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92화 (392/499)

(392)

< 성륜역에 들어 분혼을 찾아가다 >

행륜관의 마지막 시험은 장우가 생각지 못한 형식이었다.

그 시험에선 진법을 활용하여 가상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상황이라는 것이 장우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여러 종족들에 대한 것이어서 몇 번이나 대처에 실패하곤 했다.

호인족(狐人族), 즉 여우의 피를 이은 종족은 유독 남자가 드무니 자칫 해를 입히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거나.

나무 중에 한 뿌리에서 수천만 본의 줄기와 잎이 나며, 그렇게 드러난 나무들 하나하나에서 목령(木靈)을 탄생시키는 신비한 숲에 대한 이야기.

여섯 용인족 부족이 어떤 용인족과는 친하고 어떤 용인족과는 적대하는 지에 대한 이해.

마지막 시험에서 펼쳐진 상황 대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것이 일종의 가르침임을 깨닫게 했다.

그래서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다시 행륜관의 성문 앞에서 용인족 수사를 만났을 때, 장우는 이전보다는 조금 태도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묻겠습니다. 실로 이 마지막 시험이라는 것은 성륜역의 상황에 맞추어 대처법을 일러준 것이 맞습니까?”

“하하하. 역시 다른 수사들과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십니다. 수사의 생각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지요.”

“단순하지 않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미 시험을 치렀으니 알겠지만 각각의 상황은 어지간한 경지가 아니면 이겨내기 어려운 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긴 했습니다. 입령기 수준이라면 어려웠을 해결책들이 간혹 있었지요. 그러니 마지막 시험이 안내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란뜻이군요?”

“맞습니다. 이곳 행륜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성령기 경지는 되어야 한다는 기본 규칙을 철저히 지킨 시험이지요.”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행륜관을 지나 성륜역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장우는 마음이 급했다.

어서 가서 분혼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물론입니다. 이미 시험을 통과했는데 누가 수사의 앞을 막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이라니요?”

용인족 수사의 말에 장우가 살짝 경계의 기색을 보였다.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제안이지요.”

“어디 들어봅시다.”

지금까지 용인족 수사의 언행이 크게 모나지 않고, 적대적인 면이 없었기에 장우도 일단 그에게 기회를 줘 보기로 했다.

“마지막 시험을 치르셨으니 아시겠지만 성륜역 내부에도 여러 세력들이 있습니다. 인간 수사 외에 여러 종족들이 각각의 세력을 가지고 있지요. 따지자면 인족 수사는 한 줌도 되지 않는다고봐야 겠지요.”

“그래서요?”

“상황이 그러니 인족 수사가 부득이하게 제약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도 아시지요?”

“시험을 치르다보니, 우리 인간 수사들이 한미(寒微)하여 조심해야 할 내용이 좀 많았지요.”

장우가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수사께서 이참에 우리 준룡(俊龍)의 일원이 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 제안이라는 것이 수사가 속한 세력에 저를 영입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까?”

장우가 문득 깨닫는 바가 있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그렇습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시험에 의하면 준룡족이 패룡, 익룡과 적대하며 강룡과 친하다지요? 남은 역룡과 린룡은 고만고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말입니다.”

준룡(俊龍), 패룡(覇龍), 익룡(翼龍), 강룡(强龍), 역룡(役龍), 린룡(휴龍)은 성륜역에 있는 여섯 용인족으로 서로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그리고 이 여섯 용인족은 성륜역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들 중 하나에 속했다.

‘나브브지 않은데, 문제는 지금 준룡족의 상황을 모른다는 거지.’

- 당장 끌려가서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지. 세력에 속하게 되면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명을 따라야 하니까. 그런 계약이겠지.’

- 그렇다고 마냥 거부하기도 어렵죠. 성륜역이 보기보다 인족 수사들에게 배타적이라고 했으니까요.

‘음, 그래도 지금은 분혼을 만나는 것이 급하니 당장 저 놈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겠다.’

- 장우님이 그렇게 결정하셨다면 저도 찬성이에요.

‘그래, 고맙구나.’

장우는 잠시 몽이와 마음속 대화를 나누고 준룡족의 수사를 바라보았다.

“마음의 결정을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제안은 고맙지만 그 뜻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으음, 이유를 알수 있겠습니까?”

