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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오죽목령족(白楊鳥竹木靈族)이라니 >
“거참! 길이 이렇게 되다니.”
장우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나무 하나를 손으로 짚은 상태로 망연자실 중얼거렸다.
그 손을 통해서 전해지는 느낌은 분명 반가움이었다.
그것만 보아도 장우가 발견한 이 나무가 분혼이 깃든 것임은 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 백양나무와 대나무의 혼종이라니, 게다가 그런 이유로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이 모두 나서서 봉인을 해 버렸다니!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요!
몽이가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장우가 그런 몽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분혼이 깃든 나무 하나를 중심에 두고 반경 100장 안쪽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100장 거리를 두고 원형으로 벽이 있었는데, 그 벽들은 다름 아닌 백양나무와 검은 대나무들이었다.
정확하게 원의 설반은 백양나무가 나머지 절반은 검은 대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나무들은 워낙 빽빽하게 자라 있어서 사람 하나가 지나갈 틈도 없을 정도인데, 그보다 더 심한 것은 나무의 표면에 새겨진 진법 문양들이었다. 녹색의 기운이 강렬한 그 진법 문양들은 바로 공터의 중앙에 있는 나무, 즉 장우의 분혼이 깃든 나무를 봉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 돌연변이지. 백양(白楊)과 오죽(鳥竹)의 뿌리가 서로 엉켜서 태어난 돌연변이.
장우는 분혼이 깃든 나무에 대해 이미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鳥竹木靈族)을 통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태삼림에선 아주 오래 전부터 백양과 오죽의 싸움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양목령족의 땅인 태삼림에 오죽이 뿌리를 내려 숲을 이루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무들의 싸움이란 서로를 칼로 베고, 불로 태우고, 얼음으로 얼리는 것이 아니었다.
백양이나 오죽이나 덩굴을 올리는 나무도 아니니 서로 싸울 방법이라곤 땅 밑에서 뿌리의 성장을 서로 방해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양보다는 오죽의 뿌리가 훨씬 빠르게 번지는 까닭에 백양은 초기에 오죽의 제압에 실패하고 제법 넓은 영역을 오죽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태삼림 전체를 차지한 엄청난 세력의 백양목령족이 힘을 결집시키자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오죽림의 확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하지만 백양도 쉽게 오죽림을 줄이지는 못해서 서로 부딪히는 경계에서 치열한 땅 밑 싸움이 이어졌다.
그런 중에 생겨난 돌연변이가 바로 장우의 분혼이 깃들어 있는 백양오죽목령족이었다.
백양의 뿌리와 오죽의 뿌리가 서로 싸우다가 엉켜서 끊어졌는데, 그 상태로 죽지 않고 서로 하나가 되어 나무로 자라버린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자란 나무가 백양목령족이 나 오죽목령족에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오랜 세월 싸움을 하는 동안에 그런 돌연변이가 어디 그 하나 뿐이었겠는가.
종종 그와 같은 돌연변이가 생겨 났다가 백양과 오죽의 뿌리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런데 장우의 분혼이 깃든 나무는 운이 좋았는지 백여 년을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백양이나 오죽의 뿌리보다 더 깊고 넓게 뿌리를 퍼트려 쉽게 말라죽지 않았다.
게다가 백양이나 오죽도 아직 영족이 되지 못한 돌연변이 나무를 죽이려 크게 애쓰지는 않았다.
그러느니 서로를 공격하여 세력을 줄이는 것이 급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몇 백 년이 흐른 후, 드디어 백양오죽에게 큰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백양오죽에게 장우의 분혼이 깃들면서 백양오죽목령족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래 묵은 나무에 령이 깃들어 영족이 되는 것은 간혹 있는 일이니 백양오죽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백양태삼림에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에 이어 세 번째 목령족이 탄생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오죽림이 어떻게 생겼던가?
그 역시 백양태삼림에 뿌리를 내린 오죽 하나가 크게 자라 영족이 된 후에 그 세를 키운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새로 태어난 백양오죽목령족이라고 그리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백양과 오죽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듯하니 앞으로의 성장이 무서울 것이 분명했다.
