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87화 (38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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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

용암 호수의 바닥에는 입령기 수준의 화천독망질 수컷이 있었다.

그 수컷의 거처는 용암에도 녹지 않는 뼈들을 쌓아 만든 것인데, 자세히 보면 벌겋게 달아오른 그 뼈들은 모두가 입령기 이상의 화천독망질이 죽어 남긴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뼈들의 주인은 과거 이곳 용암 호수의 주인이었던 화천독망질들이었던 것이다.

화천독망질이 뛰어난 괴수이기에 오랜 세월을 살게 되면 입령기까지도 오르는 경우가 간혹 나오고 입령기에 오른 개체들 중에서 정말 희박한 확률로 성령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곳 용암 호수에서 살아가는 화천독망질은 절대 그 이상으론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명이 다해 죽은 화천독망질의 뼈가 바닥에 쌓이게 되었는데 또 그 위치가 용암 호수에서 가장 화기가 충만한 곳이라 매번 호수의 주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지금도 입령기 수준의 화천독망질 수컷이 그곳에 또아리를 틀고 화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수컷의 감각을 건드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크르르륵!

이미 그 모양이 용에 가깝게 변한 화천독망질이 스르르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이 깔고 앉은 호수 바닥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진법의 기운을 느꼈다.

화천독망질 수컷은 그 진법의 기운을 느끼는 순간 호수에 침입자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침입자들의 위치가 일순간 그 뇌리에 들어찼다.

쿠롸롸롸롸롸롸롸!

화천독망질은 그중에 다섯 명의 침입자가 호수의 절반 이상을 건너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크게 포효를 터트렸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호수의 침입자는 모든 화천독망질이 나서서 처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곳 용암 호수에 사는 모든 화천독망질의 본능에 새겨져 있는 절대 명령이었다.

그런데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는 다섯 침입자를 공격하는 동족이 없다니!

그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침입자가 호수를 절반 이상 건너게 되니 호수 바닥의 진법이 호수의 주인을 깨운 것이 아닌가.

쿠르르르르르르! 스르르륵!

길이가 백여 장에 이르는 화천독망질이 똬리를 풀며 호수면을 향해 사선으로 쏘아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화천독망질이 호수 바닥의 거처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으음? 거망(巨?)이 움직였습니다.

장우가 일행들에게 경고를 던진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거망(巨?)은 장우 일행이 입령기의 화천독망질 수컷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거망이? 그게 정말입니까?

냉제문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장우에 비해서 의념이 약한 다른 네 수사들은 거망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없는 말을 만들어 내어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어차피 오래지 않아서 모두 알게 될 일인데.

장우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 그래서 어디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까?

이 번에는 조문도가 물었다.

그 물음에 장우가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대답했다.

정확하게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거망이 우리를 알아차렸다는 건가요?

초여정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거 큰 일이 아닙니까?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장우 수사 얼마나 여유가 있겠습니까?

냉제문과 소명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빠릅니다. 고작해야 반 시진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장우가 자신들이 타고 있는 화천독망질의 속도와 쫓아오는 대망의 속도를 가늠해 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 전에 호수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한 시진은 있어야 합니다.

조문도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화천독망질을 버리고 밖으로 나간다면 다른 화천독망질까지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래봐야 결국 거망에게 따라잡히지 않겠습니까. 싸움은 불가피합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 봅시다. 이후에 거망과의 싸움을 피하고 곧바로 용암 호수를 건너는 것에만 용을 쓴다면 어찌 방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비록 입령기는 되지 못했지만 입령기 수준의 괴수에게 쉬이 당할 정도는 아니지요.

그러니 거망에게 따라잡히기 직전에 이 세뇌된 화천독망질을 버리고 각자의 재주를 다해서 용암호수를 벗어나는 것으로 합시다.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장우를 뺀 네 명의 수사들이 상황을 논하며 계획을 세웠는데, 그 결론이란 것이 제각기 알아서 살아남자는 것이다.

