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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족을 토벌하다 >
"누구신가?"
족장이 수련실의 한쪽 허공을 보며 물었다.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그 눈빛은 사납기 짝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 나타나 해독을 해 준다고 하는 것을 순수한 의도로 보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객이라 하면 안 믿을 테지?"
그러자 장우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 냈다.
"청하지 않은 이가 왔으니 어찌 길하다 할 수 있을까. 불길하다 불길해."
족장이 장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허락도 없이 자신의 수련동 안으로 들어온 장우가 아닌가.
분명히 이번 일과 관계가 있을 것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안개에 독을 푼 것이 너냐?"
"설마 그런 짓을 하고 태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겠지?"
족장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다른 두 화신기 수사가 의념의 압박에서 벗어나 재빨리 수련실의 입구를 막아서며 소리쳤다. 장우는 그런 두 어인족 수사의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족장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독을 푼 보람이 있었군. 덕분에 이렇게 쉽게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야."
"고작해야 영체기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번거롭게 독을 쓴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내 수련동의 금제와 결계를 해체하기 위해서였나?"
족장이 어처구니없는 수작에 당했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으로 장우를 보았다.
"알아차렸다고 해도 이미 늦었지. 일단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이젠 마무리를 해 볼까?"
"마무리라. 역무청의 의뢰를 받은 모양이군."
"의뢰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 동안 몇 번 역무청의 노사들이 다녀갔을 테니 당연한 일인가?"
"말은 바로 해야지. 다녀 간 것이 아니라 찾아왔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지. 오기만 하고 돌아간 적은 없으니까. 너도 또한 그리 될 것이고."
족장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을 더듬어 유리처럼 투명한 작살 두 개를 꺼내 양 손에 나눠 쥐었다.
"나도 쓸데없이 괜한 소리를 하고 있었군. 일단 조지고 봐야 하는 건데."
장우는 그런 족장의 행동에 자신의 방심을 반성하며 곧바로 잔결독공의 독기를 끌어 올려 강력한 의념을 담아냈다.
그러자 의념을 품고 유형화 된 독기가 폭발하듯 실내 전체로 번지며 수련실을 가득 채웠다.
"허엇!"
"독이다!"
이에 입구를 막아섰던 두 화신기 어인족이 깜짝 놀라, 다급하게 영기를 끌어 올리며 족장의 것과 비슷한 법보를 소환해 냈다.
'저 투명한 작살이 물속에 있었다면 알아차리기 힘들었겠어. 저 작살들은 은밀하게 상대를 해치려는 악랄한 의도가 담긴 것이 분명하겠군.'
장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심 이곳이 수중이 아님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곳은 물속이 아니어서 투명 작살은 제 위력을 보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보를 창처럼 쓸 수는 있을 테지만 수중처럼 요긴하게 쓰진 못하리라.
그리고 저들은 그 전에 수련실에 가득한 독기를 이겨내야 할 것이다.
이미 무호의 안개보다 짙게 펼쳐진 독무(毒霧)에 족장을 비롯한 세 수사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중이었다.
게다가 쓰러져 있던 여덟 명의 어인족 수사들은 벌써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이 놈! 죽여주마!"
족장이 고함을 질렀다.
죽어가는 어인족 수사들의 몸에서 빠져 나온 영체마저 독기를 피하지 못하고 중독되어 허우적 거리는 모습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의뢰의 내용이 너희 모두를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너희들은 죽어도 억울해 할 자격이 없는 놈들이다!"
장우가 분노한 족장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비웃었다.
어인족 수사들이 무호를 차지한 이후로 저지른 악행은 차고 넘쳤다.
장우는 그들의 만행을 이미 충분히 확인한 후였다.
장우가 무호의 안개에 독기를 풀었지만 모두를 중독시킨 것은 아니었다.
