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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혈단 의뢰를 시작하다 >
역무청을 통해서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보상을 걸고 필요한 것을 찾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필요한 것을 보상으로 주는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다.
장우는 먼저 자신의 경지를 화신기 완경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수련 자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은 잔결독공의 수련에 필요한 독물(毒物)들.
면밀한 상태 분석을 통해서 장우는 화신기 완경의 경지까지는 지금의 역법 반서복원대법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니 우선 화신기의 극에 이른 후에 역법반서복원대법의 경지를 올리는 것이 맞는 순서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역무청을 통해서 잔결독공의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모으는데 걸린 시간이 200년.
그 수련 자원을 이용하여 화신기 완경의 경지까지 오르는데 또 300년이 걸렸다.
다른 수사들이 장우님을 보면 미쳤다고 할 거예요. 벌써 화신기의 극이라니, 수련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잔결독공이 원래 그런 공법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제는 정말 한계다. 자칫하면 한 줌의 독수로 녹아내릴지도 몰라.'
해파리 공법의 재생력과 선천지기 보충으로는 이제 버티기 어렵다는 말이잖아요.
'그래, 그것도 예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아. 급하게 역법반서복원대법……'
네,해파리 공법이요.
몽이가 장우의 말을 끊으며 해파리 공법을 강조했다.
근래에 몽이는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이름이 길다고, 줄여서 해파리 공법으로 부르기를 주장하는 중이었다.
'그래, 그 대법의 수련에 필요한 진혈을 급하게 구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앞뒤를 재고 있을 여유조차 없어.'
그럼 200년 전에 올라온 그 금혈단 의뢰를 수행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200년 동안 아직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그 악성 의뢰를 내 스스로 하겠다고 나시야 한다는 거지. 쯧.'
장우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차고 말았다.
에이, 왜 그러세요. 원래 화신기 완경이 되면 그 의뢰를 할까 고민해 본다고 했던 거잖아요.
몽이는 장우의 그런 모습에 괜히 엄살을 부린다는 듯이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몽이의 말처럼, 장우는 이 의뢰가 역무청에 접수된 이후로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었다.
'금혈단(金血丹)은 그 자체로 역법반서… 아니 해파리 공법 수련에 도움이 되는 진혈을 포함하고 있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에서 특별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거지. 내 영체에 뭉쳐 있는 녹색 열매를 녹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금혈단이니까.'
아직 장우는 그 녹색 과일이 구룡승룡단(九龍乘龍丹)이란 이름을 가진 선계의 보물임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녹색 과일이 역법반서복원대법에 영향을 주어서 선천지기를 회복시키는 효과를 만들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뢰 보상으로 나온 금혈단의 효능을 살펴보던 중에 영체에 응결된 녹색 과일을 자극하여 녹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 효능은 오직 장우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것이라 녹색 과일을 가지지 못한 다른 이들에겐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금혈단 자체가 진귀한 진혈을 모아서 제작한 영단이라 장복하면 화신기는 물론이고 입령기 경지의 수련에도 도움이 되는지라 노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보물 수백 알과 제조 비법까지 걸려 있는 것이니 의뢰 내용이 만만찮은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어디를 상대하실 생각이세요? 설마 세 가지 의뢰를 모두 수행해서 제조 비법을 얻겠다는 생각은 아니시죠?
몽이가 혹시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금혈단 의뢰는 세 개의 세력과 연관이 있었고, 그 세력들을 멸문시키는 것이 의뢰의 내용이었다.
의뢰는, 셋 중에 어디라도 상관없이 한 세력의 멸문에 지대한 공적을 세우면 하나의 의뢰를 완수한 것으로 보고 보상으로 금혈단 수백 개가 들어 있는 단지 하나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었다.
당연히 세 곳을 모두 멸문시키면 금혈단 보상도 세 번에 걸쳐서 받아낼 수 있었는데, 혼자 그 세 번의 의뢰를 성공한다면 금혈단에 더해서 제조 비법까지 넘겨주겠다고 했다.
물론 장우는 제조 비법까지 탐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혹시 가능하다면 차후에 도전을 해 볼 문제일 뿐. 당장은 금혈단 한 단지를 얻어내는 것이 목표였다.
