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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지리(漁父之利)란 이런것이다 >
‘역시! 이렇게 하면 다른 화천독망질의 노림에서 벗어날 수 있군.’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한 건데 쓸모가 있었네요.
‘그래. 덕분에 이제부터 살 떨리는 기다림이 남았지. 여기서 저 암컷에게 들키는 날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테니까.’
헤에, 괜히 엄살을 부리고 그러세요. 장우 님은 어떻게든 수를 낼 거예요. 뭐, 그럴 일이 없는 게 더 좋은 거긴 하겠지만요.
‘일단 조용히 쉬면서 때를 기다려 보자.’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용암 호수의 바닥으로 파고들어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 장우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암컷 화천독망질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전 수컷이 있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수컷이 하는 그대로 주변의 화기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암컷은 고작 수십 장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장우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장우가 암컷이 들어 있는 철롱유의 창을 연화시키는 과정에 모종의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다.
봉인된 암컷은 철롱유의 본명법보인 창에 몸이 꿰뚫린 상태였는데, 장우가 그것을 제거하고 암컷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화기를 주입해 주었다.
물론 그 화기가 단순한 화기는 아니어서 그 안에 잔결독공의 독기를 슬그머니 섞었다.
암컷 화천독망질은 거의 죽기 직전이라 그런 화기라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고, 그대로 화기를 받아들이다보니 암컷이 잔결독공의 독기에 중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독기는 장우가 화천독망질을 잡아먹으며 성장시킨 덕분에 암컷에게 해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몸을 회복하는데 보약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장우는 자신의 기운을 화천독망질 암컷의 기운과 동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자신의 잔결독공 독기에 중독된 대상을 의념으로 장악하는 수법을 만들어낸 장우였다.
장우는 그 수법을 활용하여 암컷이 자신을 감지할 때마다 그것을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장우를 암컷 자신의 기운으로 여기게 유도한 것이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우는 이렇게 암컷 화천독망질 가까운 곳까지 오기 위해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암컷의 감각을 속이며 조금씩 접근해야 했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다른 화천독망질들이 나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 모두들 여기 있는 암컷의 기운에만 집중할 테니까.’
그냥 눈이 벌겋게 뒤집어 졌다는 거잖아요. 어떻게든 저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싶어서.
‘솔직히 나도 이 정도로 난리가 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용암 호수 전체가 들끓고 있는 거 같아.’
원래 용암 호수라서 끓고 있었잖아요.
‘그거 전혀 안 웃기다.’
쳇!
‘음, 화신기 급의 수컷 화천독망질들도 죽어 나가기 시작했네.’
몽이와 대화를 나누며 용암 호수의 상황을 살피던 장우가 새로운 사태를 감지하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영체기 이하의 화천독망질이 주로 죽었는데, 이제는 화신기 급의 화천독망질까지 죽기 시작한 것이다.
열 몇 마리 남을 때까지 싸움이 안 끝날 거라면서요?
어차피 예상된 일이 아니었느냔 듯이 몽이가 물었다.
이전 철롱유와 갈포중을 통해서 들었던 내용에 따르면 암컷 화천독망질이 십여 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고 했었다.
몽이도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하는 말이었다.
‘그 때와는 상황이 달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장우가 말했다.
- 상황이 달라요? 뭐가요?
몽이는 장우가 말한 변수를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때는 암컷이 경지가 높고, 수컷들이 경지가 낮았지. 그래서 암컷 하나가 십여 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했고.’
- 그런데요?
‘이번에는 여기도 암컷과 비슷한 경지의 수컷이 있잖아. 그러면 굳이 여러 마리의 수컷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거지.’
- 어? 그럼 수컷 하나만 남고 다죽는 거예요?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장우는 그렇게 대답했고, 말은 씨가 되어 결실까지 맺고 말았다.
자그마치 200일 동안 이어진 수컷들의 싸움이 끝났을 때, 용암 호수의 바닥까지 내려온 수컷은 단 한 마리뿐이었다.
그 나머지는 대부분 죽거나 심각한 부상으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암컷을 찾아온 수컷은 거망(巨?)이었다.
