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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은 어렵지 않게 끝났는데 상황은 간단치 않다〉
“옥간을 봐서 알겠지만 실상 이 거대한 대지가 모두 구수신귀의 몸입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구수신귀의 등껍질이란 말이지요.”
구지보 문주는 일행을 선도하여 어딘가로 향하며 그렇게 설명했다.
물론 그가 준 옥간에 대략적인 설명이 있었기에 이제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다만 구수신귀라 하는 거북의 크기가 화신기 수사의 의념 범위를 아득히 넘을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거대한 생명체를 직접 눈으로 본 이가 몇이나 될까.
지금도 발아래에 있는 거대한 땅이 구수신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저깁니다. 저기가 우리가 잘라야 할 구수신귀의 머리가 있는 곳입니다.”
하루를 꼬박 날아간 끝에 구지보 종련문주가 거대한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굴은 사선으로 땅 밑을 향해 나 있었는데 그 입구가 거창하기 짝이 없었다.
“옥간에서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입구가 더욱 넓은 듯 합니다.”
삼안 수사가 이마의 눈동자에서 기묘한 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는 이마에 있는 눈을 통해 동굴 안쪽 깊은 곳을 살피 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상이 찌푸려진 것을 보면 구수신귀의 신통력 때문인지 그리 깊은 곳까지는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 섬 전체가 구수신귀의 몸입니다. 태령기 머리 여덟이 달려 있는 몸인데 우리같은 화신기 수사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미 아시겠지만 우리가 상대할 것은 저 안에 있는 아홉 번째의 머리……”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
구지보 문주가 일행에게 그렇게 설명을 하려는데 갑자기 동굴 쪽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지름만 수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동굴 안에서 뭔가가 밀려 나오고 있었다.
“허어 이게 무슨, 어찌 구수(九首)가 밖으로 나온단 말인가!”
이에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종련문주가 놀란 표정으로 동굴을 노려봤다.
“구수라면 아홉 번째 머리를 말하는 것인가요? 지금 그것이 밖으로 나온다고요?”
이에 해미정 수사가 놀란 기색으로 구지보 문주에게 물었다.
원래 옥간의 내용대로라면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사냥해야 했다.
그나마 동굴 안쪽이 구수신귀의 몸 안이니 아홉 번째 머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될 수밖에 없고, 세가 불리함을 아는 아홉 번째 머리는 항상 그곳에서 대응을 했었다.
그런데 스스로 동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모르겠소. 이런 일은 없었는데.”
구지보도 놀라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 이대로 물러나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해미정 수사가 마땅치 않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구지보에게 말했다.
하지 만 구지보는 그 말에 곧바로 고개와 손을 흔들었다.
“아니 될 말입니다. 이번에 물러난다고 다음에 더 나은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준비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 것입니다. 그 사이에 저 머리가 성령기라도 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석연잖은 상황이니 물러나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당연……."
콰과과과광! 우르르르릉!
삼안 수사와 역사 수사가 격하게 반대 의견을 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동굴 안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크고 작은 암석들이 쏘아져 나왔다.
그 기세가 사나운 것은 물론이고 그 암석들 하나하나 영기까지 깃들어 있어 일곱 수사들은 분분히 몸을 날려야 했다.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나옵니다 나와요. 구수, 그 아홉 번째 머리가 나오고 있어요.”
해미정이 놀라 고함을 지르자, 삼안 수사가 이마의 눈에 이전보다 더 강렬한 빛을 뿜으며 소리쳤다.
쿠아아아아아아.
= 이 놈들! 또 다시! 또 다시!
그리고 그 순간 동굴에서 용의 머리 하나가 빠져나와 허공을 향해 치솟으며 포효를 터트렸다.
“크윽!”
“억!”
“으으윽!"
그 소리에 일곱 수사들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런 중에 장우는 슬쩍 몸을 날려 종련문의 장로 중에 쇠집게를 들고 있는 장로 곁으로 다가섰다.
“저것이 구수입니까?”
“옳소. 입령기 초기라 하였는데 그 기운이 가히 어마어마합니다."
장우의 물음에 종련문의 장로가 굳은 안색으로 대답했다.
그 때, 구지보 문주가 고함을 질렀다.
“다들, 몸을 뺄 생각을 하지 말고 약속했던 대로 사냥을 시작합시다. 상황이 예상과 다르지만 따지자면 놈이 동굴 밖으로 나왔으니 우리가 더 유리해지지 않았습니까. 어서 공격을 시작하십시오."
구지보는 그렇게 외치고는 본을 보이겠다는 듯이 구수를 향해 먼저 철망치를 내던졌다.