'내가 상대하기에 가장 좋은 쪽은 아무래도 무호(霧湖)의 세력이겠지. 그 쪽을 정리하는 걸로 하자.'
- 조심하셔야 해요. 모두 화신기급 수사들이 서너 명씩은 있는 곳이에요. 알려지기로 무호에도 화신기 수사가 셋이나 있다고 했어요.
'그래, 알고 있다.'
- 뭐, 결심을 하신 거 같으니 의뢰를 받고 출발하죠. 하루라도 빨리 금혈단을 얻어야죠.
'음.'
장우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곧바로 역무청을 찾아갔다.
그는 화신기 완경에 이르는 동안 주로 부로성을 근거지로 활동했기에, 이번에도 부로성의 역무청을 찾아가 금혈단 의뢰를 수락했다.
그렇게 의뢰를 수락하고 몇 달 후 장우는 성륜역의 경계와 가까운 곳에 있는 호수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름처럼 항상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곳이었다.
'과거 무호의 수사들이 다른 두 곳의 세력과 결탁해서 약탈을 벌였지. 그 일로 부모와 동생이 죽고 형 하나만 살아남았다.'
- 수사들이 가족을 공격했다고요?
'그래, 신기하게도 부모와 두 아들이 모두 수련을 통해 수사가 된 가족이었지. 꽤나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겠지.'
- 그래서 금혈단 의뢰를 한 사람이 바로 그 때 살아남은 형이란 소리군요?
'맞다. 그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는데 정식으로 의뢰를 수락하니 상세한 정보가 나오더군. 그 정보에 의뢰자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지.'
- 그 형이라는 수사가 굉장히 뛰어난 수사인 모양이죠? 금혈단과 그 제조 비법을 의뢰 대금으로 준비하다니 말이에요.
'아니, 의뢰를 했던 그 큰아들은 100년 전에 죽었다.'
- 죽어요?
'의뢰자는 죽었지만 의뢰는 살아 있는 거지. 왜냐면 보상을 역무청에 미리 공탁해 두었거든. 아울러서 의뢰를 유지할 경비까지 미리 넉넉하게 지불을 해 둔 상태고.'
- 의뢰자가 100년 전에 죽었다니 그건 좀 놀랍네요.
'고작해야 축기기 수사였으니 수명이 다하여 죽었다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
- 그래요?
'원래 그 부모가 화신기 후기의 쌍수수련 수사였다더라. 그리고 그 부부의 연단술이 뛰어나 금혈단 역시 그들 부부의 비전이었던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그 부부를 무호를 비롯한 세 세력이 공격해서 죽였고, 큰아들만 그 화를 피해 살아남아 역무청에 의뢰를 했다는 거군요?
'맞다. 그러니 무호의 수사들은 죽어 마땅하다 할 수 있겠지.'
체, 왜 이렇게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을 하는가 했더니, 결국은 장우님이 악(惡)은 아니란 소리를 하고 싶었던 거군요?
'뭐, 보기에 따라서 나 역시 악(惡)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주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란 걸 말하고 싶은 거지.'
그런데 괜찮을까요? 무호에 화신기 셋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 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있다고 했고요.
'그래봐야 화신기의 극에 이른 놈은 하나 밖에 없을 걸? 나머지는 고작해야 중기나 후기겠지. 그런 정도라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수 있어. 물론 자신이 있다고 정면 승부를 할 것은 아니지만.'
네? 정면 승무를 안해요? 그럼 어쩌시려고요?
'보면 안다.'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천천히 무호해의 안개 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개 속으로 몇 걸음 들어간 장우는 곧바로 두 손을 뻗어 안개에 잔결독공의 독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스슷! 치지지직!
그러자 곧바로 장우를 중심으로 주변의 땅이 독기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땅에까지 독기가 영향을 주는 것은 고작 십여 장의 거리까지 뿐이었다.
그 이상은 독기가 은밀하게 안개에 젖어들어 무호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호에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닥치고 있었다.
* * *
오래 전에 어인족 수사 몇이 무호에 들어와 정착했다.
