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75화 (37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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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륜역 (星輪域)의 행륜관(行輪關) 앞에서 걸음을 멈추다>

장우는 종련문의 비행 법보가 가지는 특별한 은폐 기능 덕분에 암해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암해 곳곳에는 화신기 이상의 존재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종련문의 비행 법보가 흘리는 기운이 워낙 미약하여 그런 존재들의 관심을 끌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운이 좋았는지 장우는 암해의 서쪽 땅에 도착한 후에도 큰 곤란을 겪지 않고 목적지 가까운 곳까지 올 수 있었다.

드디어 분혼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장우의 평온한 여정은 거기까지였다.

장우가 넘을 수 없는 강력한 장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성륜역(星輪域) 전체가 하나의 수도 문파 세력이라니 굉장하네요. 거길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요.

몽이가 팔짱을 끼고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성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성문은 특이하게도 허공으로 올라가는 삼천삼백삼십삼 개의 계단 끝에 우뚝 솟아 있었다.

성륜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그 계단을 올라 성문을 통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행륜관(行輪關)이라는 이름의 그 성문은 성륜역의 경계 어느 곳이든 가까이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떠오르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방법으로 성륜역으로 가려 했다가는 태령기 경지라는 행륜관 수문장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태령기 이하의 경지라면 감히 행륜관을 거치지 않고 성륜역을 오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분명 성륜역 안에 분혼이 있는데 만날 방법이 없네.’

어쩔 수 없죠. 못해도 성령기 정도는 되어야 행륜관의 삼천삼백삼십삼 계단을 오를 수 있다잖아요. 그건 성륜역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라면서요?

‘성륜역의 수사들도 외부 세상으로 나서려면 그 정도 경지가 되어야 한다지.’

이제 정말 한 단계만 넘으면 분혼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답답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분혼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분혼이 깃든 몸과 본혼이 있는 몸의 경지가 같아야 한다.

하지만 꼭 혼을 흡수해서 하나가 되는 것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

분혼을 직접 만나서 분혼이 알고 있는 모든 기억을 전해 받기만 해도 기억의 혼란은 정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혼을 흡수해서 의념의 강도를 증진하는 것은 그 후에 경지를 맞춰서 늦게 해도 될 일이다.

장우는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든 분혼을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암해를 건넌 후에 드디어 어느 정도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되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륜역의 규칙이 이렇게 앞을 막을 줄이야.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는 장우님의 생각처럼 어딘가 성륜역으로 통하는 뒷구멍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갑자기 몽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장우를 보며 말했다.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꼭 말씀을 하셔야 제가 아는 건 아니죠. 아직도 그걸 모르세요?

‘음, 뭐? 내가 뭐 틀린 생각을 한 건 아니지.’

네네. 무슨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고 보면 반드시 탈이 날 거예요. 그런데 굳이 그런 방법을 찾을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냥 곱게 성령기 경지까지 승경을 한 후에 떳떳하게 성륜역으로 들어가란 소리지?’

그렇죠! 게다가 영찬황과 영찬후들은 또 어쩌실 거예요? 그것도 재련을 해야죠. 그러려면 입령기 이상의 경지에는 올라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상황이 그렇다면 내친김에 성령기 경지까지 묵묵히 수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 말이죠.

- ‘쯧. 그게 정도(正道)긴 하지. 그런데……

이번엔 제 말을 좀 들으세요. 괜한 분란을 만들지 마시고 그냥 수련에 정진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네?

장우가 뭐라 토를 달려는데 몽이가 얼굴에 엄정한 빛을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장우는 정색한 몽이의 태도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그걸 무시할 수는 없겠지. 알았다. 그렇게 하자. 어떻게든 성령기 경지까지 승경하는데 목표를 두고 움직여 보자꾸나.’

그렇게 성륜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행륜관 앞에서 장우는 승경에 대한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 * *

성륜역 경계에는 의외로 성륜역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수사들이 많이 있었다.

성령기라는 기본 입장 자격이 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성륜역을 둘러싼 지역에는 그런 수사들이 모인 마을이나 성이 많았고, 때로 무리를 지어 단체를 만든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 때문인지 의외로 수사들 사이의 교류가 극히 활발하기도 했는데 장우 역시 자연스럽게 그런 수사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제일 먼저 화신기 완경에 이르러서 입령기를 노려봐야죠.

‘그러자면 당연히 잔결독공의 연공에 힘을 주어야 할 것이고?’

물론이죠. 하지만 언제까지나 잔결독공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어요. 장우님도 그건 알고 계시죠?

‘맞아. 잔결독공의 성취를 높여서 입령기에 들게 된다면 지금의 역법반서복원대법(逆法反臟復元大法)으로는 버티지 못할 거야.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수련 경지를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해.’

맞아요. 여기서 자칫 죽게 되면 또 어디서 부활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절대 죽어선 안돼요.

몽이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장우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잔결독공과 역법반서복원대법, 두 수련 공법을 모두 수련해야 한다는 거지. 그러자면 독과 진혈이 필요하고.’

잔결독공의 연공에 필요한 독기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해파리의 진혈이죠.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수련 경지는 부활을 할 때마다 부활에 사용되는 진혈기 덕분에 쉽게 늘어나지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맞아. 역법 반서복원대법의 경지를 올리는 올바른 방법은 그에 맞는 진혈을 찾아 흡수하는 거지. 문제는 그 해파리의 정확한 정체조차 알지 못한다는 거지만.’

