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69화 (36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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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아미 (枰 賊微)>

“눈을 뜨거라.”

장우는 눈을 감고 뜨지 않는 제자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눈꺼풀을 바르르 떨면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장우를 한 번 보고를 슬쩍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어디에요? 산 속인가요?”

잠시 후 아이가 장우를 보며 물었다.

“그렇지. 나무가 숲을 이룬 언덕이 높으니 산이라 할 수도 있겠구나.”

“정말 신선니민가요?”

“네가 수사를 아느냐?”

“수사요?”

“보통 사람들이 신선이라 하는 이들을 수사라 하지. 수련을 하는 이들이란 뜻이다.”

“신선님드를 수사라고 하는군요? 그럼 아저씨는 수사니민거죠?”

“아저씨? 너는 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네? 그러믄요?”

“스승님이라 부르거라.”

“스승니미요?”

“스승니미가 아니라……. 그래, 그냥 사부라 불러라.”

“사부니미요?”

“그냥 사부!”

“네에…… 살짝 언성이 높아진 탓인지 아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네 말대로 나는 대도를 걷는 수사....... 에이, 어린 것을 데리고 뭘 하자는 것인지. 쯧.”

장우는 자신을 소개하려다가 고작 여섯 살의 아이인 것을 생각하고는 혀를 차고 말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의념을 펼쳐 아이를 잠재웠다.

아이가 영특해 보이니 잘 설명하면 알아듣지 않을까요? 그렇게 재워 버리면 어떻게 해요?

‘어린 것이 뭘 얼마나 알아듣겠냐?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계획을 앞당겨야지. 요 녀석을 가르칠 괴뢰를 서둘러 만들어야 되겠다.’

결국 제자 교육을 괴뢰에게 맡기시게요?

‘어차피 평부령의 부탁으로 평씨 혈족 중에 하나를 수도계로 이끄는 것뿐이다. 따지자면 아이의 스승은 평부령으로 하는 것이 더 알맞겠구나.’

평부령을 닮은 괴뢰를 만들어 아이를 가르치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대충 앞가림을 할 정도만 가르치고 버려둘 생각이신 거죠?

몽이가 그런 장우의 말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앞을 오가며 물었다.

‘버리긴! 원래 산수(散修)의 길은 그런 거지.’

당연히 장우는 펄쩍 뛰었다.

세상 억울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사부라고 부르라고 하지를 말아야죠.

‘원래 산수가 그런 거라니까? 그리고 여기 암해의 수중 세계는 바로 그런 산수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잖아.’

장우는 다시 한 번 몽이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긴 평부령 수사도 축기기 초기까지만이라도 보살펴 달라고 했죠.

‘이곳에선 축기기까지도 돌봐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잖아. 물론 그것도 스승이 되는 이의 경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곤 했지만.’

애초에 이곳 암해의 수중 세계는 과거 산수파를 지지하던 이들이 매몰되어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따로 문파를 두지 않고 수사들이 서로 교류하며 수도계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자신들을 산수라 일컬으며 그에 합당한 수련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했다.

- 흥, 그래봐야 이곳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수도 문파나 뭐가 달라요? 따지고 보면 태이문보다 훨씬 거대한 수도 문파인 셈이죠.

‘영역의 넓이만 따지면 태이문보다 크지만 수사들의 숫자나 수준을 따지면 그리 크다고 하기는 어렵지. 게다가 이곳엔 문주에 해당하는 우두머리도 딱히 없고.’

대신에 무슨 회의인가 그런 게 있다고 했잖아요. 화신기 이상의 수사들이 모여서 이러쿵저러쿵 한다면서요?

‘그렇게 따지면 하계인 인계나, 영계도 하나의 세력으로 묶어야 할 텐데? 그건 좀 아니지 않냐?’

그렇게까지 말해버리면 쳇! 몰라요!

몽이는 다시 토라져 버렸다.

장우는 그런 몽이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잠든 아이가 눈에 들어오자 장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어린 아이를 제자로 삼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 * *

암해의 수중 세계는 엄청난 크기의 공기방울이 대지를 덮고 있어서 그 안에서 뭍의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기방울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점차 커져왔다.

물론 공기방울이 자연적으로 커진 것은 아니다.

