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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최후의 승자는 장우였다 >
염화궁의 중앙에 있는 본전(本殿).
그 대전에는 십여 명의 수사들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어떤 이는 가부좌를 한 상태로 숨졌고, 다른 이는 바닥을 기어가다 숨이 끊어졌다.
또 다른 이는 무기를 바닥에 꽂은 상태로 서서 죽었으며 다른 이는 스스로 머리를 깨트려 죽기도 했다. 어쨌거나 대전 안에 살아 있는 이는 없어 보였다.
그런 곳에 장우가 문을 밀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장우는 대전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몰려오는 강력한 사념에 작은 신음을 냈다.
- 와! 뭐예요? 이게?
몽이가 장우의 정신으로 파고드는 뱀 같은 사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조문도의 수작이지. 진법의 도움을 받아서 사념을 대전에 들어온 이들에게 밀어 넣어 정신을 해치려는.’
장우는 이미 초여정을 통해서 조문도의 수법을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조문도의 수작을 막거나 파훼할 자신이 없었다면 어찌 이렇게 무모하게 대전에 들어왔겠는가.
그는 이미 조문도가 진법으로 펼치는 수법을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를 막을 방책도 가지고 있었다. 장우는 잔결독공을 일으켜 독기로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그 독기에 스스로의 의념을 강하게 투사하여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자 조문도가 만든 사념의 뱀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장우의 정신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장우는 그런 상태에서 태연하게 걸음을 옮겨 대전의 중앙에 이르렀다.
쿠구구궁!
그곳에서 장우가 크게 발을 구르자 대전의 바닥에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으로 이어진 지하.
장우가 그곳으로 내려가자 오래지 않아서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장우 수사.”
그곳에 갈색으로 변해버린 진법이 있었는데, 그 중앙에 조문도가 앉아 있었다.
그는 힘이 없는 표정으로 장우를 부르고는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장우 역시 그런 조문도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조문도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놈!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리고 장우를 향해 화를 내며 소리를 쳤다.
“조 수사, 참으로 교활하십니다. 이미 사념을 부려 정신을 헤집는 진법은 힘을 잃었는데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놈! 어찌 알았지?”
조문도는 장우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화를 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가 앉아 있던 엉덩이 밑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진법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 수사, 그대의 악독한 심계를 내가 아는데 어찌 태만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분명 숨겨 둔 수가 하나쯤은 있으리라 생각했지요. 그리고 보십시오, 마침 거기에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영민한 놈이구나. 자, 그래서 이제 어찌 할 테냐? 네가 내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지만 그렇다고 네가 나를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
“같은 화신기 극경의 경지이니 서로를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이지요?”
“그렇다!”
“하지만 그거야 이 장모가 준비한 것이 없었을 때의 일이지요. 마침 조 수사가 패를 보였으니 이제 저도 숨겼던 패를 보여 드릴까 합니다.”
“뭐? 숨겼던 패?”
조문도는 장우의 말에 뭔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주춤거 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 만 장우는 그런 조문도를 따르지 않았다.
누군가 멀어지면 그를 쫓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본능이지만 이미 장우는 조문도가 앉았던 갈색 진법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함정으로 뛰어들 일이야 있을까.
대신 장우는 의념을 움직여 잔결독공의 독기를 사방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 장모가 조 수사와 함께 하면서 어찌 뒤를 걱정하지 않았겠습니까. 조 수사도 나름 자신이 있어 일을 꾸미긴 했겠지만, 나 역시 조 수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제 특기가 독공인 것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몇 번 보셨으니 당연할 것입 니다.”
“독공 따위를 내가 두려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조문도가 장우의 말을 비웃었다.
그는 염화궁의 공법을 익혀 뛰어난 화기를 지닌 수사였다.
그 때문에 독기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뛰어난 화계 공법을 익히고 있으니 독기를 두려워 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 수사께서는 독공을 익힌 제가 하필이면 이렇게 화기가 성한 곳에서 수련한 이유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야 화천독망질의 독기가 쓸만하니 그것을 흡수한 것이 아니냐. 이미 그 정도는 확인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왜 이 장모가 화언독망질의 독과 함께 화기까지 흡수한 것은 생각지 못했습니까?”