장우는 그런 결론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장우님, 어쩌실 거예요? 이대로 두고만 보실 거예요?

그 때, 몽이가 다시 나타나 장우에게 물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에이, 왜 그러세요? 철롱유의 창으로 봉인해 둔 암컷 화천독망질이 있잖아요. 그걸 꺼내 놓으면 호수 전체가 난리가 나지 않겠어요?

‘암컷이 지금 발정기인 것을 이용하란 말이냐?’

그 동안 발정기를 참느라고 그 기운이 정점에 올랐으니 대번에 모든 수컷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걸요? 같은 입령기 수준의 수컷 화천독망질이라 하더라도 견딜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지. 본능은 무서운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던지기엔 너무 아까운데? 그리고 내가 그런 손해를 본다고 저들 넷이 나에게 고마워 할 거 같지도 않고.’

그야 그렇지만 상황이 위험하잖아요.

‘쫓아오는 놈은 하난데 도망갈 놈은 다섯이잖아. 확률이 이 할이면 해볼 만한 도박 아닐까?’

네에, 장우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제가 어쩌겠어요? 그나저나 분혼 하나 찾아가는 길이 왜 이리 험난한가 모르겠네요.

‘괜찮을 거야. 지금까지도 결과는 항상 좋았잖아.’

네, 천지 법칙이 장우님을 어여뻐 하는 거 같기는 하죠.

몽이는 걱정이 태산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장우는 나름 여유가 있었다.

정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암컷 화천독망질을 던져주는 수단도 있다.

그러니 다른 수사들에 비해선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다들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것으로하는 것입니까?

장우가 네 수사들의 결정을 확인하듯 물었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일단 호수를 벗어난 후에 다시 모입시다.

- 쉽지 않겠군요. 모두들 조심하세요.

- 나 역시 모두 무탈하기를 바라오.

장우의 말에 네 수사는그렇게 말을 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을확실하게 했다.

장우 역시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아, 정말로 거망이 오고 있소.

장우 수사의 능력이 대단하오. 우리는 이제야 거망이 기척을 느꼈는데.

장우 수사의 의념은 특별한 바가 있네요. 놀라워요.

모두들 준비하시오.

수사들이 장우의 강력한 의념에 감탄하는 중에 조문도가 모두에게 주의를 일깨웠다.

그리고 화천독망질의 옆구리 살을 벌려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이제부터는 알아서들 하시오.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은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소.

조문도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짧은 인사와 함께 제일 먼저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럼 내가 먼저 가겠소.

어엇? 조수사!

이런 조 수사가 먼저 떠나다니, 그럼 화천독망질은…?

괜찮아요. 제 영단의 기운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조 수사가 마지막으로 내린 명에 따라서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갈 거예요.

냉제문과 소명의 걱정을 초여정이 진정시켰다.

그런 중에 장우는 밖으로 나간 조문도를 다른 화천독망질들이 쫓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도 얼마 동안은 경지가 낮은 화천독망질로부터 몸을 감출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오호? 머리를 썼군. 여기는 네 명이 있고, 자신은 혼자이니 거망이 자신을 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였어.’ 그런데 계속해서 조문도가 향하는 방향과 거망의 움직임을 살피던 장우는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자신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화천독망질 밖으로 나서면 다른 화천독망질에게 기척을 들킬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 수사가 재주가 좋군. 밖으로 나가서도 화천독망질들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다니 .

그가 익힌 염화궁의 수련 공법이 도움이 되는 거 아니겠소. 물론 그게 오래도록 가능했으면 지금껏 우리와 함께 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소명 수사의 말이 맞을 거예요. 조 수사도 아주 오래 몸을 숨기고 있지는 못할 거예요.

냉제문과 소명, 초여정이 부러운 듯이 말했다.