그래도 진혈을 직접 보면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수련에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수 있잖아요. 진혈이란 것이 워낙 다양한 갈래로 갈라져 이어지는 것이니 꼭 그 해파리의 진혈이 아니라도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런걸 찾을수 있다면 좋겠지.’

그러니까 이제 장우님이 하실 일이 정해진 거네요? 독기를 품은 수련 자원을 모으고, 동시에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수련에 도움이 될 진혈을 구하는 거요.

‘그렇겠지. 자, 그럼 그만 떠들고 들어가자.’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커다란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 전각은 장우가 방문한 작은 성의 번화가에 있는 것이었는데 현판에 역무청(役務廳)이라 적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어떤 용무가 있으십니까.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장우가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서 성단기의 수사 하나가 그를 맞이하며 안내를 자청했다.

장우는 의념을 펼쳐 그 수사를 살폈다.

혹시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안내인은 전각 안에 한 둘이 아니었다.

매번 전각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안내인들이 달려가 맞았는데, 대부분 연신기와 축기기의 수사들이고 성단기는 몇 되지 않았다.

“네가 나에게 온 것은 내 경지를 따져서 배정이 된 것이냐?”

장우가 안내를 자청한 수사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 역무청에서 작은 일을 맡은 이들은 대부분 연신기와 축기기인데, 화신기 어르신을 모시기엔 부족함이 많아서 특별한 경우에 저같은 놈이 나서게 됩니다. 저는 소사(昭徒)라 합니다.”

“그래, 보아하니 내가 이곳에 처음 온 것을 아는 모양이구나?”

“어르신께서 역무청에 처음 오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지부엔 처음이신 것이 분명하고 아울러서 역무청에 속한 노사(勞士)도 아님은 분명하지요. 그러니 제가 어르신을 모시게 된 것이 아니 겠습니까.”

“여기서 무역청에 속한 이들을 노사(勞土)라 부르느냐?”

“네, 그렇습니다. 일하는 사람이란 뜻이라 듣기엔 별로 좋지 않지만 오래도록 그렇게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어디 나도 노사로 등록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꾸나. 안내를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장우의 말에 소사라 했던 수사는 활짝 웃으며 서둘러 한쪽 복도로 장우를 안내했다.

그리고 소사와 장우가 그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공간이 분리되며 독립된 곳으로 이동되었다.

장우도 그런 사실을 알았지만 고작 전각 안쪽의 공간을 확장한 것 뿐이라 별로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소사는 태연한 장우의 모습에 좀 더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졌다.

장우의 반응만으로도 그가 다른 수사들과 달리 비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간 변화에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은 상황을 모두 파악할 능력이 있거나 혹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극복할 자신이 있다는 말일 테니까.

“들어가시지요. 이곳이 지부장의 방입니다.”

소사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염으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란 의미였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냐?”

“시키실 일이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너를 쓸 일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어르신.”

소사는 장우의 말에 활짝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일을 공으로 시키진 않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이다.

장우는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늘어진 가느다란 주렴을 가르고 들어가니 오른쪽에 탁자를 놓고 앉은 수사 한 명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역무청의 부로성 지부를 맡고 있는 도명유(逃明儒)라 합니다.”

그는 장우와 눈이 마주치자 의자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아 공수하며 인사를 했다.

장우는 그가 화신기의 극에 이른 수사임을 알아보았다.

“장우라고 합니다.”

장우 역시 마주 공수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 앉으시지요.”

지부장 도명유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장우에게 탁자 앞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장우는 탁자의 앞에 도명유와 마주 보지 않도록 놓여 있는 의자 중에 하나에 앉았다.

그러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도명유와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역무청을 찾으셨습니까? 소사가 이곳으로 장우 수사를 안내한 것을 보면 짐작이 가긴 합니다만.”

도명유가 눈빛 가득 기대를 품고 장우에게 물었다.

장우는 그런 도명유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짐작하셨겠지만 제가 역무청에 가입을 하려 합니다.”

“오호! 역시 그렇군요. 하하하 정말 기쁜 일입니다. 화신기 중기에 이른 수사가 역무청에 적을 두겠다니. 하하하.”

장우의 말에 도명유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크게 웃었다.

어쨌거나 경지 높은 수사가 일을 하겠다는데 그 얼마나 기꺼운 일인가. 역무청으로선 능력 있는 일꾼이 늘어난다는 것인데.

“역무청을 통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따른 수수료가 조금 있다지만 그 정도야 감수할 만하다지요?”

장우가 그런 도명유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역무청은 쉽게 말하면 중개상 혹은 거간꾼의 역할을 하는 단체라 보면 된다.

그들을 통해서 이런저런 일을 의뢰할 수 있고, 또 일을 하고 대가를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역무청은 중간에서 그 모든 거래를 주선하고 그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다.

역무청의 힘은 오랜 세월 성륜역 주변 지역을 촘촘하게 엮어 놓은 그물같은 소통 체계였다.

장우도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성륜역 주변에서는 역무청을 통하는 것이 무슨 일을 도모하든 가장 좋은 수란 결론을 내리고 이곳을 찾은 것이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게다가 저희 역무청이 모든 수사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특히 청에 속한 노사(勞土)들을 우선하는 것도 분명하지요. 장우 수사께서도 이미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제가 역무청에 소속되길 바라고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우(張遇)는 그렇게 부로성의 역무청 지부장 도명유와 노사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장우의 역무청 노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 성륜역 (星輪域)의 행륜관(行輪關) 앞에서 걸음을 멈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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