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68화 (36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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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들이다>

암해의 수심 수 백 장 아래.

거대한 공기방울이 하나 있었다.

그 공기방울은 가라앉은 다리 대륙을 평평하게 덮고 있었는데 그 안에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세상에도 갖가지 생명들이 숨쉬고 있었다.

평부령의 말로는 그곳은 오래 전에 암해 위에 있던 다리 대륙이 가라앉은 것이라 했다.

당시 대륙이 암해로 가라앉으며 대부분의 생령들이 죽을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 거대한 공기방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기방울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컸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처음에는 고작해야 지름이 1만 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크기였고, 그곳에 살아남은 이들도 많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수사들은 거의 모두 무너지는 대륙을 피해서 도망가고 남은 이들은 저계 수사들만 있었다던가.

하지만 어쨌거나 공기방울 덕분에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수사들의 실력도 높아지고, 그들이 나서서 공기방울의 크기도 넓혀 수중 세계의 영역도 점차 넓혀 나갔다.

그렇게 암해의 수중에서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세를 키운 수중 세계는 화신기 수사들이 등장하면서 드디어 암해로 나아가 바깥세상과 교류를 시작했다.

그것이 고작 몇 만 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하필 그 교류의 시작이 태이문을 만나 다투는 것이었으니 수중 세계의 수사들로선 운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태이문의 수사들은 암해의 수중 세계 주민들을 적대적으로 대했다.

태이문은 수중 세계의 주민들을 과거 자신들이 싸웠던 적의 후예로 대우한 것이다.

수중 세계의 수도계는 다리 대륙이 끊어질 당시에 버림받은 저계 수사들의 후예일 뿐, 태이문의 선조들과 싸웠던 수사들과는 연관이 없었지만 태이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 수중 세계 수사들과 태이문 제자는 항상 서로 싸우며 원수지간으로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 보자, 괜찮은 자질을 가진 아이가 있으려나.”

- 정말 평부령 수사의 부탁을 들어주실 거예요?

장우가 암해 수중 세계로 은밀히 들어와 작은 성에서 의념을 풀어 놓자 몽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약속을 했으니 당연하지.”

장우는 그런 몽이에게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평부령을 믿을 수가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분명히 뭔가 수작을 부렸을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지. 아니 내 생각에도 그렇긴 해.”

그런데 왜요? 왜 평부령 수사가 부탁한 일을 들어주신다는 거예요?

“그야 궁금해서 그런 거지. 어차피 암해를 지나는 중인데, 이런 특이한 곳이 있으니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 않겠어?”

-으음........

“크게 걱정할 것은 없을 거다. 정말 위험하면 거룡 비행 령보를 이용하면 그만이지. 이곳에는 아직 화신기 이상의 수사는 없다고 했잖아.”

- 그것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괜찮아. 그래봐야 고작 입령기나 성령기겠지.”

고작이라니요. 그런 수사와 적으로 만나면 아무리 장우님이라도 방법이 없을 거라고요.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요.

“하하하. 그래도 그런 방법이라도 있잖아. 걱정은 그만하고 이만 움직여 보자꾸나.”

- 네? 찾으셨어요?

“그래, 마침 수련 자질을 지닌 아이가 있구나.”

장우는 그렇게 뜻 모를 말을 하고는 훌쩍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그런 장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성에 있는 커다란 장원이었다.

수사는 없는거죠?

장우가 멀리 떨어진 골목에서 장원의 대문을 살피는데 몽이가 물었다.

“그래, 평부령 수사의 말대로다. 그저 범인의 장원일 뿐이다.”

그런데 수련 자질을 가진 아이가 마침 있다고요? 평부령 수사가 수작을 부린 걸까요?

“고작해야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다. 평부령 수사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곳에 없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만 년을 넘게 살아온 화신기 후기의 수사가 이런 일을 두고 거짓말을 했을까”

- 쳇, 그건 모르는 일이죠.

“녀석, 괜한 고집은.”

장우는 뾰로통한 몽이의 표정에 살짝 핀잔을 던지며 골목을 나서서 장원의 대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활짝 열린 대문 안쪽에서 빗자루 질을 하던 하인이 장우의 모습을 발견하고 잠시 바라보다가 그가 대문 앞에 서자 쪼르르 달려 나왔다.

“평가장(枰家莊)을 찾아오신 분이십니까?”

하인은 장우에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대문 앞에서 안쪽을 보고 있으니 장원에 볼 일이 있는가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다. 너는 들어가서 장원의 주인에게 이 집안 아이의 스승이 왔으니 나와 맞이하라 전해라.”

“네?”

“쯧, 가서 전하면 알 일이다.”

“네?! 네에! 알겠습니다요.”

장우의 말에 서른은 되어 보이는 하인이 뭔가 깨달은 듯이 크게 대답하고는 다급하게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평가장의 가인(家人)들 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송구합니다. 평가, 을고가 삼가 선인을 뵙습니다.”

“선인을 뵙습니다.”

“선인을 뵙습니다.”

그들 중에 가장 앞선 이는 환갑이 지난 듯 머리가 하얀 늙은이였다.

그가 장우를 향해 인사를 하며 땅바닥에 엎드리자 뒤따라 온 평가장 사람들 모두가 그를 따라 엎드렸다.

장우는 그 모습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이 평가장의 안쪽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평을고라 하였느냐?”

“그,그렇습니다.”

“너는 내가 이 집안 아이의 스승이 될 것이라 하는 소리를 들었느냐?”

"네, 선인어른.”

“그래? 그런데 어찌 내 제자는 나오지 않는 것이냐?”

