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83화 (383/499)

(383)

< 호가호위(孤假虎威)? 아니, 나는 호랑이 아니라 거용의 위세를 빌린다 >

“크하하하핫! 어떤가 갈 형제, 일이 딱 제대로 되지 않았나.”

“그러게 말이네. 위에 숨어 있던 놈이 거슬리긴 했지만 어쨌거나 일은 계획대로 되었으니 따질 것은 아니지.”

“그렇지, 바로 그거네. 아주 일이 잘 되었어.”

“그게 다 철 형제가 준비한 그 전송 법부 덕분이 아닌가. 그것이 없었다면 어찌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겠나.”

“하하하. 그리 내 얼굴에 금칠을 해 줄 거야 뭐가 있겠나. 우리 둘 다 뜻이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소세야(燒世野)의 한 곳.

사방이 불타는 화산으로 가득한 그곳에 두 명의 수사가 커다란 쇠구슬을 앞에 두고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화천독망질 암컷을 사로잡아 모습을 감춘 화신기 극경의 두 수사였다.

갈 씨라 불린 수사는 흑백 태극문 팔각패를 가지고 있던 수사였고, 철 씨라 불린 수사는 창을 이용해 화천독망질을 가두었던 그 수사였다.

둘 모두 마흔 중반의 영준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미중년이란 말이 어울릴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벌인 일은 절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을 비열한 짓이었다.

함께 화천독망질을 사냥하자고 수사들을 모은 후에, 모두를 배신하고 이렇게 줄행랑을 친 것이 아닌가.

덕분에 남은 이들은 얻는 이득도 없이 화천독망질의 수컷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터였다.

“자, 그럼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염화궁으로 가도록 하지."

“당연히 그래야지. 화천독망질의 암컷을 사로잡은 이유가 그것인데 아무렴. 하지만……"

“하지만이라니? 갈 형제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이야긴가?”

철롱유(鐵弄鍮)는 갈포중(場鍾仲)의 ‘하지 만’이 라는 말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그들 둘 사이에도 완전한 믿음 따위는 없었다.

그저 서로 비슷한 시기에 소세야의 어느 곳에서 염화궁이라는 오래된 유적을 발견하게 되었을 뿐이다.

우연인지 둘은 염화궁으로 들어가는 통로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곳은 둘이 힘을 모아도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에 서로 의논하다가 방법을 찾았는데 그 역시 혼자 이루긴 어려운 방법이었다.

그 때문에 함께 손을 잡고 이번 화천독망질 사냥을 계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염화궁으로 향하기만 하면 되는데 갈포중이 딴 소리를 하니 당연히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리 긴장할 것은 없네. 설마 내가 우리의 약속을 깨고 딴 짓을 하겠는가. 해도 지금은 아니겠지. 안 그런가?”

그렇게 경계하는 철롱유의 모습에 갈포중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었나?”

철롱유가 이야기를 들어는 보겠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자네가 가두고 있는 그 화천독망질이 너무 허약해진 상태라 그것이 걱정이라는 것이지.”

“음? 그거야 염화궁의 그곳에 풀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회복이 될 것이 아닌가. 염화궁은 원래 화기가충만한곳이니.”

철롱유는 갈포중이 괜한 소리로 말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허, 그리 삐딱하게 보지만 말고 진지하게 들어보게. 우리 계획보다 화천독망질의 상태가 나쁜 상태로 잡았다는 것이지. 하물며 철 형제의 창이 지금도 화천독망질의 몸에 꽂혀 있지 않은가.”

“으음? 그건 그렇군.”

갈포중의 말대로 철롱유는 자신의 창이 화천독망질의 몸통을 꿰고 있는 그대로 철구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계획에는 없던 일이기도 했다.

상황이 급박하여 창을 뽑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가두어버린 것이 철롱유 자신이니 갈포중에게 대거리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어쩔 수 없이 그 화천독망질을 어떻게든 약간은 회복을 시켜야 할 터인데 말일세.”

