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89화 (38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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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여정(草餘뷰)을 만나다 >

“빠져 나가야해! 여, 여긴…… 위험해……

초여정은 허둥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화신기 극경에 이른 초여정이 땅을 밟고 한 번에 서너 장 밖에는 뛰지 못하며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아아악! 제발 도와줘어!”

초여정이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저게 무슨 일이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우가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몸을 숨겼다.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의 흔적이 보이는 폐허.

이곳은 다름 아닌 염화궁이었다.

장우는 용암 호수에서 화천독망질 두 마리를 수습한 후에 그 사이에서 난 특별한 알을 조금 살피다가 염화궁으로 들어왔다.

용암 호수 이후에도 몇 곳의 관문이 있었지만 그곳은 이미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제 기능을 잃은 후였다.

금제와 결계를 이루는 엄청난 진법들이 있었지만 소세야의 화기와 지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진 것이다.

과거 염화궁의 몰락과 관계된 소세야의 화염 재앙이 일어난 시기를 생각하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에 염화궁은 소세야에서 일어난 재앙을 이기지 못하고 수사들 모두가 몰살을 당했고, 수사보다 오래 유지되었던 금제와 결계도 시간에 무너진 것으로 보였다.

장우는 그런 모습을 확인하며 결국 염화궁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염화궁은 거대한 화산의 중심, 분화구의 바닥에 있었다.

그래서 치솟는 연기와 재 가루 사이로 하늘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이는 곳이었다.

장우는 그렇게 염화궁에 도착한 후, 그보다 먼저 이곳으로 왔을 수사들을 경계하며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던 중이었다. 그런데 염화궁에 도착한 후로 처음 만나는 수사가 초여정이었는데, 하필 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미친 거 같은데요? 제정신은 아닌 게 맞아요.

몽이도 초여정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

‘화신기 극에 이른 수사가 정신이 무너지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장우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의 수를 떠올려 봤다.

하지만 초여정의 모습만 보고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시려고요? 저 여자를 구하실 거예요?

장우가 조심스럽게 초여정을 향해 다가가려 하자 몽이가 다급하게 얼굴 앞으로 나서서 팔을 휘두르며 물었다.

‘주위에 위험한 것도 없고, 수사들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니 괜찮을 거다.’

장우는 이미 주변을 자세히 살핀 후였기에 그렇게 말을 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초여정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런 장우 역시 한 번에 서너 장 정도를 건너 뛸 뿐이었다.

아니, 장우님도 이곳에 걸린 기괴한 금제에 당한 상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성급하게 움직이시면 어떻게 해요?

몽이가 그런 장우를 말리려는 듯 계속해서 얼굴 옆으로 따라붙으며 소리쳤다 ‘어차피 이 기괴한 결계는 상고 시대부터 있던 것이라, 다른 수사들 역시 모두 피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누가 있더라도 나와 처지가 비슷하것 - 하지만 혹시 누군가 결계를 피할 수단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랬다면 저 초여정이나 나도 이미 그 자의 손아귀에 있다고 봐야겠지. 내가 숨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으음. 그건 그러네요. 이곳에 펼쳐진 금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면 고작 연신기 수준도 되지 못하는 장우님이야 뭐……."

‘고놈, 험한 말을 잘도 하려 하는구나.’

에헤헤. 아니에요. 설마 그런 일은 없겠죠. 네에.

장우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몽이가 후다닥 뒤로 물러나며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둘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초여정의 곁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보시오, 초 수사!”

“히이익!”

장우가 슬쩍 초여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를 부르자, 초여정이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났다.

엉덩이로 바닥을 뭉개며 뒤로 물러나는 그 모습이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다.

어찌 범인도 아니고, 화신기 극경까지 오른 고계 수사가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장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초 수사, 나를 모르겠습니까? 장우 수사입니다.”

“자, 장우 수사!"

장우의 말에 초여정의 눈빛에서 한 줄기 맑은 기운이 솟아났다.

장우는 급히 초여정의 손목을 잡고 영기를 불어 넣어 그 맑은 기운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초여정의 눈빛이 한결 맑아졌다.

“장우 수사! 진정 장우 수사셨습니다. 장우 수사였어요.”

초여정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감격한 표정으로 장우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매달리듯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장우 수사,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서요!”

그리고 급히 장우의 손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장우가 그런 초여정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느냔 물음에 초여정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눈빛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아아, 갈 곳이 ! 갈 곳이 없어 !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아아아악!”

그리고 다시 고함을 지르더니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장우는 그런 초여정을 내려다보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초 수사! 정신 차리십시오. 어찌 그리 나약하단 말입니까!”

장우가 다시 초여정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영기를 그녀의 몸에 불어 넣었다.

“아아아아, 살려주세요. 제발!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 돌아온 초여정의 반응은 이전과 전혀 달랐다.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화신기 수사의 체통도 잊은 듯이 울부짖더니 두 손을 비비며 빌기 시작한 것이다.

“허어, 이게 무슨!”

장우는 어이없는 상황에 탄식을 토하다가 문득 초여정의 몸에 잔결독공의 독기를 주입하여 그녀를 제압해 버렸다. 그러자 이미 제 정신이 아닌 초여정은 쉽게 제압되어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늘어져 버렸다.

‘일단 옮겨야겠다.’

장우는 주위를 살피며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초여정을 어깨에 둘러메고 걸음을 옮겼다.

★ ★ ★

“정신이 들었습니까?”

“아, 장우 수사.”

초여정은 돌침대에 누운 상태로 눈동자만 돌려 장우를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온 몸이 제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임을 확인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장우 수사가 저를 이리 한 것입니까?”

