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95화 (39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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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 포승과 오죽 격허가 찾아오다 >

“상황이 그러한데 어찌 하시는 양을 보니 내 말이 거슬리시는 모양입니다?”

격허를 향한 장우의 말이 곱지 않다.

이를 지켜보는 포승 역시 장우를 보는 눈빛에 날이 시기 시작했다.

“저 돌연변이를 우리들이 꺼려함을 모르시진 않으실 것이고.”

그 때, 격허가 슬쩍 장우 뒤쪽에 있는 백양오죽을 눈짓하며 말했다.

“해 놓은 것을 보고도 그걸 모를 정도로 둔하진 않지요.”

장우는 그런 격허를 보며 꺾일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맞받았다.

“그렇겠지요. 그런데도 이리 나오시는 것을 보면 그 과거의 인연이란 것이 그리도 중한 모양이지요?”

격허는 원래 오죽목령족이라 피부가 검었는데, 화가 나자 더욱 검은색이 짙어졌다. 게다가 피부에서 윤기가 사라지며 마치 숯의 표면을 보는 듯이 탁한 색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이곳에서 이리 백양오죽을 지키고 있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장우는 대놓고 자신이 백양오죽을 지키고 있노라 선언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어찌 할 것이냐?

장우가 격허를 지나 포승까지 노려보며 뜻을 물었다.

그 둘이 모두 성령기 중기로 초기인 장우보다 경지가 높은 것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의념이 강력한 장우는 격허와 포승을 한꺼번에 상대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백양목령족이나 오죽목령족이 저들의 종족끼리는 한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포승이 당하면 태삼림 안에 있는 백양목령족 전체가 들고일어날 것이고, 격허가 당하면 오죽목령족 전체가 나설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 숙이고 들어가면 장우가 이곳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이렇게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 참, 곤란하군.”

“그렇습니다. 장우 수사가 이리 나오시면 자칫 그 결과가 참혹할 수도 있습니다.”

포승과 격허가 연이어 말했는데 그 내용이 사뭇 강력했다.

“참혹한 결과라……"

장우가 격허의 말을 되뇌며 눈빛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그런 장우를 지켜보는 두 수사도 조금씩 긴장한 기색을 드러 내고 있었다.

“후우우,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백양오죽이 도대체 두 일족에게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장우가 결국 한 발 양보한 태도로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자 포승과 격허도 대화의 물꼬가 트임을 반기는 듯 자세를 편히 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생존과 번성의 문제입 니다.”

격허가 먼저 입을 열었고, 포승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백양 일족과 오죽 일족의 생존과 번영에 백양오죽이 그리도 위협이 된다는 말입니까? 고작 한 그루의 나무일 뿐인데 말입니다.”

장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포승 수사가 듣기엔 거북하겠지만 애초에 이곳 태삼림에는 백양 일족만 번성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우리 오죽 일족의 선조께서 어찌어찌 태삼림의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결국 지금의 오죽림이 생겼지요.”

“그러니까 언젠가 백양오죽 역시 그리 될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실제로 가능성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저 돌연변이는 백양과 오죽의 장점을 함께 지니고 있으니 말입니다.”

“으음, 백양과 오죽의 장점이라고요?”

“오죽은 세의 확장이 빠르고, 백양은 뿌리가 굳건합니다. 그런데 저 돌연변이는 빠르게 번지면서도 뿌리 또한 굳건하지요. 게다가 뿌리에서 줄기가 생기는 대나무의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백양은 열매에서 내린 뿌리가 본근(本根)을 만나 뒤늦게 연결되는 형식이라 대나무와는 다르지. 그래서 번식이 느린 편이고.”

듣고 있던 포승이 백양나무의 문제점을 털어놓았다.

결국 백양오죽을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태삼림 전체가 백양오죽으로 뒤덮일 것이라는 말이었다.

“아직은 고작 한 그루의 나무일 뿐, 군체(群體)가 된 것도 아닌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장우는 포승과 격허가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보는 것이 아니냔 듯이 말을 해 보았다.

“오죽의 예가 있기에 우리 백양이 쉽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음이고.”

“우리 오죽은 우리 스스로 선례가 된 까傷? 걱정을 떨칠 수 없음이지?. 게다가 돌연변이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경지를 끌어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두 분께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정말로 백양오죽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입니까?”

장우는 저들의 입장을 알았기에 그들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왔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래는 경지를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게 하여 돌연변이를 고사시킬 계획이었습니다. 어차피 경지가 오르지 못하면 수명을 다하여 죽는 것은 모든 생명의 순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승경을 막고 죽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입니까?”

“직접 손을 쓰는 것은 금기이니 어쩔 수 없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백양오죽의 경지가 급격하게 올라가더니 이번에 입령기까지 돌파하자 마음이 급해졌다는 것이군요?”

“옳습니다. 그래서 이리 찾아온 것입니다.”

“대안이 있습니까?”

장우가 격허를 보며 물었다.

“이곳을 떠나 자유를 누림이 어떤가 합니다.”

격허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백양오죽에게 이곳을 떠나라 하는 것입니까? 내가 듣기로 수목에서 탄생한 영족은 쉬이 뿌리를 옮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장우가 그런 격허를 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초목이 어찌 뿌리를 내리지 않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려면 적어도 진선의 경지는 되어야지요.”

“아, 진선이 되면 수목의 영족도 마음대로 세상을 오갈수 있는 모양입니다?”

“그야 진선경이면 태생이 어떠한지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뿌리를 그대로 둔 상태로 화신만 뽑아 세상을 누빌 수 있지요. 우리 오죽의 선조들 중에 진선경에 오른 분들이 대부 분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셨지만 뿌리는 여전하시지요."