우리는 최대한 조 수사의 기척이 드러나길 기다렸다가 거망이 오기 전에 일제히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인데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그 때, 장우가 다른 수사들에게 동시에 화천독망질을 벗어나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 제안에 다른 수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한꺼번에 나간다면 그만큼 화천독망질을 분산시킬 수 있겠지요. 찬성합니다.

나 역시 찬성이오.

저도 찬성하겠어요. 모두에게 유익한 방법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네요.

장우의 제안에 냉제문과 소명, 초여정이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거망이 도착하기 전에 조문도의 은신이 깨어지길 기도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거망을 제외한 화천독망질들의 관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됐소이다! 조 수사를 향해 화천독망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소이다.

거망! 거망은 여전히 이쪽으로 오는 중이오!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만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얼마 후, 드디어 조문도의 술법이 힘을 다했는지 화천독망질들이 조문도가 있는 방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장우 일행이 타고 있는 화천독망질은 그런 흐름을 거스르며 용암 호수의 반대편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예상대로 반대편에 닿기 전에 거망에게 뒤를 잡히고 말았다.

이제 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들 나가십시다!

냉제문이 거리를 가늠해 보다가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소명 역시 그에 동조했다.

옳습니다. 이제 나갑시다. 이 소명이 수를 거꾸로 헤리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나갑시다!

휘익! 휙! 휙!

소명의 고함과 함께 냉제문과 초여정이 몸을 날렸다.

그런데 장우가 몸을 날리다 말고 손을 뻗어 의념을 움직였다.

소명 수사가 꼼짝도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장우와 냉제문, 초여정을 내보내 다른 화천독망질을 유인하고 자신은 그대로 머물러 기척을 감추려 한 것이다.

장우는 소명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순간 그런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오히려 의념을 집중하여 소명을 화천독망질 밖으로 내던졌다.

“으앗! 장우수사!”

흥! 감히 나를 미끼로 쓰려 했으니 이제 도리어 네가 미끼가 되어라!

깜짝 놀라 고함을 지르는 소명에게 장우가 심언을 날려 꾸짖었다.

그렇게 소명까지 화천독망질에서 떨어져 나가고, 장우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머리를 잘 썼네요. 이렇게 되면 거망도 누구를 노릴지 모르게 되는 거잖아요.

몽이가 그런 장우 앞에 나타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섯 수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니 그중에 누구의 뒤를 먼저 쫓을지는 오직 거망의 선택에 달리게 된 것이다.

‘방향을 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가 운이 별로 없는 거 같은데?’

하지만 문제는 거망이 애초에 쫓아오던 화천독망질과 그 안에 있는 침략자를 그대로 쫓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 소명을 쫓아내고 화천독망질에 남은 것이 장우였고.

‘운이 없네.’

장우는 속으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소명의 수작이 그럴 듯해서 자신이 그걸 빼앗았는데 그 선택이 화를 부른 것이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숨겨 뒀던 수를 써야 할 때가 되고 말았다.

장우는 의념공간에서 철롱유의 창으로 만들어진 봉인을 꺼내며 쇠로 된 구의 중앙을 갈랐다.

그러자 갇혀 있던 암컷 화천독망질이 곧바로 용암 호수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우는 철롱유의 창들을 다시 의념 공간으로 갈무리하고 최대한 기척을 감추었다.

쿠롸롸롸롸롸롸롸!

오래 갇혀 있으면서 발정기의 본성이 폭발한 암컷 화천독망질이 엄청난 포효와 함께 동심원의 영기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용암 호수에 있던 모든 수컷 화천독망질이 암컷 화천독망질로 모여들며 만나는 수컷들마다 서로 부딪혀 싸우기 시작했다.

암컷 화천독망질은 한 번의 포효 후에 곧바로 거망이 거처로 삼았던 호수 바닥으로 향했다.

그곳의 화기를 이용해서 몸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장우님,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그 때, 장우는 머리에서 은색의 법진이 사라지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화천독망질의 몸에서 빠져나와 호수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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