“뭐라?”
“그 덕분에 제 화기로 독기를 숨겨 놓을 수 있게 되어 조 수사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네가 나를 어떻게 속였다는……, 음?”
조문도는 장우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문득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을 감지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우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후련함을 담은 웃음이었다.
“저의 독기를 화기로 생각하고 그리 오래도록 취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어찌 저의 수법을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이게 어떻게……"
조문도는 자신이 축적했던 화기의 일부가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라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애쓸 것 없습니다. 이미 조 수사의 화기와 저의 독기를 분리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닙니까. 그러니 그만 포기하십시오.”
장우는 조문도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문도의 몸에 깃들어 있는 독기를 의념으로 제어하기 시작했다.
몸 안에서 멋대로 움직이는 이질적인 기운을 조문도는 막을 수가 없었다.
독기가 자신의 기운과 구별이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특히 강력한 장우의 의념이 결정적이었다.
평범한 수사들보다 네 배는 강력한 의념, 그 의념의 통제를 받는 독기가 몸 안에 있는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든 화기를 움직여 보려고 해도 그 때마다 독기가 뭉쳐 기운이 움직일 통로를 막아버렸다.
“그 동안 나를 중독시켰다고? 감히 나를?”
“어찌 그리 화를 내십니까? 조 수사가 딴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저도 굳이 이 수단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는 대로 받는 것이니 억울하다 할 일은 아니지요.”
“이, 이이이!”
“그만가십시오.”
장우는 더는 오래 조문도와 말을 섞고싶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를 길게 한 것도 조문도의 몸에 있는 독기들을 완벽하게 일깨우고 그것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그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조문도를 마무리 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장우가 손가락 하나를 뻗어 조문도를 가리켰고, 손가락 끝에서 응결된 작은 구슬이 번뜩이며 날아가 조문도의 이마에 구멍을 만들었다. 독기를 뭉쳐 만든 구슬로 조문도의 뇌를 파괴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작은 구멍이지만 그 안쪽의 뇌는 독기에 녹고 화기에 불탄 상태였다.
노오옴! 내가 이대로 당하고 말 것 같으냐! 함께 죽을 것이다.
하지만 영체기 이후의 수사들에게 육체의 소멸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문도 역시 육체가 죽음에 이르자 영체를 뽑아내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장우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곧바로 자신이 깔고 앉았던 진법으로 달려들었다.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진법을 폭주시켜 장우와 함께 죽겠다는 의지였다.
“내 그럴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우도 조문도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퍼트려 놓았던 잔결독공의 독기를 은밀하게 움직여 진법 위에 반구형의 막을 형성해 놓은 상태였다. 화기와 독기가 충만한 잔결독공의 독기로 된 방어막에 조문도의 영체가 스스로 몸을 던진 꼴이었다.
파지지지지지 파지지직!
크아아아아! 아아아악!
“굳이 영혼까지 소멸시키지는 않겠다. 그러니 조용히 윤회에 들도록 해라.”
장우는 스스로 독기에 몸을 던져 산화하는 조문도의 영체를 힐끗 바라보며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영체가 빠져나간 조문도의 몸에서 몇 가지 법보와 공간낭이 떠올라 장우를 향해 날아갔다.
장우는 그것들을 대충 살펴 의념 공간 안으로 던져놓고 공간낭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염화궁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몇 개의 옥간과 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즈음, 반은 녹고 반은 타버린 조문도의 영체가 끝내 바스러져 허공에 흩어졌다. 이후 희끗한 영혼이 나타나는가 싶었지만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조문도는그렇게 끝이 나 버린 것이다.
‘음, 이곳은 잠시 그대로 두고 대전에 좀 가 봐야겠군.’
장우는 일이 마무리 되자 대전에 죽어 있던 수사 하나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 와, 장우님도 장문일을 알아보셨군요?