“아, 그런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백양오죽에겐 그런 시간을 주지 않겠지요?”

“하하하. 농이 과하십니다. 그 정도가 되면 그 때는 이미 저 돌연변이가 거대한 숲을 만든 후일 것입니다. 당연히 그 숲을 우리 오죽이나 포승 수사의 백양도 막지 못하겠지요.”

장우의 말에 격허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그것 참, 곤란한 일이군요. 그럼 이것은 어떠합니까?”

이 때, 격허의 말을 들은 장우가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것입 니까?”

격허가 물었고, 포승 역시 궁금한 표정으로 장우를 바라보았다.

“딱 성령기까지만 시간을 주십시오.”

“네? 성령기라고요?”

“그게 무슨의미가 있지?”

격허와 포승이 무슨 의미냔 듯이 장우를 보며 물었다.

“말 그대로 성령기가 되면 태삼림을 떠나겠다는 이야깁니다. 그렇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아울러서 혹여라도 백양오죽의 다른 줄기가 자란다면 제가 직접 잘라내지요.”

“직접 다른 줄기를 자르겠다고?”

“으음. 감히 우리 앞에서 나무를 잘라내겠다는 소리를 하다니.”

목령족 앞에서는 하기 어려운 말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단호함을 보여야 협상이 될 것 같았기에 꺼낸 말이었다.

장우가 포승과 격허를 번갈아 쳐다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성령기라….”

“그 사이에 돌연변이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면 그 정도는……"

포승과 격허가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장우의 제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령기 정도는 되어야 그래도 이리저리 떠돌며 세상 구경을 할 시간이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나와 같은 경지이니 허물없이 터놓고 함께 다니기 좋을 것이고.”

장우가 그런 둘을 보며 슬그머니 핑계를 만들어 늘어놓았다.

“저 돌연변이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수도계의 일을 어찌 모두 짐작하겠습니까. 좋습니다. 장우 수사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성령기까지 기다려드리겠습니다.”

“흐음. 시간이 좀 필요할 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나 역시 찬성하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돌연변이가 떠날 때에 이곳 태삼림에 돌연변이의 흔적이 남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을 잊으면 그 결과는 앞서 말한 대로 참혹할 뿐일 것이다.

연습이라도 한 듯이 호흡을 맞춰 장우를 압박하는 격허와 포승.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장우의 표정은 밝았다.

원하는 대로 백양오죽의 분혼이 성령기가 될 때까지 여유를 얻었다.

어차피 그 때가 되면 분혼을 흡수하게 될 테니# 그 이후의 백양오죽은 걱정할 거리가 아니었다.

포승이나 격허의 입장에서는 장우를 압박하여 나쁘지 않은 결과를 이끌었다 싶겠지만, 장우로서도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는 최고의 결과였다.

그렇게 타협을 본 이후, 포승과 격허는 몇 마디 인사치레를 남기고 떠났고, 장우는 다시 명상에 잠겼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다시 1 천 년의 시간이 흘러 백양오죽이 입령기 중기까지 경지가 올랐을 때, 포승과 격허가 다시 장우를 찾아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장우가 생각지 않은 두 수사의 방문에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이미 성령기 승경까지는 유예를 얻어두지 않았던가.

그런데 무슨 일로 저들이 찾아온 것인지.

“그 동안 참으로 소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격허가 먼저 장우를 보며 공수 인사를 했다.

“태삼림이 넓고 크기는 하지만 교류를 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내가 많이 무심했다.”

이어서 항상 까칠한 태도를 보였던 포승까지 이전과 달리 낙낙한 모습을 보였다.

장우는 이들이 자신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음을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태도를 바꿀 일이 뭐가 있을까.

“두 분과 교류를 할 수 있다면야 저야 크게 환영할 일이긴 합니다만, 어째 마냥 선의로만 오신 것은 아닌 것 같군요.”

장우는 그렇게 둘의 방문 목적을 에둘러 물었다.

이에 둘의 얼굴에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일단 앉으시지요.”

장우는 다시 과거처럼 흙으로 된 의자를 만들어 그들과 마주 앉았다.

그런 장우의 등 뒤에는 이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백양오죽이 장엄하게 우뚝 서 있었다.

“솔직히 교류니 뭐니 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죄송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격허가 딱 잘라서 사과를 해 왔다.

“용건이 있으신 거 같습니다?”

장우가 물었다.

“성령기가 된 후에 돌연변이와 함께 태삼림을 떠나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분명히 약속을 지킬 테니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연히 태삼림을 떠나려면 봉인도 풀어주셔야 하는 것이고요.”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당장이라도 봉인을 풀어주고 싶지만 그래서는 너무 오래 자유를 주는 것이라 그 사이에 무슨 일을 꾸밀지 몰라서 그리는 못해 줄 뿐입니다.”

“안타깝지만 그건 저도 이해를 합니다. 성령기 이후에 이곳을 떠날수 있도록 봉인을 풀어주기만 한다면 어떤 앙금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백양오죽 역시 그리하겠다고 이해해 주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원활치는 못해도 그 정도 소통은 할 수 있다.

그래서 격허나 포승도 장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답답합니다.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해 보십시오.”

장우가 자꾸만 말을 돌리는 격허를 재촉했다.

그러자 격허가 장우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태삼림을 떠날 때, 돌연변이를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백양오죽을 두고 떠나라는 말입니까!?”

장우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어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전까지 성령기가 되면 함께 떠나는 것을 허락하겠다 하지 않았나?

봉인도 풀어주겠다 했고.

그런데 백양오죽을 남기라니?

< 백양 포승과 오죽 격허가 찾아오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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