어인족은 인간의 몸에 생선의 머리를 하고 있는 종족으로 바다와 호수에 널리 퍼져 살고 있는 종족이었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곳 무호에 여러 다양한 종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지만 그 어인족 수사들이 들어온 후로 모두 노예가 되거나 죽었고, 운 좋은 일부만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원래 무호에 나타난 그 어인족 수사들은 암해의 알려지지 않은 군도(群島)에 살던 이들이었다.
암해 군도의 여러 섬들 중에 하나에서 번창하던 그들 어인족은 다른 어인족과의 전쟁에 크게 패해서 도망치게 되었다.
원래 그들은 암해 군도의 섬을 탈출할 때에 천여 명에 가까운 동족 수사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암해를 지나는 동안에 그 많은 수사가 거의 모두 죽게 되었다.
결국 고작 열한 명만 살아남아 무호까지 왔던 것이다.
그러나 겨우 열한 명의 수사라 하더라도 그 중에 셋이 화신기 경지라면 그 전력을 약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열한 명의 어인족 수사들은 떠도는 중에 만난 무호를 마음에 들어 하며 그 무시무시한 전력을 앞세워 무호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족장님!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족장님, 어서 나와 보십시오."
한창 수련 삼매에 빠져 있던 어인족 족장은 수련동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의념을 펼쳐 수련동 밖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열 명의 일족이 모두 몰려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그는 일족들이 모두 수련동 앞에 몰려온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손을 들어 수련동에 펼쳐 놓았던 금제와 결계 진법을 회수했다. 그리고 영기를 담아 밖에 있는 일족들에게 말했다.
"모두 들어 오너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신기 경지의 일족 둘이 다른 일족 여덟을 영기로 묶어서 수련동 안으로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냐?"
족장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던 일족 열 명이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신기에 이르지 못한 일족의 어린 아이들 여덟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기식이 엄엄했다.
"으음. 독(毒)?"
족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족을 데리고 온 화신기의 수사 둘을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매우 강력한 독입니다. 독이 육체는 물론이고 영체까지 중독을 시킵니다."
"우리 둘은 안개에 담겨 있는 독이 미약하여 어떻게든 중독을 피했지만 경지가 낮은 아이들은 모두 당했습니다."
화신기의 두 일족이 다급하게 족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중에 족장은 의념을 펼쳐 쓰러져 있는 일족의 몸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데 그런 족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서 좀처럼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족장님, 어떻습니까?"
"해독할 방법이 있겠지요?"
족장이 중독된 일족을 살피는 것을 알아차린 두 수사가 번갈아가며 물었다.
"일단 이걸 한 알씩 먹여 보자."
일족 수사들이 해독에 대한 기대를 가졌지만 족장은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워낙독기의 수준이 높아서 중독을 풀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영단을 먹여서 해독을 시켜보자는 것이었다.
"족장님, 어찌 금혈단을!"
"그렇습니다. 우리도 아끼느라 좀처럼 먹지 못하는 것인데 아이들에게 나눠준단 말입니까?"
두 화신기 수사가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족장은 그 두 일족이 사실은 죽어가는 일족보다는 자신이 가진 금혈단에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아이들을 그냥 죽도록 두자는 소리냐? 이 금혈단을 쓰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줄 금혈단을 너희에게 줄 수도 있지."
"그건……."
"아, 전……?"
족장의 말에 두 화신기 수사들은 얼굴을 붉히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족장은 그런 두 수사에게 야단을 치거나 하지 않았다.
사실 그도 족장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후손들이 죽거나 말거 나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들의 세계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자신은 지금 부족을 책임지는 족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중독된 부족원을 챙기려 하는 것이었다.
족장은 소매에서 납작한 나무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새끼손톱 크기의 황금색의 영단 십여 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먹여!"
족장이 여덟 개의 금혈단을 허공에 띄우고 화신기 수사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영단을 나눠주었다.
영단 네 개씩을 전해 받은 두 화신기 수사들은 그 금혈단 넷을 두고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쓰러져 있는 부족원들에게 금혈단을 먹이려 했다.
"잠깐, 그거 그렇게 쓰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내가 중독을 풀어주면 그 금혈단을 내게 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들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목소리와 함께 쏟아진 의념이 강력해서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잘 했어. 일단 그렇게 대기하고 있어."
< 금혈단 의뢰를 시작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