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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호수를 건너는 방법 >
키이이이이이 키이이이이!
용암 호수에서 유유자적하던 화천독망질의 행동이 근래에 많이 거칠어졌다.
그것은 몇 달 전부터 용암 호수의 상공에 거대한 진법 하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진법은 지름이 천여 장에 이를 정도로 컸는데, 비행이 불가능한 용암 호수 위에 어떻게 그런 진법이 나타난 것인지 아는 이가 없었다.
그나마 그 진법은 완성된 것이 아닌 모양으로 영기가 응결된 선과 문양, 문자만 선명할 뿐, 아직까지 특별한 효과를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진법이 완성될 것이고 그렇다면 뭔가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것임은 분명했다.
용암 호수의 화천독망질들이 아무리 미물이라도 뭔가 일이 생길 것을 예상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화천독망질은 때때로 용암 호수에서 솟구쳐 그 진법을 물어뜯으려 법석을 피우곤 했다.
하지만 용암 호수에서 일정 높이 이상으로 비행할 수 없다는 제약은 화천독망질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기에 그 도약은 진법에 닿을 수가 없었다.
키이이이이 키에에에에!
그 상태로 몇 달이 흘렀으니 화천독망질의 성격이 포악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중에 용암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은밀한 곳, 과거 장우가 수련동으로 사용하던 그곳에 다섯 수사들이 모여 있었다.
“이제 준비가 끝났습니다. 냉 수사께서 중심만 채워 주시면 됩니다.”
“으음. 소명 수사의 진법 능력은 확실히 탁월한 바가 있습니다. 이 냉 모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괜한 소리 마십시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따지고 보면 설상문의 냉기진법이 우선이지요. 그게 없었다면 제 진법을 어디에 쓴답니까?”
“무슨 말씀입 니까? 이곳에 진법을 만들어 용암 호수 위로 투영시키는 것을 소명 수사가 아니면 또 누가 할 수 있답니까? 그것도 수십 배로 효과를 증폭시키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냉제문과 소명이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며 떠드는 중에 조문도와 장우, 초여정 등은 한 걸음 물러나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냉제문과 소명이 서로 추켜세우는 것이 꼴불견이긴 하지만, 그들 둘이 이번 일을 주도했으니 그 정도는 참아 줘야 할 일이었다.
이번 일에 들어간 자원들이야 다섯 수사들이 분담했지만 설상문의 냉기진법과 소명의 특별한 진법 능력이 핵심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 다들 기다리시니 이제 시작합시다.”
그 때, 소명 수사도 길어지는 인사치레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렇게 말하며 냉제문을 진법 중앙으로 이끌었다.
이에 냉제문도 이전과 달리 긴장하며 정색한 표정으로 소명을 따라서 진법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곳, 소명이 설치한 진법의 중앙에는 원형의 빈 공간이 있었는데, 설상문의 냉기진법이 들어갈 자리였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 완성한 진법이 용암 호수의 상공에서 구현되면 그 효과로 용암 호수에 냉기를 뿌리기 시작할 것이다.
다섯 수사들은 지난 몇 달 동안 준비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호수의 표면 일부가 냉기를 받아서 굳으면 우리가 먼저 달려가야 합니다.”
냉제문이 진법을 설치하기 시작하자 조문도가 곁에 있는 장우와 초여정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눈치만 보고 있는 다른 수사들 역시 쫓아서 달려들 겁니다. 우리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여길 테니까요.”
초여정이 용암 호수에 발이 묶여 있는 다른 수사들의 행동을 예상하며 말했다.
“우리를 노리고 달려들 화천독망질을, 쫓아오는 그 수사들에게로 밀어내는 것이 관건이지요. 조 수사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이에 장우는 조문도가 준비했다는 대책을 떠올리며 확인하듯 물었다.
그가 세운 대책이 통하지 않으면 모두가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획대로만 된다면 우리는 안전하게 호수를 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문도는 여느 때와 같이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다.
“일단 호수를 지나는 것까지는 우리 다섯의 재주를 모아 가능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 후는……."