장우는 풀어 놓은 잔결독공의 독기를 완벽하게 의념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독기를 품은 안개를 장악하고 있으니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무호의 수사들을 모두 죽이고, 범인들까지 노예로 부렸으니 이제 그 악업에 대한 벌을 받는다고 여기면 될 일. 지금 너희의 죽음을 어찌 억울하다 한단 말이냐?"
장우는 자신이 지켜본 무호의 상황을 말하며 어인족 족장에게 호통을 쳤다.
그리고 더욱 강하게 잔결독공의 독기를 펼쳐냈다.
"크으윽! 이게 무슨? 흐읍!"
그러자 독기를 견디지 못한 화신기 수사 하나가 급하게 금혈단을 꺼내 삼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금혈단을 입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굳은 듯이 몸을 멈추며 깜짝 놀랐다.
장우가 의념으로 그 수사의 몸을 멈춰 세운 것이다.
이어서 곁에 있던 다른 수사도 몸이 마비된 듯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다니!"
"으으윽! 이이이익!"
두 수사는 순식간에 장우의 의념에 몸이 제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고명한 수법이다. 몸에 투입시킨 독기를 직접 제어하는구나. 독기가 단순한 독기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념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고 있음이야."
어인족 족장도 자신의 몸에 들어온 독기가 일으키는 작용을 알아차리고 놀란 표정으로 장우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알아차렸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네 말대로 내가 심은 독기는 내 의념을 전달한다. 너는 독기는 물론이고 내 의념까지 막아야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지.
"네 놈의 의념이 매우 강력하구나. 그래서……"
"옳다. 일단 독기가 파고들기만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저 의념으로만 억누르는 것보다 몇 배는 효과적인 방법이지."
장우가 그렇게 말을 하며 의념을 끌어 올리자 세 명의 어인족 수사가 모두 수련실의 중앙으로 날아와 모였다.
족장이 잠시 저항을 하는 듯 심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일 뿐, 결국은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으로 제압이 끝나고 말았다.
"굳이 이럴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이냐? 역무청 의뢰의 보상은 금혈단과 그 제조 방법이 아니냐. 그것이라면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특히 금혈단의 제조 비법은 세 개의 의뢰를 완수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되어 있지 않으냐. 이제 우리를 놓아주면 그 제조 비법을 내어 주겠다."
"아이들의 말이 옳다. 너는 다른 두 개의 의뢰를 수행할 필요 없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게 되니 서로에게 좋은 것이 아니냐."
제압된 세 수사는 드디어 위기를 느낀 듯이 번갈아가며 장우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금혈단과 그 영단의 제조 비법까지 내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해 본 일이다. 너희가 금혈단과 금혈단의 제조 비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장우가 그런 세 수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지. 그리 간단한 이치를 생각지 않았을 리가 없지."
"자자, 그러니 이제 우리를풀어주고좋게 이야기를 합시다."
"일이 잘 풀리면 서로에게 좋은 것이 아니겠나!"
장우의 말에 세 어인족 수사가 다행이라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기운차게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장우의 말과 행동은 그들의 바람과 달랐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너희를 죽이고 너희가 가진 것을 취하면 그만인데 굳이 거래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커억!"
"우와아악! 엌!"
장우는 단숨에 족장을 제외한 두 명의 화신기 수사를 죽였다.
그들의 몸 안에 있던 독기를 폭주시켜 내부를 녹여버린 것이다.
게다가 독기로 신체 내부에 금제를 형성해서 영체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몸이 녹으면서 영체까지 함께 녹아 버렸다. 족장은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눈이 빠질 듯이 놀랐다.
"손속이 단호하구나! 어찌 이리 가차(假借)없고 무비(無悲)하단 말인가!"
어인족 족장은 거침없는 장우의 행동에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결국 자신이 가진 마지막 패를 꺼내 보였다.
"나를 죽이면 절대로 금혈단의 제조 비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장우가 족장의 말에 잠시 그를 노려봤다.
"네가 금혈단의 제조 비법을 따로 보관하지 않고 네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고 말하려는 것이냐?"