“하지만 이미 한 번 가두어버린 상황에서 다시 꺼낼 수 없다는 것은 갈 형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야 나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화천독망질의 암컷이 덜컥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찌 하겠나.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텐데?”

“설마 그렇께까지 되기야 하겠나. 그래도 입령기 수준의 괴수인데 염화궁에 닿아서 풀어 놓을 때까지야 버티겠지.”

“그걸 어찌 장담하나?”

“이보게 갈 형제. 솔직히 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화천독망질을 금제한 창을 풀어줄 수 없음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렇게 풀어주면 다시 봉인을 해야 할 텐데, 그 때는 분명 갈 형제가 준비한 수를 써야겠지? 내 창은 다시 쓰기 어려우니 말이야.”

“그야??????"

“갈 형제라면 그리 하겠나?”

갈포중이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철롱유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갈포중은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혀를 차고 말았다.

“쯧, 철 형제가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럼 더는 할 이야기가 없을 테니 이만 염화궁으로 출발하지. 촌각이라도 아껴야 할 상황이니.”

갈포중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철롱유는 그런 갈포중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천독망질이 들어 있는 철구를 살피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그 사이 갈포중은 허리춤에 걸려 있던 엽전을 끌러 내어 허공에 던졌는데 그것이 크기를 늘려 사람이 올라타고 남을 정도가 되었다.

그것이 갈포중의 비행 법보였던 것이다.

“가세.”

갈포중은 짧게 권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엽전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철롱유 역시 그 뒤를 따라서 엽전 위에 올랐는데 그는 화천독망질이 들어 있는 철구를 엽전의 가운데 구멍에 걸쳐 놓고 그 옆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그런 중에도 철롱유의 의념은 화천독망질이 들어 있는 철구와 연결되어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철롱유는 자신의 본명 법보로 화천독망질을 잡고 있는 한, 갈포중이 어떤 수작을 부리 더라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화천독망질을 감싼 철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출발하겠네.”

철롱유가 자리를 잡자 갈포중이 다시 짧게 통보를 하고는 비행 법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릉!

바로 머리 위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철롱유와 갈포중은 그것이 입령기 이상의 존재감임을 알아차리고 바짝 몸을 엎드렸다.

그런 존재가 머리 위에 나타난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비를 바라는 것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지지직!

“커억!”

그런데 다음 순간 엎드려 있던 철롱유의 머리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강력한 독기를 품은 녹색의 구체가 엽전 비행 법보에 반쯤 박혀 있었다.

“이, 이 무슨?!”

머리를 살짝 들어 그 모습을 살핀 갈포중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그 때, 철롱유의 머리를 박살낸 구체가 두둥실 떠올라서 갈포중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린 갈포중의 눈에 신발코가 나타난 것도 그 때였다.

누군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 누구…냐?”

갈포중이 잠시 상대를 가늠해보다가 그가 자신과 같은 화신기 후기의 극에 이른 존재임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물었다.

콰과광!

“커어억!”

하지만 돌아온 것은 독기 가득한 녹색 구체가 갈포중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었다.

그나마 갈포중은 미리 약간의 대비를 했기에 그 공격에 머리가 박살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갈포중은 성급하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전히 머리 위에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지가 놈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갈포중은 지금 자신을 공격한 수사는 그 높은 경지의 어르신이 부리는 수하거나 혹은 제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 어찌 이러……"

갈포중이 살짝 고개를 비틀어 장우의 얼굴을 확인하려 애쓰며 이유를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장우가 그의 등을 밟아 눌렀다.

그리고 동시에 갈포중의 몸에 더 많은 잔결독공의 독기를 흘려 넣었다.

갈포중은 장우 위에 있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반항도 하지 못하고 장우의 독기를 그대로 받아야 했다.

“자, 이제 대충 정리가 된 건가? 아니군, 저 놈이 아직 살아 있군.”