그런 장우의 얼굴 옆으로 몽이가 따라 붙으며 물었다.
‘수사는 좀처럼 뭐가를 잊는 법이 없지. 게다가 장문일은 나에겐 첫 스승이었는데 겉모습이 조금 바뀌었다고 알아보지 못해서야 말이 되겠느냐?’
- 저는 처음에는 몰라봤는데요?
‘그래도 곧 알아보지 않았어? 나도 그랬지.’
- 그렇군요.
‘어차피 조문도의 함정에 빠져서 죽은 사람이다. 대전에 있는 다른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수사가 된 것이지.’
- 네? 좋은 수사요??
‘네가 늘 말하지 않았더냐. 좋은 수사는 죽은 수사밖에 없다고. 그러니 좋은 수사가 된 것이지.’
- 에헤! 그러네요. 좋은 수사!
★ ★ ★
장우는 조문도까지 처치하고 염화궁을 차지했지만 마음을 놓지 않았다.
어차피 성륜역 경계 지역에는 이미 염화궁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 소문에 이끌려 염화궁까지 왔던 이들은 이번 일로 모두 몰살을 당했지만 언제 다시 호기심 강한 수사가 찾아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장우는 서둘러 염화궁의 모든 것을 빼돌려 몸을 감출 계획을 세웠다.
그 첫 번째가 이번 일로 죽은 수사들의 유품을 수습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이 염화궁의 보물을 찾아 챙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죽은 수사들의 유품이야 그저 되는대로 주워 넣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염화궁의 보물을 차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남아 있는 보물도 얼마 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만, 남아 있는 보물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세월을 견딘 보물은 동시에 여전히 건재한 결계와 금제로 보호받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염화궁에 있던 수사들은 경지가 얼마나 높았을까?’
- 어쩌면 진선경에 이른 수사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렇겠지? 그 정도는 되어야 궁 전체를 감싸는 진법이 설명이 되는 거겠지?’
- 경지를 낮추는 진법 때문에 짜증이 많이 나신 모양이네요?
‘그거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니까그렇지.’
-그래도 그 덕분에 일이 쉬워진 면도 있잖아요. 경지가 떨어진 제자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뒷문을 만들어 둔 것을 고맙게 생각하셔야죠.
‘그건 그렇다만, 이렇게 몸과 의념이 둔해서야 어디.’
장우는 투덜거리며 염화궁의 지하 복도를 바쁜 걸음으로 걸어갔다.
조문도가 가지고 있던 염화궁에 대한 기록은 성륜역에서 흘러나온 것이라 했는데, 의외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에 염화궁의 장보각(藏譜閣)이란 곳의 기록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염화궁의 보물 창고가 그곳이었다.
원래 그곳에는 아주 강력한 금제와 결계가 둘러쳐져 있었는데, 의외로 염화궁에 경지를 크게 제약하는 진법이 생긴 후에 뒷문을 만들었다.
경지가 낮아진 제자들이 장보각을 드나들 방법이 없으니 그들만을 위한 통로를 만든 것이다.
지금 장우가 지나고 있는 곳이 바로 그 통로였다.
‘조문도가 멍청한 거지. 옥간의 내용이 삼중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고작 두 번째 내용까지만 알아내고 기고만장 했던 거지.’
그 덕분에 조문도가 염화궁에서 여러 수사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래봐야 최후의 승자는 장우 자신이었다.
‘봐라! 드디어 염화궁의 보물창고가 저기 있다!’
복도 끝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로 막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곳이 바로 장보각으로 들어가는 비밀 입구였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장우가 거의 달리듯이 복도 끝의 현무암 덩어리로 달려가 소매에서 불꽃 문양이 선명한 옥패를 꺼내어 바위의 한 곳에 끼워 맞추듯 밀어 넣었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웅!
쿠구구구구구궁.
그러자 옥패에 강렬한 화기가 모여들더니 곧이어 바위에서 금빛 문양이 떠오르며 좌우로 갈라졌다.
장우는 그렇게 드러 난 입구를 통해 장보각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역시 최후의 승자는 장우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