그로부터 암컷 화천독망질과 거망의 짝짓기가 꼬박 30일 동안 이어졌다.
서로 몸을 꼬아 엮은 상태로 호수 바닥을 무시로 뒹구는 두 마리의 화천독망질 때문에 장우는 때때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몸을 파묻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장우는 화천독망질의 짝짓기가 끝났음을 알아차렸다.
요동치던 기운이 가라앉고 서로 엉켰던 두 마리의 몸이 풀리며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 이제 끝난 모양이네요. 정말 징그러웠어요!
몽이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가중요하지.’
하지만 장우는 그런 몽이와 장난 칠 여유가 없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 그 일이 벌어져야 했다.
키에에에에에에! 콰지직!
쿠롸롸롸롸롸! 쿠롸롸롸!
‘그래! 그거지!’
그리고 장우가 바라던 대로 일이 진행되자 장우는 내심 환호성을 올렸다.
암컷 화천독망질이 수컷의 목을 물어뜯은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열두 수사들과 전투를 벌여 큰 부상을 입었던 암컷.
봉인이 풀린 후에 호수 바닥에서 회복을 했다곤 하지만 몸이 정상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상태로 30일 동안 짝짓기를 했으니 당연히 몸을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화천독망질 수컷은 짝짓기가 끝나면 본능에 휩싸였던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암컷은 짝짓기가 끝나도 쉽게 본능을 뿌리치지 못하지. 그래서 영양분 보충을 위한 사냥을 하게 되는 거야. 저건 그냥 본능일 뿐이야.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장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두 마리 화천독망질의 싸움을 지켜봤다.
입령기 수준의 괴수 두 마리가 벌이는 육탄전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그런 중에 그나마 상태가 좋은 수컷은 암컷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새끼를 품은 암컷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본능과 이성 모두가 그걸 바라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물의 본성으로도 암컷을 공격할 수가 없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자신의 새끼를 품은 암컷을 죽일 수가 없다.
그저 어떻게든 몸을 빼서 도망을 가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마리 화천독망질의 몸은 이리저리 꼬이며 복잡하게 엮이고 있었다.
콰득! 콰득! 쭈우우우웁!
암컷은 연이어 수컷의 몸을 물어뜯고, 때로 그 피를 빨아 먹었다.
수컷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저러다가 정말로 수컷이 죽을 수도 있겠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음, 설마 거망의 부성애가 저렇게 클 줄은 몰랐지. 하지만 그래봐야 수도계의 괴수일 뿐이지. 그것도 입령기가 되도록 살아남은.’
그게 뭐가 어쨌다고요?
‘저 정도면 수도계 물을 먹을 만큼 먹었다는 말이다. 저 봐라, 결국 수컷도 끝까지 참지는 못하잖아.’
어라라? 정말 그러네요?
쿠롸롸롸롸! 콰직! 콰드드득!
키에에에에에! 키이이이이!
장우의 말처럼 참다못한 거망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거망 역시 암컷의 몸을 물어뜯고 피를 빨았다.
‘좋아! 잘 한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장우의 환호성이 소리 없이 터져 나왔다.
* * *
키리리리리!
“저항하지 마라. 너도 알겠지만 이제 끝났다.”
!!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래, 그건 나도 안다. 하지 만 곧 죽겠지 .”
!! 역천자, 네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해 줄 이유가 있나? 너를 죽여 얻을 것이 있는데?”
!! 역천자! 네 말이 맞다.
“그래, 그러니 그냥 포기해라. 먹고 먹히는 것이야 언제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 네가 오래 살아나 조금 똑똑해졌다고 그런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지.”
!! 상황이 이러하니 아니라 할 수 없군.
“그래. 그만 쉬어라.”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암컷 화천독망질의 마지막 숨을 끊으려 했다.
!! 잠깐!
“뭐냐?”
!! 알(卵) 주머 니는……?
“네가 품은 알이라고 특별하지는 않지. 그렇다면 굳이 해칠 이유가 없다.”