장우가 독기로 갈포중을 중독시킨 후 상황 정리가 끝났나 하다가 문득 죽어 넘어진 철롱유 쪽을 바라봤다.

거기엔 마침 철롱유의 몸에서 빠져나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던 철롱유의 영체가 있었다.

철롱유는 장우의 공격에 몸을 잃었지만 영체는 무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체만 빼서 무작정 어디로 달아날 수도 없었다.

철롱유 역시 갈포중과 마찬가지로 화신기 극의 경지에 있는 장우가 아니라 위쪽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고계 수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할까 망설이는 중에 다시 장우의 이목에 잡히고 만 상황이었다.

장우가 손을 뻗어 철롱유의 영체를 끌어당겼다.

철롱유의 영체는 이미 몸을 잃은 상태라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장우는 철롱유의 영체를 손아귀에 잡고 잠시 고민하다가 호리병 하나를 꺼내 그곳에 영체를 밀어 넣었다.

철롱유의 영체는 머뭇거리며 저항하려다가 체념한 표정으로 호리병에 들어가고 말았다.

갈포중은 그 모습을 지켜모며 얼굴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런 중에 장우는 엽전 비행 법보의 중앙에 놓여 있는 철구를 손으로 짚어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철롱유의 영기와 의념이 가득 담겨 있어 장우가 다룰 수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장우는 강력한 의념과 영기를 이용해서 철구를 의념 공간으로 던져 넣을 수 있었다.

수슉!

“허엇 화, 화천독망질이!”

철구가 어디론가 사라지자 갈포중의 낯빛이 새카맣게 변했다.

그는 엎어져 등이 밟힌 상태에서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철구를 찾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묻겠다.”

“무, 무엇을 말이냐?”

“화천독망질 사냥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해라.”

“그, 그것은……"

“숨기는 것이 있는지는 호리병에 넣어 놓은 다른 놈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그러니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하면 된다.”

“모, 모든것을 털어 놓으면……"

“영혼이 소멸되는 일만은 피할 수 있겠지.”

장우가 갈포중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갈포중은 그런 장우의 말에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군. 그나마 영혼이라도 온전하려면 협조를 하라는 거고.”

갈포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과 철롱유가 소세야에서 발견한 염화궁 유적과 그 유적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지키고 있는 화천독망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통로 전체를 막고 있는 화천독망질 수컷들이 워낙 많아서 염화궁 유적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런 수컷들을 발정기로 이끌어 서로 싸우게 만들고, 이후에는 암컷 화천독망질로 남은 수컷을 유인하려는 계획.

그렇게 통로를 개척하여 염화궁으로 들어가려 다른 수사들을 끌어들였다는 이야기까지.

그동안의 일들이 차근차근 갈포중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염화궁이라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장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 와, 거기 화천독망질이 그렇게 많다고요? 그럼 아까 거기에 있던 서른 마리 정도는 아까울 것도 없겠는데요?

몽이가 갈포중의 말에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러게, 나중에 찾아가서 화천독망질과 그 놈들의 싸움에서 뭔가 얻어볼까 하고 조용히 피해 왔는데 염화궁으로 가게 되면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겠군.’

- 지금, 그게 중요해요?

‘하하. 그건 아니지. 이미 입령기 수준의 화천독망질 암컷이 내 손에 들어왔고, 거기에 수백 마리의 화천독망질 수컷들이 있다는데, 고작 서른 마리 따위야 뭐.’

- 그렇죠? 이제 염화궁이란 곳에 가서 화천독망질들의 독기를 뽑아 잔결독공을 수련하다보면 입령기가 아니라 성령기까지도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요?

‘그러니 내가 이리 기뻐하는 거지. 뭐 이것들은 여기서 정리를 해야겠지만.’

장우는 그렇게 몽이와의 대화를 일단락하고 다시 갈포중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혹시 염화궁에 대해서 아는 이들이 더 있을까?”

장우가 물었다.

< 호가호위(孤假虎威)? 아니, 나는 호랑이 아니라 거용의 위세를 빌린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