용인족 수사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가 성륜역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자칫 준룡족의 일로 그 일을 미루게 될 수도 있으니 그것을 저어한 것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수사께선 그저 수련 복지인 성륜역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셨습니다? 성륜역에 특별한 목적이 있으셨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수사께서 이해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쁜 뜻으로 제안을 거절한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소속이 없다면 계속해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을 알고 계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껏 대부분의 세월을 홀로 버텨왔습니다. 저를 어찌 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마땅히 응분의 대가를 치러주면 될 일이겠지요. 그것이 수도계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참으로 호탕하십니다. 그럼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요? 저는 준룡족의 성호 준이라합니다.”

“역시 성륜역의 용인족은 그 성을 뒤에 붙이는군요. 저는 장우라 합니다. 성호 준 수사.”

“장우 수사셨군요. 그럼 이제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시렵니까?”

“마음이 급하니 성호 준 수사가 허락한다면 곧바로 길을 재촉하려 합니다.”

“알겠습니다. 급한 일이 있다니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지요.”

성호 준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성문 통로 중앙에서 비켜나 벽으로 붙어 섰다.

장우는 그 모습에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언제 다시 좋은 인연으로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저 역시.”

성호 준도 장우의 인사에 짧게 대답을 했고, 그 순간 장우는 선홍빛의 둔광과 함께 행륜관의 성문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후 행륜관 너머의 성륜역 하늘에 거룡 형상이 떠오르더 니 한 순간 모습을 감추었다.

“으음? 용의 머리를 잘라 비행 령보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순간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거룡 비행 령보의 모습에 성호 준의 인상이 구겨졌다.

같은 종족은 아니라 하지만 구수신귀(九首神龜)의 머리로 만든 령보가 좋게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종족이 아니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우리들이지만 그렇다고 용의 머리를 잘라 만든 령보가 시빗거리가 되기엔 충분할 텐데……"

성호 준은 잠시 장우란 수사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내가 신경쓸 문제는 아니지.’

그는 내심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매를 저어 행륜관의 진법을 움직여 삼천삼백삼십삼 계단을 다시 허공으로 숨겼다. 아울러 장우가 올라오며 훼손된 계단을 복구하기 위해 행륜관에 속한 수사들과 괴뢰들을 불러 내어 임무를 맡겼다.

★ ★ ★

거룡의 모습을 드러낸 상태로 구름 위를 날아가는 비행 령보.

그 머리 위의 4층탑 1 층에 장우가 앉아 있었다.

그런 장우 앞에는 몽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주변 경관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 드디어 분혼을 만날 수 있게 되 었네요.

‘그래, 이 속도라면 10년 이내에 분혼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겠다.’

-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네요? 그 쪽에는 주로 어떤 종족들이 있을까요?

‘용족 중에는 린(觸)족이 있고, 성륜역 군집체 목령족(木靈族)의 기원이라는 사시나무 숲도 있지. 그 외에 화산 지대도 있고, 늪지도 있고.’

- 아, 그 죽목령과 사이가 안 좋다고 하는 그 백양(白楊) 목령족이요?

‘성륜역의 대표적인 목령족 세력인데 사이가 별로 안 좋다고 했지. 두 목령족이 모두 하나의 군집체에서 분화하여 령족 수사가 탄생하는 식이라 비슷한데, 그래서 더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 원래 닮은 사람끼리 많이 싸우는 법이죠. 서로 완전히 다르면 싸울 일도 없고요.

‘그렇겠지. 물고기가뭍짐승과싸울 일이 없는 것처럼.’

- 그런데 분혼은 대체 어떤 종족일까요? 인간일 가능성은 별로 없겠죠?

몽이가 혹시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별로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 기대는 접은 표정이었다.

‘어차피 어떤 종족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지. 분혼(分魂)을 본혼(本魂)이 흡수하는 형태가 되는 거니까. 그리고 성륜역에는 인간이 거의 살지 않으니 분혼이 인간으로 태어나 수사가 되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을거다.’

- 그럼 제일 가능성이 높은 종족은 역시 목령족일까요?

‘그거야 가 보면 알겠지. 일단 중간에 방해만 받지 않으면 10년 정도면 될 테니, 그 사이에 융생오금(融生鳥金)을 이용해서 영찬(靈豫)들을 마저 준비해야겠다.’

장우는 오랜 세월 미뤄두고 있던 영찬황과 영찬후에 대한 재련 준비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 당장 령보를 만드실 생각은 아니신 거죠?

‘분혼을 흡수하고, 과거의 기억을 모두 되찾은 다음에나 내게 적합한 령보를 알 수 있을 테니, 그 때까지는 미뤄둬야지.’

- 네, 그러실줄알았어요.

이미 전부터 이야기가되어 있던 일이었다.