장우가 물었다.
"추혼의 술법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머릿속에 기억한 것으로 어찌 안심할 수 있겠느냐."
"다른 방법으로 숨겼다는 말이구나?"
"나를 죽이고서는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장우의 물음에 족장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장우에게 득이 될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보였다.
장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렇다면 어쩔수 없겠지."
"뭐냐? 어쩌려는 것이냐?"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장우의 말에 어인족 족장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장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금혈단의 제조 비법이 너에게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굳이 너와 실랑이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이냐? 다만, 너와 네 일족의 만행이 극악하니 너의 영혼을 소멸시켜 그 죄를 받게 하겠다."
"뭐? 뭐라?"
"다른 놈들은 죽음으로 그 죗값을 치렀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거기에 더하여 너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너희 일족의 죗값을 치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너는 특별히 영혼을소멸시켜 부족한 값을 치르게 하겠다."
"자, 잠깐! 사사롭게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은 네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너의 수련이 사마(邪魔)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면 너는 절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인족 족장은 자신의 영혼을 소멸시킨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주워섬겼다.
"흥!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이는 너와 너의 일족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이를테면 천지 법칙을 대신하여 벌을 내리는 것이니 내게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우는 족장을 비웃으며 의념을 움직여 족장의 몸 안에서 독기를 들끓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아악!"
족장은 독기에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실상 화신기 후기에 이른 족장이 그토록 참담한 비명을 지르는 것은 독기가 몸을 녹이는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몸과 함께 영체와 영혼까지 녹아내리는데, 그 중에 영혼이 소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컸던 것이다.
"주겠다. 주겠다! 뭐든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 그러니 제발 영혼의 소멸만은……"
결국 어인족 족장은 장우에게 자비를 구걸하며 빌기 시작했다.
장우는 그런 족장의 말에 독기의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금혈단이야 너희 공간낭에 들었을 것이고, 그 제조 비법은?"
장우가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영혼을 놓아 주겠다고 약속…… 유, 윤회에 들게……"
"좋다. 그리 해 주겠다."
장우는 족장이 안간힘을 내며 내미는 조건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족장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 영혼을 거, 걸고 하는 말에는 힘이 담겨……"
"나도 알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단순치 않으니 천지 법칙이 지켜보는 힘도 평소와 다를 것이고, 당연히 지금 내가 한 말에도 제약이 걸렸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으니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장우는 소매를 펄럭여 귀찮다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족장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의념을 집중하여 머릿속에서 엄지손톱 크기의 진주 하나를 만들어 냈다.
"금혈단의 제조 비법이다."
족장이 그렇게 말하며 진주를 장우에게 밀어 보내자, 장우가 의념으로 그것을 살피고는 금혈단의 제조 비법을 읽어냈다.
"오호라, 기억 속에서 금혈단의 제조 비법만 완전하게 따로 빼내어 의념을뭉쳐 담아두었던 거로군? 네가죽으면 그 순간, 이 의념이 사라지게 되니 제조 비법도 사라지도록?"
장우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기억 저장 방법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쓸모가 많을 거 같은 방법 이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냉정하게 고치고는 족장의 몸에서 독기를 더욱 강하게 증폭시켰다.
"크아아아악!"
"약속대로 네 영혼을 소멸시키진 않겠다. 하지만 영혼의 태반을 녹여 그 영력(靈方)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이후 수많은 윤회를 거치며 영혼을 성장시켜야 다시 수사가 될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악!"
장우의 말에 족장은 비명을 지르며 억울한 눈빛을 보였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줌의 독수로 녹아내리고 말았다.
장우는 의념을 끌어 올려, 쪼그라든 족장의 영혼이 천지 법칙의 흐름으로 끌려가는 것을 확인했다.
- 와, 금혈단에 금혈단의 제조 비법까지. 운이 좋았네요?
일이 마무리되자 몽이가 호들갑을 떨며 모습을 드러냈다.
< 어인족을 토벌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