 백양오죽을 거부하며 말을 끝냈다.

장우는 그런 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실제로 저들의 제안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사라질 백양오죽의 영성체가 아닌가.

그 때에 장우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백양오죽의 본체인 거대한 나무뿐이다.

그런데 그 나무를 내어주는 대신에 잠재력 높게 가공된 백양오죽의 열매와 다른 대가 몇 가지를 더 받을 수 있다면?

“일단 백양오죽과 의논을 해 봐야겠습니다. 이 일은 내 멋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장우는 잠시 후 그렇게 빌미를 얻고 두 수사를 떠나보냈다.

두 수사 역시 단번에 무슨 결정을 받아갈 생각은 없었는지 후일을 기약하고 떠났다.

- 어차피 분혼을 흡수하면 백양오죽의 본체는 큰 의미가 없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또 그냥 내어주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

분혼을 흡수하면 아마도 많은 것을 알게 되겠죠. 그리고 지금보다는 훨씬 판단력이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구나? 분혼을 흡수한 후에 백양오죽의 본체를 가지고 협상을 해도 될 거라는?’

그렇게 해도되지 않을까요?

‘일단 어찌 되었건 분혼을 흡수할 때까지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는 것이 좋겠지.’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런 장우가 등을 기댄 백양오죽의 의념 공간에선 오늘도 건우의 분혼이 녹색영과의 금빛 문양을 살피며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었다.

★ ★ ★

‘가히 가늠하기 어려운 경지의 영단이다. 절대로 태령기 따위의 경지로는 넘볼 수 없는 수준. 신선의 경지에서 연단된 것이 분명하다.’ 분혼은 녹색영과를 두고 이미 오래전에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영단의 표면에 떠오르는 신묘한 문양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깨달음을 얻는데 집중했다.

그 덕분에 분혼은 빠르게 경지가 올랐다.

아무리 태령기 완경이었던 건우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목령으로 태어난 이상 그에 맞는 수련법이 필요했다.

게다가 목령으로 태어난 덕분에 무한공도 익히지 못했다.

무한공을 익히는데 필요한 진혈을 구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분혼은 건우가 알고 있던 여러 공법들 중에서 목(木)속성을 가진 공법을 위주로 수련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자면 평범한 수련 공법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힘들여 끌어 올린 경지가 화신기였는데, 그 때에 장우를 만나 녹색영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영과에서 얻은 목기와 생기를 바탕으로 영과 표면의 금빛 문양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경지를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큰 비밀을 품고 있는 영단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런 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승경 과정에서 분혼이 흡수한 목기와 생기 때문에 벌써 세 겹의 껍질이 녹아버린 영과였다.

그 때마다 영과 안쪽에서 심상찮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는데, 분혼은 그것이 분명히 의지를 가지고 있는 어떤 존재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나마 울음소리 이외에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긴 한데, 언젠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후환이 어떨지 걱정이 되는군.’

분혼은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매 순간 변화하는 영과의 표면 문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진선경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전 건우로 태령기 완경에 올랐지만 진선의 경지는 넘보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깨달음까지 본혼에게 전할 수 있다면, 드디어 모든 수사들이 꿈꾸는 불로영생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드넓은 선계에서 정정을 다시 찾으려면 그 정도 경지는 되어야겠지.’

분혼은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오늘도 영과의 문양을 깨우치기 위해 성심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다.

*   *   *

선계의 어느 곳.

일곱 명의 진선들이 원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생긴 것도 모두 달랐고 지닌 기운도 서로 달랐다.

원형 탁자를 둘러 있는 의자는 모두 아홉인데 사람은 일곱이라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런 중에 화염의 기운을 품은 수사가 맞은편에 있는 수기의 수사를 향해 물었다.

“목룡단(木龍丹)이 분명한가?”

“확인해 볼 가치는 있겠지. 그러니 수룡(首龍)어르신께서 찾아보라 이르신 것이 아닌가.”

물의 기운을 품은 수사는 차가운 표정으로 툭 쏘? 대답했다.

그들이 찾는 것은 목룡단.

구용으로 묶인 영단 중에 사라진 하나가 일곱 신선이 모인 자리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 일단 분혼과 하나가 되는 것이 급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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