“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선인 어른의 말씀을 전해 듣고 곧바로 아들들과 손자 손녀까지 모두 데리고 나왔습니다.”

“으음?”

장우는 평을고의 말에 이마를 찌푸렸다.

“그럼 저 안에 있는 아이는 네 자손이 아니란 말이냐? 평가가 아니라고?”

장우가 다시 장원의 안쪽으로 바라보며 평을고에게 물었다.

지금 앞에 엎드려 있는 이들 중에는 장우가 찾은 아이가 없었다.

그 아이는 지금도 평가장의 안쪽에서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 설마 선인께서 아미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뭐라? 그런 천한 것이 어찌 선인 어른의 제자가 된단 말이냐?”

“하지만 여기 없는 평가의 혈족은 그 아이 밖에 없지 않습니까.”

“시끄럽다. 그 아이는 평가의 혈손이라 할 수 없다.”

그 때, 장우의 앞에서 가주인 평을고와 그의 아들 사이에 작은 언쟁이 일어났다.

장우는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대충 짐작 할 수 있었다.

지금 안쪽에서 홀로 흙장난을 하고 노는 아이는 평가의 피를 이었지만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인 것이다.

“누구냐? 아미라는 아이는.”

장우가 물었다.

“선인어른. 어른께서 관심을 둘 아이가 아닙니다. 제 막내 여식이 누구의 씨인지 모를 씨를 받아 낳은 더러운 것입니다.”

“아버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외손녀입니다!”

“내게 그런 외손녀는 없다!”

“아버지!”

“어허! 시끄럽다. 너희가 지금 내 앞에서 말싸움을 하는 것이냐?”

장우가 부자의 다툼에 일침을 놓았다.

그러자 평을고와 그 아들의 표정이 핼쑥해지며 입을 다물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너희 범인들의 평가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저 안에 여섯 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하나 있을 것이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았으며 지금은 화단 옆에 앉아서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지. 너는 당장 가서 그 아이를 데리고 오거라.”

장우가 평을고와 말싸움을 벌이던 아들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그러자 그 아들은 장우가 찾는 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안쪽으로 뛰어갔다.

“평을고, 지금 네 아들이 데리러 간 아이가, 네 딸이 낳은 아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너는 그 아이를 혈족으로 인정치 않는다 했더냐?”

“그, 그것이……"

“무엇이냐! 그렇다는 것이냐 아니라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아미는 제 외손녀입니다. 부, 분명히 평가장의 후예입니다.”

“쯧, 그 짧은 순간에 말을 바꾸는구나.”

“서,선인어른, 죽을 죄를……"

“그만! 오늘은 내가 제자를 거두는 경사스러운 날이다. 그러니 더는 삿된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장우는 뭔가 말을 하려는 태을고의 입을 그렇게 틀어막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안으로 들어갔던 태을고의 아들이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 그 사이에 아이의 손과 얼굴을 씻겼는지 아이의 머리카락과 소매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이리 오너라.”

장우가 그 작은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소심스럽게 장우를 향해 다가왔다.

장우는 아이가 스스로 대문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가 밖으로 나오자 영기를 일으켜 아이를 끌어 당겼다.

"으으으"

아이는 몸이 떠서 장우의 품으로 끌려가자 깜짝 놀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이는 울음을 참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이 아이가 스스로 집을 나서 대도의 길에 올랐다. 나는 이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여 스승으로 가르침을 아까지 않을 것이다. 평을고는 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느냐?”

장우가, 멍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평을고에게 물었다.

“그저 선인어른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평을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흥! 조금 전까지 내 제자를 외손녀가 아니라 한 네 말을 기억한다.”

“요, 용서를……"

“하지만 제자를 얻은 날에 제자의 혈족을 벌할 수는 없으니 그것은 없던 것으로 한다.”

“감사합니다. 선인어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우의 말에 평가장의 가인들이 모두 황급하게 머리를 땅바닥에 찧었다.

“아울러, 제자의 혈족에게 작은 선물을 남기는 관례에 따라서 나 역시 너희 평가장에 성의를 표하겠다.”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매를 휘둘러 평가장의 현판에 영기를 뿌렸다.

그러자 평가장의 현판에 현묘한 법술 문양이 그려졌다.

“이제 평가장은 이 백년 동안 불과 물에서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재지변에 대한 것일 뿐, 사람으로 인한 흉액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너희는 항상 인심을 얻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인어른.”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황공하옵니다.”

장우의 말에 평가의 혈족들 중에 나이가 있는 이들은 저마다 감격하며 인사를 올렸다.

장우가 그들의 장원에 특별한 조치를 취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 수중 세계에서 간혹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수사가 수련자질이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대부분 그 아이를 제자로 들이는데, 그럴 때에는 아이의 집에 적당한 대가를 주는 것이 관례였다.

이는 이곳 수중 세계가 다른 곳보다 범인과 수사들이 가깝게 어울려 살다보니 생긴 관례이기도 했다.

“흥, 되었다. 너희의 인사를 받고 심은 생각은 없느니라. 하지만 한 가지 확인할 것은 있느니라. 제자의 어미는 어찌 되었느냐?”

장우는 평가장 가인들의 인사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고는 아이의 어미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는 소리뿐이었다.

실상은 출산 후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여 탈이 난 것이지만 장우는 그것까지 따져서 벌을 줄 생각은 없었다.

“이제 줄 것을 주었고, 받을 것도 받았으니 이만 가겠다.”

장우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아이를 팔뚝에 앉혀 들고는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러자 평가장의 가인들은 하나같이 장우가 떠나는 하늘을 향해 절을 멈추지 않았다.

<제자를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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