그럼에도 장우는 여전히 걱정을 버리지 못한 듯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장우 수사, 무에 그리 걱정을 하십니까. 용암 호수 다음에 또 난관이 막아선다면 그 때는 또 나름의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 아닙니까.”
“호호호. 조 수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미 의논이 끝난 일인데 다시 이야기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냉 수사, 소명 수사, 어서 진법을 펼치십시오.”
이에 조문도는 가벼운 핀잔을 주었고 초여정은 장우를 흘겨보며 냉제문과 소명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 그 때, 냉제문이 진법을 완성하는 것이 보였다.
“자! 끝났습니다. 어서 가십시다!”
이에 소명이 수련동 입구 쪽을 손짓하며 둔광과 함께 사라졌고, 냉제문 역시 진법 위에서 모습을 감췄다. 계획대로 용암 호수로 향한 것이다.
“우리도 가요!”
그 모습에 초여정이 조문도와 장우를 재촉하며 사라졌고, 조문도와 장우 역시 거의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그 모두가 사라진 공간에는 설상문의 냉기법칙을 감싼 소명 수사의 고유 진법이 밝은 빛을 내며 영기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 진법을 유지하기 위해서 곳곳에 박혀 있는 영석들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반짝거렸다.
* * *
용암 호수의 진법이 강력한 냉기를 뿜어내자 용암의 표면이 바위로 굳어갔고, 엄청난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수사들 모두가 진법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고 곧바로 용암 호수로 뛰어드는 수사는 없었다.
노회한 수사들일수록 신중한 경향이 많은데, 그 때문에 이리저리 따지고 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조문도와 장우 일행은 거침없이 용암 호수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비행은 물론이고 둔술을 펼치는 것까지 제약이 심한 용암 호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용암 속을 헤엄치거나 지금처럼 호수 위를 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쫓아라!”
“놈들이 용암을 굳히고 호수를 넘으려 하는 거다!”
“진법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 제일 좋은 기회다!”
장우 일행이 달려가는 모습에 절반 정도의 수사들이 급히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뒤에 남은 절반의 수사들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츠즈즈즈즛!
그 때, 호수 위에 떠 있던 진법 문양이 흐릿하게 변했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는 것이 보였다.
진법이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자 남아 있던 스무 명 가량의 수사들 중에 십여 명이 다시 앞서간 수사들을 따라 호수로 뛰어들었다.
이제 용암 호수로 뛰어들지 않은 수사는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그 때, 제일 앞쪽에서 달려가던 장우 일행은 결국 진법의 냉기가 미치는 범위 끝에 이르렀다.
키에에에에! 케에엑!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화천독망질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용암 속에서 뛰쳐나왔다.
그 길이가 이십여 장에 이르는 영체기 수준의 화천독망질이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영체기 수준의 화천독망질이 장우 일행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었다.
“어딜!”
장우가 강력한 의념으로 허공에 솟구친 화천독망질을 그대로 제압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초여정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화천독망질에게 은색의 영단 하나를 내던졌다.
영단은 곧바로 화천독망질의 입으로 날아 들어가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이어서 나선 것은 조문도였다.
조문도는 두 눈을 밝은 홍색으로 빛내며 제압된 화천독망질의 머리로 뛰어올라 퇴화된 눈 사이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조문도의 손에서 홍색의 기운이 나와서 화천독망질의 머리로 흘러갔다.
조문도는 그 상태로 의 념을 집중하여 뭔가 수작을 부렸다.
“효과가 있어요.”
얼마 후 초여정이 기쁨이 담긴 고함을 질렀다.
화천독망질의 머리에 은색의 진법 문양이 떠오른 직후였다.
그 은색의 진법 문양에는 초여정이 던진 영단과 같은 기운이 응결되어 있었다.
조문도가 초여정의 약기운을 빌려서 모종의 술법을 완성한 것이다.
“깨어나라!”
술법이 완성되자 조문도가 묵직한 어조로 화천독망질을 깨웠다.