공기방울은 수중 세계에 수사들이 증가할수록 그에 맞춰 넓어져 온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공기방울이 점점 넓어지는 이유를 밝히진 못했지만 수중 세계에서 고계 수사가 사라질 때, 혹은 새로 승경에 성공할 때마다 공기방울의 크기가 줄어들거나 늘어난 것은분명 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그 경계에서 가깝다는 말씀이네요?”

= 그렇지.

“그럼 위험하지 않아요?”

= 장우 수사께서 계신데 뭐가 위험하겠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단다.

“그래요?”

= 너도 축기기에 오른 후로는 반 시진 정도는 암해에서 버틸 수 있게 되지 않았니?

“그거야 사고(師姑)께서 저를 밖으로 내던지셔서 그런 거잖아요!”

듣고 있던 아미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 호호호. 덕분에 네 수련이 빠르게 늘지 않았느냐. 그 수련이 아니었다면 네가 어찌 축기기의 경지를 그리 빨리 안정시킬 수 있었겠느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어떻게 제자를 암해에 던져 넣을 수가 있어요?!”

= 나는 내가 수련했던 것을 그대로 네게 가르쳐 줄 뿐이란다. 그래서 너는 이제 내 가르침이 필요 없다는 거냐?

“누, 누가 그렇다고 했어요?!”

열예닐곱 되어 보이는 소녀.

아미가 얼굴을 붉히며 멈칫거렸다.

비록 수련이 고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승의 가르침을 그만 받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었다.

= 호호홋, 그럴 줄 알았지 .

“그래서 사부는 어딨어요? 또 채집을 가신 건가요?”

= 그래. 지금 이곳에는 없지.

“쳇, 너무해요. 축기기에 올랐을 때, 잠시 얼굴을 보여주시곤 또 잊으신 거군요?”

= 사부에 대해선 나한테 물어봐야 소용이 없단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으니까.

“그렇겠죠. 사고는 사부 편이니까요.”

= 누구 편이라거나 그런 것과는 다른 문제다만…….

“됐어요. 쳇.”

아미는 신경질을 부리며 눈앞에 있는 사고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사고라 부르는 존재는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운 여성 수사였지만 실제로는 잘 만들어진 괴뢰였다.

아미의 사부인 장우가 아미의 교육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괴뢰로 평부령(枰薄嶺)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평부령은 이곳 수중 세계에서도 유명한 수사였는데 태이문과의 싸움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런 평부령의 임종을 사부인 장우가 목격했고 죽어가던 평부령의 부탁으로 평씨 일족에서 수사 하나를 키우기로 했다고.

그리고 그런 중에 장우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미였는데, 스스로 제자를 가르칠 재주가 부족하다 생각한 장우가 평부령을 닮은 괴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평부령이란 괴뢰는 실제론 제대로 된 감정이나 판단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장우가 평부령의 유산을 수습하며 파악한 평부령이란 수사의 성격이나 지식을 토대로 만들어낸 인형일 뿐이다.

아미가 사고라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녀 단순한 인형에 불과하다.

그래서 아미는 평부령 괴뢰와 함께 있으면서도 항상 사부인 장우를 그리워하곤 했다. 아무래도 인형에게선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을 기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너는 또 평부령 괴뢰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냐? 도대체 뭐가 불만이란 말이냐?”

“사부!!”

아미가 사고에게 신경질을 냈다가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을 즈음 불현듯 장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녹색 둔광과 함께 장우의 모습이 아미의 앞에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축기기 경지를 안정시켰구나. 제법이다.”

장우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아미의 상태를 의념으로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기기에 오른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 경지를 안정시킨 것을 두고 아미를 칭찬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장우가 평부령 괴뢰에게 특별한 시선을 보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평부령 괴뢰는 그저 자신이 설정해 둔 명에 따라서 아미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감정 없는 인형일 뿐이었다.

잘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인형에서 감정을 소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이유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부.”

아미가 장우의 칭찬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너는 어찌 나를 찾았느냐? 괴뢰를 통해서 가르칠 것은 모두 가르친 것 같은데?”

장우가 문득 정색을 하며 아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아미 역시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미 역시 이제는 장우에게 기댈 시기가 지났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 드디어 축기기에 올라 독립할 자격을 얻었으니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하지만 간혹 경지가 높은 스승님들은 제자를 더 오래 가르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걱정할 이유가 없겠지. 평부령 괴뢰는 끝까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말이다.”

장우는 미련이 남은 듯한 아미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평부령 괴뢰는 만들 때부터 아미에게 속하도록 만들어진 괴뢰였다.