과거 암해의 끊어진 다리 대륙을 통과하며 얻었던 융생오금을 영찬과 융화시키면 영찬 특유의 기운을 없앨 수 있었다.

장우는 이미 자신이 가진 것이 영찬황과 영찬후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진선들조차 탐낼만한 보물임도 알았다. 그랬기에 기운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의념 공간에서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었다.

‘네가 그 동안 게으름을 피운 것이 문제다. 의념 공간에서의 작업은 몽이 네가 해 줘야 하는 것인데, 아직 갈 길이 멀구나.’

- 장우님,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에요? 제가 어디 저 혼자의 힘으로 그런 작업을 할 수가 있기나 해요? 장우님이 의념으로 도움을 주셔야 의념 공간 안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동안 장우님이 워낙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셔서 그럴 여유가 없었던 거잖아요.

‘하하, 알았다. 알았어. 내가 말을 잘못했다.’

- 헹,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저는 장우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구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으니 이제부터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융생오금과 영찬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에 집중을 해 보자꾸나.’

- 네에.

이후 장우는 몽이를 시켜 의념 공간 안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물론 몽이의 모든 행위는 장우의 의념을 이용한 것으로 따지자면 몽이가 장우의 손발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을 즈음, 거룡 비행 령보가 어느 거대한 숲을 앞에 두고 멈췄다.

★ ★ ★

거룡 령보가 하늘에 멈추고 보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즈음 숲의 깊은 곳에서부터 한 수사가 날아와 거룡의 머리 앞에 우뚝 섰다.

“무슨 이유로 백양태삼림(白楊太森林)을 찾았는가?”

나타난 수사는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보이는 목령족의 수사였다.

“이곳이 백양태삼림인 줄은 와서야 알았습니다. 저는 장우라 합니다.”

장우가 거룡의 머리 위, 4층탑 앞으로 나와서 목령족 수사를 향해 공수를 해 보이며 말했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왔다고? 그렇다면 이제 알았으니 우리 백양태삼림에 볼 일이 없다면 그냥 물러나면 될 일이겠군.”

장우의 인사를 받은 목령족 수사는 스스로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까칠한 태도로 장우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장우가 다시 손을 모으며 용건을 이야기했다.

“저는 실상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누군가를 찾아 왔습니다. 정확히 저 쪽 방향에 있고, 거리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장우가 남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장우의 말을 들은 백양목령족 수사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장우에게 물었다.

“오죽(鳥竹)목령족을 찾아온 것인가?”

“백양태삼림에 오죽목령족이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저는 실상 목적지가 멀지 않고, 태삼림 안쪽에 있으니 백양목령족 중에 한 명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 말은 찾는 이가 누군지도 알지 못한다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그저 신묘한 힘으로 선연(善緣)이 있는 혼을 찾아온 것일 뿐이라, 그가 어떤 이이며, 또 어떤 상태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으음.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장우 수사가 가리킨 방향에는 오죽목령족의 땅이 있으니 찾는 이가 오죽목령족일 가능성도 있겠군.”

“아니면 백양목령족이거나 혹은 태삼림 안에 살고 있는 다른 종족의 수사일 수도 있겠지요. 태삼림이라 하여 오직 백양목령족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 또한 그렇겠지. 하지만 적어도 백양목령족일 가능성은 높지 않겠군.”

“그건 어찌 그렇습니까?”

“우리 백양목령족은 각기 독립적이면서 또한 하나로 연결될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장우 수사와 영혼의 인연이 있다면 내가 이미 알았겠지. 따지자면 우리 백양목령족은 모두가 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기에 밀접한 영혼 교류를 하는 셈이 니까.”

“으음. 그렇습니까?”

“어쨌거나 장우 수사가 태삼림을 찾은 이유는 알았으니 일단 출입을 허가하겠다. 하지만 항상 언행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태삼림 안 어디에도 우리의 이목이 깔려 있을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목령족의 땅에서 어찌 경거망동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우는 백양목령족 수사의 경고를 허투루 듣지 않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장우가 알기로 현재 백양목령족의 수장은 태령기 완경으로 진선경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미 진선의 경지를 이룬 백양목령족이 여럿 있다는데, 그런 세력을 앞에 두고 어찌 허튼짓을 꿈꿀 수 있을까.

“그럼 조용히 용무를 보고 떠나라.”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백양목령족 수사는 다시 한 번 경고를 하고 장우의 대답을 들은 후, 표홀히 모습을 감추었다.

장우는 홀로 남은 후, 다시 거룡 령보를 움직여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 성륜역에 들어 분혼을 찾아가다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