그녀는 침착한 음성으로 장우를 보며 물었다.

“이전의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초 수사는 지금 정상이 아닙니다.”

그런 초여정을 보며 장우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초여정은 그런 장우의 말에 자신의 상황을 추측해 보기 시작했다.

“염화궁에 들어와 보물을 찾아다니다가……." 그렇습니다. 그런 중에 염화궁의 중심인 본전에 들게 되었지요. 그리고……"

초여정은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그 후를 이어가지 못했다.

“무슨일이 있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간혹 떠오르는 것은 제가 염화궁의 폐허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는 것 뿐입니다. 그래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호여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스스로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며 눈을 감고 말았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에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손을 모아 빌거나 떼를 쓰는 모습들이 떠오른 것이다.

“도대체 누가 초 수사를 그리 두렵게 만들었던 것입니까?”

그 때, 장우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초여정이 가진 두려움의 대상에 대해서 물었다.

“아, 그러니까…… 그게……." 아아아, 아아아아악!”

하지만 초여정은 장우의 물음에 대답하려다가 끝내 다시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뭐가 있기는 있다는 건데 말이지.”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이 여자의 몸에는 여러 가지 약기운이 뒤섞여 있고, 그 약기운이 여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이마에 이거요.

몽이가 초여정의 얼굴로 날아가 그녀의 이마에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있는 은색 문양을 가리켰다.

이 은색 문양의 기운은 전에 이 여자가 썼던 미혼단이란 영단과 비슷하고, 이렇게 이마에 문양이 떠오르는 것은 조문도란 수사의 술법과 같아요. 그렇다는 말은 이 일의 배후에 조문도가 있을 확 률이 높다는 거죠.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속단할 때가 아니다.’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초여정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초여정이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여러 방법으로 초여정의 상태를 살폈는데, 그녀의 몸에 정신을 제약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낸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몽이의 말처럼 초여정이 이전에 썼던 미혼단과 매우 비슷한 약력(藥方)을 바탕으로 하는 술법이었다.

그러니 장우 역시 조문도를 의심하는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지만 초여정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확인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깨우실 거예요?

‘몇 번 반복하면 답이 나오겠지. 잔결독공의 독기로 초여정의 신체를 대부분 장악했으니 이번에는 몸에 퍼져 있는 약기운을 조금 더 억눌러 술법의 힘을 약화시켜야겠다.’

그렇게 되면 술법에 파탄이 생겨서 이 여자의 정신에 큰 충격이 갈 수도 있다면서요?

‘최대한 조심해야지. 그리고 지금 상태에서도 어차피 약력이 소진되면 술법이 폭주하게 될 거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게 되어 있었다.’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초여정의 몸에서 잔결독공의 독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기에 의념을 심어 움직이는 것은 꽤나 유용한 수법이었다.

★ ★ ★

“하아, 조, 조수사의 짓입니다.”

네 번째로 초여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드디어 사건의 내막을 이야기 했다.

“조문도가 어찌 했다는 겁니까?”

“그가 염화궁의 세뇌대법을 얻었습니다. 원래 화천독망질을 부리던 공법인데 그것을 우리들에게 사용한 것입니다.”

초여정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초 수사.”

“하아, 이곳 염화궁의 터에는 상고 시대의 진법 몇 개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선 우리같은 화신기 수사라도 연신기 수사와 같은 힘을 쓸 수밖에 없지요. 그만큼 힘의 제약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 화천독망질을 부리는 진법이나 침입자를 감지하는 진법 따위가 더 있습니다. 조문도는 그 중에 세뇌대법이 담긴 진법을 되살린 것입니다.”

“연신기 수준으로 떨어진 수사들의 처지론 저항하기 어려웠겠군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조문도는 제일 먼저 저를 제압하여 제가 가진 미혼단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 미혼단의 기운을 궁의 본전에 풀어두고 다른 수사들을 미혹시켰습니다.”

“으음. 그 말은 진법만으로는 수사들을 제압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지요. 조문도 역시 연신기 수준으로 능력이 떨어진 상태라서 진법의 힘을 빌리더라도 수십 명에 이르는 수사들을 모두 제압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저를 먼저 제압한 것이지요.”

“알겠습니다. 일이 그리 된 것이군요. 그럼 지금 조문도는……"

“진법을 지키고 앉아 있지요. 진법을 벗어나면 잡혀 있는 다른 수사들이 모두 풀려나고 말 테니까요.”

“그래서 초 수사가 지금껏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군요?”

“네,부끄럽지만 그렇게 된것입니다.”

초여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눈동자를 돌려 장우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몸에서 미혼단의 기운이 다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이 다하면 조문도가 심어둔 술법이 폭주하여 자신의 정신을 망가뜨릴 것임도 알고 있었다.

“장우 수사께서 염화궁의 모든 것을 취하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그 뿐입니다.”

초여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했다.

“제가 윤회에 들기 전에 조문도를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해 드리지요.”

초여정의 말을 들은 장우는 그렇게 대답하고 곧바로 초여정의 몸에서 잔결독공의 독기를 회수했다.

그러자 그 즉시 조문도가 심어둔 술법이 폭주하여 초여정의 목숨을 앗아갔다.

‘서둘러 움직여야겠군. 조문도가 다른 수사를 모두 죽이고 진법에서 벗어나게 되면 일이 복잡해 질 테니까.’ - 네, 어서 가요. 가서 장우님의 염화궁을 탐한 조문도에게 뜨거운 대가를 치러줘요. 어서요!

몽이가 신이 나서 장우의 움직임을 재촉했다.

< 초여정 (草餘퉈)을 만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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