키이이이이이이!
화천독망질이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서둘러야 하오. 벌써 많은 화천독망질이 몰려들고 있소이다.”
그 때, 장우가 화천독망질을 제압하고 있던 의념을 거둬들이며 조문도를 재촉했다. 그러자 조문도도 긴장한 표정으로 화천독망질을 바라보았다.
키이이이이이!
화천독망질은 조문도의 시선을 받자 곧바로 옆구리 피부를 벌렸다.
원래 그 안에 피막 날개를 숨기고 있는데, 이번에는 날개를 꺼내지 않고 피부만 벌린 것이다.
“들어갑시다!”
그 모습에 조문도가 훌쩍 몸을 날려 벌어진 피부 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장우를 비롯한 다른 수사들 역시 조문도의 곁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키이이이이이이!
화천독망질은 다섯 수사가 피부 안으로 들어오자 곧바로 갈라진 피부를 복원하고는 용암 밑으로 들어갔다.
키이이이! 케에에에! 케에엑!
키에엑! 케이이키이! 키케에엑!
그 순간 장우 일행을 향해 몰려들던 화천독망질이 목표를 잃고 허둥거리며 제 자리에서 맴을 돌았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 용암 호수에 올라선 수사들은 서른이 넘게 남아 있었다.
그러니 혼란은 곧바로 가라앉았고 화천독망질들은 새로운 공격 대상을 향해 달려들게 되었다.
초 수사의 미혼 영단은 참으로 신묘합니다.
조문도가 화천독망질을 제어하며 초여정을 칭찬했다.
다섯 수사들 모두 화천독망질의 몸과 하나가 되듯 밀착된 상태로 기운을 감추느라 입을 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심언을 통해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영단만으로 화천독망질의 정신을 제압할 수는 없지요. 조 수사의 공법이 아니면 어찌 이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초여정도 조문도의 얼굴에 금칠을 서슴지 않았다.
앞서는 냉제문과 소명이 그러더니 이번에는 조문도와 초여정이다.
장우의 얼굴이 슬쩍 구겨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우의 입장을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조문도가 장우를 보며 말했다.
장우 수사 역시 공이 작지 않지요. 우리 중에 그 누가 영체기 화천독망질을 그토록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겠습니까.
되었습니다. 일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리 서로의 공을 이야기하다가는 우리 사이의 의가 상할 수도 있습니다.
장우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지만 은근히 서로의 공을 내세우는 모습을 꼬집었다.
그 때, 갑자기 화천독망질이 크게 요동을 치며 꿈틀거려 장우를 비롯한 수사들도 이리저리 휘둘리는 일이 벌어졌다.
허이구!
으음!
이런, 조수사,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뒤쪽에서 큰 싸움이 났는지 용암 호수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화천독망질이 용암의 파도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잘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리 화천독망질의 이목을 끌어주면 우리야 더욱 좋겠지요.
자자, 조 수사. 최대한 화천독망질을 재촉하십시오. 아래쪽 화천독망질들이 떠오르기 전에 호수를 건넙시다.
알겠습니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순조로우니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최대한 기운을 억제하여 들키지 말아야 합니다.
화천독망질 하나를 세뇌시켜 용암 호수를 건너자는 방책은 조문도가 내놓은 것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염화궁의 기본 수련 공법을 얻었는데, 그 내용에 화천독망질을 부리는 수법이 들어 있다고 했다.
다만 그 내용이 온전치 못한 것이라 쓸모가 없었는데 초여정이 대상의 정신을 잠재우는 미혼단을 써 준다면 세뇌로 부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했다.
그렇게 화천독망질의 몸에 숨어 용암 호수를 건너는 계획이 세워진 것이고,혹시 모를 발각을 우려해서 다른 화천독망질들을 혼란스럽게 할 작정으로 다른 수사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장우가 그렇게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데 문득 몽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왜 불안한 걸까요?
‘몽이 너! 그런 불길한 말을!’
< 용암 호수를 건너는 방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