장우는 그 때, 구수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는 중이었다.
장우의 눈에 보인 구수는 무척 늠름한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긴 수염, 사슴의 뿔과 등을 따라 이어진 흰 색의 갈기까지.
다만 여러 차례 목이 잘리는 바람에 동굴 밖으로 나온 몸통의 굵기가 어느 부분부터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쿠롸롸롸롸롸롸!
= 모두 죽이리라! 모두 죽이리라!
본래 신령스럽게 태어난 구수신귀, 그 아홉 번째 머리는 깊은 분노와 원한으로 이성을 잃은 듯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 없이 늠름해 보이는 용의 머리였지만 부리부리한 두 눈에선 흉측한 붉은 광망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장우는 그 붉은 눈빛에 담긴 저주와 분노, 살의를 느끼고 살짝 몸을 떨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
그리고 그 순간 구수의 입이 벌어지며 엄청난 기운이 구지보를 향해 쏟아졌다.
“허억!”
구지보가 그 기운에 깜짝 놀라며 구수를 향해 날렸던 쇠망치에 의념을 더했다.
그러자 그 쇠망치에서 새파란 화염이 넓게 펼쳐지며 방패를 만들었다.
구수가 뿜어낸 갈색의 기운은 그 방패에 부딪혀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직! 치지지지지직!
“엄청난 독기로군.”
장우가 그 갈색의 기운이 독기임을 알아보고 감탄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문주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자 쇠집게를 들고 있던 종련문의 장로가 그렇게 장우를 채근하며 먼저 쇠집게를 구수를 향해 휘둘렀다.
콰과과과과!
그 역시 종련문의 제자라 그런지 쇠집게에서 뻗어나가는 기운은 파란색의 화기였다.
모든 것을 태울 듯이 강렬한 화기를 구수의 머리를 향해 날린 것이다.
“돕겠습니다.”
장우가 그 모습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오른손에 잔결독공의 녹색 독기를 가득 끌어 올려 주먹 크기의 구슬 하나를 응결했다.
그리고 그 구슬을 구수를 향해 던지는 듯 하다가 그대로 종련문 장로의 등에 때려 박았다.
콰직!
“커어억! 이, 이, 무슨……?”
종련문의 장로가 갑작스러운 기습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등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장우를 돌아보았다.
“영혼까지 소멸시키기 전에 곱게 죽어라!"
하지만 장우는 그런 종련문 장로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아량 따위는 없었다.
그는 다시 왼손에 응결시킨 구슬로 장로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퍼벅!
“컥!”
단 한 수에 머리의 절반이 녹색 독기에 녹아버린 장로는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하지 만 그것이 끝일 수는 없었다.
수사의 몸이야 때로 잃을 수도 있는 법, 영체가 살아 있다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종련문의 장로는 등이 뚫리고 머리가 녹아내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영체를 몸에서 빼어내어 둔술을 펼쳤다.
번뜩!
“어딜 가느냐!’하지만 그것을 놓칠 장우가 아니었다.
장우 역시 그 영체를 따라서 둔술을 펼쳤고, 이미 크게 부상을 입은 종련문 장로는 장우의 손을 피하지 못했다.
= 살려 주시게. 이미 육신을 잃어 다시 회복하려면 장구한 시간이 걸리지 않겠나. 그러니 내가 장우 수사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네.
“어차피 내친 걸음인데 후환을 남길 일이 뭐란 말입니까. 그저 영혼을 소멸시키지 않고 윤회를 허락하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장우는 영체의 손에 들린 쇠집게를 빼앗은 후에 영체 전체에 잔결독공의 독기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이미 내상이 깊었던 장로의 영체는 그 독기를 견디지 못하고 흐물흐물 녹아 내렸다.
= 크아아아아! 2만 년, 각고의 수련이 이리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대도는 허무하기…….
장로의 영체는 지금까지의 수련이 덧없었음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녹아 없어졌다.
장우는 그렇게 사라진 영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어디론가 빨려드는 것을 느꼈다.
생을 마감했으니 영혼은 곧바로 천지 법칙에 따라서 윤회에 들었으리라.
번뜩.
장우는 곧바로 다시 둔술을 펼쳐, 자신이 죽인 장로의 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장로의 몸에서 몇 가지 법보와 공간낭을 취했다.
“커어억! 배, 배신이라니!”