물론 장우가 마지막 금제를 풀어주어야 완전히 아미의 것이 되겠지만 이제 그 때가 되기도 했다.

그 경지가 영체기 초기인 괴뢰이니 이곳 암해의 수중 세계에서는 그리 처지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아미가 아직 축기기 초기라 하지만 평부령 괴뢰와 함께라면 다른 영체기 초기의 수사들도 크게 두려워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한 아미가 원한다면 이곳 수중 세계를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고작 영체기 괴뢰를 믿고 돌아다니기엔 암해가 호락호락하진 않겠지만.

“그냥 사부가 좀 더 저를 돌보아 주시면 안 되나요?”

아미는 결국 자신의 바람을 장우에게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화신기인 사부의 그늘에 있으면 훨씬 빠르고 쉽게 경지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떼를 써 보는 것이다.

“원래는 평부령 괴뢰를 네게 붙이고 나는 훌쩍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즈음 문득 작은 깨달음이 있어 이곳 수중 세계에 머물기로 했을 뿐이다. 내가 이곳에 머문 이유는 아미 너 때문이 아니란 소리지.”

“그럼 조금만 더 머물러 주실 수는……."

“네가 겉으로 보기엔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이지만 실제론 벌써 나이가 백오십에 가깝다. 그런 네가 스스로 앞가림을 못한다면 그 또한 네가 문제인 것이겠지.”

“사부! 너무해요!”

“소리 지를 것 없느니라. 너도 짐작하겠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것은 이만 작별을 고하기 위함이니.”

“사부!”

“시끄럽다. 네 수행을 돌보기 위해서 내 수련을 미뤄 둘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

“그,그렇지만……"

장우의 냉정한 말에 아미는 어쩔 줄을 모르고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장우는 그런 아미를 보며 표정을 차갑게 바꾸었다.

“고작 축기기인 너는 고작 수 십 년의 폐관도 부담이 되겠지만 화신기인 나로 말하자면 한 번에 수 백 년의 폐관을 할 때도 흔하다. 이런 내가 너를 어찌 돌본단 말이냐?”

“그러니까 또 다시 폐관을 하신다는 말씀이에요? 이전에도 100년 가까이 폐관을 하셨잖아요.”

“그래, 그러다가 네가 축기기에 오른다 하여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지. 그리고 고작 수련 자원이나 채취하며 시간을 보냈고.”

장우는 아미 때문에 몇 년을 허송세월한 것을 살짝 언급했다.

아미는 그 말에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사부의 수련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그럼 이번에 폐관에 드시면 언제나 다시 나오시는 거에요?”

아미는 혹시 하는 표정으로 장우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수 백 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는 너는 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할 것이야.”

이런 것이 고계 수사가 저계 수사를 제자로 거두기 어려운 이유다.

연신기는 고작해야 수명이 200년이고 축기라 하더라도 500년 수명이 늘 뿐이다.

화신기인 장우가 작정하고 수련 삼매에 빠지면 한 번에 그 시간을 흘려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축기기 제자를 거두어 가르친단 말인가.

장우가 평부령 괴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당연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좋아요 사부가 수련을 오래 한다면 이 제자는 당연히 사부께 폐가 되어선 안 되겠죠. 하지만 제자는 사부께서 폐관을 마치고 나오실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 네가 성단기에 이른다면 당연히 가능할 수 있겠지. 수련에 정진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수(水)영근과 풍(風)영근의 이(二)영근인 네 자질이라면 가능성이 높겠지.”

“그러니 꼭 다시 사부를 만날 거예요. 두고 보세요.”

“네겐 평부령 괴뢰가 있으니 그것만으로 성단기에 오를 가능성이 몇 배는 높은데 뭘 그리 의기양양해 한단 말이냐? 당연히 그리 될 일을 가지고.”

“사부는 너무 인색해요.”

“뭐라?”

“제자에 대한 평가가 말이에요. 좀 더 잘 봐 주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시끄럽다. 대도(大道)에 무슨 정이 있다더냐! 대도무정(大道無情), 그것을 잊지 말거라.”

“사, 사부! 사부!”

아미는 대도무정 한 마디를 남기고 모습을 감춰버린 장우를 한참동안 불렀다.

하지만 결국 장우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아미는 장우가 수련동을 떠난 것을 짐작했다.

이후 아미는 평부령 괴뢰와 함께 수련동을 지켰다.

<평아미(科賊微)>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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