이에 백양과 오죽의 우두머리들이 서로 의견을 모아 백양오죽목령족을 봉인하기로 하고, 두터운 벽을 세워 백양오죽의 뿌리가 넓게 퍼지는 것을 막아버렸다.
그렇게 백양오죽의 고단한 생존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 그래도 대단하지 않아요? 고작 성단기 초기 밖에 안 되었을 때부터 견제를 받았는데 지금은 벌써 화신기 중기까지 올라 있으니 말이에요.
몽이는 정말로 대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장우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영체기 후기에 의념공간이 확장되어 분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분혼을 떠나보냈는데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고작 화신기 중기라니, 많이 부족하지.”
- 무슨 말씀이세요. 원래 목령족의 성장이 느린 편이잖아요. 그래서 목령족은 천겁과 대천겁의 간격도 인간 수사에 비해서는 훨씬 길죠. 그걸 생각하면 백양오죽목령족이 벌써 화신기 중기란 것은 굉장한 거라고요.
“그런가?”
- 게다가 저렇게 봉인을 해 두고 성장을 막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몽이가 백양오죽을 둘러싼 나무 울타리를 가리키며 눈을 흘겼다.
“하긴, 대화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백양오죽을 봉인해 버린 것을 생각하면 이만한 성장도 대단하다 할 수 있겠네.”
장우도 어쩔 수 없이 평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우가 생각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백양오죽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의 봉인은 백양오죽에 깃든 영성을 제약하기는 하여도 수련 자체를 봉인하지는 못했다는 것이었다.
목령족의 성장은 땅에 뿌리를 박은 상태로 뿌리와 잎, 줄기를 모두 활용하여 천기의 기운을 흡수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목령족의 싸움에서 그런 것을 술법으로 제약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는 것이다.
나무들은 나무들의 방식으로 싸워야 하니 술법을 이용하여 성장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저 영성을 봉인하는 것이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양오죽은 절대 화신기 중기까지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요? 경지가 맞지 않아 분혼을 흡수할 수도 없고, 영성이 봉인되어 서로 대화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말이에요.
그 때, 몽이가 다시 한 번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짚어 내었다.
장우는 그런 몽이의 말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선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이 만든 울타리 봉인을 모두 불태우고 싶지만 정말 그렇게 했다간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의 우두머리가 태령기 완경이란 사실도 무섭지만, 그 배후에 진선급 이상의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어떻게든 분혼을 흡수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지.”
- 그렇죠. 백양오죽을 장우님과 같은 경지까지 끌어 올려야죠. 그렇지 않으면 분혼 흡수가 불가능하니까요. 그게 아니면 봉인을 풀어서 분혼과 대화를 하는 건데, 그건 완벽하다 하긴 어렵겠죠.
“허허허.”
몽이의 확언에 장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백양이나 오죽 목령족이 봉인을 풀어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 상황에서 다른 목령족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백양오죽의 경지를 성령기까지 끌어올린단 말인가.
그렇다고 분혼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분혼의 기억을 얻지 못하면 과거, 자신에 대해시 알 수 없게 된다.
- 이대로 이곳에 머물면서 백양오죽의 분혼과 짧게라도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어떨까요?
‘하루에 몇 마디를 들어서 언제 과거의 내 기억 모두를 돌려받는단 말이냐. 그리고 그렇게 해서 과거를 제대로 알 수나 있겠어?’
봉인 때문에 분혼과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영성을 제약하기 위한 봉인이라 정확한 정보 교환은 안 되는 것이다.
고작해야 반가움, 기쁨, 기대와 같은 느낌만 전해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 그야 그렇긴 하죠.
‘결국 방법은 백양목령족과 오죽목령족을 설득해서 봉인을 풀거나, 백양오죽이 성령기에 오르도록 하는 것 뿐이야.’
- 네에, 그러네요. 그런데 어떻게요? 방법이 없잖아요.
‘일단 분혼과 의논을 해 봐야지.’
- 대화가 안되는데 의논이요?