그 때, 구지보는 구수에게 물려서 상체만 드러난 상태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구지보는 팔 하나가 뜯겨 나가고 쇠망치는 이미 해미정 수사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또한 모루를 가지고 있던 종련문 장로는 삼안 수사와 역사 수사의 협공에 이미 영체까지 소멸한 후였다 삼안 수사와 역사 수사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죽은 장로의 보물을 나누는 중이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누구도 빠져 나갈 수가 없는 법입니다. 구지보 문주.”
그 때 문득 해미정 수사가 구수의 입에 물린 구지보 앞으로 미끄러지듯 날아가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감히 약조를 어기다니!”
하지만 구지보는 분노로 인해서 주변 상황을 살피지 못하는 모양인지 계속 고함을 질렀다.
“이번에도 구수의 머리를 자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당신은 정말 몰랐나요?”
그런 구지보를 향해 해미정 수사가 냉랭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치 서리가 돋는 것 같은 해미정의 표정에 구지보가 움찔하며 눈빛이 흔들렸다.
“언젠가 구수신귀가 재앙이 될 것임을 정말 몰랐다는 건가요? 종련문이 지금껏 그렇게나 구수신귀를 연구했는데 그걸 몰랐을 리가 없겠지요? 안 그런가요?”
“아니다.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재앙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무슨 담으로 구수신귀의 머리를 자르겠다고 나섰겠느냐."
구지보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일견 그의 말은 타당하기도 했다.
구수신귀가 재앙으로 변하게 되면 당장 종련문부터 노릴 것인데 진선의 경지에 이를 구수신귀의 재앙을 구지보가 어떻게 피한단 말인가.
당연히 그것을 예상했다면 절대 목을 자르러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호호호호. 그런 변명이 통할 줄 알았습니까? 어림도 없지요.”
하지만 이에 해미정 수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구지보의 표정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무, 무슨........"
더듬거리 면서도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표정.
“구수신귀가 재앙이 되면 그 즉시 토벌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분이 있다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 구지보를 향해 해미정이 쐐기를 박듯이 물었다.
그리고 구지보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에 장우는 돌아가는 상황을 조용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구수신귀가 재앙이 되면 그걸 토벌하겠다고 벼르는 이가 있다고?’
그럼 적어도 진선 이상의 경지겠네요? 구수신귀의 재앙이 진선 경지와 대등하거나 그보다 강하다고 보면요.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종련문이 지금까지 했던 일은 결국 구수신귀를 타락시켜서 재앙으로 만들려는 큰 그림이었다는 거네?’
그걸 해미정 수사가 알고 있다면?
‘구수신귀를 잡으려는 신선을 견제하는 또 다른 신선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이거 일이 간단하지 않은데요? 아니, 고작 화신기 밖에 안 된 장우님이 왜 자꾸 진선들하고 엮여요?
‘그러게 말이다.’
장우님, 거기가 움찔움찔 하죠?
‘그건 또 무슨 소리냐?’
- 그런 거 있잖아요. 뭔가 긴장이 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똥꼬가…….
‘쉿! 그만! 또 무슨 이상한 기억이 떠올랐기에 그런 망언을……'
장우는 곧바로 몽이와의 대화를 끊어내고 해미정과 구지보, 그리고 구수를 지켜봤다.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구지보 당신이 믿고 있는 그 분의 영역이 아니에요. 그러니 일이 이렇게 들통 난 마당에는 그 분께서도 이곳에 간섭하지 못하실 거예요.”
“허허허허허허.”
해미정의 말에 구지보는 그저 허탈한 웃음만 터트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체념한 기색이었다.
“어찌 알았나? 아니지, 내가 알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죽여주게.”
그리고 잠시 후 웃음을 멈춘 구지보는 어떤 미련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그를 물고 있던 구수가 입매를 꿈틀거리더니 구지보를 그대로 삼켜 버렸다.
콰직! 꾸드드드득!
이어서 구수는 살짝 입을 벌려 구지보의 소지품을 뱉어 해미정에게 날려 보냈다.
해미정은 소매를 저어 그것들을 받아 넣고 구수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깊게 읍을 하며 말했다.
“약속대로 종련문의 악적들을 처리했습니다. 바라옵건데 미망을 떨치고 본성을 되찾으시길 기원합니다.”
크르르르르릉!
= 물러가라!
구수는 해미정을 향해 그렇게 짧게 말하고는 스르르르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어엇?”
“해 수사, 보상은……"
그 모습에 역사 수사와 삼안 수사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장우 역시 움찔하다가 해미정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고 태연한 척 뒷짐을 졌다.
- 약속을 안지키면요?
‘후환이 크겠지.’
〈 일은 어렵지 않게 끝났는데 상황은 간단치 않다 > 끝