장우는 암컷이 바라는 바를 짐작하고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화천독망질의 알은 어떤 어미가 낳았든 비슷했다.
조금 더 튼튼하다거나 잠재력이 높다고 해도 장우가 특별히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장우가 화천독망질을 대규모로 사육할 것이 아니라면.
!! 부탁한다.
장우의 대답에 마지막 긴장이 풀렸는지 암컷 화천독망질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머리를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장우는 그렇게 기력을 잃은 암컷 화천독망질의 숨을 거두고 그 몸통을 챙겼다.
암컷의 사체는 장우가 앞서 의념공간에 수습해 둔 수컷의 옆자리에 놓였다.
그 과정에서 장우는 암컷의 꼬리 쪽에 달려 있던 알주머니를 따로 떼어 호수의 바닥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용암 호수의 화기를 흡수한 알들이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것들 중에서 거망처럼 크게 자라는 개체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는 장우, 그런데 그의 눈앞에 몽이가 나타났다.
- 잠시만요. 저기 보세요. 뭔가 있어요.
몽이는 장우가 내려놓은 알주머니를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장우는 자신이 놓친 것이 있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화천독망질의 알주머니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 념을 펼쳐 꼼꼼하게 살핀 후, 수천 개의 알 중에서 유독 색과 문양이 다른 알 하나를 찾아냈다.
‘이게 뭘까?’
알을 노려보는 장우의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다른 알들은 그 안에 실뱀장어 같이 생긴 화천독망질의 새끼가 들어 있었다.
너무도 투명하여 몸통을 알아보기 어려운데, 주둥이 부분이 짙은 색을 띠고 있어 머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것이 반투명한 알껍질 안에 있으니 육안으로는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장우가 발견한 그 알도 겉모습은 반투명한 껍질 때문에 다른 것과 구별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의념으로 그 속을 살펴보면 투명한 껍질 안쪽에 은색과 금색의 껍질 두 겹이 더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 은색과 금색의 껍질에는 신묘하기 짝이 없는 문양들이 있는데 모두가 알의 안쪽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은색 껍질, 금색 껍질인데, 그 안쪽 면에 법술 문양이 양각으로 도드라져 있는 것이다.
‘이런 걸 숨겼다고? 화천독망질 따위의 미물이?’
- 와, 그래도 입령기 수준의 괴수인데 그리 무시하시면 안 되는 거죠.
‘무시하는 게 아니라 불가능하니까 하는 말이지. 이 알에 숨어 있는 문양들은 나조차도 백에 하나 밖에 모를 정도로 대단한 거라고. 그걸 미물에 불과한 화천독망질이 만들었다고? 그건 말이 안되 는거지.’
- 그럼 이 알은 뭔데요?
몽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장우도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근거 없는 추측만 가능할 뿐.
‘상고 영수의 혈통이 우연히 발현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장우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 뿐이었다.
그 이상은 도무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돌연변이, 혹은 격세유전처럼 화천독망질의 혈통에 숨어 있던 어떤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군요?
‘그렇지. 뭐 그것도 일단 깨워봐야 아는 거겠지만.’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설마 여기서 그 알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실 건 아니죠?
‘그럴 수는 없지. 이번 화천독망질들의 싸움으로 용암 호수가 뚫렸다. 제법 많은 수사들이 살아남아 염화궁으로 갔겠지. 고생은 내가 했는데 그 놈들에게 이득을 빼앗길 수는 없다.’
당연하죠!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 알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으니 사흘만 살펴보자꾸나. 내가 익힌 잔결독공으로 이걸 부화시킬 수 있을지 알아보련다.’
잔결독공으로요?
‘보아하니 부화에 화기가 필요한 것 같은데, 잔결독공의 독기도 화기를 가득 품고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게 가능하면 굳이 용암 호수의 화기를 빌릴 이유가 없지.’
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알에서 태어날 영수를 복속시키려고 그러시는 거죠?
‘녀석, 너는 나를 너무 잘 안다. 겸사겸사(兼事兼事)인 거지.’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주먹 크기의 화천독망질 알을 손에 쥐고 의념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 어부지리(漁父之利)란 이런 것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