‘호(好), 불호(不好)는 표현하잖아. 그걸로 간단하게 의견 교환을 해 봐야지.’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백양오죽을 등지고 앉았다.
나무 기둥은 검은색의 대나무에 가깝고, 잔가지와 잎은 백양나무와 비슷한 나무.
대나무의 성질을 지 녀시인지 곧게 자란 나무는 훤칠하니 높아서 사십 장 높이까지 올라서야 잔가지가 보였다.
장우는 그런 백양오죽을 등지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그 대부분은 과거에 대한 질문이 었는데 백양오죽의 분혼은 장우의 물음에 명쾌하고 빠른 답을 내놓지 못했다.
질문을 알아듣기는 하는데 반응이 늦게 온다고 할까?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장우는 문득 자신이 직접 백양오죽과 대화를 하기 보다는 영체를 이용하면 조금 더 정밀한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어? 영체를 꺼내시게요?
장우가 의념 공간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영체를 일깨우자 몽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장우는 몽이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영체를 밖으로 꺼냈다.
장우의 정수리에서 빠져나온 영체는 선홍색의 불길을 닮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달궈진 쇳덩이처럼 붉은 영체의 가슴에 녹색의 과일 하나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장우는 영체의 가슴에 있는 녹색 과일을 보며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에 염화궁의 극화공을 익혀 승경을 이루며 몸을 새로 구성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 영체 또한 재구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녹색 과일이 화기에 반발하며 기운을 갈무리하여 응결되고 말았다.
이전에는 미약하게나마 영체로 흘러들던 녹색 과일의 기운이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끊긴 것이다.
그 때문에 녹색 과일로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성취를 높이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잔결독공을 다시 익히지 않는다면 여기서 급하게 해파리 공법의 성취를 높일 필요는 없겠죠. 아직까진 부활에도 지장이 없을 듯 하니.’
역법반서복원대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부활이다.
그리고 그 부활에 필요한 것은 다른 영수나 괴수, 마수 등을 사냥해서 얻는 진혈의 기운, 즉 진혈기다.
장우는 지금 당장 진혈기가 모자라 부활과 함께 경지 회복은 불가능하겠지만 부활 자체는 문제가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해파리 공법의 성장이 급하게 여겨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영체와 녹색 과일의 분리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라 어쩔 수 없이 표정이 어두워진 것이다.
‘일단 영체와 백양오죽에 있는 분혼을 접촉시켜 보자.’
하지만 지금은 녹색 과일의 분리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장우는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영체를 움직였다.
정수리를 떠난 영체는 점차 크기를 키워 장우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외형의 크기까지 완전히 동일해진 영체는 스르르 날아올라 백양오죽의 잔가지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잔가지에 서서 기둥에 손을 올려 분혼과 의식 연결을 시도했다.
‘어라?’
그런데 그 순간 백양오죽이 이전과 달리 격한 반응을 보였다.
‘뭐지? 뭣 때문에?’
장우는 잠시 혼란스러워 했지만 곧 영체를 통해서 분혼의 뜻이 미약하게 전해졌다.
‘녹색 과일? 그걸 달라고?’
그런데 뜻밖에도 분혼이 원하는 것은 영체가 품고 있는 녹색 과일이었다.
‘음! 녹색 과일을 흡수할 수 있다는 이야긴가?’
장우는 뜻밖의 상황에 고심(苦心)이 깊어졌다.
녹색 과일은 자신의 역법반서복원대법에도 매우 유용한 수련자원이었다.
당장은 활용 방도가 막혀 있다지만 이전 금혈단(金血丹)으로 녹색 과일을 녹여 냈던 것을 생각하면 분혼에게 넘겨 주기엔 아까운 면이 없지 않았다.
‘어휴! 그래도 분혼이 곧 나와 같은데 여기서 그걸 구별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겠지.’
하지만 장우는 오래지 않아서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사실 장우는 자신의 과거를 알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어찌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까.’
장우는 어금니를 깨물며 영체의 가슴에서 녹색 과일을 뽑아내어 백양오죽에게로 밀어 주었다.
< 백양오죽목령족(白楊鳥竹木靈族)이라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